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4) 

열등감 사용법 

우월감과 열등감은 대부분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에 따르면 우월감과 열등감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반드시 가져야 하고 “잘 사용해야 하는” 적극적 개념이다.

▎앵그르 [제우스와 테티스], 1811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보다 나아지려는 본능이 있고 이는 바로 우월감을 가지기 위함이다. 요컨대, 우월감은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와 동기를 가져오게 하는 하나의 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월감과 열등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열등감은 자신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나아지고자 하는 시발점이며, 그 끝에 다다르면 우월감이라는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열등감과 우월감은 고정된 감각이 아니라, 사람이 의도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이라 할 것이다. 유전적으로, 혹은 환경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쓸 수 있다는 것, 아들러는 이를 “사용의 심리학”으로 규정했다.

서양미술사의 시작은 그리스로마 미술이며, 그리스로마 미술의 대상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신화로 제우스, 아프로디테, 헤라 등 유명한 신이나 그들이 풀어낸 이야기다.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한 그리스로마 미술의 소재는 기원전 500년 무렵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미술가들이 즐겨 그리는 대상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리스로마의 신들이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여겨진다는 점과 그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에는 인간을 계도하고 계몽한다기보다는, 신과 인간이 어우러져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주고받는 원초적인 내용이 많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 중에서도 트로이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제우스,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나, 펠레우스와 같은 신화적 인물들이 어우러진 가공의 이야기가 버무려진 ‘테티스의 결혼식’ 사건 및 그와 관련된 미술작품 속에 드러난 인간의 마음을 가진 신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테티스의 결혼식


▎코르넬리스 반 하를렘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 1593
올림포스의 제왕 제우스는 늘 많은 여신과 사건을 만들어 아내 헤라를 불편하게 해왔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젊고 아름다운 님프 테티스에게 반해 마음을 주게 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역시 아름다운 그녀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언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테티스가 신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는 아버지를 자리에서 쫓아낼 것이다.”

제우스의 입장에서는 자신 역시 아버지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했던 터라, 이러한 예언을 듣고도 그녀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여 포세이돈에게 그녀를 주고 싶지도 않았던 제우스. 드디어 대망의 결혼식 날이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모두가 마음을 주었던 여성이었던 만큼 올림포스의 모든 신이 결혼식에 초대되었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되지 않았다. 밤의 여신 닉스가 혼자 낳은 딸인 에리스는 불화, 시기,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는 에리스를 부르면 분명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여겨 결혼식 초청 명단에서 그녀를 제외했다. 화가 잔뜩 난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했음에도 결혼식에 결국 참여하게 된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는 가운데 덩그러니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서 있는, 하얀 상의에 파란 하의를 입은 에리스를 볼 수 있다.

에리스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결혼식장을 찾아가 제우스에게 황금사과를 던졌다. 불화의 여신이 던진 사과인 만큼, 어떤 불화를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히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었다. 그 사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여신들은 자신이 ‘황금사과’의 주인이라며 다퉜다. 여러 여신의 다툼 끝나고 마지막 남은 후보는 제우스의 아내인 가정의 여신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모두 자신이 황금사과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제우스를 포함해 그 누구도 사과의 주인을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 사과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9
제우스는 이들을 이다산에서 양을 치고 있던 파리스에게 보내 최고 미인을 결정하도록 했다. 파리스는 여신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헤라는 부와 명예를, 아테나는 지혜,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각각 약속했다. 각자 파리스에게 줄 수 있는 카드를 던졌고, 파리스는 깊이 고민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스파르타 왕의 왕비였고,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였다. 스파르타에 갔던 파리스와 왕비가 사랑에 빠져 트로이에 함께 돌아오게 되었고, 이는 트로이 전쟁의 계기가 된다.

이 전쟁에서 황금사과를 받고 이 둘을 연결해준 아프로디테는 트로이에 편에 섰지만, 사과를 받지 못한 아테나와 테티스를 두고 제우스와 싸우던 포세이돈은 반대편에 서게 된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던 때 트로이에 목마 하나가 들어오게 되는데, 그것이 항복의 표시인지 또 다른 속임수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해진다. 트로이의 신관이었던 라오콘은 속임수이니 목마를 불태우자는 의견을 낸다. 화가 난 포세이돈은 물뱀을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에게 던지게 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그리스 미술의 마지막 시기로 불리는 헬레니즘 미술의 대표작 [라오콘 군상]이다.

이 신화 속 이야기는 신들조차 ‘다른 여신보다 더 나은’, ‘인정받고 싶음’에 몰두했음을 보여준다. 이 세 여신은 각기 다른 카드를 가지고 있었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카드는 자신에게는 없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상황이 되기 위한 노력은 신들에게도 필요했던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헤라보다 권력과 명예가 부족함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고, 헤라는 아프로디테와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름다움 때문에 속상해했을 것이다. 비록 신화지만 인간의 손으로 기술된 것이기에, 신화에는 인간의 욕망과 심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키가 작다는 열등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열등감, 돈이 없다는 열등감은 어떤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만약 비교 대상이 없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적고 많음을 판단할 기준도 없었을 것이다.

열등감을 잘못 사용한다면

불완전하게 태어난 인간들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하면서 열등감과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열등감은 단지 한 개인을 부족하고 초라한 존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래전부터 ‘키 큰 사람은 싱겁다’는 말이 통용되어왔다. 여기에는 키가 작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키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변화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만큼 키가 큰 사람은 통상적으로 열등감이 적다. 그렇기에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의 정도가 키가 작은 사람보다 덜하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키 큰 사람이 싱겁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이 원리는 다양하게 작동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돈이 없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스로의 능력을 더 키우려 노력한다. 타고난 얼굴이 예쁘지 않으니 운동을 하고 식단관리를 해서 몸매를 더 멋지게 가꾸려고 노력한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으니 사업적으로 성공해 학벌은 필요 없다는 것은 증명하려 노력한다. 일 처리 능력이 부족하니 사회적으로, 성격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미 성공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열등감을 지닌 자녀는 다른 방향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행동의 상당부분에 열등감을 극복하고 더 나아지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열등감이 잘못 사용되면 열등감 콤플렉스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우월감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열등하게 만들면 된다. 상대를 끌어내리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연예인과 같이 유명한 사람의 기사에 사적인 이야기를 폭로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우월해지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현실에서의 ‘뒷담화’도 마찬가지다. 우월한 한 명을 열등한 다수가 깎아내릴 때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인물이 가상의 공간에서 만들어짐으로써 뒷담화를 하는 다수는 순간적인 우월감을 얻는다. 만약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움이라는 자신의 무기를 쓰지 않고 “헤라가 제시하는 부와 명예는 다 남편 제우스가 가져다준 것이다. 사실상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지 않느냐”와 같은 방식으로 파리스에게 제시를 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가 우월해질 수 없다면 나머지를 모두 없애버린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부셔버리겠다’는 접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모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며 느끼는 열등감을 방화나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제우스가 테티스를 자신이 가질 수 없고 포세이돈에게 주고 싶지 않으니 펠레우스와 결혼시킨 것도 어쩌면 이에 해당할 수 있겠다. 만약 아테나가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아예 없애버린다던가, 판단을 내렸던 파리스가 사실은 현실 판단력이 없는 정신증병이 있다고 소문을 낸다던가, 혹은 올림포스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은 타인을 괴롭히면서 주인공으로 남으려는 시도다. 남녀관계에서 소유하고 집착하며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그 불행을 이용하여 남의 관심과 특권을 누리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여신들은 파리스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각자의 강점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만약 헤라가 “나는 늘 선택받아온 적이 없다. 남편 제우스도 늘 다른 여자를 원했었다. 이번에도 또 선택받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되고 말 것이다”와 같이 불행을 무기로 파리스를 조절하여 사과를 받으려 시도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건강하게 열등감 사용하기

먼저, 열등감의 근원을 보완하고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면 머무르기보다는 변화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열등감은 부족한 면을 알게 해주고 성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어 공부를 등한시한 채 ‘부모님이 어학연수를 보내줬더라면 영어를 잘했을 거야’와 같은 사고에 몰두하는 것은 열등감 콤플렉스를 강화할 뿐이다.

두 번째로 인간은 사회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적응과 열등의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상대로부터, 사회로부터 회피하여 혼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스스로를 고립시킴으로써 새로운 열등감을 만들어낼 뿐이다. 우리는 사회 안에서 열등감을 건강하게 사용할 방법을 적응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열등감을 더 나은 우월성을 위한 창조적 원천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열등감이 정상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자라온 사회에서 열등감은 늘 좋지 않은 단어로 사용되어왔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사회적·경제적·감정적 열등감을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과 연계하여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모습은 결국 ‘나’라는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모습이 통합되고 화해를 이루었을 때, 열등감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세 여신이 그러했듯 황금사과와 바꿀 수 있는 자신만의 긍정적인 카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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