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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6) 

과거에 머물러 있나요, 트라우마의 승화 

트라우마(trauma)란 현재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과거의 충격적 경험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런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하는 정신·신체 증상들로 이루어진 증후군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라고 한다.

▎카라바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1599
PTSD 환자들은 대부분 어떤 사건의 피해자다. PTSD의 원인이 자연재해나 전쟁처럼 가해자의 잘못이 아닌 천재지변인 경우도 있겠지만, 성폭력, 신체폭행, 대인관계에서의 트라우마와 같이 가해자가 원인일 때도 많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실제 잘못은 가해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심리적 상처가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1600년대를 살아갔던 이탈리아의 여성 화가다. 그녀는 화가이자 아버지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의 적극적 지원으로 당시 여성으로서는 도전하기 어려웠던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젠틸레스키의 아버지는 딸을 자신의 친구이자 화가였던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의 화실로 보내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딸의 꿈을 지원한다.

내 잘못이 아니에요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1612
그러나 설렌 마음으로 미술교육을 받던 젠틸레스키는 18살 되던 해 평생에 걸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 그녀의 미술 스승이자 아버지의 친구였던 타시가 그녀를 성폭행한 것이다. 타시는 상습적 성범죄자였다. 그가 결혼했던 여성도 상대방을 성폭행하고 죗값을 치르지 않기 위해 결혼을 했던 것이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폭행의 죗값을 결혼이라는 방식으로 회피한 타시는 심지어 한술 더 떠 아내의 여동생마저 성폭행을 하여 임신을 시키게 된다. 이때, 타시는 형벌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청부살인하려 했으나 실패했던 사람이었다.

젠틸레스키의 아버지는 상처받은 딸을 위해 타시를 성범죄자로 고소한다. 7개월간의 싸움을 견뎌 결국 젠틸레스키는 승소했으나, 타시는 자신의 후원자와 사회적 우위를 이용해서 쉽게 사회적 위치를 회복하게 된다.

재판에서도 승소하고 범죄의 피해자였던 젠틸레스키였지만, 사람들은 정작 가해자가 아닌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아버지는 딸에게 일어났던 사건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기 급급했다. 아버지는 젠틸레스키를 본인이 선택한 사람과 빠르게 결혼을 시켜 성을 바꾸고 로마를 떠나도록 했다. 피해자였던 그녀가 오히려 세상에서도 2차적으로 버림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젠틸레스키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그림에서 직접 볼 수 있다. 그녀의 많은 작품에서는 젠틸레스키의 얼굴과 성폭행 가해자인 타시의 얼굴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수산나와 노인들]은 성경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여성 얼굴에는 자화상을, 남성은 타시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젠틸레스키 [수산나와 노인들] 1610
수산나는 결혼한 여성이었다. 어느 날 수산나의 남편 요아킴이 집에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늙은 두 재판관이 수산나의 미모를 보고 흑심을 품는다. 손님들이 거의 돌아가고 수산나는 정원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이 두 노인이 수산나에게 다가와서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들은 만약 거절하면 ‘젊은 남자와 간통했다’고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수산나는 ‘겁탈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 맞서 싸웠지만 사람들은 저명한 재판관인 두 노인의 말만 믿게 된다. 두 노인은 간통죄로 수산나를 법정에 세운다. 당시 간통은 사형을 받게 되는 중범죄였고 결국 법정은 죄 없는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이때 성령이 어린 다니엘의 몸에 내려왔고, 다니엘이 진실을 밝혀 수산나가 누명을 벗게 된다. 이 이야기 속 남성들은 본래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어야 함에도, 왼쪽 남성은 검은머리의 젊은 남자로 묘사됐다. 젠틸레스키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반영하여 타시의 모습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유디트]는 젠틸레스키가 즐겨 그린 주제 중 하나였다. 유디트는 베툴리아에 살았던 아름다운 과부다. 적군인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그녀의 나라인 베툴리아를 침략하자 앗시리아 군에 거짓으로 투항하게 된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를 만취시킨 뒤 칼로 그의 목을 베어 나라를 구하여 영웅이 된다. 젠틸레스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 카라바초(Michelangelo da Caravaggio)의 유디트는 여성스럽고, 소극적이며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이고 있다. 그녀 옆에 서 있는 시녀는 늙은 여성으로 묘사됐고 손에 머리를 담을 자루를 쥐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달랐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훨씬 더 강하고 힘 있는 여성으로 묘사됐고, 적극적이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적장의 목을 베고 있다. 그녀를 돕는 시녀 역시 강하게 그를 제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홀로페르네스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사실감 넘치고 강렬하다. 젠틸레스키는 카라바초와 같이 여성을 소극적으로 그린 것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젠틸레스키 [루크레티아] 1621
젠틸레스키는 이 그림에서도 유디트의 얼굴에는 자신의 자화상을, 홀로페르네스는 타시의 얼굴로 그려냈다. 현실에서는 젠틸레스키가 타시를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림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성폭행하고 상처를 주었던 그를 죽이고 또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는 용납되지 않거나 인정되지 않은 욕구를 예술과 같은 다른 활동으로 바꾸어 충족하는 것을 승화(sublimation)라고 한다. 승화는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개념이며,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젠틸레스키는 타시와 사회에 표출하지 못했던 원망, 분노, 살인의 욕구 등 부정적 감정들을 미술작품이라는 가치 있는 형태로 바꿔놓은 것이다.

정숙한 로마 귀부인이었지만 비극적으로 겁탈당하고 자살하며 결과적으로 로마 왕정의 종말을 이끈 루크레티아(Lucretia)의 이야기는 젠틸레스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로마 귀족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의 아내로, 당시 로마의 문란한 문화에도 불구하고 정숙함으로 명망 높은 귀부인이었다. 남편 콜라티누스의 사촌이자 로마 왕의 아들인 섹스투스는 루크레티아의 정숙함을 믿지 않았고, 그의 남편 콜라티누스와 내기를 하기에 이른다. 두 사촌 간의 내기는 콜라티누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내기에서 패배하고 루크레티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섹스투스는 그녀를 협박하며 겁탈하기에 이른다. 루크레티아는 남편과 가문에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여 몸을 허락했고, 남편과 남편의 친구인 브루투스에게 자신의 겁탈 사실을 알린 뒤 가슴에 비수를 꽂아 자결한다. 이 사건으로 분노한 브루투스는 섹스투스와 로마 왕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내고 로마 공화정을 수립하고, 여성의 정절 의무를 입법화하기에 이른다.

젠틸레스키의 [루크레티아]는 한 손에 칼을 들고 자신을 베어버리려고 하는 모습인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칼을 들고 자결하는 루크레티아의 모습도 분명 존재하지만,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기억이 소멸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존재한다. 비장하게 칼을 들고 있는 모습에는 상처받은 자신을 잘라내고 새롭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젠틸레스키 [평화와 예술의 알레고리] 1638
이렇듯 작품 세상에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던 젠틸레스키는 어느덧 50대 중반이 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그녀는 아버지와 25년간 연락을 끊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70이 넘어 쇠약해진 아버지가 젠틸레스키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가다듬으며 아버지를 만나러 간 젠틸레스키가 발견한 것은 쇠약해져서 노인이 된 아버지가 [평화와 예술의 알레고리]라는 천장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늙어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붓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아버지를 도와 젠틸레스키는 [평화와 예술의 알레고리]를 완성한다. 이 아름다운 천장화는 오랜 시간의 상처 때문에 서로를 보기 어려웠던 부녀가 한자리에서 만나 아픔을 승화하게 된 하나의 증표가 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젠틸레스키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그림으로 계속해서 승화했고, 결국은 아버지와 만나 그간의 묵은 감정을 해소하게 된다. 젠틸레스키 부녀가 다시 만난 이듬해, 아버지는 결국 사망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당대의 명성 높은 화가였기에 성대한 장례식을 치른다. 젠틸레스키는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에게서 아버지가 자신을 누구보다 훌륭한 화가로 여겼으며 ‘내가 아는 어떤 화가도 내 딸보다 훌륭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많은 시간을 거쳐 그 트라우마와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정말 의지의 문제일까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트라우마가 생기는 이유를 “개인이 과거의 불편한 감정을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고통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인지행동심리학에서도 트라우마를 이와 유사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신념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과거 트라우마로부터 고통받는 사람은 ‘인간의 과거 경험은 그 사람의 현재 행동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이며 사람은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인지행동심리학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그냥 덮고 넘어가라’ 혹은 ‘다 지난 일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 추가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현재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데 여전히 족쇄가 되고 있다면 분명 노력은 필요하다. 과거에 사람에게서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혹시나 다시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대인간 신뢰를 쌓지 못하기도 하고, 친밀한 교류를 차단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스스로 외롭게 만들 것이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간관계를 훼손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주변의 사람들이 내미는 손을 잡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트라우마 회복은 과거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현재로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그때 사건, 상황, 상처받은 나 자신을 그 시간에 그대로 두고 오는 것, 과거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현재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트라우마에서 건강하게 회복하는 길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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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호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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