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는 환상과 실제를 구분하기 힘든, 황홀한 바다의 도시이다. 오늘날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지만 1797년까지는 하나의 나라였다. 즉, 선출된 최고 통치자 도제(Doge)가 이끄는 해상공화국이었다. 이 공화국의 역사는 1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리알토 다리에서 내려다본 대운하. 중형 크기의 배가 ‘버스‘이다.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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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메스트레(Venezia-Mestre) 역을 출발한 기차가 속도를 줄이면서 약 4㎞에 달하는 다리 위를 지날 때, 차창에는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남국의 밝은 햇살을 머금고 있는 아드리아(Adria)해가 펼쳐지고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에 숨어 있는 듯한 미궁(迷宮)이 서서히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황홀한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이다. 영어권에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찌아’에 가깝게 발음하고 악센트는 두 번째 음절 ‘네(ne)’에 있다.오늘날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지만 1797년까지는 하나의 나라였다. 즉, 선출된 최고 통치자 도제(Doge)가 이끄는 해상공화국이었다.
대동맥 카날 그란데(Canal Grande)베네치아의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오면 바로 카날 그란데(Canal Grande)와 마주친다. 카날(Canal)은 ‘운하’, 그란데(Grande)는 ‘큰’이란 뜻이니, 한마디로 ‘대운하’이다. 역 앞 광장에서 베네치아의 심장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곳에서 말하는 ‘버스’는 바포렛토(vaporetto)라고 하는 배인데 ‘증기선’이란 뜻이다. 물론 지금은 증기기관으로 작동하지 않지만.바포렛토가 대운하를 따라 서서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자 좌우로 황홀한 광경이 서서히 펼쳐진다. 창(窓)과 주랑(柱廊)으로 확 트인, 옛날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던 우아한 건물들은 밝게 채색되어 물 위에 떠 있는 듯 가볍게 보인다. 정말로 베네치아는 환상과 실제를 구분하기 힘든 곳이다.한편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대운하는 ‘ㄹ’ 자를 크게 흘려 쓴 것처럼 베네치아를 관통하고 있는데 그 길이는 대략 3.8㎞이며, 폭이 가장 좁은 곳은 약 30m, 폭이 가장 넓은 곳은 약 90m에 이른다. 그런데 대운하는 관광하기 좋으라고 일부러 ‘ㄹ’ 자 코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브렌타강의 물길이 원래 그렇게 휘어져 외해로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대운하에는 수많은 작은 운하가 모세혈관이나 신경조직처럼 연결되어 도시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사실 베네치아는 작은 조각섬 120여 개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작은 운하 180여 개와 각 구역을 연결하는 크고 작은 다리 410여 개가 놓여 있다. 대운하는 산타 루치아 역과 산 마르코 광장을 잇는 직선의 세 배나 되는 길이이지만, 도시의 웬만한 주요 지점은 대부분 300m 이내에 있기 때문에 작은 운하로 단시간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런데 작은 운하들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조각섬과 조각섬 사이로 물길이 원래 그렇게 나 있었던 것이다.
▎리알토 다리. 이 지역은 베네치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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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조각섬들로 이루어진 바다를 통칭하여 이탈리아에서는 라구나(Laguna, 영어로는 lagoon)라고 하는데 보통 석호(潟湖)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옛날 베네치아 사람들은 왜 멀쩡한 육지를 놔두고 힘들게 이런 곳에 도시를 세웠을까? 사실 이 라구나는 로마제국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5세기 전반에 이탈리아 북동부를 침공해 들어온 고트족과 훈족을 피해 육지에서 피신해 온 ‘보트피플’의 도피처였다.
고립된 섬에서 열린 세계로
▎대운하와 오른쪽에 보이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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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를 2/5쯤 지난 바포렛토는 리알토 다리 아래를 통과한다. 이 다리는 운하의 폭이 가장 좁아지는 곳에 놓여 있는데 베네치아의 역사는 바로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즉, 베네치아의 공식적인 역사는 난민들이 리알토 지역에서 봉헌미사를 올린 421년 3월 25일 정오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베네치아는 올해 창건 1601주년을 맞는다.당시 외부 세계와 떨어져 완전히 고립된 이곳에는 자원이라곤 오로지 소금과 물고기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앞날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주여, 우리가 언젠가 위대한 일을 할 때 영원히 번영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지금 우리는 보잘것없는 제단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맹세가 헛되지 않다면, 언젠가 대리석과 황금으로 치장된 수많은 성전이 당신을 위해 이곳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 후 6세기에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더 많은 난민이 이곳으로 몰려와 인구가 크게 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697년에 이들은 지도자를 뽑았는데 이를 도제(doge)라고 불렀다. 이리하여 ‘해상 난민촌’은 서서히 공화정체제 도시국가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산 마르코 광장 입구. 오른쪽이 도제의 궁전이다.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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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은 ‘고립’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섬은 사방팔방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초기의 베네치아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밖으로 눈을 돌려 항해술과 선박건조기술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바다로 진출하면서 교역을 통하여 국력을 서서히 키워나갔는데, 마침내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베네치아는 지리상으로 유럽과 동방을 잇는 거점으로 각광을 받아 십자군 전쟁 때부터 크게 발전했고 14세기에는 라이벌 해상공화국 제노바를 누르고 북부 이탈리아, 지중해 동남부의 섬들, 그리스, 소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으며, 15세기에는 지중해 동부도 완전히 장악하며 황금시대를 맞았다.
바포렛토가 리알토 다리를 지나 한번 휘어져 돌자, 우아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돔이 나타난다. 그 앞을 지나자마자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바포렛토는 산 마르코 광장 입구에 도착한다. 산타 루치아 역을 떠난 지 약 40분 만이다. 이 광장 입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도제의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 최고 통치자의 집무실이자 관저이며 공화국의 ‘정부 종합 청사’였는데도 유럽의 다른 도시에 세워진 육중한 정청(政廳)들과 달리 완전히 개방적인 모습이라서 베네치아가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는 곳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비잔티움 양식의 화려한 산 마르코 대성당.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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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를 따라가는 여행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곳은 산 마르코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는 베네치아의 구심점인 산 마르코 대성당이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대리석과 황금’으로 치장된 이 화려한 비잔티움 양식의 성전은 도제의 궁전과 함께 과거 베네치아의 전성기를 지금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처럼 베네치아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넓은 세계로 열려 있는 부유한 해상공화국이 되었으며 또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성전도 세워졌으니 그 옛날 하늘을 우러러보며 간절히 기도하던 난민들의 꿈이 후세에 그대로 이루어졌던 셈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종말
▎산 마르코 광장. 그 뒤로 산 마르코 대성당과 도제의 궁전이 보인다. / 사진:정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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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하면 망하는 것이 인간사의 이치일까? 1453년에 동지중해 교역의 거점 콘스탄티노폴리스(영어로는 콘스탄티노플, 현재의 이스탄불)가 튀르크 세력에 의해 함락되고, 1492년 신대륙의 발견으로 해상권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넘어가자 베네치아의 국운은 기울어져 갔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는 속담처럼, 베네치아는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약 3세기 동안 음악, 미술, 연극, 출판 등 문화 전 분야에 걸쳐 또 다른 황금기를 누렸다. 베네치아 풍경에서 초점을 이루는 바로크양식의 웅장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은 바로 이 시기인 1687년에 완공되었는데,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음악가 비발디(1678~1741)는 당시 9살 소년이었다.하지만 베네치아는 쇠락을 피하지 못하고 1797년에 이곳을 침공한 나폴레옹 군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리하여 해상공화국 1000년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 후 나폴레옹이 몰락한 다음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861년에 태어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1866년에 오스트리아 세력을 몰아내자 이탈리아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