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23) 

삶의 이유-나는 무엇을 통해 행복을 느낄까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이유를 대답한다. 성공하기 위해, 가족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 스스로에게 당당한 내가 되기 위해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하지만 사실상 이 대답들은 하나의 대답으로 귀결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즉,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머지 것들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된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의 봄] 1877
행복을 그린 화가로 알려진 르누아르는 그림 [시골의 무도회]에서 두 남녀가 행복한 표정으로 춤추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화가 자신과 그의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것은 뭘까. 행복은 어떠한 감정이며,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 행복을 느낄까. 행복은 사랑, 우정, 신뢰, 미래, 희망과도 같이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 실제로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개념은 아니다. 뇌의 신호체계에서 알려주는 전기자극의 환상에 불과하다. 집단이나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은 하나의 체계이지만 삼성의 로고가 삼성은 아니며, 삼성의 회장이 삼성인 것도 아니다. 삼성에서 나온 핸드폰이 곧 삼성인 것도 아니다. 이 역시 가상의 개념이며 우리 머릿속에 만들어진 환상의 대상이다.

그러나 인류가 신경전달물질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인류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행복을 얻기 위해 약물을 이용하려 애쓰지는 않았다.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리고 만들어낼 수 있는 행복을 찾고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애써왔다. 인류는 오랜 시간 집단생활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긍정적인 감정들이 ‘나’라는 개인의 행복에 따른 즐거움인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수행했을 때 얻는 기쁨인지 잘 구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욕구는 사회적 욕구와 상당히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욕구와 나의 욕구가 사회에 섞여서 그 안에서 또 다른 나의 욕구가 발생한다. 다른 사람이 내게 원하는 것이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이 되고, 내가 바라는 것은 또 누군가의 욕구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욕구는 구별되는 듯 구별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행복한 개인


▎오귀스트 르누아르 [시골의 무도회] 1883
시험을 잘 보면 기분이 좋다. 외운 것을 잘 맞혔다는 쾌감, 반복적으로 갈고닦은 능력치를 확인하는 성취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시험 점수를 통해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상대적으로 아는 기쁨,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을 인정과 기대감도 동시에 느낀다.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을 때, 다이어트가 성공 궤도를 달릴 때, 운이 좋게 무언가에 당첨되었을 때,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 기분 좋은 선물을 받았을 때, 승진했을 때, 아이가 한 스텝 한 스텝 성장했을 때 등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무수히도 많으며 대부분의 경우 개인적·사회적 만족감이 동시에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무한히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행복은 찰나의 감정이며 이내 사라진다. 선물을 받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선물로 인해 얻은 기쁨은 희석되며, 시험을 잘 보았더라도 다음 시험을 잘 보지 못한다면 금세 기분이 나빠진다. 연애를 시작했지만 연인과 싸우게 되면 오히려 연애하기 전보다 불행해질 수도 있다. 나와 사회의 욕구가 모두 얽혀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그림 속에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포근한 듯 보이는 봄바람이 오래되고 늘어진 나뭇가지들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피사로의 대표작 중 하나인 [퐁투아즈의 봄]이다.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대중적으로는 마네나 고흐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상주의가 세상에 태어나고 화가들이 인상주의 전시회를 열던 그때에는 많은 화가의 멘토이자 리더로서 역할을 했었다. 폴 세잔과 폴 고갱 역시 피사로가 자신의 스승이었다고 밝혔으며, 피사로는 평론가와 살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어렵게 작품 활동을 하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재정적인 분담을 함께하고자 노력했으며, 8번 개최된 인상주의 전시회에 모두 참여하면서 인상주의 미술에서 주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피사로의 초기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대중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화가가 원했던, 살롱과 평론가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자신의 욕구만 추구했다면 다른 화가들을 살뜰히 챙기고 도와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부모님을 모시던 하인과 같이 살기로 결심하면서 집에서 쫓겨났다. 그로 인해 스스로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집과 음식, 물감을 선뜻 내주었다. 동료 화가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사회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공헌감을 느끼며 행복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유동적인 행복의 수치


▎폴 고갱 & 카미유 피사로 [피사로와 고갱] 1883
그러나 그렇게 얻은 행복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폴 고갱은 피사로가 특별히 아꼈던 후배였는데, 간단한 선으로 이루어진 스케치 [피사로와 고갱]에는 한 종이에 두 작가가 서로를 그려준 모습이 담겨 있다. 작가들이 같은 모델이나 풍경을 보고 함께 작업한 그림들은 종종 남아 있지만 한 장에 함께 그림을 그린 작품은 드물다.

피사로를 그린 고갱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다. 전업 화가가 되면서 그는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듯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평론가의 혹평은 그를 좌절하게 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초대를 받아 그와 함께 작업하러 들뜬 마음으로 아를에 도착했지만 몇 달 만에 갈등이 커지면서 실망감을 안고 그곳을 떠났다. 그 이후에도 고갱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 반복되는 인생을 살았다.

행복을 얻는 것도 어려운데 한번 얻은 행복감을 유지하는 것은 또 왜 이렇게 힘들까? 분명 학창 시절에는 적은 용돈을 쪼개 쓰면서도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그때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쓰면서도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고등학생 때는 모두가 다 같이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서 공부하던 것이 당연했는데, 성인이 되니 8시간씩 앉아 일하는 게 고역이다. 쓸 수 있는 돈과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도 행복이라는 대상은 늘 가까이에 있는 것 같지 않다.

행복의 방법은 분화되고 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가브리엘, 장 그리고 어린 소녀] 1895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리차드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동물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라고 표현했다. 유전자는 꽃, 강아지, 새, 인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생존하며, 이 생존을 이어가는 것이 유전자의 유일한 목적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이나 번식에 위험한 상황이면 우리에게 공포나 불안의 감정을 느끼도록 하고, 이와 반대되는 상황에서는 행복을 느끼도록 한다는 것이다. 달콤한 음식을 먹고, 좋은 성적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이 마치 종종 번식과 자신의 신체 건강에만 국한되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지만, 좀 더 확장하여 들여다보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우리’를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 그 맥락은 같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인류 전체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나라, 자신의 가족, 자신의 전문 분야 등 개념이 다양해졌다.

큰 프레임은 이렇게 설정되어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류는 개인마다 다른 방식으로 행복의 감정을 얻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과거 집단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직업이 그다지 구체적으로 분화되지 않았지만, 현대사회에는 적성, 재능, 감성 등에 따라 직업이 분리되어 있고, 사회의 요구와 더불어 자기 스스로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에 따라 직업을 선택한다.

르누아르의 [가브리엘, 장 그리고 어린 소녀]에는 화가의 아들과 유모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변치 않는 가치는 가족 안에서 느끼는 사랑이라는 의견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사회는 바뀌고 있다. 최대한 아이를 많이 낳고 집단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과거 우리의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아이를 계획적으로 낳아 자신의 삶의 양식에 맞춰 함께 성장해나아가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일부는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부부간 유대와 사회적 역할을 더 중시하며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 부부로 지내기도 한다. 부부 사이에서의 유대감을 더 오랜 시간 강하게 느끼려 노력하고 사회적 활동에 더 집중한다. 나와 같은 생각과 재능을 가진 후배들을 육성해나가는 것도 ‘우리’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렇게 사회 전체의 욕구와 나의 욕구는 종합적으로 아주 다양한 형태의 행복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각자 느끼는 행복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느 순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 행복을 느끼는지에 주목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주변 사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느끼는 행복이 자신에게 더 중요한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회적 공헌감이 더 중요한지, 고통에서 벗어나 느끼는 보상심리가 행복감을 주는지, 소속감에서 오는 안전함이 행복으로 이어지는지, 강렬한 운동을 하거나 달고 매운 음식과 같은 자극이 행복으로 다가오는지 등…. 이렇게 하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행복감을 높일 방법도 알게 된다. 행복에 반하는 요소는 줄이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요소들에 더 자주 노출되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감 포착하기

행복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이 그려지고 나면 최종적으로 ‘나는 왜 사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도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궁극적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행복함을 구체화한다면 지금까지 막연했던, 사는 목적도 조금은 더 명확해진다. 행복감은 하루에도 짧게 여러 번 느껴졌다가 휘발되기도 한다. 무엇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지를 안다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이제 지금 이 순간부터 느껴지는 작은 행복감을 더 열심히 들여다볼 필요성이 생겼다.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집중해볼 시간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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