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13) 

관계 갈등-나는 너를 바꿀 수 있을까 

갈등(葛藤),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들이 충돌하는 현상. 칡과 등나무가 얽혀 있는 듯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갈등이라고 한다. 갈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갈등을 모두 해소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거울 속의 비너스] 1651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이 갈등을 가지는 원인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누군가와 관계가 없다면 갈등을 갖게 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알아보고 우리가 무엇을 바꿔나갈 것인가를 살펴본다면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과 가까워지기 쉬울 것이라 했다. 아들러는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로 나, 너, 관계, 환경을 언급했다.

갈등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일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예로 들어보자. 나라는 사람이 있고, 거래처라는 상대방이 있고, 비즈니스라는 관계가 있고 미팅이라는 환경이 있다. 미팅을 할 때마다 불쾌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지만 상대 거래처와의 비즈니스에서 얻는 이득이 있기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관계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먼저 환경을 바꾼다고 가정해보자. 미팅에 가지 않으면 순간적인 갈등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을 계속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는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좋은 거래처를 놓치게 될 위험도 있다.

두 번째로는 관계를 바꿀 수 있다. 거래를 중단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관계를 바꾸지 않고 갈등을 안고 가는 것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혜택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너와 내가 남는다.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갈등이 발생하는 상대방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다. 상대 거래처 사장님의 정치 성향이나 말투 등을 바꿀 수 있을까. 갈등이 발생하는 상대방의 특정 행동을 수정할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의 가치관, 태도, 신념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결국 내가 된다.

관계 갈등에서 나를 바꾼다는 것은 그냥 참고 지내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그 관계에서 겪는 고통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불편함이 커져 똘똘 뭉친 감정은 상대방의 한마디 말과 눈빛 하나로도 더 큰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상대방을 대하는가에 따라 덜 불행할 수 있고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억울한 감정을 모두 해소하고 살 수는 없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감정이 자신을 갉아먹는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내 판단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주도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존재하지만 현존하는 미인 중 가장 아름다웠던 프시케 공주도 등장한다. 아프로디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여신으로 여겨졌던 반면, 프시케는 인간이며 눈에 보이는 절세 미녀였기에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향하던 관심은 프시케라는 인간으로 기울었다. 아프로디테의 제단을 돌보는 이들조차 프시케의 외모를 한번 보고 나면 발길을 돌렸다. 이에 화가 난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아들 에로스를 프시케에게 보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혐오스러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도록 금화살을 내리라는 지시를 하게 된다.

당신이 불행해지길 바라


▎피에르 폴 프뤼동 [프시케의 유괴] 1808
그러나 프시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놀란 에로스는 실수로 자신의 금화살에 손가락을 찔리고 만다.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 에로스는 다른 남자가 탐하지 않도록 쓴물을 그녀의 입술에 바르고, 매력을 상승시키는 단물을 이마에 발랐다. 그 결과 아무도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 않았다. 걱정이 된 왕과 왕비는 신탁을 받게 되는데 ‘신들조차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는 끔찍한 괴물’과 결혼할 것이라는 내용이었고, 결국 그녀는 산에 버려지게 된다.

이 상황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고 부정당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프시케가 혐오스러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계획함으로써 사라지게 할 계획을 세웠다. 즉 ‘내’가 아닌 ‘너’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불멸의 여신이었고, 한낱 인간에 불과했던 프시케의 아름다움은 세월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이었다. 에로스는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명령으로 프시케에게 갔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서도 에로스는 단물과 쓴물을 발라 ‘너’를 바꾸려고 했다.

피테스산 정상에 프시케를 두면 괴물이 그녀를 데려갈 것이라는 신탁을 믿은 프시케의 부모는 그녀를 산에 버리게 된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인정 많은 서풍의 신이자 에로스의 부하 제피로스는 무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녀를 꽃이 가득한 한 궁전으로 옮겨주었다.

궁전은 화려했다. 황금 기둥과 수정 같은 샘물, 조각으로 꾸며진 벽과 예술품 등 아름다운 작품들이 가득한 궁전을 둘러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은 프시케의 것이며 명령을 내리면 모두 받들겠다는 내용이었다. 모습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프시케는 시종들의 노래도, 음식도, 안내도 모두 받게 됐다.

밤이 되자 그녀의 남편이 침실로 찾아왔다. 짙은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의 숨결과 손길을 느꼈지만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는 ‘당신이 내 얼굴을 확인하는 날이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지내는 밤의 시간들, 모든 것이 갖춰진 낮의 시간들은 프시케에게 많은 충족감을 주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녀는 외로움에 빠져들게 된다.

임신을 하게 되면서 고향이 그리워진 프시케는 남편에게 언니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처음에는 강하게 거절했으나 간절한 그녀의 부탁에 언니들의 호기심을 주의하라는 경고와 함께 허락한다. 프시케와 같이 제피로스의 바람으로 궁전에 도착한 언니들은 너무나도 화려하게 살고 있는 프시케를 시기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화려한 외모로 주목받던 동생이 결국은 자신들보다 훨씬 멋진 저택에서 여왕처럼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기와 질투로 만든 갈등


▎프랑수아 에두아르 피코 [큐피트와 프시케] 1817
질투.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는 것. 부러워하는 감정이 고양되어 격렬한 증오나 적의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 이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이 있어야 발현 가능한 감정으로 상대방을 파괴해버리는 강렬한 감정으로까지 커질 수 있다.

“아침만 되면 사라지는 너의 남편은 분명 끔찍한 외모의 괴물일 것이다.” 프시케의 행복을 질투한 언니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언니들은 칼 한 자루를 쥐여주며 밤에 얼굴을 몰래 보고 그 모습이 괴물이면 칼로 찌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언니들이 떠나고 나자 프시케는 남편과 언니들의 말 사이에서 갈등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처럼 보지 못하는 남편과 외롭게 사는 선택, 남편이 괴물임을 확인하고 죽이는 선택, 혹은 얼굴을 보게 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괴물이 아닌 남편 얼굴을 보고 다시는 보지 못하는 선택 등. 프시케에게는 그 어떤 방법도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았다.

갈등은 언니들의 질투로 인한 의심에서 시작됐다. 프시케에게는 궁궐에 홀로 있다는 외로움은 존재했지만, 언니들이 질투할 만큼의 아름다운 성과 안락한 생활들도 프시케의 것이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언니들을 불러들이게 했지만 남편과의 갈등은 언니들로부터 생겨나게 된 것이다.

프시케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환경’을 바꾸려 했다. 밤에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남편과의 약속을 깨고, 불을 켜고 얼굴을 보려고 한 것이다. 그날 밤 프시케는 등잔불을 켜고 남편의 얼굴을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침대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랑의 신 에로스가 있었다. 손이 떨린 프시케는 등잔의 기름 한 방울을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뜨렸고, 그는 그 자리에서 깨어나게 된다. 프시케가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의 믿음을 굳건히 하는 시도를 했다면 그 뒤의 상황은 달라졌을까. 혹은 산속에 버려질 뻔한 나를 이렇게 따듯하고 호사롭게 지내게 해준 그의 외모에 상관없이 고마운 마음을 더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밤중에 에로스를 만났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지 말고 걱정스런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당신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황금상자를 여는 프시케] 1903
에로스는 그녀를 떠났고, 뒤늦은 후회를 한 프시케는 아프로디테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관계’를 바꾸려고 시도한 것이다. 모든 게 아프로디테에게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예비 시어머니를 찾아가 자신을 며느리로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프시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프로디테는 그녀가 이룰 수 없는 과업들을 지시하며 시험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온갖 곡물을 잔뜩 쌓아놓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분류하는 것이었는데, 이때 개미 떼가 도와 해내게 된다. 두 번째는 포악한 양 떼의 황금 양털을 벗겨 오는 것이었는데 갈대가 산들바람을 타고 와 양이 잠들면 털을 벗겨 오라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세 번째는 험준한 산꼭대기의 샘물을 받아 오는 것이었는데, 독수리가 항아리를 받아 샘물을 받아주었다. 이 모든 것은 에로스가 몰래 도와주어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 시험은 저승에 가서 페르세포네의 화장품 상자를 받아오는 것이었는데, 사실상 인간이 그곳에 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아프로디테가 결국 자신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 프시케는 탑에 올라 죽음을 결심하는데, 이때 탑이 인간의 목소리로 저승에 다녀오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절대 화장품 상자를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프시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서는 죽음보다 깊은 잠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에로스는 제우스에게 간절하게 부탁하게 되고 둘은 정식 부부가 될 수 있었다.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와의 갈등에서 ‘환경’과 ‘관계’, 혹은 ‘너’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닌 ‘나’를 바꾸어가며 계속 노력해나갔다.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아프로디테의 마음에 들기 위해 관계에서 필요한 갈등들을 해소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 것이다.

프시케는 에로스에게 갑작스럽게 납치당한 부당함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누군가와 함께하는 감각이 그립다고 설명할 수도 있었다. 의심하기에 앞서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고 상대방에게 이해받는 과정이 그녀에게는 빠져 있었다.

결국은 프시케는 에로스의 사랑과 아프로디테의 인정을 얻어냈다. 이 모든 것은 관계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변화하려고 애쓴 프시케의 노력의 결과였다. 아프로디테를 그저 저주했을 수도 있고, 남편을 의심하게 만든 언니들에게 화살을 돌릴 수도 있었다. 에로스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가능했다.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인간관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좋기만 한 사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불편함을 조금씩 감수하거나 한 사람이 좀 더 양보하고 맞춰나가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약 조절이 잘되었을 때 우리는 웃으면서 상대방과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제우스의 도움으로 여신이 된 프시케는 에로스와의 사이에서 딸 ‘기쁨’을 낳게 된다. 어려운 시간을 거쳐 결국 아프로디테도 그들을 받아들였다. 관계의 갈등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였다. 프시케(psyche)는 그리스어로 나비를 뜻한다. 오랜 기간 애벌레 생활을 마치고 번데기를 거쳐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비의 삶이 그녀의 삶과 비슷하다. 영어 단어 ‘psyche’는 마음과 영혼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나비와 같은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시간들이 있고, 얼마나 현명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열매가 달라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계의 갈등 속에 있다면 나를 위해 ‘나’를 바꾸어볼 시간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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