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고전음악 속 불편한 남성중심주의 

서양의 고전음악 작곡가들은 모두 남성이다. 남성들이 지배하던 시대에 활동했던 남성 작곡가들. 그들의 음악에서 남성중심주의적 세계관을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럴듯한 이 작곡가들 중 누군가는 여성 존중에 실패했을까.

▎여러 오피클라이드 / 사진:wikipedia
소나타(sonata)는 고전음악의 대표적 장르이자 형식이다. 장르로서의 소나타와 형식으로서의 소나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어떤 작곡가의 어떤 기악곡을 부르는 용어로 사용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과 같은 경우다.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는 피아노 독주로 연주되는 소나타다. 베토벤 말고도 많은 작곡가가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에 속하는 곡을 작곡했다. ‘바이올린 소나타’도 있다. 바이올린 독주만으로 연주되는 소나타의 경우 ‘무반주’라는 한정이 필요하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한 이로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제일 유명하지만, 현대음악가 바르토크나 힌데미트 같은 작곡가도 이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다. 무반주가 아니라면 바이올린 소타나에는 일반적으로 피아노 반주가 동반된다. 흔히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봄]’이라고만 하지만, 실상은 ‘베토벤의 피아노 반주가 붙은 바이올린 소나타 [봄]’이다. 너무 길어서 바이올린 소나타라고만 부른다. 이런 식으로 여러 악기를 위한 소나타들이 있다. ‘첼로 소나타’에도 무반주 첼로를 위한 소나타, 피아노와 같이 연주하는 첼로 소나타가 있다. ‘피아노 삼중주’라는 장르도 대체로 소나타를 가리킨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소나타를 관행적으로 ‘피아노 삼중주(piano trio)’라고 부른다.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첼로를 위한 소나타는 ‘현악4중주(string quartet)’라고 불린다.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위한 소나타는 ‘피아노 5중주(Piano Quintet)’이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나타는 ‘교향곡(symphony)’이다. 소나타 장르에 포함되는 이러한 기악곡들에는 보통 3~4개 악장(movement)이 있는데, 이 중에서 첫 번째 악장이 소나타 ‘형식(form)’으로 작곡되는 경우가 많다. 소나타 형식에는 서로 다른 특성이 있는 두 주제가 있다. 이 두 주제를 각각 제1주제, 제2주제라고 부른다. 제1주제가 먼저 제시되고, 제2주제가 후속한다. 주제는 영어 ‘subject’를 번역한 단어이다.

이 두 주제에 대한 음악가들의 설명이 있다. 그런 설명 속에서 논란의 여지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적이면서 중립적인 묘사(description)와 설명에 해석적이면서 은유적인 표현이 추가되는데, 이를테면 많은 음악가가 상대적으로 빠르고 경쾌하거나 강렬한 제1주제를 남성적이라고 하고, 상대적으로 느리고 온화하며 서정적인 제2주제를 여성적이라고 형용했다. 필자도 대학 시절 그렇게 배웠고, 서양의 많은 책에서도 여전히 그런 비유가 사용된다. 당시의 한국에서는 그러한 비유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누구도,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1980년대에 서양의 일부 음악학자가 이러한 형용사들을 사용하는 설명의 기저에 문제 있는 관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빠르고 경쾌하거나 강렬한, 혹은 씩씩하고 정열적인 1주제를 ‘남성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가. 느리고 온화하며 서정적인 제2주제를 ‘여성적’이라고 형용하는 것은 또 어떤가. 그렇게 부르는 것에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 것이다.


▎미국 영화 [적과의 동침] 포스터 / 사진:wikipedia


“오늘날 관점에서는 뻔뻔한 생각”


▎독일 화가 구스타프 슈팡겐베르크 (Gustav Adolph Spangenberg, 1828~1891)의 작품, ‘발푸르기스의 밤 (Walpurghis Nacht, 1862)’ / 사진:meisterdrucke
베를리오즈는 1827년 프랑스에서 공연 중이었던 셰익스피어의 연극 [햄릿]을 관람했다. 여기서 그는 극의 여주인공 오필리아로 분했던 영국 여성 배우 해리엇 스미스슨에게 사랑을 느꼈고 편지로 고백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심한 이 프랑스 작곡가는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환상 교향곡]을 작곡한다(1830년). 드물게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교향곡의 각 악장에서 스미스슨을 표현하는 음악적 동기가 지속적으로 연주된다. 1~3악장에서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상대적으로 느리게, 4악장에서는 동기의 일부만 창백한 느낌으로 스쳐 지나가듯이, 5악장에서는 빠르고 경박하며 우스꽝스럽게 연주된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동기를 유도동기 혹은 고정관념(idée fixe)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대한 음악적 명찰 붙이기로서의 유도동기 혹은 고정관념은 오늘날 드라마나 영화의 음악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오래된 영화 [죠스]에서 거대한 상어 죠스가 나올 때마다 같이 연주되는 긴박한 느낌의 음악을 기억해보자.) 이 유도동기에 따라 여인은 1~3악장에서는 아름답고 사랑받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4악장에서 작곡가는 그녀를 죽인다.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결국 살인 혐의를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음악의 마지막에서 유도동기의 일부가 짧게 소개된다. 이제 이승에서 사라져버린 여인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게 됐다. ‘단두대로의 행진’이라는 제목의 4악장이 그렇게 끝난다. 강력한 타악기들과 낮고 어두운 음색을 내는 (튜바의 전신인) 오피클라이드 같은 희한한 금관악기들을 대거 사용해 얻어진 강렬한 음향. 이런 음향으로 가득한 4악장은 살의를 표현한 (혹은 승화한?) 음악이다. 그 기저에는 얻고 싶지만 얻지 못하는 여인을 수천만 년 동안 실제로 강간하거나 죽였던 수컷들의 야만성이 있다. ‘Songe d’une nuit du sabbat’(‘쏭즈 뒨느 뉘 뒤 싸바’라고 읽는다.)라는 제목이 붙은 5악장은 더 심각하다. ‘sabbat’라는 프랑스어에는 ‘마녀집회’라는 뜻이 있다. 어떤 이들은 ‘악마의 연회’라고도 번역하는데, 기독교 교리에서 악마와 마녀가 구분되는 만큼, ‘마녀집회’라는 번역이 옳은 것 같다. 이것은 중세 이래 1년에 한 차례 마녀들이 여는 연회로, 주로 독일에서 실제로 열렸던 ‘발푸르기스의 밤(Walpurgisnacht)’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원래는 기독교의 성녀 발부르가(Walburga)가 교황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는, 성스럽고 신비한 날이었다. 그런데 중세 후기의 극심한 마녀사냥으로 인해 근대에 와서는 괴기한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라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괴테의 『파우스트』같은 낭만주의 문학작품 속에서 이에 대한 환상적 묘사가 이루어지는데, 베를리오즈 역시 이런 맥락에서 마녀집회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5악장에서 작곡가는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독특하고 참담한 방식을 보여준다. 사형당한 자신과, 자신에 의해 죽임을 당한 여인이 떠들썩하고 기괴한 마녀 축제에서 조우하며, 심판받고 있다. 자신과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여인에게 징벌을 내리는 것이다. 실제로 베를리오즈는 ‘신의 진노(Dies irae)’라는, 최후의 심판을 노래하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인용한다. 베를리오즈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이런 표현의 기저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에 뻔뻔한 생각이 있다. 마녀 축제가 심판의 날이라면 가해자만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을 표현하는 유도동기는 상술했듯이 여기서는 빠르고 경박하며 우스꽝스럽게 연주된다. 피해자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네가 행실이 그 모양이니 남자들에게 강간이나 당하는 것 아니니!”라고 말하는 이들의 심리가 엿보인다고 하면 과할까.

1991년 개봉된 미국 영화 [적과의 동침]을 연출한 감독과 음악감독은 이 악마적 음악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 속 나쁜 남자는 (미국 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분한) 자신의 배우자를 별것도 아닌 이유로 구타한 후 바로 성폭행한다. 성폭행할 때 그는 꼭 베를리오즈의 이 교향곡의 5악장을 틀어놓는다. 이런 일이 상습적으로 벌어진다. 그런 남편으로부터 도망쳤던 그녀를 다시 찾아낸 광기의 남편은 그녀가 홀로 사는 집에 몰래 들어가서 이 5악장을 다시 틀어놓는다. 오싹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떠들썩한 베를리오즈의 작품을 희화화한 만화. 지휘자가 베를리오즈다. 그는 19세기 초반 프랑스 음악계의 앙팡 테리블, 즉 문제아였다. / 사진:George Grella
발푸르기스 전설은 멘델스존과 구노의 작품들에서도 차용됐다. 멘델스존은 칸타타로, 구노는 오페라로 표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일의 문호 괴테의 작품들을 소재로 음악화했다. 2020년, K-pop 걸그룹 여자친구는 [回:Walpurgis Night]라는 음반을 발매했고, 여기에서도 발푸르기스 전설이 콘텐트로 사용됐다. 이 음반에 대해, 그간 부정적으로만 여겨지던 마녀라는 기호를 전복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주체적 여성상’”을 표현했다는 평가(오민지, 위버스 매거진)가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1845)의 주인공 탄호이저에게는 그가 아무리 타락해도 항상 그를 기다려주고 결국엔 그를 구원해주는 순결한 여인 엘리자베드가 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수십 년 만에 귀환한 페르 귄트에게도 그를 변함없이 맞이하는 평안한 집이 있고 그 집에는 그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페르 귄트’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이 쓴 극의 제목이자 그 극의 주인공이다. 극 중 페르 귄트는 노르웨이에서부터 북아프리카까지 다양한 곳을 여행하다가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는 이 극에 음악을 붙여 같은 이름의 모음곡을 만들었다. 늙고 지친 페르 귄트는 천신만고 끝에 고향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여전히 그를 맞이하는 백발의 솔베이지가 불러주는 자장가(‘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며 죽는다. 엘리자베드와 솔베이지는 기본적으로 같은 캐릭터다. 같은 곳에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기다려주는 청초한 여성. 대조적으로 상대 남성들은 여러 곳을 전전하고, 타락하다가 늙어서 되돌아간다. 남성 중심적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음악에는 이렇게 오늘날의 배운 사람들에게 불편해 보이는 남성중심주의적 이야기 및 요소들이 좀 있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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