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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호 롯데온 대표 

차세대 이커머스 플랫폼을 향한 도전 

김영문 기자
롯데그룹이 절치부심하며 영입한 이가 있다. 바로 이베이코리아에서 온 나영호 롯데온 대표다. 그는 이커머스 최초의 PLCC인 스마일카드와 자체 결제 시스템인 스마일페이를 세상에 내놓은 주인공이다. 이베이코리아의 충성고객을 만들어준 1등 공신인 셈이다. 롯데온에 합류한 그는 이제 차세대 이커머스 플랫폼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롯데온에 합류한 나영호 대표는 1년간 임직원들에게 매주 먼데이 레터를 보냈다. ‘하라, 말라’ 식의 지시형 레터가 아니라 ‘쌍방 소통형’ 메일을 보내다 보니 답 메일을 보내는 직원도 꽤 있다. 그는 지금도 수직적이고 딱딱한 조직 문화를 바꾸려 ‘소통의 달인’을 자처한다. / 사진:롯데온
롯데그룹은 수년 전부터 ‘디지털전환’을 강조해왔다. 특히 그 중심에는 그룹사 차원에서 공을 들여 출범시킨 롯데그룹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ON)’이 서 있다. 온라인 사업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2018년 8월 롯데e커머스사업부를 공식 출범했으며, 2020년 4월에는 통합 플랫폼 ‘롯데온’을 선보였다. 온·오프라인에서 시너지를 내겠다며 야심 차게 통합 플랫폼을 표방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혹했다. 오픈 초반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접속 장애를 비롯해 서비스 오류가 잦았고, 이로 인해 롯데온을 이탈하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대대적으로 정비가 필요했다. 지난해 롯데는 ‘순혈주의’를 깨고 이베이코리아에서 전략사업을 맡고 있던 나영호(51) 부사장을 롯데온 수장으로 영입했다.

사실 나 대표는 1996년 롯데에 입사해 근무했던 원조 롯데 출신이다. 현대자동차와 삼성물산 등에서 일하던 그가 느닷없이 롯데그룹 계열사인 대홍기획에 입사하자 모두가 의아해했다. 지난 4월 14일 서울 잠실 롯데온 본사 사무실에 만난 그는 “당시는 미국에서 아마존이 막 태동할 때였고, 한국에는 이커머스 플레이어가 없었다”며 “이커머스, 아니 최소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 일하고 싶었다. 한국에는 데이콤과 대홍기획이 인터넷 사업을 준비 중이었고, 대홍기획이 이커머스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롯데닷컴의 창립 멤버였던 셈이다. 이후 PDA 전문기업인 셀빅으로 자리를 옮겨 2004년까지 일하다 LG텔레콤을 거쳐 2007년 G마켓 신사업팀에 둥지를 틀었다. 나 대표는 G마켓이 이베이코리아에 인수된 뒤 이베이코리아에서 전략사업본부장, 스마일페이 사업총괄 등을 맡았다. 그는 간편결제와 모바일 e쿠폰 사업 등을 추진하며 온라인쇼핑몰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화려한 경력 말고도 그가 주목받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롯데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나섰던 시기와 그의 영입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결국 신세계-네이버 연합군에게 밀리기는 했지만, 롯데그룹이 유통사업의 디지털 혁신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수는 불발됐지만 나 대표의 역할은 한층 더 뚜렷해졌다. 그렇게 그가 롯데의 이커머스 사업을 혁신하는 과제가 안고 달려온 지 1년 롯데온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취임 후 어떤 일부터 했나.

‘소통의 달인’이 되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론 시장을 분석하거나 재무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사업성을 검토하는 게 시급한 과제였다. 하지만 롯데온이라는 조직을 이해하고, 조직원들과 소통해서 어떤 방향에서 조직의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내가 이 회사에 온다고 여러 가지 얘기가 돈 상태였다. 그것도 하나의 방향성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커머스’ 자체보다 ‘디지털 DNA’를 갖자며 좀 더 거창한 취지를 내세웠다.

어떤 방법으로 소통했나.

출근 첫날 전 사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기서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내가 온 이유였다. 그 메일에도 “롯데그룹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된 이유고 그룹에서 요청한 미션”이라고 썼다. 당장 구미가 당기는 비즈니스 모델을 짜내기보다 어떻게 하면 전통 유통업에 디지털을 이식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했다. 그게 롯데온의 목표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출근 첫날을 포함해 매주 ‘먼데이 레터’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보냈다. 지금까지 53회 정도 보냈고 이걸 출력해 묶어보니 두툼한 책 한 권이 됐다.(웃음) 내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직원과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53번 보낸 메일 중 특별히 기억나는 내용이 있나.

특정 메일 내용보다는 메일을 보내는 동안 서서히 달라진 직원들의 변화가 기억에 남는다. 소통을 강요(?)하니 점점 다양한 의견과 고민, 민원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점심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대부분 고층 빌딩이 그렇듯 12시쯤에는 엘리베이터 타는 게 고역이다. 되레 ‘난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고, ‘그냥 직원끼리 정한 관행 같은 룰 때문’이라는 답을 받았다. 다시 난 ‘대표가 바꿀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난 점심시간을 늘리거나 시간대를 바꾸는 결정보다 그냥 ‘각자 일정에 맞춰 자율적으로 하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직원을 어른으로 대하는 것’, 이는 경직된 조직이 변하는 첫걸음이다.

롯데 사내 메신저 대신 개발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슬랙을 쓴다고 들었다.

슬랙으로 바꾸고 전 직원이 내 일정을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이베이코리아에 있을 때 이제 막 슬랙으로 업무 툴을 전환하는 시기였는데, 여기 와서 대대적으로 바꿔버렸다. 메일은 보내기 전에 뭔가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슬랙은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서 보내면 그만이다. 우리가 얼마나 슬랙을 잘 쓰는지 슬랙코리아에서 롯데온을 방문한 적도 있다. 전 세계 15만 개 회사가 쓰고 있는데, 특정 기능 면에서 롯데온이 세계 1위라고 들었다. 이제 롯데온에서는 방 앞에 서서 결재를 기다리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롯데온은 어떤 곳이었나.

온라인, 모바일앱을 내세웠는데, 개발자 조직이 빈약했다. 모바일앱 마켓을 운영한다는 것은 오프라인 못지않게 소비자와 맞닿아 있고, 그들의 니즈와 요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혹여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이런 요구를 구체화하고 단계별로 반영해 앱을 바로바로 개선해야 하기에 개발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취임 후 6개월이 지나 롯데온을 개발자 중심으로 개편한 이유다. 이커머스에서 결제 오류, 오배송 등은 치명적인데, 실제 시스템 불안정 사례가 좀 있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시스템 가동률 100%를 달성했다. 월 시스템 가동률 100%는 한 달 동안 접속 장애가 한 건도 없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바꿨나.

조직명부터 바꾸고 필요하면 조직도 신설했다. 우선 검색·추천 부문으로 불렀던 명칭을 파인딩·데이터 부문으로 바꿔 개발자가 좀 더 익숙하게 느끼도록 했다. PD(Product Developer, 제품개발자) 1·2실과 데이터인텔리전스(정보분석)실, 테크(기술)실도 신설해 개발자가 일하는 영역을 넓혔다. 실장으로는 차·부장급을 새로 임명해 당장 업무 추진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그간 롯데온이 ‘사소한 것까지 개발 외주를 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발자 조직 구축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개발자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애자일 (개발) 문화’를 도입하는 것 같다.

그런 셈이다. 핵심 주축인 개발 조직을 강화하다 보니 조직 전반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애자일’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지 않고, 그런 문화가 왜 필요한지를 설득했다. 잘 알려진 아마존의 경영방식인 ‘투 피자 팀(two pizza team)’이 대표적인 예다. 피자 두 판을 먹을 수 있는 인원으로 팀을 꾸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하루라도 빨리 의사결정을 하자는 취지에서 붙은 이름이다. 아마존이 거대 조직임에도 경쟁력 있는 이유는 내부에서 작은 팀들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했다. 더불어 부서 간 협력은 더 강화해야 했다. 지난해부터 핵심성과지표(KPI)를 없애고, 목표와 핵심 결과를 중시하는 OKR을 도입했다. OKR은 조직의 목표(Objective)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결과(Key Results)를 설정해서 성과를 관리하는 기법으로, 조직과 개인의 질적 성장에 더 방점을 둔다.

조직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네이티브 플랫폼 조직이 아니라 기존 유통업계 문화가 짙게 깔려 있기에 몇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경영 이론도 결국 사람이 굴리는 조직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면 문헌상 이론일 뿐이다. 전통 제조·유통기업이 변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파격적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피상적인 변화에 그치기 쉽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먼데이 레터를 쓰고,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이 부서 저 부서 다니며 참견하듯 회의에 들어갔다. 문화를 바꾸는 일은 그만큼 복잡하고 번거롭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롯데온의 조직 변화 노력이 ‘AWS서밋코리아2022’에서 ‘리더십 전략’ 사례로 소개된다.

그간 전통 유통기업이 앱을 내놔도 네이버, 쿠팡, 이베이 등 4세대 이커머스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이유가 있다. 기존 전통 유통업체들은 막강한 오프라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너무 공급자 중심에 서 있다. 디지털화를 꾀하고 플랫폼을 도입하는 전사적인 노력을 해도 ‘오프라인’을 그대로 옮겨오는 데 집중한다. 소비자들이 전통 유통업계에서 티몬, 위메프 그보다 한 단계 진화한 네이버, 쿠팡, 이베이코리아가 빠르게 옮겨가는 것은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잘 캐치하고 고민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 중심 플랫폼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를 더 확신하게 된 계기도 있었다.

“전통 비즈니스 재해석해야”


▎ 사진:롯데온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

카카오뱅크였다. 이베이코리아는 2016년 카카오뱅크 설립 당시부터 출자했고, 거의 매해 추가 출자하며 카카오뱅크의 성장을 도왔다. 덕분에 주주로서 실사도 가볼 수 있었고, 카카오뱅크 내부에서 은행업과 플랫폼 출신 임직원들이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카카오뱅크가 뛰어든 은행업이야말로 완벽하게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었기에 어떻게 진출할지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았다. 카카오뱅크 내부에서는 은행업보다 플랫폼에 더 중심을 두는 분위기였다. 기존 은행 앱처럼 예금·대출·카드창구 등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서비스를 고민했다. 비록 케이뱅크보다 늦게 출범했지만, 카카오뱅크 앱을 쓰는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다. 전통 비즈니스를 재해석하는 노력이 다시 한번 중요하다고 생각한 계기였다.

롯데온도 그랬나.

롯데온도 마찬가지였다. 소비자들이 기존 은행 앱보다 카카오뱅크를 더 많이 쓰는 이유는 소비자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다. 플랫폼은 언제나 양방향으로 열려 있다. 공급과 수요는 일회성으로 주고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수시로 반응을 주고받아야 데이터가 축적된다. 서비스 경험이 계속해서 쌓이는 에코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아마존이 ‘고객 중심 사고’를 기업 철학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소비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이해했다. 본인이 바라는 롯데온은 어떤 모습인가.

하루하루 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답은 없다. 하지만 4세대 이커머스(네이버, 쿠팡, 이베이, 11번가 등)에서도 소비자 불만은 나온다. ‘선물하기’로 제품을 보냈는데, 플랫폼에서 품절을 인지하지 못해 환불 처리되거나 립스틱을 살 때도 직접 볼 때와 색감이 다르거나 발라볼 수 없는 건 온라인이 지닌 한계다. 이런 불편 사항들을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한 세대 진화한 이커머스가 탄생한다. 모두 소비자 경험을 파고드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롯데온이 해야 할 일들이다.

최근 롯데온이 문을 연 프리미엄 뷰티 전문관 ‘온앤더뷰티’가 화제다.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브랜드사도 우리 고객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전용관이다. 이곳에서는 80여 개 명품 브랜드와 SNS에서 인기 있는 제품 등 롯데가 그간 모든 유통망에서 쌓은 데이터를 활용해 엄선한 3000여 개 브랜드 제품을 취급한다. 늘 마케팅을 고민하는 브랜드에 우리가 큰 힘이 되기로 한 것이다. 롯데온은 브랜드별로 각종 영상 콘텐트를 내보내 마케팅하도록 도왔고, 브랜드사들은 롯데온에서만 취급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별해 제안했다. 롯데온은 오프라인에서 기분 좋게 받았던 서비스 경험도 되살렸다. ‘선물하기’를 선택하면 백화점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5세대 이커머스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지금 가장 주목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인공지능(AI)이다. 분명 이커머스는 한 차례 또 진화할 거다. 조직을 살펴보고, 1차 고객인 브랜드사와 소통했다면 이제는 시장의 미래를 봐야 한다. ‘온앤더뷰티’ 전용관은 롯데온, 브랜사들과 소비자를 더 끈끈하게 엮는 거대한 실험장이다. 소비자의 욕구는 주문과 결제를 통해 데이터로 남고, 오프라인 제품은 배송을 통해 고객의 손에 쥐어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수만, 수십만 회 반복하고 학습해 더 나은 전략을 이끌어내는 일은 AI가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발자 출신은 아니지만. 국내 1세대 이커머스 업체를 거치며 발전사를 온몸으로 체득해왔다. 예전에는 웹사이트에서 화장품 주문이 들어와 결제 3만9000원이 찍히면, 고객이 입력한 카드 정보를 보고 내 자리에서 카드 단말기에 직접 입력해 전표를 끊어 배송해줬다. 그게 20년 전 얘기다. 하지만 지금도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앱을 이용하려면 그 뒤에서 수많은 개발자와 전략가가 밤을 새우며 고민해야 한다. 기술만 정신없이 좇다 보니 이제 기술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등장했다. 스토리텔링이다. AI와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쥐는 자가 5세대 이커머스 시장을 열 거라 확신한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205호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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