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한때 사장되는 듯했다가 우리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QR코드가 좋은 예다.
▎QR코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확진자 추적에 대응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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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가 처음 상용화되기 시작할 무렵 ‘QR코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진(Pictures of People Scanning QR-codes)’이라는 텀블러 페이지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관심을 끄는 사이트 제목에 이끌려 들어가보면 ‘포스팅이 없다’는 메시지만 보인다. 디지털업계에서 QR코드라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기대와 달리 당시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QR코드의 상황을 풍자한 사이트였다.실제로 당시에는 QR코드가 실용성도 없고 크게 멋지지도 않은, 그저 그런 기술쯤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QR코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22년 현재 QR코드는 그 어떤 기술보다 우리 삶에 밀접하게 활용되는 기술이 되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예술, 마케팅, 접종기록까지 아우르는 QR코드의 위력
▎QR코드를 활용해 일체 접촉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코카콜라 자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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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 기술을 처음 개발한 곳은 일본이다.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부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994년 도요타 자회사인 덴소웨이브라는 회사가 개발했다. 복잡한 형태를 띤 사각형 패턴에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었는데, 작동 원리는 비슷하지만 한쪽 방향으로만 읽히는 바코드와 달리 QR코드는 가로 세로 모두 읽힐 수 있는 만큼 활용도가 나쁘지 않은 기술이었다.처음 개발 목적대로 생산공정이나 배송 효율을 높이기 위해 비즈니스 단에서 먼저 활용되기 시작한 QR코드는 아트나 광고처럼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에도 접목됐다. 2011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Talk to me’ 전시에서 QR코드가 적용된 여러 실험적 아트워크가 전시되기도 했고,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자신의 신곡 홍보를 위해 QR코드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의 적용은 대중적인 호응을 크게 얻지 못했다. QR코드를 직접 활용하는 도구인 스마트폰조차 많은 이에게 아직 낯설었던 시절이었고, 사람들도 QR코드를 엔지니어나 사용하는 특별한 기술처럼 어렵게 여기기도 했다. 이를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소개하지 못한 기업과 매체의 한계도 있었다. QR코드를 활용해 누릴 수 있는 콘텐트도 많지 않았다. 그러니 점점 기술에 대한 관심과 활용은 사그라져가는 듯했다.하지만 QR코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던 아시아 지역을 시작으로 큰 반전을 맞게 된다. 적지 않은 양의 데이터를 네모 모양의 패턴에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실생활과 밀접한 결제나 송금 프로세스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현재 중국 모바일 페이의 90%는 위챗(WeChat), 알리페이(AliPay)처럼 QR코드를 기반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오죽하면 중국에서는 거지조차 QR코드로 동냥을 받는다고 할 정도니 그 활용도는 두말할 나위 없는 수준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QR코드를 활용하고 있는데, 마트에서 쉽게 접하는 식재료에 QR코드를 붙여 원산지와 유통 및 관리 정보를 소비자가 쉽게 볼 수 있게 돕는다. 이렇게 아시아 국가들은 버림받을 것만 같았던 QR코드를 대중의 삶 속에 스며들게 만들었다.팬데믹은 이 QR코드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다시금 유행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일상에서 사적인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곳에서 QR코드의 활용 방법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국가에서 신분증 검사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기록을 알 수 있는 QR코드 검사를 더 엄격하게 적용하며,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메뉴 확인과 주문도 QR코드를 통해 이루어진다. 코카콜라는 사용자가 별도의 앱을 내려받지 않고 QR코드만으로 식당이나 영화관에서 음료 기기를 어떠한 접촉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이제는 실생활에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미적인 관점에서도 QR코드를 향상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The Black Rep theater에서는 배우들의 멋진 이미지와 QR코드를 결합해 디자인적으로 완성도 높은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같은 QR코드의 다양한 디자인적인 시도와 접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기술과 인간 사이에 더 많은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개발과 이것의 실제 적용은 깊은 관계가 있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알맞은 접점을 찾지 못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 이상인 MS 디렉터는… 구글 본사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재직 중이며 현재 유튜브 광고 비즈니스의 디자인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loud+AI 부서에서 Principal Design Manager로 일했다. Deloitte Digital과 R/GA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을 상대로 디자인&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했으며, Cannes Lions(Silver, 2013)와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대상, 2017) 등 최고 권위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베스트셀러 연작 『디자이너의 접근법; 새로고침』,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