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가상공간을 만나면서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3차원으로 단순히 외형만 비슷하게 구현하는 게 아니라 가동 상황까지 현실과 똑같이 돌려볼 수 있다. 이른바 ‘디지털트윈’이다. 프랑스 다쏘시스템과 포스코A&C가 손잡고 건설산업 디지털화에 나서고 있다.
▎세계적인 3D 솔루션 기업 다쏘시스템과 한국 건설사업관리 정상급 기업 포스코A&C가 건설업계 앞에 놓인 디지털 장벽을 낮추는 데 힘을 모았다. 현실과 똑같은 가상공간을 구현하는 디지털트윈 기술로 플랜트 건설의 혁신을 이끌겠다는 복안이다. 사진은 김상억 포스코A&C 플랜트CM사업실 실장(왼쪽)과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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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쏘시스템 사무실 내 대형 스크린에 제철소 현장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이는 실제 사진이 아니라 다쏘시스템과 포스코 A&C가 VR(가상현실)로 구현한 가상의 제철소다. 한편 포스코는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를 완료할 계획이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할 때 사용하는 ‘환원제’를 석탄에서 수소로 대체한 것이다. 환원제를 수소로 쓴 제철소에서는 철과 함께 물이 나온다. 철강 생산공정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철강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제선부터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강철을 만드는 제강, 다양한 종류의 철강 제품을 만드는 압연공정 설비 수명도 크게 연장됐다. 탄소 배출은 크게 줄고 원료비가 크게 절감된다고 했다.프랑스 기업 다쏘시스템은 1981년부터 자동차와 비행기 설계용 3D 솔루션을 상용화했다. 3D로 미리 제품이나 건물을 만들어보고,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포스코A&C는 건축기획, 디자인, 모듈러 시공, 감리, 건설사업관리(CM)와 사후관리까지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건축플랫폼 기업이다.디지털트윈 기술이 두 회사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디지털트윈이란 현실 세계와 똑같은 쌍둥이를 가상공간에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기법이다. 건설 현장에서 실제로 건설할 건물이나 플랜트를 미리 만들어 봄으로써 최적의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진행 상황을 보면서 개선점을 찾아 설비 설계를 아예 바꿀 수도 있다.포스코A&C는 이미 현장에서 디지털트윈의 힘을 확인했다. 포항제철소 소결공장 환경설비 및 광양제철소 3고로 개수현장에 디지털트윈 기술을 접목해 공기준수 및 원가절감 등을 달성했다. 김상억 포스코 A&C 플랜트CM사업실 실장은 “플랜트를 건설할 때 시공 계획을 구상하려면 일일이 손으로 쓴 메모지 수천 장을 붙여가며 수정했고,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전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했다”며 “하지만 스마트CM플랫폼(Smart CM Platform®)으로 디지털트윈 환경을 구현해 공정과 안전관리, 품질·원가관리가 이뤄지고 사용자 간 협업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포스코A&C의 ‘디지털 건설사업관리 플랫폼(Smart CM Platform®)’은 모든 현장 정보를 3D 데이터로 생산해 그 위에서 설계부터 시공, 시운전, 유지관리, 정비까지 관리할 수 있다. 이른바 ‘플랜트+IT’ 융합 플랫폼, 즉 디지털트윈 환경이다. 이 과정에서 다쏘시스템의 3D 모델링 솔루션인 ‘카티아(CATIA)’와 3D 시뮬레이션 솔루션인 ‘델미아(DELMIA)’를 사용한다.
포스코 소결 환경설비 디지털트윈 접목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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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건설정보모델링(BI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과 혼동하는 이도 있다. BIM이란 건설 과정상 계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 단계에서 나오는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기술이다. 특히 모든 정보를 통합해 시설물의 형상과 속성을 3차원으로 표현한 디지털 모형이라는 점에서 디지털트윈과 비슷하다. 하지만 시각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건축물 준공 후 운영, 유지보수부터 거주자나 근로자의 행동이나 행태를 반영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건 쉽지 않다. 즉, BIM으로는 ‘플랜트는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확인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디지털트윈으로는 ‘플랜트가 가동되면 이런 성능을 보이니 설비 위치도 바꾸고 자재를 나르는 도로도 바꿔보자’고 할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선의 운영과 유지, 운영 시스템 구축 전반에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유수 기관도 건설업계에서 활용될 디지털트윈에 주목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기후나 지질 등 물리적 환경 같은 조건까지 반영한 현실 기반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면 건설 프로젝트 시간은 100배 이상 단축될 것”이라고 했고, 글로벌 컨설팅사 매킨지도 “디지털트윈을 활용하면 준공 후 근로자들의 근로환경과 안전문제를 해결하고, 수십 년간 가동되는 설비의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한국 정부도 디지털트윈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10대 과제 중 하나로 디지털트윈을 선정하고, 2025년까지 약 1조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올해 하반기 ‘5G(5세대 이동통신) 기반 디지털 트윈 공공 선도 사업’에 125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인천 남촌농산물도매시장, 안양종합운동장 등에 안전관리 시스템, 감염병 관리시스템 등을 개발·실증하는 데도 디지털트윈이 도입된다.물론 디지털트윈이라는 특정 기술 규격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기술적 개념이다. 건설업에서 디지털트윈이 빛을 발하려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5G 등이 CAD, BIM, GIS(지리정보시스템) 기술과 융합돼야 하고, 현장 실무역량까지 융합돼야 한다. 다쏘시스템이 포스코A&C와 관련시장 개척에 머리를 맞댄 이유다. 지난해 7월 포스코A&C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디지털 건설사업관리 사업에 함께 뛰어들기로 했다.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는 “다쏘시스템은 플랜트를 짓기 전에 계획하고 모든 사물과 환경을 가상공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디지털트윈 기술을 완벽하게 제공한다”며 “건설사업관리 실무역량이 뛰어난 포스코A&C와 협업 플랫폼 기술을 가진 다쏘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로 건설사업 전반에 디지털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음은 그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다쏘시스템을 파트너로 삼은 이유가 뭔가.김상억 실장(이하 김 실장): 플랫폼 기반으로 당사 비즈니스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MOU 체결 후 포스코A&C의 기술력과 네트워크가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 같다. 실제 2018년부터 스마트CM플랫폼을 도입하면서 플랜트 공사 과정을 기간 단위로 쪼개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했다. 설비가 놓일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준공 후에도 유지보수를 위한 장비가 좀 더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도 바꿀 수 있었다. 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플랜트 일부를 재설계, 시공하면서 18억원이나 절감할 수 있었다.
건설업은 다른 업종보다 보수적인 곳이다.조영빈 대표(이하 조 대표): 그렇다. 다쏘시스템은 현실과 똑같은 가상공간을 구현하는 데 집중해왔다. 비행기, 자동차를 만들고 도시를 설계하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8년 완성된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다. 다쏘시스템의 3D 시뮬레이션으로 계절별로 부는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해 스마티시트를 가상공간에 꾸몄고, 각종 고층 건물이나 도로망을 건설할 때 주위에 미칠 영향도 3D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그 결과를 이해관계자들과 공유했다.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을 때 2주 만에 우한에 1000개 병상 규모 병원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솔루션 덕분이다. 건설업은 현실과 가상 세계의 간극을 ‘0’으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다.
그래도 신기술 도입이 쉽지 않은 업종이다.김 실장: 맞지만, 그렇기에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CM 회사인 우리가 다쏘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까지 고민하는 건 건설업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건설기업이 디지털화를 꺼리는 이유도 있다. 일단 디지털화를 하려면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야 하고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런 인프라를 깔아놓고 활용을 잘(?)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게다가 건설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3~5년짜리가 많다. 단기간 활용해보고 성과를 측정하기에 실무자로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관련 전문 인력도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시장도 거의 초기 상태다.
다쏘시스템과 협업한 디지털 건설사업관리 플랫폼을 좀 더 설명해달라.김 실장: 이 협업 플랫폼은 플랜트 계획, 설계, 일정, 시공, 안전사고 등 건설 생애주기에서 나온 모든 데이터를 축적하고 공유해 실시간으로 수정할 수 있는 환경이다. 다쏘시스템의 디지털트윈 기술로 플랜트를 사전에 시공해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해야 에너지를 적게 쓰고 근로자 생산성이 높아지는지 거의 모든 환경을 실제와 똑같이 구현해 실제 시공상 생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비 배치가 다 끝나고 도로를 디자인할 때 트럭 운전자들에게 VR상 도로 환경을 보여준다. 특정 속도로 주행하다 제동하거나 커브를 돌 때 부담은 없는지 등을 미리 따져볼 수도 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도 있겠다.조 대표: 그렇다. 가상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플랜트 현장에 산재한 각종 위험요소를 다 점검할 수 있다. 시공단계뿐만 아니라 자재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포스코A&C의 ‘스마트트래킹시스템(Smart Tracking System)’이 대표적이다. 자제 제작부터 이동, 검수, 설치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가상 속 공정 과정이 제대로 준수되도록 돕는다. 현장에서 3D 모델링 기반으로 품질관리해 준공한 후 전자 매뉴얼, 안전 시각화 콘텐트를 제작해 세대 간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도 표준화할 예정이다.
‘현장 데이터’가 중요한 것 같다.김 실장: 맞다.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트윈을 만드는 데 핵심 키는 BIM 모델데이터이다. 앞서 BIM은 디지털트윈보다 시각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했지만, BIM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어떤 이는 디지털트윈이 BIM 모델데이터에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분석, AI 등을 얹은 기술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결국 데이터 싸움이다. 플랜트 시설물은 내구연한이 길고 자연환경에 노출돼 있어 생애주기 데이터가 재산이다. 현장 데이터를 축적하고 새 플랜트를 건설할 때 활용하기 위해 BIM 모델데이터를 강조하는 이유다. 다쏘시스템의 디지털트윈 기술에 축적된 데이터를 결합하면 한국건설산업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건설업계의 디지털 장벽 낮춰야”
▎김상억 포스코A&C 플랜트CM사업실 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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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만 누릴 수 있는 기술 아닌가.김 실장: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단기적으로 성과 측정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에 중견업체가 디지털트윈 기술을 도입하는 건 쉽지 않다. 건설업계의 디지털 장벽을 낮추려는 것도 다쏘시스템과 손잡은 이유 중 하나다. 국내에는 대한건설협회 올해 9월 기준으로 1만4000여 개 정도의 건설업체가 있는데, 이 중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건설업체도 디지털트윈을 쉽게 접하도록 협업 플랫폼의 벽을 낮추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트윈 기술이 상당히 고가인 것을 고려하면 포스코A&C와 다쏘시스템이 글로벌 건설시장에 뛰어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쏘시스템과 포스코A&C의 협업, 플랜트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조 대표: 좀 더 범위를 넓혀보자. 다쏘시스템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기업이 기후과학의 권고기준에 맞춰 목표를 세우고 미래 저탄소 경제에 맞도록 비즈니스 운영을 전환하는 데 디지털트윈 경험을 적극 전파하고자 한다. 자동차부터 도시, 인간의 심장까지 복잡한 체계를 3D로 모델링해 시뮬레이션한다. 설계 옵션을 다양화하고 시제품을 빠르게 만들며 생산 프로세스 효율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생산 비용과 자원 소모, 탄소 배출량도 절감할 수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수요에서 약 40%나 차지하는 건설·도시 산업 분야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김 실장: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단기적으로는 포스코 6기 코크스 신설 사업에 적용한 스마트CM플랫폼을 외부 플랜트 공사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계획, 설계, 구매·조달, 시공, 유지관리 등을 스마트CM플랫폼에 연결하고자 한다. 시공 전 설계 때 4D로 가상 시공을 진행하고 스마트트래킹시스템과 연결하여 공정을 관리한 후 각종 전자 매뉴얼을 만들어 발주사의 조업 생산 혁신을 돕는 건설업계 파트너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조 대표: 포스코A&C는 한국 건설사업관리 정상급 업체로 50년 이상 설계, CM 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플랜트 CM 노하우와 기술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다쏘시스템의 3D 설계와 시뮬레이션, 디지털트윈 기술을 결합해 완벽한 ‘버추얼 플랜트’를 가동하고 글로벌 시장에 함께 뛰어들 계획이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