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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4) 

리더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 

누구나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리더도 예외일 수 없는데 이들이 한 현명한 거짓말의 사례는 숱하다. 하지만 거짓말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일 뿐, 평소의 정직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사진: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리더의 말은 ‘비전’이다. 어떤 조직이라도 구성원들은 리더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 그저 물렁한 농담을 던졌다 해도 구성원들은 그 말 속에서 ‘뼈’를 찾는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회사에 무슨 문제가 있나?’ 리더가 입을 조심하고 말에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약속은 더욱 그렇다. 리더의 약속은 권위와 구속력을 갖는다. 당연히 지켜져야 하고 모든 구성원이 당연히 지켜지리라 믿는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초래되는 조직 내의 배신감 증가와 신뢰도 상실은 자칫 치명적일 수 있다. 리더가 공수표를 남발하고 다니는 조직의 미래는 없다.

하지만 예외 없는 규칙이란 없듯이, 늘 그런 것만은 아니다. 리더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당면한 문제에 지나치게 정직하게 접근해 애를 먹는 리더보다는, 요령 있는 거짓말로 사태를 조기 수습하는 리더가 조직과 조직원들을 위해 낫다. 지나치게 정직한 리더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고 이미 조직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리더는 정직해야 하지만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거짓말은 무엇일까. 역사 속의 예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하나를 보자.

중국 당나라 때 이포정이라는 인물이 노주 절도사로 있을 때, 세수 부족으로 관가의 창고가 바닥이 났다. 관원들의 봉록조차도 주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여기저기 융통할 곳을 찾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이포정에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 고장에는 덕망이 높아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고승이 있었다. 이포정은 고승을 찾아가 말했다.

“대사께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노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천한 소승이 힘이 돼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만, 말씀을 해보시지요.”

“다른 게 아니라 국고가 바닥이 났습니다. 대사의 명성을 빌려 이 난관을 극복해보려고 합니다.”

“허~. 나라의 곳간이 비었는데 가난한 승려가 어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한 바가 있는데 대사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나랏일을 하시는데 발 벗고 나서야지요.”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외람되오나 대사께서 열반에 드시겠다고 세상에 선포하시는 겁니다. 대사께서 길일을 정하시고 장작을 준비해두십시오. 그러면 제가 사전에 장작더미 아래로 갱도를 파놓겠습니다. 이후 날짜가 되면 대사께서는 장작더미에 오르고 신도들에게 장작에 불을 붙이라고 하십시오. 불이 붙으면 대사께서 얼른 갱도로 빠져나오십시오. 갱도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도와드릴 것입니다.”

“그럼, 소승은 살아도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죽은 목숨이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열반을 했으나 미처 해결하지 못한 중생 구제가 있어 다시 같은 몸으로 태어났다고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신통을 보여주면 대사의 명성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노승의 죽음으로 채운 곳간

노승은 이포정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제자들을 불러 불사를 준비하게 했다. 이포정도 관원들을 파견해 불사하는 터를 닦도록 했다. 약속한 대로 갱도도 팠다. 이포정은 노승이 안심할 수 있도록 노승과 같이 갱도로 내려가 보여주었다.

마침내 불사의 날이 됐다. 수많은 신도가 절 주변을 가득 메웠다. 밤이 돼도 수많은 등불로 대낮처럼 밝았고 승려들의 경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노승은 법단에 앉아 신도들에게 불법을 설파했다. 이때 이포정은 관원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 법단 아래 꿇어앉아 절을 하고 재물을 바쳤다.

그러자 절을 찾은 신도들이 앞다투어 재물을 바쳤다. 온갖 금은보화와 돈이 순식간에 산처럼 쌓였다. 이윽고 열반 시간이 되자 노승의 법단 주변으로 장작이 쌓였다. 승려들은 장작에 불을 붙이고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웠다.

불길이 올라오자 노승은 각본대로 법단 아래 갱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아뿔싸! 이게 웬일!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포정이 문을 잠가버린 것이었다. 노승은 커져가는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에 타 재가 되고 말았다.

그 법사에서 억만금이 재물로 바쳐졌다. 노주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고도 남을 만한 돈이었다. 이포정은 이를 한 푼도 챙기지 않고 모두 국고에 넣었다. 법사가 열린 자리에 탑 하나를 세워 노승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시고 노승의 영혼을 위로하는 데 필요한 비용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포정 이야기가 극단적 사례이기는 하다. 재정위기를 극복하려고 거짓말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킨 것을 찬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리더의 거짓말이 꼭 필요한 때를 강조하는 데는 이만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만약 이포정이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관리들의 불만이 커졌을 테고, 백성들에 대한 가렴주구를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고,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칫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노승은 이미 살 만큼 산 노인이고, 백성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니 어찌 보면 자신의 몸을 희생해 중생을 구제한 살신성인이라고 이포정은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 수 있지만, 당나라 때의 사고방식으로는 꼭 불가능한 시각만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공자 같은 위대한 성인도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공자가 3년을 머물던 진(陳)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향할 때의 일이다. 제자 몇 명과 함께 포(蒲) 땅을 지나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에서 위나라의 반란군인 공숙씨 일당을 만났다. 그들은 공자 일행을 겹겹이 에워싸고 위협을 가했다. 그때 수레 다섯 대를 이끌고 공자를 수행하던 제자 공량유가 탄식하며 공자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스승님을 따라 광(匡) 땅에 갔을 때도 이런 고난을 겪었는데, 이제 다시 같은 곤욕을 치르는 걸 보면 이는 천명인가 봅니다. 저는 스승님과 함께 다시 고난을 겪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용감히 싸우다 죽겠습니다.”

공량유가 격렬하게 저항하니 포 땅 사람들은 공자한테 “위나라로 가지만 않는다면 일행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그들에게 위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그러고는 동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위나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자공이 서약을 해놓고 지키지 않아도 되느냐고 힐난하듯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강요로 맺은 서약은 신명도 듣거나 보지 못했을 거라네.”

공자님도 거짓말을 했다.

왕도를 선양하는 것은 큰 약속, 즉 대신(大信)이고 포 사람들한테 한 서약 따위는 작은 약속, 즉 소신(小信)인데, 진정한 대신은 소신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만약 공자가 포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나라로 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작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마로 물이 넘치는 다리 밑을 떠나지 않았다가 목숨을 잃은 미생(尾生)처럼 범부들이야 그런 행동을 칭찬받을 수 있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무리가 있는 리더의 입장이라면 작은 약속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나 조직을 파탄내버릴 수는 없지 않겠나 말이다.

이 같은 거짓말이 꼭 최상의 리더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리더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면 중간 간부라도 유사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이 최상의 리더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이다.

한나라 경제 때인 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다. 전한의 제후국인 오나라 왕 유비가 조·교서·초·교동·치천·제남 등 여섯 제후국과 함께 중앙정부에 대항한 반란이다. 경제가 제후국의 봉토를 삭감하는 정책을 펴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유비는 회남에 사자를 보내 회남 왕도 반란에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회남 왕은 이에 응해 군대를 출동시키려 했다. 이때 재상이 나서 말했다.

“대왕께서 오왕의 요청을 받아들이시겠다면 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겠습니다.”

그러자 회남 왕은 군권을 재상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 재상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오히려 반란군에 포위돼 있는 한나라 성들을 구원해줬다. 재상이 자신의 주군인 회남 왕에게 거짓 약속을 하고 한나라를 도운 것이다. 결과는?

아는 대로 오초칠국의 난은 한나라 정부군을 지휘하는 태위주아부의 지략으로 유비를 비롯해 반란에 가담한 제후왕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불과 3개월 만에 평정됐다. 회남 왕이 목숨을 보존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진 신하의 현명한 거짓말 덕분에 어리석은 왕이 위험에 빠지지 않은 것이다.

남송 초기에 수도 경성에 곧 난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이 난리에 대비하느라 돈을 쓰지 않아 화폐 유통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민심이 흉흉해졌음은 물론이다. 이때 승상이던 진회는 자기 집 하인 하나를 불러 돈꿰미를 던져주며 말했다.

“네가 요즘 일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상을 주는 것이다.”

연신 감사의 절을 하는 하인을 진정시킨 뒤 진회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화폐개혁을 명하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질 것이야. 지금 쓰는 돈이 곧 쓸모없는 쇳조각으로 바뀐다는 말이지. 그러니 이 돈은 빨리 써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하인은 돈을 들고 나가 마구 썼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타일렀다.

“아니, 이 사람아. 돈이 생겼으면 아끼고 모아서 재난에 대비해야지 어찌 그리 흥청망청 쓴단 말인가?”

하인이 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며칠 후면 지금 쓰는 돈을 못 쓰게 하는 황제의 칙명이 떨어질 거란 말이에요. 제가 승상 나리께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자 놀란 사람들이 하인을 따라 돈을 쓰기 시작했고, 금세 경성 시내 전체에 소문이 퍼져 사흘도 못 돼 경성의 화폐 유통량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한참이 지난 후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경성의 장터에서 물건이 팔리지 않아 문을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진회는 금은보석을 제작하는 일을 관장하는 문사원령을 불렀다. 진회는 일부러 사람을 여러 번 보내 재촉했다. 긴급한 사안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문사원령이 오자 진회는 말했다.

“방금 황제의 칙지를 받았는데 폐하께서 화폐를 개혁할 의향이 있으시네. 그러니 어서 새 화폐의 본을 만들어 내게 가져다주게. 낡은 화폐는 당연히 앞으로 못 쓰게 되겠지. 내일 오전 내에 화폐의 본을 가져오도록 하게.”

문사원령은 돌아가 장인들을 시켜 새 화폐의 본을 만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소문이 온 성안에 퍼졌다. 조금이라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부랴부랴 집에 묵혔던 돈을 싸들고 나가 물건을 사들였다. 성내 장터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문사원령이 만든 새 화폐의 본은 끝내 쓰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처음에 화폐개혁이라는 거짓말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문제가 재발하자 이번엔 말만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거짓 화폐의 본까지 떠가며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거짓말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지모다. 진회는 명장 악비를 죽인 간신이다. 하지만 거짓말로 죽어가는 실물경기를 살려낸 것을 보면 뛰어난 경제 전문가였나 보다. 아무리 간신이라도 이런 기지만은 배울 만하다.

명백한 거짓말이라기보다 과장된 말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앞서 설명한 현명한 거짓말들의 응용 버전이다. 최근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악용되고 있다.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인 양 주장해 상대방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것 말이다. 나중에 허위임이 밝혀져도 상대는 그 상처를 극복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심해야 할 방법이지만, 신중하게 사용한다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나라 문제 때 재상 원앙의 경우가 그렇다. 원앙은 조정에서 비판과 쓴소리를 많이 했기에 정적이 많았다. 특히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환관 조염에게 미움을 샀다. 원앙은 조염이 황제에게 모함을 할까 봐 늘 불안했다.

원앙은 당시 황제의 경호원 격인 시위로 있던 형 원종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황제를 가까이에서 모셔 황제의 성격을 잘 알았던 원종은 동생에게 계책을 일러주었다.

“언제 한번 백관들 앞에서 조염을 단단히 모욕해라. 그다음부터는 조염이 아무리 너를 모함해도 황제께서 믿지 않으실 것이다.”

어느 날 황제가 조염과 함께 수레를 타고 동궁으로 행차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염이 수레를 막아서며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무지한 신은 폐하와 한 수레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천하에 으뜸가는 영웅호걸들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한나라에 아무리 인재가 없다 해도 어찌 궁형을 당한 소인이 황상과 수레를 함께 탈 수 있겠습니까? 통촉하소서.”

조염은 수치와 분노에 휩싸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하지만 황제는 껄껄 웃으며 조염을 수레에서 내리게 했다. 조염은 궁형을 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거세해 환관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수레에서 내려야 했다.

이후 조염은 원앙을 해치기 위해 황제에게 여러 번 잘못을 고했지만, 그때마다 황제는 조염이 원앙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라 믿고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현명한 거짓말의 사례들을 살펴봤지만 여기에는 늘 단서가 붙는다. 리더의 거짓말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평소의 정직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리더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서양 속담도 그래서 있는 거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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