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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2) 

디지털, 21세기판 ‘아스클레피오스 지팡이’ 될까 

건강은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다. 세계 각국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국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전염병이 세계를 덮쳤을 때 우리를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의료 시스템은 여러 허점을 드러냈다.

▎지난 2018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 러시아 환자의 인터넷 원격의료 장면.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치부를 노출하게 만들었다. 나라에 따라 마스크 착용 권장 같은 기초적인 의학 상식을 전달하는 것에서부터 혼선을 빚기도 했고,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병원의 환자 수용 능력도 문제를 키웠다.

한국은 훌륭한 초기 대응과 질병 관리로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조차 의료 시스템에 큰 허점을 노출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환자가 아닌 병원과 제약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의료보험 체계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어떠한 기술과 서비스가 도입되어야 할까?

미국 의료보험의 경우 한국보다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가 적고 혜택 내용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원격의료가 대안으로 적극 활용되어왔다. 한국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시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한 상황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료진 사이의 원격진료가 아닌 의료진과 환자 간 원격의료 행위는 불법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원격의료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원격의료 회사인 텔레닥 헬스(Teledoc Health)의 경우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41% 성장한 1억8080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미국 내 진료비 매출이 1258만 달러에 달해 전년 대비 무려 205%나 성장했다.

텔레닥 헬스 CEO인 제이슨 고어빅(Jason Gorevic)은 자사의 원격의료 플랫폼이 기술을 통해 의사와 환자를 연결해줌으로써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을 진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의료진과 인프라스트럭처의 절대 부족 현상을 감안할 때, 현재 사용 가능한 원격의료 시스템마저 없었더라면 취약·소외 계층은 더욱 가혹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였을지 모른다.

원격의료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석상. 뱀이 감싸고 있는 지팡이는 의학의 상징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지만, 그 외 다른 병들이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다양한 질병에 대한 대응과 관리도 원격의료를 활용하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원격의료 서비스로 자택에 머무르는 환자를 진료하고 의사가 처방한 약을 자택으로 배달해주면 환자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들게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된다.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거나 방문하면 뒤늦게 방역을 위해 해당 의료시설을 한시적으로 폐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물리적 거리 두기(Physical Distancing)’는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원격의료는 정해진 진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비용 부담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미국 의료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UnitedHealthcare)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진료비가 화상 원격진료는 50달러, 경증 진료를 위한 개인병원 방문은 85달러, 급한 증상 때문에 방문하는 긴급치료(Urgent Care)는 130달러, 응급실 방문인 경우 740달러가 든다고 한다. 응급실을 찾을 정도로 중증이 아닌 한 가격 측면에서 원격진료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렴해 상대적으로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조금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의료 부문의 디지털 혁신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인공지능(AI)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물론 인공지능이 진단부터 치료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인공지능은 단편적인 축이 고도로 발달한 도구다. 훈련하기에 따라, 변수 설정에 따라 그 안에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패턴을 찾아낼 수도 있고, 입력한 가이드라인이나 응대 매뉴얼 등을 활용해 환자의 초기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환자 신상 및 의료 정보를 빠르게 수합할 수 있고, 일차적인 차원에서 어떤 환자에게 더 즉각적이고 강도 높은 치료를 해야 하는지 선별해줄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염병 사태처럼 환자 수가 급증할 때 이들의 데이터를 모아 어떤 환자가 더 위태로운 상황인지를 인공지능이 판단해 그들에게 먼저 의료진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조치할 수 있다. 실제로 코페하겐대학교 컴퓨터 과학자들은 어떤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의료용 호흡장치가 필요할지를 판단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해 적용하기도 했다. IBM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분석을 바탕으로 한 관련 치료법 추천과 유사 사례 분석 등을 의료진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또 인간 게놈 유전자 데이터 처리와 분석까지 도와줌으로써 환자 치료에 필요한 심층 데이터를 서비스한다.

인공지능이 새로 열 의료 서비스

병원에 입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시간에 맞춰 상태를 체크하고 의사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하러 오는 구조는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료 행위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같은 수준의 관찰과 의료 행위가 필요한 건 아니며, 환자에 따라 체크해야 하는 주기도 관찰해야 하는 항목도 다르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입원 환자들을 과수용하게 된다면 정말 필요한 환자를 돌보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 수는 전국 평균 3.0명이다. 환자 1000명을 의사 3명이 나눠서 돌봐야 하는 구조인데, 인력 활용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고 해도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인간의 노동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디지털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환자 상태를 계속 체크하고 간단한 처방과 조언을 줄 수 있는 디지털 의료 컴패니언(Digital Health Companion) 생태계를 구축하면 거리와 시간의 장벽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특별히 고가의 의료 장비를 환자들이 구매할 필요도 없다. 전 세계 인구 중 35억 명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디지털 의료 체계는 촌각을 다투는 고위험군 병이나 혼자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 놓인 환자들보다는 당뇨나 류머티즘 혹은 비만처럼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증세가 호전될 수 있는 질병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간호 인력이 병원에서 환자를 일일이 방문해 상태를 체크하기보다는, 집에서 간단한 셀프 체크나 정보 입력을 통해 병세 진전을 의료진과 환자 모두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환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하는 일은 예전에 비해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원격의료 행위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이 시점에서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상용화가 안착되기 시작한 원격의료 시스템의 정밀화와 고도화로 환자가 요구할 때 빠르게 응대해줄 수 있고, 인공지능의 적절한 적용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디지털 시스템을 활용한 의료 서비스를 통해 환자와 질병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머신러닝으로 축적한 데이터를 발전시킴으로써 개인 상태와 증상에 맞는 맞춤형 치료법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당분간 의사의 존재를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 디지털 솔루션을 환자 치료에 잘 활용한다면, 고대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지팡이(Rod of Asclepius) 같은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상인 MS 디렉터는… 이상인 마이크로소프트(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미국의 디지털 디자인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딜로이트컨설팅 뉴욕스튜디오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한 그는 현재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서 디자인 컨버전스 그룹을 이끌고 있다.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 속해 있는 55개 서비스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모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이다.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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