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위의 짐차는 원래 말이 끌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초기 선로는 역과 역 사이를 오가는 역마차를 위해 마련된 시설이었다. 증기기관이 상업화되던 리젠시 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 사람들은 철도 위의 짐차는 말이 끄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초기 증기기관은 기관차 엔진으로 사용하기에는 효율이 너무 낮았다. 조지 스티븐슨이 제대로 된 고효율 기관을 개발한 후에야 기관차 엔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를 등록(1769년)하고 40년이나 흐른 후였다. 인프라(철도)가 깔린 목적(역마차 운용)과 시점(증기기관차 도입 이전) 모두,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보급된 때와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열차라는 효율적인 운송 체계는 후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천히 보급됐다.하지만 증기기관차가 도입되고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역마차 운영 회사는 도산을 맞았다. 오랜 기간 운송업을 해온 업계 베테랑인 역마차 사업주는 왜 이런 기술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을까?기술 도입 초기에는 비용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역마차 사업주 입장에서는 숙련된 말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게 있다. 사업 확장에서 기존 기술인 말을 활용해서 얻는 편익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증기기관차를 활용했을 때의 편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었다. 기술의 효용을 과소평가했다고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산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늘 점진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인 발전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으리라.점진적 진보의 연속이던 수천 년 전과 비교해보면 기하급수적 혁신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는 불과 기백 년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런 변화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철도 위의 짐차를 말이 끌고 있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무언가는 -그게 무엇이든- 조만간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그 산업 밖에 있어서 ‘뭘 좀 모르는 사람’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