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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30) 태산에 어린 영웅호걸의 자취 

 


▎과거 전쟁에서 패배한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중국갑오전쟁박물관’(갑오전쟁= 청일전쟁)은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는 산 교육장이다. 청나라 해군 제독이 망원경으로 동해를 경계하는 듯한 모습의 건물 외양이 특이하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외국 공항은 어디일까? 우리나라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의 거리가 444㎞인데, 이보다 더 가까운 곳에 외국 공항이 있다는 게 참으로 흥미롭다. 중국 산둥성(山東省) 산둥반도의 동쪽 끝에 자리한 웨이하이(威海)이다. 인천공항으로부터 거리가 400㎞로 제주도보다 가깝다.

중국 산둥성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관계를 맺어온 땅이다. 공자와 맹자·제갈량·왕희지가 이곳에서 태어났고, 중국 사람들이 예부터 신령한 산으로 여기는 태산(泰山)이 있는 곳도 바로 산둥성이다. 공자와 맹자는 2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가치관 형성과 정신문화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12년 남짓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유교와 도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런 의미를 담아 종종 산둥성 지방을 찾는다.

#1. 중국 대륙 동쪽 끝단에 위치해 해가 가장 일찍 뜬다는 웨이하이를 방문했을 때 무척 특이한 박물관 하나를 만났다. 전쟁에 관한 박물관을 찾으면 으레 승리에 대한 기록과 자랑스러운 내용을 전시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은 처절하게 패배한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한 박물관이다. 우리가 ‘청일전쟁(淸日戰爭)’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갑오년에 일어났다고 ‘갑오전쟁’이라고 부르는 ‘중국갑오전쟁박물관(Museum of the Sino-Japanese War, 1894~1895)’이다.

웨이하이 부두에서 배로 이동해 5㎞ 떨어진, 당시 격전지였던 류궁다오(劉公島)에 도착하면 커다란 배 모양으로 지어진 박물관 건물이 나타난다. 갑판 위 마스터 부분에 해당하는 기둥은 청나라 해군 제독이 서서 망원경으로 동해를 경계하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멀리서 보아도 매우 특이한 모습의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제 현장에는 많은 사람과 아이들이 박물관을 찾고 있었는데, 과거 전쟁에서 패배한 교훈을 잊지 않게 하여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시실 벽 한쪽에는 한자로 ‘1894~1895 갑오전쟁사실전’이라고 크게 표기되어 있고, 영어로는 ‘갑오전쟁의 국가적 위기 역사: THE NATIONAL CRISIS HISTORY OF THE SINO-JAPANESE WAR OF 1894-1895’라고 써놓았다.

청일전쟁은 청나라를 상대로 대해 일본제국이 일으킨 전쟁이다.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갑오전쟁(甲午戰爭), 일본에서는 일청전쟁, 서양에서는 제1차 중일전쟁(First Sino-Japanese War)이라고 부른다. 청나라는 격전지였던 웨이하이 전투에서 거대한 전함과 막강한 육지의 포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패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전쟁에 패배한 그 자리에 박물관을 크게 지어 후세들이 그 역사를 잊지 않도록 경각심을 고취하고 있다. 전시실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설명 내용들이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한국어로도 함께 표기되어 있고 일본어는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근대 해안 방어 구축’ 전시실에 들르니, “아편전쟁 이래 서양 열강들은 강대한 무력으로 여러 차례 중국을 침입했다. 이때야 청나라 정부는 비로소 근대 해안 방어 체계 구축의 긴박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외국과 교섭해 선진적인 군함을 제조·구입하고 근대 해군도 설립함으로써 해안 방어 체계와 해상 방위 능력을 강화했다”는 한글 설명이 있었다.

우리는 어떨까. 120여 년 전 구한말과 청나라·일본제국의 상황을 지금의 국제적인 환경에 대입해 유비무환 정신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설계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갑오전쟁박물관은 역사의 아픔과 실패를 오늘의 교훈으로 되살릴 수 있는 휼륭한 사료다.

#2. 산둥성에 있는 취푸(曲阜)는 고대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이자 교육자·사상가·정치인이었으며, 유교사상의 시조인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년)가 태어난 곳이다. 취푸 중심지에 공자를 모신 사당인 공묘(孔廟)가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자금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역사적 건축군이다. 드넓은 부지에 나무와 돌출된 지붕의 누각으로 조성되어 있고 중심에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며 예물을 올리는 장소로, 가로 54m, 세로 34m, 높이는 32m에 이른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민 28개 기둥이 받치고 있고, 궁전 정면의 10개 기둥은 용이 휘감고 있는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역대 황제들도 자주 방문했다는 대성전 앞 계단 중앙에는 용과 구름 등이 새겨진 답도가 설치되어 있다. 대성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패방(牌坊: 문짝이 없는 대문 모양의 중국 특유의 건축물. 궁전, 능(陵), 절의 앞면과 도시의 십자로에 장식이나 기념으로 세운다)과 문을 통과해야 한다. 패방과 문에는 저마다 깊은 의미를 담은 패방명과 현판이 조성돼 있다.

하나하나의 귀절마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황제들이 직접 쓴 글씨도 찾아볼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료에서 글귀를 찾아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마무리 학습이 되곤 한다.

#3. 산둥성에서 가장 높은 태산(泰山, 타이산)은 중국의 다섯 명산인 오악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산으로, 중국인들이 예부터 신령한 곳으로 여긴다. 진시황제를 비롯한 여러 황제가 천하를 평정한 후 하늘과 땅에 왕의 즉위를 고하고, 천하태평함에 감사하는 봉선(封禪) 의식을 거행한 곳이 바로 태산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줄지어 태산에 올라 소원을 빌고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터득하곤 한다.

정상에 올라보니 여러 사람이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내는 사당 앞에 엄청나게 많은 열쇠고리가 묶여 있다. 아마도 젊은이들이 미래를 약속하며 변치 말자고 소원을 빌면서 열쇠를 연결해 잠가놓았으리라. 거대한 향을 피우면서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은 자못 신령스러워 보인다. 특히 불편한 몸에도 그 높은 계단을 올라가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옛날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태산에 올라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라고 했다. “태산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게 보이는구나”라는 말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 인생을 돌아보면 작은 것에 연연하느라 되레 큰 것은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기업을 경영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잘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집중하지는 않았는지, 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더라도 대인보다는 소인들이 득세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태산을 찾은 이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공자소천하우(孔子小天下虞)’라는 문구가 태산 정상 바위 위에 비석으로 새겨져 서 있다. 수많은 방문객이 그 구절을 보며 나름의 의미를 찾고 갈 거라 생각했다. 태산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우리나라에도 ‘티끌 모아 태산’, ‘갈수록 태산’, ‘걱정이 태산 같다’ 등 태산과 관련된 말이 많다는 사실이 내심 재미있다.

#4. 산둥성에 있는 린이(臨沂)시도 자주 찾는 곳이다. 어릴 때 읽었던 소설 『삼국지』덕분에 이름이 익숙한 제갈량(諸葛亮, 181~234년)이 태어난 곳이다. 삼국시대를 풍미한 촉나라 전략가이자 정치가다. 동진의 서예가이자 시인인 왕희지(王羲之, 303~361년)의 고향도 이곳이다. 산둥성 동남부에 있는 린이시는 칭다오에서 약 4시간을 달려서 도착했다. 린이시의 역사는 2400년 정도 되었고, 1970년대 들어선 손무의 『손자병법』도 이곳에서 발견됐다.

린이시로 가는 도중에 중국 역사에서 걸출한 전략가로 가장 이름 높은 제갈량의 기념관을 찾았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고, 제갈량 사당도 그리 크진 않은 규모다. 하지만 그의 생애와 의미를 담아 정성껏 모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당 안에 적벽대전을 글과 그림으로 묘사해놓은 것이 흥미로웠다. 강물 위에 전함이 있고 수많은 화살이 쏟아져 오고 화염이 불타는 전장을 묘사한 서화다.

제갈량 사당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한 노인이 한국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니 “왜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해서 주변 나라를 어렵게 만드느냐”고 질문하며, 남북한이 좀 평화롭게 살아서 신경 안 쓰고 지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뉴스가 중국 시골마을에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니 남북한 문제에 중국인들이 우리만큼이나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다.


▎세계에서 제일 값비싼 건물인 화성장취안호텔 (盛江泉城大酒店). 로비 바닥, 벽, 기둥, 계단, 장식품 할 것 없이 모두 화려한 옥으로 꾸몄다.
린이시에 도착해 세계에서 제일 비싼(?) 건물이라는 화성장취안호텔( 盛江泉城大酒店, Huasheng Jiangquan Hotel & Town)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무척이나 넓은 호텔 로비의 바닥, 벽, 기둥, 계단, 장식품 등이 모두 값비싼 옥으로 꾸며져 있다. 호텔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나 역시 이 특이한 호텔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자동차로 수백 킬로미터를 고생스레 달려서 린이시까지 왔다. 이런 호텔을 지금 같은 시대에 지어내는 중국인의 생각이 특이하다고 느껴졌다. 특별한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옥돌에서 건강한 기를 받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린이 시내에서 삼륜차 택시를 타고 켄터키치킨에 다녀왔던 경험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5.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서예가로 꼽히는 왕희지의 고거문화원도 찾았다. 넓은 정원을 산책하며 그 유명한 난정서(蘭亭序)에 얽힌 설화를 들었다.


▎중국 역사상 최고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고거 정원에 그 유명한 난정서(蘭亭序)를 새겨 놓았다.
“왕희지가 동진을 대표하는 명사들을 난정(蘭亭)에 초청해서 연회를 열었다. 술잔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동안 시(詩)를 짓고,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는 연회였다. 이날 지은 시를 모아서 왕희지가 서문(序文)을 썼는데, 이 서문이 그 유명한 <난정서(蘭亭序)>이다. 왕희지의 글을 너무나 좋아한 당 태종은 어렵게 손에 넣은 난정서를 평생 곁에 소장하다가 운명할 때 자신과 함께 순장했다. 이렇게 난정서의 원본은 묻혀버렸고 원본을 베껴 쓴 모본만이 남아 있다.” 왕희지의 고거에 거대한 검은색 돌판을 세워 그 위에 난정서를 자랑스럽게 새겨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6.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낭아대는 진시황제의 불로초 전설이 어린 곳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진나라 전역을 순시하다가 과거 제나라 영토였던 산둥성 바닷가에 있는 작은 언덕인 낭아대를 찾았다. 여기서 낭아대 근처 마을에 사는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야심이 컸던 서복은 출세를 위해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며 진시황제에게 고해 그로부터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와 동남동녀 수천 명을 하사받고는 불로초를 찾아 떠났다. 진시황제가 신하들과 궁녀를 거느리고 서 있는 모습과 서복이 허리를 굽혀서 예를 올리는 장면이 재미있게 조각공원 안에 조성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서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산과 제주도를 거쳐 일본까지 가서 문물을 전하며 정착했다는 설이 있을 뿐이다.


▎진시황제가 낭아대에서 신하와 궁녀를 거느리고 서복에게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명하는 모습.
유교의 본산이며 공자가 태어난 산둥성을 여행하는 동안 『논어(論語)』의 안연(顔淵) 편 구절이 생각났다. 이강자가 공자께 정사를 묻기를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서 도가 있는 데로 나아가게 하면 어떻습니까” 하자, 공자께서 답하셨다.

“그대가 정사를 함에 어찌 죽임을 쓰겠는가? 그대가 선하고자 하면 백성들이 선해질 것이니,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에 바람이 가해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하여 以就有道인댄 何如하니잇고 孔子對曰 子爲政에 焉用殺이리오 子欲善이면 而民이 善矣리니 君子之德은 風이요 小人之德은 草라 草上(尙)之風이면 必偃하나니라).”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중국·일본·러시아 같은 강대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특히 14억 명이 넘는 인구와 거대한 국토를 지닌 중국에 대한 전략적 이해와 연구가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수많은 리딩그룹 인사들과 젊은 청년, 학생들이 광대한 중국 지역을 많이 여행하며 깊은 이해와 식견을 쌓아갈 필요가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직접 체험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듣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이기 때문이다. 직접 보면 아이디어와 지혜, 전략과 대안이 솟아오를 것이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206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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