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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태 씨엔알리서치 대표 

한국 1위 임상 전문기업의 꿈 

한국 제약사의 신약 개발에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국내 1호 임상시험 수탁기관(CRO)인 씨엔알리서치다. 코로나19 이후 신약 개발로 글로벌 시장에 나서려는 국내 바이오벤처, 중소 제약사가 늘면서 씨엔알리서치도 덩달아 바빠졌다.

▎윤문태 대표는 “최근 한국 신약의 글로벌 진출이 빨라지고 있어, 씨엔알리서치가 세계 시장에 뛰어들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와 함께 달려왔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한국 제약업계는 제네릭(복제의약품) 제조에만 매달렸었죠.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의 권리가 강해지고, 한미 FTA 협정 등으로 복제약 출시가 어려워졌습니다. 이제 신약 개발은 미래 사업으로 주목받으며 너도나도 뛰어들지만, 임상시험의 벽을 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 6월 15일 강남구 역삼로 씨엔알리서치 본사에서 만난 윤문태(70) 대표가 말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 상당수도 일찌감치 글로벌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매진해왔다”며 “하지만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과 10년 이상의 오랜 개발 기간이 소요된다. 특히 후보 물질이 신약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임상시험에서 갈린다”고 덧붙였다.

실제 임상시험은 신약 개발 비용에서 50% 넘게 차지하고, 개발 기간도 3분의 2나 차지한다.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이라 불리는 임상 3상의 경우 1000여 명 넘는 참여자와 막대한 비용이 들어 시도조차 쉽지 않다. 많은 바이오 기업이 임상 1, 2상에서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을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과 시간도 문제지만, 임상 참여자 모집부터 데이터 활용과 분석 등 모든 단계가 치밀하게 진행돼야 한다.

윤 대표는 여기에 주목했고, 1997년 국내 최초로 임상을 대행해주는 임상시험 수탁기관(CRO) 기업 씨엔알리서치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제약업체의 의뢰를 받아 신약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설계, 컨설팅, 데이터 관리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한다. 업력도 꽤 쌓였다. 지난 24년간 각종 항암제 임상 약 170건, 세포치료제 약 60건, CAR-T 3건을 포함해 총 1100여 건의 임상시험을 수행하며 45만 명 이상의 환자 데이터를 쌓아 국내 1위 업체로 발돋움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하면서 CRO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씨엔알리서치는 임상시험 수탁기관으로서 임상 전 단계를 전문화해 팀제를 구축하고, 이 과정에서 나온 메디컬 데이터로 계획·보고서를 작성해 국내 제약사의 임상 과정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1위에 걸맞은 실적도 거뒀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26% 증가한 34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50억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이 기세를 몰아 코스닥 상장 준비가 한창이다.

국내 CRO 시장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국내 CRO 시장 규모는 2018년 4551억원에서 2024년 656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11.5% 성장했다. 국내 규제기관도 국내 의약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 제네릭뿐만 아니라 신약 임상시험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있어 CRO 업체의 위상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윤 대표는 상장과 더불어 글로벌 사업도 본격화할 참이다. 그는 “코스닥 상장으로 들어온 자금은 글로벌 진출에 쓸 계획”이라며 “해외 임상을 염두에 둔 국내 제약사가 늘고 있어 누구보다 빨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코로나19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그런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 기폭제가 됐다. 국내 제약·바이오사도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임상을 확대하거나 앞당기려고 노력했다. 코로나19 관련 임상뿐만 아니라 각종 신약 임상 프로젝트와 신약 파이프라인 출시도 크게 늘었다. 글로벌 임상에 나서려는 한국 업체도 늘고 있다.

제약사가 임상시험을 직접 하는 경우가 많은 줄 알았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신약 개발 과정 중 일부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게 유리하다. 통상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과 걸리는 시간을 보면 평균 1조2000억원, 약 14년 이상이다. 이 중에서 임상시험 단계에선 전체 비용의 절반 이상이 쓰인다. 어떤 임상에서는 전체 비용의 80%를 차지하기도 한다. 신약 파이프라인 한두 개를 가지고 임상을 직접 하다 실패하면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다. 임상시험의 성공 확률 자체가 낮고 리스크가 크다 보니 제약사들이 전문성과 효율성을 갖춘 수탁업체에 임상시험을 맡기는 것이다.

글로벌 임상에 나서는 한국 기업이 늘고 있다고 했는데, 국내 임상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렇다. 보통은 미국이나 호주, 유럽권 병원과 협약을 맺고 권역별 임상을 진행한다. 특히 호주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과 비교하면 80%정도 비용으로 코카서스 인종을 대상으로 한 임상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가 임상 비용 중 일부를 환급해주는 정책도 한몫했다. 하지만 환급에도 제한이 많았고, 국내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울대병원과 손잡고 국내에서 다인종 임상을 시작했다.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이 해외에서 임상을 진행하지 않아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 의약품청(EMA)이 인정하는 코카서스인종(백인종) 대상 임상 데이터를 국내에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코카서스인에 대한 임상 데이터가 왜 중요한가.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이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임상 1상을 주로 진행한다. 임상 1상 결과로 글로벌 제약사와 라이선스아웃 계약을 체결하려면 임상 대상에 백인이 포함돼 있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해외에서 진행하는 임상 비용의 절반 가격으로 국내에서 임상 1상을 할 수 있다.

글로벌 CRO 업체와 대등하다고 할 수 있나.

국내 임상의 경우 외국 CRO는 외국계 제약사의 임상 모니터링 업무를 주로 한다. 국내 임상을 전반적으로 다 관리하는 국내 CRO와는 업무 성격이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다. 2000년대 이후 글로벌 CRO 기업들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신약의 해외 진출에서는 외국계 CRO를 선호하는 국내 제약사도 있다. 다지역 임상시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 간 실력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다국적 CRO가 전적으로 유리하겠다.

그렇다. 글로벌 CRO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50조원이 넘는다. 코로나19 이후 임상 시장이 훨씬 커졌으니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국내 제약사들은 임상의 절반은 자체적으로 하고 나머지 절반은 CRO에 맡기는 편이다. 하지만 글로벌 CRO가 글로벌 임상을 주도한다. 아직 국내 CRO들이 글로벌 임상 경험을 충분히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외 네트워크가 탄탄해야겠다.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는 2010년부터 국내 업계 최초로 중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미국 CRO를 인수하려고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이 밖에도 아시아 임상의 허브인 싱가포르 부기스정션과 중국 베이징에도 지사를 둬 씨엔알리서치가 맡은 아시아 전역의 임상을 관할한다. 미국, 유럽 임상을 위해서 미국과 영국에 지사를 둔 글로벌 CRO인 ARG그룹과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 회사는 항암, 면역, 희귀·신경 퇴행성 질환의 임상시험에 특화된 CRO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유럽, 일본, 인도 지사를 운영 중인 바이오라시(Biorasi)와도 글로벌 임상 파트너십을 맺었다.

글로벌 CRO 네트워크인 어크로스의 파트너사가 된 것도 그 일환인가.

맞다. 지난해 국내 업계에서 유일하게 어크로스(ACROSS Global Alliance)의 파트너사가 됐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이 네트워크에는 22개 CRO 기업과 유관 서비스 기업 등 약 2900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이 멤버십을 통하면 별도 조직을 거치지 않아도 해외 99개국에서 임상이 가능하다. 자체적으로 해외 임상시험을 진행하기에는 역량이나 경험이 부족한 국내 중소·중견 제약사들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 중소 제약사나 바이오벤처 입장에서 임상 비용은 꽤 큰 부담이다.

그래서 임상 진행 초기부터 다인종 임상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작업하고자 한다. 특히 환자를 대상으로 초기부터 개발을 고려한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를 포함한 세포치료제나 항암제는 해외 임상을 하려면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과정도 복잡하다. 씨엔알리서치의 경우 세포치료제 임상 경험이 60건 이상으로 국내 CRO 중 가장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어 시행착오와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임상에 대한 모든 걸 맡겨도 되나.

임상 전 과정을 아우르고자 한다. 이미 다양한 비즈니스 라인도 구축했다. 녹십자랩 셀과 합작해 설립한 지씨씨엘(GCCL)은 국내 최초로 임상 1상부터 허가임상까지 전 주기에 걸쳐 임상 검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앙검사실(센트럴랩)을 운영한다. 센트럴랩은 정확한 임상시험 결과를 얻기 위해 여러 병원에서 임상시험 전후에 확보한 검체를 하나의 검사실에 모아 검사하는 곳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원 창업 승인을 받은 트라이얼인포메틱스를 설립해 임상시험 데이터 이미징·메디컬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식약처 지정 임상시험 교육 서비스 기관인 씨엔알아카데미, 중소 바이오헬스케 기업의 인큐베이팅을 위해 싱가포르에 문을 연씨엔알헬스케어글로벌,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산하의 K바이오스타트 등을 운영 중이다. 또 임상시험 데이터를 수집·추출하는 국제 데이터 표준형식 씨디스크(CDISC) 적용 플랫폼 아이엠트라이얼(IMTRIAL)을 도입하는 등 한국 바이오 벤처의 임상을 전방위에서 돕고 있다.

대형 제약사도 쌓기 힘든 임상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약대 졸업 후 동아제약에 들어가 개발과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신약 개발에 관심이 많아서 동아제약을 나와 럭키화학(현 LG생명과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0년대부터 글로벌 제약사와 손잡고 제네릭약품을 만들었던 전 과정을 지켜봤다. 당시 한국에서 드물었던 신약 개발 사업에 뛰어들 기회가 있었다. 각종 의약품 원료를 테스트했는데, GLP(비임상시험기준) 조차 없어서 수의대 교수를 쫓아다니며 독성시험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약사로서 임상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기회이자 신약 개발이 미래 사업이라고 확신한 때였다.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유진산 파멥신 대표, 최호일 펩트론 대표 등도 이곳 출신이다.

앞으로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글로벌 CRO로 도약하는 게 최종 목표다.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CRO의 역량도 함께 올라가야 한다. 다양한 임상시험을 대행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유망한 바이오벤처에 직접 지분을 갖고 참여해 면역항암제 등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제약사·대학병원과 손잡고 다양한 임상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의약품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까지 커지고 있어 앞으로 CRO 시장이 훨씬 더 성장할 것 같다. 정부도 CRO 산업 육성에 많은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올해는 임상시험 분야에 IT 기술을 접목해 신사업을 확대하고, 상장 후 해외시장 개척에 집중할 계획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2107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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