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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와 실질과세 원칙 

 

한국 세법은 조세회피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국세기본법 제14조에서 ‘실질과세’를 규정하고 있다. 조세 부담을 회피할 목적으로 과세요건사실에 관하여 실질과 괴리가 큰 경우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증여할 때 실질과세 원칙을 고려하지 않아 낭패를 보는 사례가 종종 있다.

납세자들은 증여세를 절감하기 위해 다양한 증여 계획을 고려한다. 그러나 실질과세 원칙을 모르면 이러한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증여 시 적용되는 실질과세 원칙과 그 밖에 유의할 점을 정리해봤다.

세금 회피 위한 증여 계획

조세소송 실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증여세 사건을 다루게 된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유형의 사건은 바로 세무대리인의 잘못된 조언에 따랐다가 거액의 세금이 부과되는 경우다. 즉, 소위 ‘편법 증여’ 계획에 따라 증여를 실행했다가 국세청으로부터 공격적 조세회피(ATP, Aggressive Tax Planning) 내지 탈세로까지 간주되어 과세된 사례들이다. 사안을 들여다보면 백이면 백, “이렇게 하면 세금을 아낄 수 있다”는 세무대리인의 솔깃한 제안 때문에 오히려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몇 곱절 더 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얼핏 보면 그럴싸한 증여 계획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바로 실질과세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질과세 원칙’ 따른 과세 사례

구(舊)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법’) 제4조의2는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이나 둘 이상의 행위 또는 거래를 거치는 방법으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그 경제적 실질 내용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거래한 것으로 보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로 보아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한다”고 하여 이른바 ‘실질과세 원칙’을 규정하고 있었다. 위 규정은 2016년 개정 당시 삭제되었지만, 상증법을 포함한 전체 세법을 아우르는 국세기본법에 여전히 동일한 취지의 규정이 있다.

입법자가 실질과세 원칙을 마련해둔 이유는 무엇일까? 대법원은 상증법상 실질과세 규정의 입법취지에 대해 “증여세 과세대상이 되는 거래를 우회하거나 변형하여 여러 단계를 거침으로써 증여의 효과를 달성하면서도 부당하게 증여세를 감소시키는 조세회피 행위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여러 단계의 거래 형식을 부인하고 실질에 따라 증여세 과세대상인 하나의 거래로 보아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단히 말하면 세금을 피하기 위해 ‘꾸민’ 다단계거래 또는 우회거래는, 법률상 유효 여부를 떠나, 세법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세관청은 그 ‘실질’에 따라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으로 인해 실제로 최근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의 다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교차증여가 문제된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5두46963 판결(이하 ‘교차증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주식회사인 A법인의 주주인 甲과 乙이 상대방의 직계비속들에게 자신들이 보유한 A법인 주식을 서로 교차증여 한 것이 문제가 됐다.

과세관청은 이에 대해 甲, 乙이 직접 직계비속들에게 증여할 경우 동일인으로부터 10년 이내 증여받은 재산의 합산과세 규정이 적용되어 증여세 부담이 높아지는 점을 회피하기 위해 교차증여 했다고 주장하며,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甲, 乙이 자신들의 직계후손들에게 직접 증여한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과세했다.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i)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거래의 법적 형식이나 과정이 처음부터 조세회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재산이전의 실질이 직접적인 증여를 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하고, (ii) 이는 당사자가 그와 같은 거래 형식을 취한 목적,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단계별 거래 과정을 거친 경위, 그와 같은 거래형식을 취한 데에 조세 부담의 경감 외에 사업상의 필요 등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 각각의 거래 또는 행위 사이의 시간적 간격, 그러한 거래 형식을 취한 데 따른 손실 및 위험 부담의 가능성 등 관련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이 교차증여 사건은 증여자들이 자신의 직계비속들에게 직접 증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으면서도 합산과세로 인한 증여세 누진세율 등의 적용을 회피하여 증여세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이용된 수단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으므로 구 상증세법 제2조 제4항에 따라 그 실질에 맞게 증여자들이 자신의 직계후손에 대한 직접 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과세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과세관청은 2012년 과점주주의 취득세와 관련하여 실질과세 원칙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2012.1.19 선고 2008두8499 판결) 이후 법적 근거가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조세회피 의도가 명확한 사안에는 적극적으로 과세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더하여 위 교차증여 사건으로 인해 개인 간 증여에도 더 공격적인 과세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세관청은 비정상적인 거래를 발견할 경우 납세자의 조세회피 의도를 입증하기 위한 목적에서 일반적인 정기세무조사가 아닌 소위 ‘예치조사’ 형태로 세무조사를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

증여 전, 실질과세 원칙 검토해야

납세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는 비록 단계거래, 우회거래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존중되지만, 이러한 거래가 처음부터 조세회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경우에는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과세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증여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해당 거래 형식을 취한 이유가 조세회피 목적 이외의 다른 정당한 사업상 목적이 있는지, 순차적인 거래로 진행되는 경우 각 거래 간의 기간이 충분한지, 각 거래에 따른 손실 및 위험을 실질적으로 부담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잘못된 전문가의 조언에 따른 예기치 않은 과세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증여를 실행하기에 앞서 실질과세 원칙에 따른 과세위험을 다시 한번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 안재혁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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