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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20) 지성의 도시 보스턴이 들려준 전통과 미래 

 


▎지성의 도시 보스턴 부둣가에 설치된 대형 철제 작품에 맑은 하늘과 구름이 바다를 배경으로 비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둣가를 따라 달리는 사람들이 멋지다. 조깅하는 사람들 옆에 놓인 대형 철제 설치 예술작품에 맑은 하늘과 구름이 바다를 배경으로 비친다. 도시 곳곳에 해안가나 물가·부둣가라는 뜻의 워터 프런트(water front)와 부두·선창이라는 뜻의 워프(wharf)라고 표현한 지명이 흔한 곳. 여기저기 항구 도시임을 드러내는 지명과 건물명이 많은 곳. 미국 동북부에 자리한 보스턴(Boston)의 모습이다.

보스턴은 매사추세츠주의 주도이자 미국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뉴잉글랜드 지역 최대 도시로, 이 권역의 경제·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오래된 전통산업과 금융·최신 바이오 등 신규 산업이 조화를 이룬 곳이 바로 보스턴이다. 오래된 도시이지만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이 멋들어진 현대적 감각을 뽐내고 있고, 시내에는 최신식 건물도 많다.

보스턴은 시내와 주변에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이 많아 고등교육의 중심지로 불린다. 미국 내 30개 이상의 주(State)와 수많은 도시에 출장과 여행을 다녔지만 여러 차례 방문한 보스턴의 인상은 다른 도시와는 참으로 상이하다.

보스턴은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의 도시이자 온고이지신의 전통과 신문명이 잘 조화된 도시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러한 인상은 세계 속 일류 대학의 교정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쇼핑몰이나 식당에서도 느낄 수 있다. 보스턴에 출장 갈 때마다 로브스터를 먹기 위해서 즐겨 찾는 리갈(Legal) 시푸드 식당만 해도 그렇다. 일례로, 식탁 위 예쁜 냅킨에 ‘1950년에 설립되었다(established 1950)’라고 쓰인 문구가 인상 깊다. 그 밑에는 ‘신선하지 않다면 리갈 식당이 아닙니다!(If it isn’t fresh, it isn’t Legal!)’라고 적혀 있다. 냅킨 한 장에도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축제가 된 졸업식과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졸업식


▎보스턴의 야구팀인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FENWAY PARK) 야구장.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사랑받는 장소이다.
보스턴이라는 도시 전체가 은연중 내비치는 자부심과 지성미를 호흡하고 싶은 마음에 출장 때마다 짬을 내 찰스강을 건너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와 MIT 대학 캠퍼스를 반드시 돌아본다. 세계 최고 대학이라는 명성과 평판을 갖고 있는 하버드의 교정을 돌아보며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세계적 지도자들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들을 세계적인 리더로 성장시킨 원동력과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돌이켜본다. 아울러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동년배 한국 대학생들의 차이점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본다.

우선 하버드대학교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하버드대학은 2019년에 발표된 노벨상 수상 상위 30개 대학 중 수상자 160명을 배출한 1위 대학이다. 하버드의 학부는 U.S. 뉴스 & 월드 리포트 미국 종합대학 학부 순위에서 언제나 최상위권 평가를 받는다. 비즈니스스쿨은 파이낸셜 타임스 순위에서 세계 1위, 로스쿨은 QS 세계 로스쿨 순위에서 1위, 메디컬스쿨은 U.S. 뉴스 & 월드리포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학교의 명성, 평판도를 주로 비교하는 U.S. 뉴스 & 월드 리포트 세계 대학 순위에서 해마다 1위, 타임 고등교육 세계 대학 학계 평판도 순위에서 해마다 1위를 기록하는 곳도 역시 하버드다.

캠퍼스투어를 하며 이 같은 경이로운 결과가 하버드홀 앞에서 들은 하버드의 정신과 전통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버드대학은 스토리가 있는 대학으로,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감동적이다. 그중 캠퍼스 투어 때 들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하버드홀은 이 대학 최초의 건물이자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200여 년 전 어느 날 밤, 한 학생이 늦은 시간까지 하버드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밤이 깊어지자 책을 챙겨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날 밤 하버드홀에 불이 났고 도서관에 있던 수많은 책이 목조건물과 함께 모두 소실되었다. 총장과 교수들, 학생들이 도서관을 잃은 상실감에 빠졌을 때 한 학생이 총장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바로 그날 밤 기숙사로 책을 가져갔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남은 소중한 책 한 권을 보관했던 그 학생은 하버드의 영웅이 되기는커녕, 책을 반출할 수 없다는 학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했다. 반드시 규율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에는 예외가 없었다. 하버드가 세계 최고 대학에 오른 이유는 이러한 투철한 원칙주의가 전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훌륭한 전통은 현재에도 자부심을 일으켜 멋진 미래를 창출한다. 하버드 야드에는 대학의 설립자 존 하버드(John Harvard)의 동상이 서 있다. 조각가 대니얼 체스터 프렌치(Daniel Chester French)의 1884년 작품이다. 하버드에 재산과 장서를 기증한 존 하버드를 기념하는 동상이다. 동상의 왼쪽 발끝을 만지면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다는 설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동상의 발에 손을 가져다댄다. 실제로 동상 왼쪽 발 부분이 많이 닳아 반짝거린다. 필자도 하버드를 방문할 때마다 동상의 발끝을 만져보았는데 애석하게도 아직 입학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단기 경영자 과정이라도 다녀오게 될 것이라 믿어본다.


▎미술관에 전시된 현대적 감각의 예술품은 보스턴의 오랜 전통과 멋진 대조를 이룬다.
와이드너 도서관(Widener Library)에는 장서 300만여 권이 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유럽에 장서를 수집하러 갔던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가 귀국길에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사망하자 재력가였던 그의 부모가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거대한 도서관 건립비를 기증했다.

훌륭한 전통을 면면히 이어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 졸업식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 뉴욕대학과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졸업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미국의 졸업식은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단과대학별로 학장이 졸업장을 직접 수여하는 사전 졸업식(Precommencement)과 며칠 후 대학의 모든 교수와 전교생이 캠퍼스에 모여서 여는 본 졸업식이 있다. 두 행사 사이에는 그동안 학생들을 지원해준 부모들이 멀리서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찾아오기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양한 행사와 파티가 열린다. 미국에서 졸업식은 과정의 끝이 아닌 출발이라는 뜻에서 ‘commencement(1. 시작·개시, 2. 학위 수여식·졸업식)’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본 졸업식이 열리는 날에는 모든 단과대학 깃발을 선두로 교수들이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교와 전공과목별로 다른 색상과 다양한 모양의 박사모와 박사 학위복을 차려입고 밴드 음악에 맞추어 입장한다. 교수들의 뒤를 따라서 졸업생들이 환호하며 입장한다. 이렇게 모든 단과대학의 졸업생들이 밴드 소리, 환호성과 함께 입장하는 데 한두 시간 정도 걸린다. 스탠드에 미리 입장한 가족들도 함께 박수치고 축하하며 졸업생들의 입장을 환영한다.

참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순간이다. 4년 동안 땀 흘려 공부한 학생들, 그들을 지도한 교수들, 학생들을 뒷바라지한 부모들이 함께 모여 그간의 노고를 축하하고 새로운 출발을 격려하는 자리다. 대학 총장의 졸업식 축사, 게스트 스피커와 선배 대표의 연설은 몇만 명이 모여 있는 졸업식장을 뜨거운 열기와 자부심으로 흥분하게 만든다. 정말 감동적이고 멋진 축하의 현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졸업식에 참석해보니 학생들이 거의 없다. 즉, 전통적인 졸업식의 감동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졸업식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사진만 찍고는 학사복을 반납한 후 교정을 떠난다. 졸업식 없이 졸업한 학생들에게 모교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애교심이 남아 있을까? 은사에 대한 존경심과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전통을 지키고 배우는 나라의 미래


▎타이타닉호 일화가 있고, 300만여 권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는 하버드 대학의 와이드너 도서관.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감동적이고 멋진 졸업식을 통해서 대학 생활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고, 스승과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예로 들면 입학식은 조촐하게 진행하지만 졸업식은 멋지고 화려하다. 1부 졸업식은 예복을 입고 진행되며, 2부에선 ‘화랑대의 별’이라 부르는 임관식을 갖는다. 멋진 전통이다. 생도들은 4년 동안 1시간의 휴강도 없이 학업에 정진했고, 유격훈련과 공수훈련을 포함한 군사학 과정도 마쳤다. 화랑대 교정에서 엄격한 훈육 과정을 거쳐 명예심, 인생관, 군인관, 국가관을 정제하고 졸업한다. 미래 군의 간성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겠다는 자세로 새 출발을 한다. 동기생, 선후배들과 동고동락한 추억을 안고 가슴에 남는 졸업식과 임관식을 마친 후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다.

사관생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육해공군 3군 사관학교 체육 대회가 떠오른다. 매년 가을, 럭비와 축구 경기에 각 군의 명예를 걸고 임한다. 각 사관학교 응원단의 창의적이고 멋진 카드섹션이나 사관생도들의 응원 동작들이 너무나 멋지다. 운동 경기를 준비하고 응원 준비를 하는 과정은 대단히 힘들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각 군이 협력하는 힘을 기르고 승패에 관한 자세와 경쟁심, 모교나 군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아쉽게도 졸업식은 변형되었고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는 없어졌다.

다른 예로 보스턴의 야구팀인 레드삭스의 홈구장으로 가장 오래되고 사랑받는 펜웨이 파크(FENWAY PARK)에서 세계 파트너 회의를 하고 야구장을 돌아보았다. 레드삭스의 라이벌 팀인 뉴욕 양키스와 관련된 흥미 있는 역사와 전통에 대해 회의에 참석한 CEO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도시를 열광하게 하는 라이벌 간의 전통은 그 자체로 멋지다. 훌륭한 전통을 온고이지신의 정신으로 살려내야 한다.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의 부활은 멋진 전통을 발판으로 삼아 애교심과 애국심을 발흥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대학교들이 명예로운 전통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유지하는지 비교해 우리도 세계적인 리더가 양성되는 교육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3일, 기쁘고 자랑스러운 뉴스가 전해졌다. 회원국이 195개국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7월 2일(제네바 현지 시간)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는 소식이었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사례는 한국이 처음이다. 온 국민이 땀 흘려서 이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위상이다. 이제는 선진국 대한민국에 하버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대학을 능가하는 교육 시스템과 전통을 갖추어야 할 때다.

보스턴을 찾을 때마다 케임브리지의 하버드 교정에서 하버드가 이루어낸 업적과 전통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아름다운 전통은 자부심을 갖게 하고, 그 자부심은 멋진 미래를 창출한다. 이번 UNCTAD의 선진국 지명을 계기로 대한민국에도 하버드를 능가하는 대학에서 글로벌 인재를 배출해 세계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멋진 리더가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 전통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선진국의 미래를 기대한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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