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5) 

생각을 간소화하는 작업 _ Mind Minimalism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무엇인가. 단어의 형태에서도 알 수 있듯 최소화라는 뜻의 미니멀(minimal)에 이즘(ism)을 붙여서 최소화, 단순화 등을 추구하는 사조가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은 본래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시각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며 탄생한 용어였으나 곧 문학, 회화, 연극, 건축 등 예술 전반으로 확장됐고 이윽고 삶의 양식에까지 이르렀다.

▎Robert Morris [Installation at the Green Gallery] 1931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이 삶의 양식까지 확장된 것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풍요로워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많은 국가의 국민은 먹고사는 문제를 진정한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좋은 삶을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만큼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부분 더 나은 삶,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지, 죽느냐 사느냐를 걱정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 평균 아프리카인들의 삶은 유니세프에서 연출하는 것 만큼 피폐하지 않다.

삶의 양식으로써의 미니멀리즘의 대두는 바로 과도한 도구로 인한 삶의 복잡성을 줄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나날이 쌓여만 가는 도구는 오히려 삶의 본질인 행복 추구를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간결한 것이고 우리의 옆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도구는 곧 많은 강박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충분히 풍족해진 2000년대 이후로 이러한 미니멀리즘이 나타나고 유행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개념을 버리고 삶의 수준을 간소화하기 시작했다. 항상 쌓아두고 많이 가지는 것이 최선(最善)이었던 인류의 역사에서 한 걸음 진보하여 필요한 수준만큼, 적정하게 가지는 것이 최선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이 트렌드가 되어 2010년부터는 가득했던 도구와 복잡함에서 벗어나서, 최대한 간소한 공간과 삶의 양식을 추구하고, 할 수 있는 행위는 스스로 수행하며 삶을 최적화하고자 하는 미니멀리즘이 나타났다. 옷장 가득하던 입지도 않을 옷들을 정리하고, 자주 사용하지 않고 공간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가전을 정리하고, 가구부터 서적까지 다양한 물건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물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및 삶의 양식, 가치관 등까지 확장하여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도 한다. 문명의 발전에 따른 풍족함을 의도적으로 절제하여 다시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미술심리 전문가로서 미니멀리즘의 영역을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한다는 물리적 영역에서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간소화하고 불필요한 신념과 생각들을 정리하여 삶의 목표를 명료화하고 행복을 더욱 찾기 쉽게 만드는 개념으로 접목하는 것을 제안한다. 물건, 인간관계 등에 대한 미니멀리즘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에서 불필요한 신념이나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미니멀리즘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여기에서는 ‘마인드 미니멀리즘(mind minimalism)’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마음은 다양한 신념(Belief)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신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무시하고는 한다. 마음속에 가득한 신념을 최적화하고 간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간소화할 수 있다.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도 과잉인 현대인에게는 물질적, 인간관계적 미니멀리즘뿐 아니라 불필요한 신념을 제거하고 마인드 미니멀리즘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목표를 분명하게 해주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그중 대표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간소화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소개한다.

사회와 타인의 시선


▎Jacques-Louis David [브루투스와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들들]
마인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방해가 되는 것은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을 가로막는 타인과 사회의 시선이다. 사회적 존재인 이상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서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과 행동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넘어지며 떨어뜨린 동전을 줍는 모습을 누가 볼까 봐 창피해서 줍지 않고 그냥 가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을 것이다.

때로는 남들의 시선을 너무 고려하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눈치채지 못하고 행동한 뒤에 평생 후회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인간의 모든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이야기했듯 타인과의 관계와 시선은 우리에게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선택이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를 바탕으로 행해진다면, 그 선택의 주체자가 뒤바뀌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혹여나 인생의 실패자로 비추어지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와 같은 부담감은 무겁다. 특히 성공과 실패, 혹은 업적 등이 연결되어 있는 선택이라면 가치의 무게를 따지느라 큰 고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의 가치나 시선의 무게가 자신에게 더 가치 있다고 판단된다면 선택해도 좋다. 그러나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더 크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왼쪽 그림은 [브루투스와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들들]은 루브르의 걸작 중 하나인 [나폴레옹 대관식]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이다. 무장봉기를 일으켜 로마의 마지막 전제 군주인 타르퀴니우스를 몰아내어 왕정을 종식하고, 그 공으로 로마 공화국 최초의 집정관으로 선출된 브루투스의 비극을 그렸다. 작품을 살펴보면 제목 그대로 브루투스의 아들들이 죽어 실려 들어오는 모습이 그림 뒤쪽에 보인다. 오른쪽에는 세 모녀가 오열하고 실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왼쪽 아래에 브루투스가 침통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역사적으로 브루투스는 왕정을 종식하고 로마 공화국 설립에 기여했으나 그의 아들인 티투스와 티베리우스는 아버지가 추방한 타르퀴니우스가 왕정 복귀를 시도한 반역에 가담했다. 결과적으로 반역은 실패했고 반역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처벌 대상이 됐다.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인 브루투스의 공을 생각하여 처형하는 대신 외국으로 추방하고 말자는 온정적 분위기가 있었다. 어쩌면 브루투스가 모른 척 그 분위기를 받아들였다면 아들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브루투스는 아들들에게 반역행위에 대해 변명할 기회를 세 차례 주었으나 답하지 않자 원칙대로 처형을 명하고 집행 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정관은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는 대중의 기대가 브루투스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 그가 ‘집정관’으로서, 아니면 ‘아버지’로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는 대중의 시선이 따가웠을 것이다. 혹시 그 시선 탓에 ‘아버지’보다는 ‘집정관’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사회적인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지는지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로마 공화정 집정관 브루투스는 ‘원칙’을 선택해 두 아들을 처형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또 브루투스는 그 자신도 타르퀴니우스가 몰고 온 반란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로마의 공화제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과 아들들이 모두 죽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


▎폴 고갱 [언제 결혼하니?]
‘모두가 그랬으니까’, ‘다들 그러니까’ 하고 자연스럽게 여겼던 생각들은 정말 항상 옳은 답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나이가 차면 제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잘 키우는 삶을 기대한다. 여자들에게 여전히 서른은 불편한 숫자이고 남자들도 제때 밥벌이를 해야 하고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등 오래된 사회적 잣대들이 행동과 생각의 제약을 만들어낸다.

남자라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처자식을 위해 성실히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에게는 사회적 부담을 주는 시선들일 수 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가 폴 고갱 역시 40살이 될 때까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던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다.

그러던 고갱은 취미로 인상주의 미술품을 수집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화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미술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매력을 느낀 고갱은 여러 고민에 휩싸였다. 나의 꿈을 위해 전업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과 가족을 위해 증권거래소에 계속 다니는 것. 결국 고갱은 자신의 꿈을 선택하는 것의 가치를 더 크게 여겨 가족과의 연을 포기하고 예술을 위해 파리를 떠나 타히티섬으로 가게 된다.

타히티섬으로 간 고갱은 그곳에서 다양한 그림을 그렸는데, 자신의 삶을 반영한 듯한 재미있는 그림이 바로 [언제 결혼하니?]다. 과거에는 여자의 나이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했다. 24살일 때 가장 비싸고 25살에도 팔리기는 팔리지만 그 후에는 안 팔린다는 것이다. 여성을 ‘팔린다’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 참 ‘저급’하게 느껴진다. 또 소위 결혼 적령기가 지금보다 훨씬 빨랐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결혼 적령기가 되면 사회적 압박이 시작된다. 친척들을 만나면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묻고, 애인이라도 만나면 이제 결혼하는 거냐고 또 묻는다. 때로는 누가 묻지 않아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점점 혼자 남겨지는 기분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폴 고갱 [예술가의 자화상]
혼기가 찼을 때 ‘결혼은 타이밍이야!’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옆에 있는 사람과 서둘러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혼을 꼭 결혼 적령기에 해야 할까. 아니, 더 나아가 결혼을 꼭 해야 할까.

결혼을 언제 하는지 궁금한 것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관심사다. [언제 결혼하니?]라는 제목의 그림이 그런 사실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이 그렸다. 그림 속 배경은 고갱이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위해 잠시 이주했던 타히티섬이다.

그림 속 여인들은 파레오라는 강렬한 색상의 타히티 전통 의상을 입고 있고,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귀에 꽃을 꽂고 있다. 검게 그을린 건강한 피부가 화려한 옷과 꽃 색깔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색의 구성은 아주 단순하다. 바닥은 황금빛과 녹색, 뒤에 보이는 산과 나무, 물웅덩이는 새파란 색을 띠고 있다.

타히티섬은 토양이 비옥했고, 생명력이 넘치는 섬이었다. 고갱은 그곳에서 행복과 평화를 느꼈다. 그러나 그런 원시적 사회에서도 모녀 관계는 고갱이 떠나왔던 여느 유럽 지역과 다르지 않았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어머니는 딸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다그치고 있고, 딸은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시선을 피하며 슬그머니 일어나 그 자리를 피하려 하고 있다.

딸의 제스처는 어머니의 압박을 외면하는 모습인데 이는 적령기가 되면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읽힌다. 고갱은 증권거래소에 다니는 평범한 직원이었지만 자신의 소신과 의지에 따라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그랬기에 고갱은 어머니에게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는 그림 속 여인을 연민의 눈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마인드 미니멀리즘을 가로막는 생각은 많다. 결함이 없는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더욱 완벽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완벽주의, 자신이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열정이 아까워서 모든 것을 안고 있는 매몰 비용의 오류, 우유부단함,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의 감정적 에너지는 제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적인 감정들을 자신에게 더 가치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생각과 그 생각의 뿌리인 신념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계속 주는, 자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괴롭히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생각을 가볍게 만들어보자. 아주 짧은 시간이더라도 생각을 간소화하는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복잡하고 불필요한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해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좋은 습관이 생겨남으로써 서서히 그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생각 없애기에 지나치게 몰두해서도 안 될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무수한 생각 중 하나의 생각이 자신에게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다음 날 그 생각을 멀리하도록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생각의 간소화는 시작된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마인드 미니멀리즘의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007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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