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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6) 

스마트폰 투표가 트럼프를 낙선시킬까? 

현재 어떠한 디지털 기반 투표도 완벽한 보안을 갖췄다고 이야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디지털은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킬 대안으로 꼽힌다.

▎지난 9월 29일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대선 후보의 첫 TV 토론 장면. 3일 후인 10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흘러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20년 11월이 다가왔다. 미국의 많은 유권자는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연임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새로운 정권 창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의 경우 실제 투표가 진행되기 전까지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트럼프 당선이라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당시 미국 전체 유권자의 56.9%가 투표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되었던 앞선 선거들에 비하면 투표 참여율이 낮았다. 그래서 많은 언론은 트럼프의 당선 원인 중 하나가 낮은 투표 참여율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적다고 알려진 젊은 세대와 국외 거주자 등의 투표 참여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예전부터 나온 터였다. 이를 위해 선거장에 직접 가서 종이 투표지를 사용하는 옛날 방식 대신 사용이 간편한 디지털 투표 기기 및 모바일 투표 시스템 등을 도입해 더 쉬운 투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과 시스템을 활용한 온라인·디지털 대선 투표 시스템 도입이 정말 가능할까?

낮은 투표율이 트럼프를 당선시켰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 지난 4월 15일, 대전 한밭체육관 개표소의 투표용지 분류 작업. 종이 투표용지는 현재로서는 여전히 더 안전한 투표 수단이다.
투표 시스템에 대한 악의적 해킹 공격이 벌어질 수 있는 동기는 많다. 대통령 선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미국 50개 주에 걸쳐 선거 조작 및 개입을 시도한 정황과 증거가 발견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전 세계 경제·군사·문화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여러 이권의 명암이 갈리는 만큼 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세력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안전 제일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투표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익명성 보장과 집계 신뢰도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타인에게 밝히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또 내가 행사한 한 표가 제대로 기록될 수 있는 투명한 집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필수 조건이 종이 투표지와 선거 감시 인원을 통해서 확보된다면 공정한 선거 결과를 무조건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온 상태다.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 현재의 종이 기반 투표 방식도 얼마든지 부정의 소지가 있다. 어차피 종이 투표지를 활용하고 감독관이 있어도 부정선거 위험에 노출되는데 온라인·디지털 투표 시스템을 거부할 이유는 무엇인가?

종이 투표 시스템이 완전한 디지털 투표 시스템보다 안전한 이유는 조작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이들의 투표지를 훔치거나 다수의 사람을 현혹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은 천문학적인 데 비해 그에 걸맞은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그리고 집계 후에도 종이라고 하는 물리적 증거가 남는 만큼, 교차 대조가 가능하다.

반면 온라인 기반 투표의 경우 해커들에게 시스템이 한 번 노출되면 엄청난 규모로 표가 조작될 수 있고 이로 인한 선거 결과 조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201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데프 콘(Def Con: 해커 콘퍼런스)에서 한 해커가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는 투표 기기를 해킹해 둠(Doom)이라는 게임을 설치해 플레이하는 모습이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투표 기기에 잘 보관된 데이터가 모든 투표를 통합 집계하는 서버 차원에서 해킹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보안 기술이 해커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나날이 발전해갈 것이고, 이러한 과정은 소스 코드를 일반에게 공개해 관심 있는 전문가들이 약점을 자발적으로 함께 메워나가는 오픈소스 방식으로 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떠한 디지털 기반 투표 기기도 완벽한 보안을 갖췄다고 이야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특히 투표 기기가 아니라 개인 스마트폰으로 투표할 때 그 위험성은 더 커진다.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을 높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해커들의 개입에 취약하다. 스마트폰 안에 나도 모르게 존재할 수 있는 각종 해킹 프로그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 금융 사기를 위해 해커들이 타인의 스마트폰 안에 악성 프로그램을 몰래 심어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원치 않는 작동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모든 사람의 스마트폰이 항상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상태고, 어떠한 멀웨어(악성 소프트웨어)도 탑재되어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없다.

디지털 선거 보안 문제 해결 선행돼야

이러한 불확실성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디지털 기반 투표의 속성으로 인해 투표가 정치적 선동 도구로 사용될 소지가 커진다. 지난 4월에 실시된 한국의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전 국회의원과 그의 지지 세력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제기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선거 시스템 작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 혹은 확실한 증거 없이 “선거 기계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며, QR코드는 개인 신상 정보를 남용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같은 선동적인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려 했다. 디지털 기반 투표 시스템이 더 높은 수준의 보안 기술로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를 아우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계속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여전히 종이 투표가 대선 같은 중요 정치 이벤트의 유일한 투표 및 검증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선거에 종이 투표지만 사용해야 할까? 인구 130만 명의 유럽의 작은 국가 에스토니아는 2005년부터 아이보팅(iVoting)이라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국민의 44%가 이 시스템을 통해 투표하며 2007년부터는 총리 투표에도 활용한다. 안전한 투표 및 시스템 유지를 위해 본인 인증 절차를 최신 기술로 정교화하고 있으며 블록체인 기반으로 안전하게 투표 결과를 집계한다고 한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데이터 조작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성된 투표 관련 데이터가 블록체인 시스템에 도달하기까지 투표 데이터를 표적으로 한 해킹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아직 대형 해킹 사고는 발생하지 않은 모양이다. 또 얼마 전부터 시애틀의 킹 카운티(King County)도 시의 행정 투표를 위해 스마트폰이나 웹을 통한 투표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필요 없이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서 본인 인증을 마치고 투표하는 간단한 프로세스다. 실제로 이를 써본 사람들은 편리하다는 평이 많았다. 미국의 다른 주들도 점점 온라인 기반 투표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추세다. 이처럼 해킹 위험이 존재하지만 디지털 기반 투표 시스템의 도입을 서두르는 나라와 기관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나라의 수장을 뽑는 대통령 선거처럼 작은 변수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경우, 여전히 투표용지를 기반으로 한 투표가 더 안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디지털 투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기술 발전을 막을 수는 없다. 개인의 신상 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본인임을 인증하는 기술의 발달과 집계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해킹에 대한 위험을 막는 보안 장벽, 블록체인의 활용 등이 더 잘 결합된다면 온라인 기반 투표가 미래에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 기반 투표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확대해가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지속적인 시도와 발전을 통해 얻어진 기술 노하우를 기반으로 국민의 정서적 거부가 완화되는 단계에 이른다면 이는 더 많은 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 이상인 MS 디렉터는… 이상인 마이크로소프트(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미국의 디지털 디자인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딜로이트컨설팅 뉴욕스튜디오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한 그는 현재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서 디자인 컨버전스 그룹을 이끌고 있다.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 속해 있는 55개 서비스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모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이다.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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