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25) 

오리지날리티 - 무엇이 진짜인가 

우리는 생리적으로 복제된 대상이 아닌 독창적인 것을 소비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복제가 쉬워지고 복제가 원본을 대체해가는 오늘날에는 복제 방식도 새로워졌으며, 복제품은 과거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 오노레 도미에 [술 마시는 네 살짜리] 1862 / (아래) 빈센트 반 고흐 [술 마시는 사람들] 1890
남산에 가면 원조 남산 돈가스를 판매하는 업체가 여럿 보이고, 장충동에 가면 원조 족발집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가 많다. 춘천의 닭갈비 골목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최초인 것, 진짜인 것을 가려내려는 본능적인 심리가 소비자에게 작동하는 것을 알기에 업체들은 ‘원조’를 강조한다.

신약을 개발하면 일반적으로 특허를 등록하고 출시하여 타 제약회사에서 따라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특허는 1년 6개월 경과 시 공개되며, 20년이 지나 특허가 소멸되면 모두가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이때 특허등록되었던 약을 복제하여 출시되는 약들을 카피약이라고 부른다. 카피약이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고 같은 기술로 만들어진 약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복제품이라는 이유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합성 감미료가 처음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이 이에 거부감을 표했다. 진짜 설탕이 아닌 하얀 가루가 단맛을 느끼는 것처럼 뇌를 속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짜라는 단어가 주는 심리적 거부감은 대상을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한다.

복제한 그림, 모작

네덜란드의 후기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것을 즐기는 작가였다. 고흐는 전업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삼촌이 운영했던 화방 일을 도왔는데, 삼촌은 사실주의 작가들의 그림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그곳에서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접했고 이후 밀레의 대표작 [씨 뿌리는 사람]를 비롯하여 다수의 그림을 모작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미술 작업을 하던 고흐가 구필화랑에서 접한 그림은 일본의 우키요에였다. 평면적이면서 대담한 구도가 특징인 우키요에는 당시 파리 인상주의 화가들을 매료했고, 당대의 많은 작가가 우키요에 스타일의 유화를 그렸다. 고흐는 우키요에 작품도 다수 모작했다. 그 외에도 고흐는 많은 작가의 그림을 모작했다.

오노레 도미에가 풍자적으로 그린 [술 마시는 네 살짜리]의 경우, 구도와 등장인물은 같지만 네 살짜리 아이가 우유를 마시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하늘이 묘사되었으며, 고흐 스타일의 색감도 입혀졌다. 모작이지만 작가의 재해석이 추가된 작품이다.

이때 고흐가 수행한 것은 복제이다. 복제품은 전통적 관점에서는 크게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 않았지만, 고흐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이 복제한 우키요에 작품들은 복제품이라기엔 상당히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복제품에 시대성과 작가 가치가 부여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결과다.

자기복제

자기복제란 생물학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구조물을 만드는 것을 뜻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자신과 같은 DNA 염기서열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문화계에서 사용되면 과거 발표했던 작품과 유사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칭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창작자를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논문의 경우 자신의 논문을 인용하더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표절로 인정될 수 있으나, 창작물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또 작가들이 시리즈물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작품 간에 서로 유사한 형식을 띠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복제는 기본적으로 원본이 존재하는 개념이지만, 원본이 없는 복제품, 즉 시뮬라크르(simulacre)가 팝아트와 함께 미술시장에 등장했다. 그리고 시뮬라크르가 더는 복제품이 아니라 원본 그 자체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팝아트의 등장과 함께 명확해졌다.

시뮬라크르, 원본 없는 복제


▎Chattering Cat - Cherry blossom #7(좌) #9(우)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대표작 [매릴린 먼로]는 복제품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명 복제품이지만 9개 이미지는 모두 다르며, 이들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 원본이고 어느 것이 복제품인지 알 수 없는 원본 없는 복제품을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어느 것이 원본인지 알 수 없기에 복제품이 원본을 대체한다는 개념이다. 복제품을 다시 복제하는 것, 그렇게 하여 또다시 복제품이 생산되는 것. 이것은 오리지날리티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철학자마다 조금씩 달랐다.

플라톤의 경우 오리지날리티는 이데아의 세계에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이데아의 복제품이며, 이를 다시 따라 그리는 그림은 복제품의 복제품인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만약 그림을 다시 복제한다면 오리지날리티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치 없는 것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철학자 들뢰즈는 생각이 달랐다. 들뢰즈는 시뮬라크르가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이전 모델이나 모델을 복제한 것과 다른, 독립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복제품에는 복제 대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역동성이 있으며, 복제를 통해 다른 의미를 창조해나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NFT 미술에서의 복제


▎앤디 워홀 [매릴린 먼로] 1967
NFT 미술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2020년 가을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분야다. 디지털 창작물을 제작하는 작가들의 경우 복제가 쉽게 이루어져 작품의 판매나 소유에 관한 주장이 애매할 때가 많았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이로써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문턱은 낮아지고 더 많은 사람이 ‘작품 구매’라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NFT 미술에서 제너레이티브 아트의 등장은 복제에 관한 미술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제너레이티브 아트는 유사한 형식의 주인공이 착용한 옷이나 복장, 혹은 배경 등이 변화하면서 다작의 작품이 발표되는 방식이다. 오픈시(OpenSea)에서 진행 중인 Chattering Cat 프로젝트의 경우 모든 요소를 수채화로 그린 후 후작업으로 요소들을 다시 그려넣는 과정을 거친다. 고양이 한 마리가 옷이나 모자를 쓰면서 적게는 5장에서 많으면 30장까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짧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작업을 하는 제너레이티브 방식도 있다. 주인공과 요소 작업을 한 후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1만 개 작품이 한번에 생산되는 방식은 NFT 제너레이티브 분야에서 일반적이다.

NFT 미술에서는 작품을 마켓에 판매하기 위해 디지털 창작물을 업로드하고 정보를 입력하는 민팅(minting), 실제 판매를 위해 가격을 기입하고 서명을 하는 리스팅(listing) 작업이 수반된다. 작품이 민팅되는 순간, 작품은 오리지날리티를 가진다. 작품이 창작되는 순간에 저작권이 만들어지듯 민팅은 NFT 미술의 오리지날리티다. 시뮬라크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블록체인 고유번호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기복제를 통해 시뮬라크르가 세상에 민팅되고, 또 그 작품은 소유로서, 수집으로서, 투자로서의 가치까지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들뢰즈가 말한 대로 복제품이 복제 대상과 다르게 새로운 의미를 가지며 각기 다른 의미를 생성해낸다는 설명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보인다.

복제가 의미를 가지는 시대

원본과 복제, 원조와 후발 주자가 더 좋음과 덜 좋음을 구분짓는 잣대가 아닌 지는 오래되었다. ‘최초’는 분명 의미 있지만 사실 맛집거리에서 원조 식당을 찾았다가 실망한 적도 적지 않다. 원본의 권리를 침해하는 복제품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복제품은 이제 또 다른 가치를 지니기 시작했다.

미술 대중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작가들에게 물었을 때, 대중이 미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이 더 많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복제는 대중화에 분명하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판화라는 복제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고, 최근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작가들 중에는 원본을 작게 출력하여 액자에 넣어 별도로 판매하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 원본 그림을 촬영한 이미지는 NFT화되어 별도의 체인으로 원본 작품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앤디 워홀이 지금의 NFT 미술시장을 본다면 박수를 쳤을 것이고, 플라톤이 본다면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할지는 이제 소비하는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203호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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