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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가 들려주는 예술가의 안목과 통찰(32) ‘묘법’의 작가, 박서보 

단풍색·제주유채색·홍시색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다 

올해 구순의 ‘풍운아’ 박서보 화백이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PARK SEO-BO’(9월 15일~10월 31일)를 시작했다. 박서보가 누구인가. 반(反)국전 운동으로 부각된 ‘주류에 맞서는 혁명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거침없는 행동가’, 홍익대 미대를 35년간 이끈 ‘엄격한 스승’, 그러면서 하루 평균 14시간을 작업에 정진하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끝에 세계에 한국 현대미술을 알린 ‘단색화(DANSAEKHWA)’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한 대(大)작가 아닌가. 카리스마 가득한 ‘박서보 구름’은 가는 곳마다 비바람은 물론 천둥·번개·벼락을 내리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겨왔다. 그의 70년 화업이 농축된 2000년대 이후의 색채 작업 16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폭풍우 다 지나고 무지개가 깃든 평화로운 마을을 연상시켰다.

▎서울 연희동 ‘기지’의 뜨락에 앉은 박서보 화백. 그는 “단색화는 색이 단색이라 단색화가 아니다”라며 “행위의 무목적성, 행위의 무한반복성, 행위 과정에서 생성된 물성을 정신화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 사진:국제갤러리·김영림
국제갤러리에서는 11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기자간담회에 나타난 박서보 화백은 흰색 캐주얼 정장에 흰색 스니커즈, 분홍 남방이 잘 어울리는 맥고모자 차림이었다. 자리에 앉아 30분 가까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또박또박 설명하는 그에게서 구십 노인의 쇠잔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젊었을 땐 내게 부족한 게 너무 많았어요. 남들은 뛰어난 게 너무 많았고. 그게 내 속에서 충돌하다가 바깥으로 뛰쳐나왔죠. 어느 순간부터 그걸 다 비워내야겠다 생각했어요. 제 그림은 그래서 수신을 위한 수행의 도구입니다.”

전시장을 돌아보며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노(老)작가의 표정은 어느새 뿌듯한 미소로 가득했다. 이당 김은호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내 칭찬을 한 몸에 받던 소년 박재홍의 미소가 거기 있었다.

둘째 아들의 공책 빗금질에서 채우고 비우는 ‘묘법’의 힌트를 얻다


▎국제갤러리 전시장 내에 설치된 홍시색 ‘묘법’ 작품 앞에 선 박서보 화백.
박재홍이 박서보가 된 연유는 역시나 비바람 몰아쳤던 질곡의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몰래 아버지 금고 속 돈을 훔쳐 나와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 그해 한국전쟁이 터졌고, 그 겨울에 아버지는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다.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가난한 고학생은 휴전 후 장교 훈련을 시킨 뒤 말을 바꿔 갑자기 강제 징집에 나선 정권에 반발해 급기야 자신의 이름을 바꿔버리기에 이른다. 아무렇게나 바꾸기는 싫었기에 한학을 공부한 친구에게서 얻은 아호가 새 이름이 됐다.

미군 초상화를 그려주며 푼돈을 벌고, 친구 집을 전전해 숙식을 해결하며, 버린 물감을 쥐어짜내 그린 그림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가득했다. ‘원형질’ 시리즈로 불리는 그의 초기 작품은 인간의 내장이 드러난 듯한 모습을 어둡고 짙은 화면에 그로테스크하게 구현했다. “20대 초반에 경험한 한국전쟁의 참혹상은 우리로 하여금 좌충우돌하는 반항아로 만들었습니다. 대량학살, 집단폭력으로부터의 희생, 정신적 핍박, 부조리, 불안과 고독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담함 속에서 자폭하듯 그렇게 결행한 실천의 산물이 1957년 제작된 소위 ‘앵포르멜’이라고 불리는 나의 그림입니다.”(월간미술 2002년 1월호 인터뷰 중)

그랬던 그에게 갑자기 개안(開眼)의 계기가 찾아왔으니, 유네스코 국제조형미술협회 프랑스국내위원회가 주관하는 세계청년미술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게 된 것이다. 1961년 1월 개최에 맞춰 파리에 도착한 서보는 대회가 10월로 연기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때까지 파리에 머물기로 마음먹는다. 문화의 중심 도시에서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몸으로 체득한 소중한 기회였다.

귀국 후 그의 그림은 기하 추상 작업, 팝아트적·옵아트적 요소의 구상 작업, 조각 및 설치 작업으로의 대대적인 변신을 꾀한다. 이름하여 ‘유전질’ 시리즈다. 1970년 일본 오사카 만국박람회 한국관에 설치된 ‘사람 없는 사람 조각’이 대표적이다. 또 굿이나 민화 같은 한국의 전통을 접목하려는 시도도 엿보이는데, 오방색을 활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Ecriture(描法) No. 140410] 2014,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30×200㎝ / 사진:국제갤러리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고민하던 작가는 1967년 세살난 둘째 아들이 공책에 하던 낙서에서 힌트를 얻는다. 형처럼 네모 칸 안에 한글을 써넣으려다 삐뚤빼뚤 제대로 되지 않자 그만 마구 빗금을 그어버린 것이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곧 비움이자 채움이었다. 서보는 아들의 모습을 흉내 낸 이 작업을 글을 쓰듯 그린다는 의미에서 ‘묘법(描法)’이라 이름 붙였다. “이조의 도공들이 아무 생각 없이 물레를 돌리듯 저 역시 캔버스 위에서 직선을 무수히 그려나감으로써 ‘묘법’을 얻게 되었습니다.”(동아일보 1973년 10월 1일 자)

그의 ‘묘법’은 프랑스어 ‘Écriture(에크리튀르)’로 번역되는데, 이는 롤랑 바르트의 저서 『에크리튀르(글쓰기)의 영도(零度)』에서 비롯된 말이다. 미술사학자 심은록은 이렇게 설명한다. “‘에크리튀르’는 비권력적이고 개인적이며 창조적인 글쓰기다. 영도의 에크리튀르란 ‘중립적 글쓰기’나 ‘백색의 글쓰기’로, 저자의 어떤 가치 판단도 개입되지 않는 순수한 글쓰기를 일컫는다.”(국립현대미술관 2019년 회고전도록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중)

그의 ‘묘법’ 시리즈는 연필과 유성 안료를 쓰는 전기, 한지와 수성 안료를 사용하는 후기로 크게 나뉜다. 후기 묘법은 동양 종이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현대종이의 조형전: 한국과 일본’(1982)에 구로사키 아키라의 권고로 작품을 출품하게 되면서 한지의 물성이 가진 잠재력에 눈뜬 것이 계기였다. 안료에 적신 한지를 막대기로 긁어 직선 모양의 선들이 표면보다 튀어나와 보이게 하는 테크닉을 통해 길고 도톰한 선들을 밭고랑처럼 요철이 지게 만드는 방법이다. 1990년대의 묘법이 거의 흑색 모노톤이었다면 2000년을 지나며 밝고 다채로운 색채로 변주된다.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도자기 ‘묘법’ 선보일 터


▎전시장 전경. / 사진:국제갤러리
연세대 북문 근처에 있는 ‘기지(基地·GIZI)’는 서보가 전시장이자 살림집으로 쓰는 4개 층으로 이뤄진 공간이다. 볕이 잘 들어오는 통유리창이 있어 시원한 1층 화이트 큐브는 정갈하고 고즈넉했다.

흰색·검정색만 쓰다가 여러 가지 색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뭔가요.

색이 인간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는 자연의 색을 담아냅니다. 20세기 그림은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자기가 느낀 것을 다 토해놓는 것이었죠. 이미지가 곧 폭력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달라졌어요. 지구 전체가 스트레스 병동이 됐습니다. 예술은 이제 치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 그림이 흡입지처럼 보는 이의 고뇌를 다 빨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수성 안료에 형광 안료까지 쓰시는데.

수성은 말라봐야 어떤 색이 나올지 압니다. 조금 칠한 뒤 마른 상태를 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채색합니다.

처음 색을 쓴 계기라면.

일본 초청 전시에 갔다가 후쿠시마 반다이산에 올라간 적이 있어요. 그때 단풍이 어찌나 붉던지, 이글거리며 나를 다 태워버릴 것 같은 거야. 아, 이거구나, 이걸 그려야겠구나 싶었죠.

색 이름이 빨강이 아니라 단풍색이 된 사연이군요.


▎[Ecriture(描法) No. 161120] 2016,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200×130㎝ / 사진:국제갤러리
네, 노랑이 아니라 제주 유채꽃 색이죠. 제주 유채꽃밭의 그 일렁이는 장관을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했죠. 그래서 홍시색이고, 벚꽃색이고, 황금올리브색입니다.

회청색 작품에 공기색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게 된 겁니까.

그 그림 앞에선 왠지 자꾸 심호흡을 하게 되더라고. 일본어 ‘쿠우끼노 이로(空 の色 )'라는 말이 생각나 그렇게 붙여봤죠.

종로 구기동과 경북 예천에 미술관 건립을 준비 중이시죠.

제주에도 추진 중이라 총 세 곳입니다. 지자체와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곧 결정이 나겠죠. 특히 예천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와 이런저런 상의를 하고 있어요.

지금 하는 작업은 어떤 겁니까.

‘묘법’을 한지가 아닌 도자기에 하고 있어요. 3년째 제작 중인데, 올 연말이면 끝이 나서 내년 4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캔버스 작업과 도자기 작업을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내 인생이 비록 가난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았습니다. 비록 남들이 다 이해하진 못했겠지만. 어차피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얼마 전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내 자리(납골묘)도 잡아놨는데, 거기만 가면 기분이 참 좋아. 다만 죽고 난 뒤 욕먹을 작품은 절대 남겨놓지 않겠습니다.

남은 일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Ecriture(描法) No. 120715] 2012,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31×200㎝ / 사진:국제갤러리
두 가지예요. 하나는 홍대 회화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 두 번째는 ‘박서보국제미술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상은 나 죽은 다음에 시작할 건데, 조건이 있어요. 50세가 넘는 작가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때까지 꾸준히 작업해온 작가에게 주는 보상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휴대폰을 켜고 이탈리아 디자인 브랜드 알레시에서 만들고 있다는 굿즈 사진을 보여주었다. ‘묘법’ 시리즈를 활용한 와인병 따개였다.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자가용 비행기로 초청하겠다는 제안도 받았다고 신이 나서 들려주었다. ‘박서보국제미술상’은 당분간 진행이 어려울 터였다.

※ 정형모는…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은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 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

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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