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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CEO의 서재를 위한 비즈니스 고전’ (16) 

조지프 캠벨 『신화의 힘』 

신화(神話)란 무엇일까. 바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발전이나 팽창은커녕 생존을 위협받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신화의 의미를 침잠(沈潛)해 탐구하는 여유를 확보하기란 정말 힘들다. 그런 ‘한가한’ 사람은 우리 중에서도 천복(天福)을 받은 사람이다. 지복(至福)을 누리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전생에 나라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구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한다. 신화 속에는 ‘비즈니스 영웅’ 탄생의 키워드가 있다.

▎사진:미국 의회도서관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생활인, 노동자, 정책결정자는 결정을 시급하게 촉구하는 산더미처럼 쌓인 긴급한(pressing) 할 일에 깔려 신음한다. 산적한 일 처리도 중요하지만, 좀 더 깊고 넓게 생각해보면 신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왜냐. 신화에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힘을 주는 그 무엇을 손에 쥐어 ‘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자질구레한 문제는 거의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까. 신화에 어떤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화에는 긍정적·부정적, 그리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인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컨대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당신은 신화적인 인물이다’라는 말을 했을 때 기분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신화의 약속은 달콤하다. 신화는 사기다. 하지만 신화가 사기라면,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또한 사기다. 신화와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공동운명체다.)

“신화는 ‘고급 구라’다”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급 구라’라는 표현에도 신화에 대한 긍정인 평가가 내포돼 있다. (“신화는 사람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고급 구라’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신화는 비즈니스다”라는 사람도 많다. 정말이다. 신화는 돈이 된다. ‘돈 냄새’를 잘 맡아야 돈을 벌 수 있다. (소매치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귀신처럼 돈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아직 크게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나, 마케팅 트렌드 이론 중에 ‘신화 마케팅(mythological marketing)’도 엄연히 있다. 우선 많은 미국 기업이 사명(社命)이나 로고를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따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마존·나이키·스타벅스 등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너머 인도 신화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시도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그만큼 미국에서 인도계 미국인들의 약진이 괄목할 만하다. ‘신화 마케팅’은 우리의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사고를 후벼 파려는 시도다.

신화는 ‘고대인들의 신성한 영웅 이야기’


▎『신화의 힘』 한글판 표지
신화는 허구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단군 신화’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사실·팩트’로 받아들이면서, 단군 이야기는 ‘신화’로 치부하는 것은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경고! 이런 골치 아픈 신화에 대한 관심은 아예 끊고 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주다 보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경고를 무시하고 신화의 세계에 끌린다면,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는 게 최고다. 신화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다.

(1)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사적(事績),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나 설화 따위가 주된 내용이다. 내용에 따라 자연 신화와 인문(人文) 신화로 나눈다. (2)신비스러운 이야기.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고대인’, ‘신성한’, ‘영웅’ ‘이야기’라는 단어들이 눈에 띈다. 이렇게 줄일 수도 있겠다. 신화는 ‘고대인들의 신성한 영웅 이야기’다. (30세기 우리 후손들의 입장에서 보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크로마뇽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대인’이다.)

무지몽매한 고대인들의 신화를 학술 연구의 세계에서 해방시켜, 현대 보통 사람들의 삶 속으로 끄집어낸 책이 있다. 조지프 캠벨(1904~87)의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1987)이다. 일반 대중이 비교신화학·비교종교학이라는 학문 분과에 관심을 갖게 한 명저다. (캠벨보다 더 위대한 학자도 많다. 캠벨은 그다지 독창적인 학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이가 캠벨을 통해 ‘비교’신화학·종교학의 세계에 데뷔한다.)

이 책에서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문학과 예술의 이면(裏面)에 있는 것을 가르치며 여러분의 삶에 대해 가르친다.” 그렇다. 『신화의 힘』은 삶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신화의 힘』은 미국 백악관 대변인(1965~1967)으로 일하기도 한, 저명 언론인 빌 모이어스의 질문에 캠벨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썼다. 6부작으로 발간된 교육방송용 대담 시리즈가 이 책의 원전이다.

비교신화학자인 캠벨은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 신화 열풍을 일으켰다. 특히 신화의 ‘상업화(commercialization)’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감각이 민첩한 사람들은 캠벨을 통해 신화가 케케묵은 과거 유산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융합이나 통섭, 창조·혁신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 속담에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 먹는다”고 했다. 신화는 눈치를 연마하는 지름길이다.

『신화의 힘』에 ‘뭔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치 능력’이 탁월한 명사들이 있다. 그들은 캠벨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고백했다. 미국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나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언 킹](1994)이 캠벨에게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소설가 댄 브라운도 한 인터뷰에서 『다빈치 코드』(2003)에 나오는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의 모델이 캠벨 이론에 나오는 영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화는 돈이나 비즈니스와 관계가 깊지만, 우리의 평범하고도 행복한 삶에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이나 『신화의 힘』과 같은 캠벨의 저작들은 수많은 개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놨다. 그는 ‘컬트(cult)’를 방불케하는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1929~1994)도 캠벨의 열렬한 팬이었다.

‘팬심’을 한데 묶는 캠벨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여러분의 지복(至福)을 따르라(Follow your bliss). 그러면 문(門)이 없던 곳에 새로운 문이 열리리라.” 지복은 ‘더없는 행복’이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따르라.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천복·지복의 길은 영생을 약속한다. 그리스도교 중에서 가톨릭의 영웅은 성인이다. 『신화의 힘』은 성인을 영웅으로 대체한다. 어쩌면 조지프 캠벨 자신이 영웅이 됐다. ‘기성 종교에는 만족하지 못하지만 영적으로는 목마른’, 또는 ‘기성 종교에 충분히 만족하지만 자신의 영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살찌게 하려는’ 사람이 많은 미국 사회 분위기가 『신화의 힘』이라는 ‘대박’에 일조했다.

『신화의 힘』을 우리말로 옮긴 이는 이윤기 번역가다. 한글판 ‘옮긴이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역자의 친구들이 따졌다. “인마, 예수님이 어떻게, 영웅이냐? 예수님이 어떻게 영웅들 중의 하나로 비교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냐?” 이윤기 번역가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조지프 캠벨을 찾아가서 따져라. 나는 번역한 죄밖에 없다.”

캠벨은 평생 신화학을 통해 인간 의식의 여러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인류가 공유하는 단일한 의식을 바탕으로 ‘단일신화(monomyth)’가 생성됐다고 봤다. 모든 신화는 한 가지 위대하고도 근본적인 이야기의 변종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인생이 여정이라고 주장한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으로 영웅이다.

캠벨에게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신화적 여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영웅이었다. 영웅들은 해탈이나 영원한 생명 같은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구원의 길이란 무엇인가. 그 시대의 고민에 해답을 주는 것이다.

캠벨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에서 신화로 ‘개종’했다. (어쩌면 캠벨이 가톨릭 신자 출신이었기에 이렇게 말한다. “모신(母神)을 섬기는 종교에서는 세상이 곧 여신의 몸이자 여신 자체다. 이 여신의 신성이라는 것은 타락한 자연에 군림하는 그런 신성이 아니었다. 중세의 성모 숭배 신앙 체계에도 이 정신이 있었다.”) 가톨릭 신앙에서 벗어난 캠벨은 신화에서 종교를 대체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캠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앙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 내게는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신화·종교의 기능에서 의미보다 중요한 것은 체험


▎존 개스트(1842~1896)가 그린 ‘미국의 진보’(1872). 미국의 팽창주의를 뒷받침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곳곳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신화’가 필요했다. / 사진;미국 의회도서관
종교와 신화와 전설은 어떤 관계일까. 학자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종교적 진리의 아래 단계가 바로 신화다’, ‘종교는 체계화된 신화와 전설이다’, ‘팩트라는 근거가 좀 더 확실한 것이 전설, 좀 더 불확실한 것이 신화다’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신화나 종교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화와 관련된 모든 문헌은 우리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자기계발서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한다. 이에 대해 캠벨은 의미보다 중요한 게 체험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우리 모두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짜 찾고 있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체험이다.”

캠벨이 종교를 부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모든 종교와 신화를 긍정한다. (하지만 ‘오로지 내가 믿는 종교만이 진리다’라고 믿는 신앙인은 캠벨을 미워할 수도 있다.) 캠벨은 이렇게 말했다.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다. 신화는 은유적이다. 신화는 시(詩)다. 신화란 궁극적인 것 그다음이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말이다. 궁극적인 것은 말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우리 모두 누구나 성불(成佛)할 수 있고 누구나 하느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종교를 신화라는 창으로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캠벨은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영웅의 반대말은 ‘보통’이다.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보통 사람에 대해 말하면 나는 항상 불편하다. 보통 남자건, 보통 여자건, 보통 어린이건 나는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명예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대부분 영웅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들의 영웅적 행동이 비범·특출한 것이다.”

캠벨은 신화에 한 민족이나 사회의 가치를 구현하고 그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힘이 있다고 봤다. 캠벨은 오늘날 신화의 힘이 약화된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신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캠벨이 이해한 신화의 중심인 영웅은, 요즘 말로 ‘롤 모델(role model)’이다. 사회의 정의와 번영에 ‘영웅적’으로 기여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수백만·수천만 명의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기술혁신 영웅’이 필요하다는 점에 캠벨의 『신화의 힘』의 현재적 가치가 있다.

조지프 캠벨은 미국 뉴욕의 교외 주택지역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신심이 두터운 아일랜드계 가문에서 자라 성당에서 복사(服事) 일을 하기도 했다. 6세 때 우연히 인디언들을 보고 인디언 신화에 심취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디언에 두었으나 백인인 자신이 혈통상으로는 인디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 크게 실망했다.

캠벨은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학사·1925), 중세문학(석사·1927)을 공부한 뒤 세라로런스대에서 문학 교수로 재직(1933~72)했다.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것이 그를 더욱 위대하고 참신한 학자로 만들었다. 그는 38년간 제자였던 아내 진 어드먼(무용가·안무가)과 결혼했다. 부부란 영적인 일치를 이루는 관계라고 본 캠벨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강할수록 고통도 더 크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이다. 정말로 살아 있다는 데서 오는 고통이 사랑이다.”

캠벨은 학자라기보다는 큰 스승, 스승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언자였다. 학자로서의 그의 자질이나 능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그보다 유명하지 못한 학자들의 질투심에서 나온 폄하일 수도 있다. 언제나 그러하듯, 평가는 독자가 한다.


※ 김환영은… 중앙일보플러스 대기자. 지은 책으로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곁에 두고 읽는 인생 문장』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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