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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16) 바리톤 김기훈 

바리톤이 아니라 ‘슈퍼 바리톤’입니다 

9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보기 드문 독창회가 열렸다. 독창회에서 66인조 풀오케스트라 반주로 가곡 한 곡 없이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바그너 ‘탄호이저’ 등 유명 오페라들의 대표적인 아리아만 들려준다는 건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지난 6월 ‘성악 콩쿠르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영국 BBC의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기훈(30)의 진검승부였다.

김기훈은 요즘 세계에서 핫한 성악가 중 한 명이다.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이하 [카디프])에서 한국인 최초로 메인 프라이즈 우승을 거머쥐기 전에도 이미 ‘월드 클래스’였다.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와 ‘도밍고 콩쿠르’라 불리는 ‘오페랄리아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연달아 2위를 했을 때도, 우승자가 청중의 야유를 받을 정도로 ‘1위 씹어 먹은 2위’로 알려졌다.

[카디프]는 콩쿠르가 진행되는 열흘 내내 BBC로 생중계되는 성악판 ‘글로벌 오디션’이다. 본선에서 세계적 성악가인 심사위원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방송을 타 더욱 화제가 됐다.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라는 곡이었어요. 슬픈 곡이냐고요? 슬프다기보다 아름다운 사랑 노래죠. 노래 자체가 감상에 금방 빠져들기 쉬운 아름다운 곡인데, 멀리서 보니 심사위원이 턱을 괴고 앉아 있길래 ‘망했다’ 싶었거든요. 나중에 같은 한국인 참가자 박주성이 영상을 보여줘서 알았어요. 눈물을 진짜 또르르 흘리더군요.(웃음)”

본인도 노래 들으며 울어본 적 있나요.

전 원래 감정이 메마른 편이었거든요. 어릴 땐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을 흘려본 적 없었는데, 성악을 하고 감성이 풍부해져서 요즘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에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 저 자신한테 놀랐죠. 성악은 사실 제 직업이니 덜하고, 가요를 들으며 잘 울어요. 이하이의 ‘한숨’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죠. 샤이니 종현씨 작곡인데, 얼마나 우울했으면 그런 명곡이 나왔을까 싶고. [복면가왕]에서 소향이 부르는 걸 보며 혼자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무대에서 관객 눈을 보고 노래를 부른다면서요.

만약 가곡을 부른다면 내가 시를 전달하는 매개체인데, 매개체가 관객과 콘택트 없이 전달이 충분히 될까. 그런 생각을 해요. 말할 때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노래할 때도 그래야 한다 생각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그 순간만큼은 눈을 마주치려 노력하죠. 근데 콩쿠르 심사위원한테도 그러고 있으니…(웃음)

'카디프' 콩쿠르는 다른 콩쿠르와 좀 차별화된다고 들었어요.

초청을 받아야 참가할 수 있고, 시청률이 20% 넘게 나오는 인기 프로그램이에요. 우리로 치면 예전 [슈퍼스타K]의 성악 버전이랄까요. 사회자가 그러더군요. ‘너희가 여기서 많이 얻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너희를 이용하는 거다. 너희 덕분에 시청률이 잘 나온다’고.(웃음) 리허설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정말 길에서 사람들이 ‘기훈 킴?’ 하며 아는 척을 하더군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여유로운 무대 매너는 백전노장 클래스인데, 성악에 입문한 지 이제 10년을 갓 넘겼다.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뛰놀다가 고3 때 노래를 시작했다. “제 친구들은 벼농사를 지어요. 곡성이 ‘찐시골’이라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음악적 인프라가 전혀 없었거든요. 제가 곡성군 홍보대사인데, 지금 군수님이 음악에 관심이 많으셔서 청소년 오케스트라까지 생겼지만, 저흰 음악 시간에 자습하는 게 보통이었죠. 음악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고 성악 발성을 흉내 내 가요를 부르는 게 개인기이긴 했지만, 노래가 직업이 될 줄은 몰랐어요.”

곡성에서 성악 레슨을 받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교회 성가대 세미나에 오신 강사분이 제 목소리를 듣고는 ‘세계적 성악가가 될 그릇’이라며 강추해주셨는데, 사실 아버지 말씀이 제가 날 때부터 울음소리가 다른 애들 네다섯 배로 우렁찼다고 해요. 음악성이 있는 게 자꾸 보였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부모님은 일부러 음악을 멀리하게 하셨죠. 지원해줄 형편이 안되는데 음대에 가겠다니 처음엔 마음 아파하셨는데, 다행히 광주에서 정말 저렴하게 레슨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광주에서만 배우고 입시를 치렀나요.

운 좋게 시험을 본 모든 학교에 합격했어요.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순 없었죠. 아버지가 연세대를 포기하고 장학금을 주는 다른 대학에 진학해달라고 부탁을 하시더군요. 그때 정말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나요. 연대에 가서 꼭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겠다고 약속하고 들어가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실 처음엔 굉장히 쫄았어요. 서울 출신 동기나 선배들이 다 대가처럼 보여서 혼자 소외된 마음에 초라해졌죠. 하지만 금방 적응했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다들 착하거든요.(웃음)

곡성에서 뛰놀던 ‘흙수저’ 성악가


▎[카디프] 콩쿠르 우승 트로피 수상 모습 / 사진:©kirstenmcternan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서 연이어 입상하며 속칭 ‘군 면제권’을 세 개나 얻은 그는 ‘군필’이다. 콩쿠르에 도전하기 전에 군대를 다녀온 것이다. “속 편하려고 다녀왔어요. 군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운동선수나 가수는 경력이 이어지는 게 중요한데 발목 잡히는 사람들 보면서 미연에 방지하자는 마음이었죠. 제 면제권 다 나눠주고 싶네요.(웃음)”

‘발목 잡히기 싫어서 간’ 군대가 발목을 잡긴 했다. 씨름선수 같은 당당한 풍채에 격투기 선수 제안을 받을 만큼 힘도 세고 운동도 잘하기에, 군대에서도 스스로 ‘강철인간’이라 믿고 몸을 사리지 않았던 것. 온갖 행사를 원맨쇼처럼 소화하다 ‘맛이 가버렸다’. 병원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목이라고 할 정도로 성대가 손상됐다.

“보병으로 입대했는데, 군악대에서 차출하더니 무슨 악기를 다루냐고 물었어요. 피아노와 리코더 좀 분다고 하니 튜바를 불라더군요.(웃음) 하루 8시간 이상 연습하며 마스터해야 했죠. 연주회를 한 번 하면 이런 식이에요. 브라스심포니를 불고 나면 성악을 하러 불려 나가고, 들어오면 곧바로 사물놀이 순서가 되죠. 제가 어려서 사물놀이도 배워서 그것도 제 몫이었어요. 그다음엔 아카펠라를 해야 하고, 다시 밴드와 함께 ‘붉은 노을’을 부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는 거예요.”

그때 성악을 포기할 뻔했다면서요.

성대결절에서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복학했더니 성적이 바닥을 쳤어요. 그때 열 달 넘게 방황했죠. 마치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성악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내가 여태 뭘 해왔는지조차 모르겠는 거예요. 나름 유망주로 불렸었는데, 수치심에 도망가고 싶었죠. 마침 격투기 선수 제안까지 받아서, 정말 진지하게 플랜B를 고민했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포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지도교수였던 김관동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고3 때 속성으로 배운 이후로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고 오만하게 제 고집만 세웠었는데, 돌이켜보면 기초가 약해서 쉽게 무너졌던 것 같아요. 다친 성대는 결국 ‘김관동 발성법’으로 치유했죠. 선생님 시키는 대로 따르니 거짓말처럼 회복됐고, 한 달 만에 슬럼프에서 벗어났어요. ‘테너처럼 부르라’는 가르침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테너와 달리 바리톤은 무겁게, 더 성악처럼 부르려고 하는 게 있거든요. 인위적인 무게를 버리니 힘을 빼게 되더군요. 결국 그 슬럼프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이번에 우승하고 전화드렸는데, 선생님도 눈물이 나신다면서 너무 좋아해주셨죠.

“성악계의 기대 짊어지고 가야”

사실 그는 지난해 JTBC [팬텀싱어] 시즌3 출연을 고민했었다. [팬텀싱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라포엠의 바리톤 정민성과 연세대 동기고, 레떼아모르의 베이스바리톤 길병민과도 각종 국내 콩쿠르에서 동고동락하며 우승과 준우승을 사이좋게 나누던 사이다. 절친들의 대중적 인기가 부럽지 않을까. 그는 “솔직히 엄청 부럽다”면서도 “[팬텀싱어]가 내 길은 아니”란다.

“제작진의 연락을 많이 받았거든요.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다른 친구들도 제가 나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네요.(웃음) 사실 해외에서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 입상했어도 국내에선 소용 없거든요. 국내 인지도도 중요하기에 고민했는데, 사실 [팬텀싱어]는 미디어의 힘을 빌리는 거잖아요. 저는 잘하고 싶어서 전부터 자칭 ‘슈퍼 바리톤’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더니 정말 그렇게 되버렸어요. ‘슈퍼 바리톤’이 가는 길은 좀 달라야겠죠.”

크로스오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성악계에서 저에게 거는 기대도 크고 짊어져야 할 게 많은 상황이에요. 저야 어려서 밴드를 했으니 다른 장르에 거부감은 전혀 없어요. 크로스오버 음악도 좋아하고, 친구들의 티켓파워도 탐이 나죠. 그런데 저는 온전히 저를 위해서만 살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네요. 제 나름대로 저를 알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오페라는 아무래도 옛날 노래를 계속 부르게 되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는 분도 있던데요.

제 경우엔 매너리즘에 빠질 새가 없어요. 세상에 작품이 얼마나 많은데요. 공부할 게 태산이죠. 오페라의 세계관이 낡았다지만, 200~300년 전 쓰인 음악이 아직까지 불리는 것 자체가 생명력이라 생각해요. 보통 유행곡이 한두 달 지나면 잊히지만, 명곡은 다르잖아요. 같은 모차르트, 베르디, 푸치니를 불러도 누가 부르냐에 따라 진짜 다르죠. 그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같아요. 해석에 따라 새로 탄생하면서 재창조가 계속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는 3년 전부터 독일 하노버를 기반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럽에서 살면서 느낀 건 오페라 가수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BBC에서 성악 콩쿠르를 열흘 동안 생중계하는 것도 그래서다. “하노버는 작은 도시인데, 동네 음악회나 학교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도 동네분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오세요. 오페라도 관객들이 정색하고 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런 사교 모임을 겸해 오는 게 일반적이죠. 오페라 가수를 되게 존중해준다는 것도 자주 체감해요. 이번에 [카디프] 콩쿠르 갔다가 돌아올 때도 그랬죠. 독일 공항의 입국심사대 직원들이 표정이 안 좋기로 유명하잖아요(.웃음) 줄을 서 있는데 바로 앞 중국인을 유독 까칠하게 대하던 사람이 제 비자에 직업이 성악가라는 걸 보고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군요. 유튜브로 저를 찾아보겠다면서 밝게 웃더니, 친절하게 보내줬어요(.웃음)”

글에 담기 어렵지만, 그는 대화하면서 곧잘 연기를 했다. 대화 속 등장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빙의해 성대모사를 서슴지 않았고, 사진 촬영할 때도 립싱크만으로 거대한 아리아를 불렀다.

연기력이 보통이 아닌데.

오페라가수는 기본적으로 연기가 필수라서요. 저는 오페라 연기가 체질인 것 같아요. 너무 재밌어요. 웃긴 역할이라면 오늘은 어떤 식으로 관객을 많이 웃길까 고민하죠. 어린이 오페라에서 애드리브도 해봤는데 애들이 다 빵 터지더군요.

꿈의 무대나 배역이 있다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꼭 서보고 싶고, ‘토스카’의 악역 스카르피아도 해보고 싶어요. 되게 멋있는 악역인데요, 제가 평소에 늘 웃고 다니잖아요. 웃는 사람이 사이코 역할 하면 더 나빠 보이잖아요. 무서운 사람이 무서운 역할 하면 그런가 보다 싶지만, 웃고 다니는 사람이 무서운 역할 하면 더 오싹하지 않나요.(웃음)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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