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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34) 탈세계화 시대의 세계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2017년 트럼프가 집권하자마자 관세 폭탄을 퍼부으며 미중 패권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미국은 2018년부터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망을 막아 화웨이의 부상을 가로막더니, 2022년부터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틀어막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전쟁의 폐허에서 미소 냉전체제, 세계화 시대, 중국의 부상 등과 더불어 세계 최빈국에서 1인당 GDP 3만 달러가 넘는 세계 6위의 수출국이자 제조 강국으로 떠올랐다. 우리가 열심히 해온 결과이지만, 운도 좋았다. 미국, 일본에서 들여온 기술과 자본, 또 냉전시대에 친미 국가에 개방된 시장 덕분에 고도성장을 했고 오늘날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미국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성장하고 또 늙어가고 있다. 해방 이후 영어는 권력이 되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손쉽게 출세 가도를 달렸고, 기독교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번성했다.

봄에 보리가 수확되기 전까지 보릿고개라는 식량난을 겪으면서 굶주렸던 남한 사람들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아시아 최고의 콘텐트 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남한에 은혜를 베풀기 위해 해방시켜주고, 식량 원조를 하고, 자국민 수만 명을 희생해가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하고, 미국 시장을 활짝 열어준 게 아니다. 미국의 냉혹한 세계 전략에 남한이 공산주의와 맞설 자본주의의 선봉장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한의 리더들과 국민은 미국의 세계 전략과 체제를 철저히 따르면서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미국을 천조국이라 부르기까지 한다. 경제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뿐만 아니라 소프트 파워까지 강한 미국에 대해 대다수의 한국인이 친미적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다.

이제 판이 크게 바뀌었고, 계속 바뀌고 있다. 패권국 미국이 중국의 굴기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적자’로 달러를 마구 찍어내다 보니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를 도와줬던 중국의 저임금 노동집약적 경제는 미국 경제의 80% 규모까지 쫓아오면서 첨단산업에서조차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의 미국 수출 비중은 10% 내외에 불과하고 중국, 홍콩에 대한 수출 비중은 30%에 가깝다. 미국과 중국의 수십 년, 아니 백년 패권 전쟁이 시작되었다. 세계 공급망의 지형도 크게 바뀌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태동된 신냉전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계에서 신냉전 시대와 코로나로 약한 고리들이 하나씩 끊어지면서

공급망 대란이 일어났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핵심 공급망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면서, 중국의 공급망을 베트남, 인도 등으로 빼내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의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을 밀어부치면서 반도체, 2차 전지,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등 한국의 기간산업을 바짝 따라잡고 있다. 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서 미중 간 갈등과 경쟁이 가장 첨예하다.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하면서 첨단 반도체 판매를 중지하자 세계 스마트폰 업계 순위에서 화웨이가 사라졌다. EUV 스캐너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면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이 향후 몇십 년간 미국을 따라잡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미중 패권 전쟁이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산업에서 중국의 한국 추월을 늦춰주고 있기도 하다.

다극화되는 세상, 개방과 포용으로


▎22개국 참전국 대사 및 무관들이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참전비에 헌화하고 있다. 한국은 평화를 되찾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미중 패권 경쟁은 금방 끝날 전쟁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간 미중 간에는 치열한 무역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은 쇠약해지고 있고, 중국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국 지위는 유지하겠지만,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20년 전의 중국을 보고 지금의 중국을 상상하지 못했듯이 20년 후의 인도는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2050년 이후에 인도가 미국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란 예측도 있었다. 인도와 신흥국의 부상은 미국과 중국의 양강체제를 넘어 한층 더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강요할 것이다. 미국, 중국, 인도 등 패권국가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전 세계 국가들은 각자도생을 하기 시작했다. 자국의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인류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제하면서 세계화 시대의 자유로운 교역은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첨단산업에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곤란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실크로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절대적인 패권국가들이 출현하지 않았을 때 문명·지역 간 교류가 오히려 더욱 활성화되었다. 무역로를 개척하려다 전쟁을 하고 결과적으로 광대한 유라시아 땅을 정복한 몽골제국은 제국을 건설한 후에도 유라시아 대륙의 무역과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13세기 몽골 유목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에 만든 세계체제는 지역 간 교류를 통제하려는 어떤 패권국가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16세기 유럽의 근대 세계체제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즉, 국가 또는 지역 간의 질서가 위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활발한 무역과 문명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후 중앙아시아와 중동에 티무르 제국, 페르시아 제국, 오스만투르크 제국 같은 패권국가들이 등장하면서 육상 실크로드 무역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예를 들어 패권국이 된 페르시아와 티무르 제국이 유럽 기독교 국가들에 압박을 가하자 실크로드 무역은 크게 위축됐다. 1520년 티무르 제국이 멸망하자 중앙아시아에는 부하라, 히바, 코칸드 칸국이 세워지며 3국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자 실크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냉전시대에 한국전쟁, 중소 분쟁,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면서 유라시아 대륙은 상호 소통이 엄격히 통제되는, 얼어붙은 대륙으로 변모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실크로드도 패권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개방과 폐쇄를 반복했고, 이에 따라 유라시아 민족과 국가들은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쳤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열린 세상과 닫힌 세상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30년 뒤 전 세계 패권 구도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전 세계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패권국을 중심으로 갈리는 현상이 강해지고, 우리는 더욱 다원화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한국, 유럽, 일본의 비중은 지금보다 줄어들고,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라질 같은 신흥 인구 대국들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 탈세계화와 신냉전 시대라고 하지만, 몽골제국,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신자유주의 시대에 촘촘하게 엮어놓은 세계화의 유산 없이는 세상은 유지되기 힘들다.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분열과 통합이, 탈세계화와 세계화가 미묘하게 뒤엉키는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는 복잡미묘한 상황이지만, 먼 미래를 내다보고 초강대국들 사이에서 균형 잡힌 포지셔닝을 해야 한다. 다원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미국의 세계관이나 중국의 세계관이 아닌, 한국의 독자적·자주적 세계관을 갖춰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조선후기 아편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한 청나라를 보면서도 세계적인 조류를 애써 외면하고 해금정책을 고수하고, 소중화사상에 매몰되어 일본의 식민지로 몰락한 전철을 다시 밟으면 안 된다.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되고 불과 30년 뒤,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척화파는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를 오랑캐라고 낙인찍고,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하다가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자초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게임의 법칙이 계속 바뀌어왔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구시대적인 혐중, 친중, 반일, 친미, 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이다. 한국인의 세계관은 아직도 냉전시대, 세계화 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영국, 중국, 일본과 같이 제국을 운영해본 경험은 없어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다. 장사꾼의 눈으로 보면 한국인의 세계관은 자기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나치게 편향적이다.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다. 한국전쟁 이후 대외의존도를 높이면서 자본주의 진영에서 경제를 키워왔고, 신자유주의의 시대에도 개방적 무역으로 수혜를 입었다. 우리나라도 인구절벽으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인구와 자원이 부족한 작은 땅덩어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개방과 포용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이야기되는 미래의 신성장사업에서 한국은 비교적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더 치열해지고, 가속화되는 국가 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강하게 유지하는 것뿐이다.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은 출산율이 높은 신흥국들이 도약하면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한반도에 사는 외국인의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 아니, 늘어나야만 한다.

문을 활짝 열고 이민을 받아들이는 방법만이 인구절벽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 개방과 포용의 정신 없이는 성공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국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2030년 이후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성장률이 낮은 나라가 될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고 싶은, 살고 싶은 나라가 되고 있다. 아시아의 수많은 젊은이가 한국에 와서 살고 싶어 한다. 고리타분한 냉전시대의 세계관은 과감히 버리고, 유라시아 동쪽 끝의 섬나라 아닌 섬나라 남한은 개방과 포용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탈세계화 시대에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세계화를 해야 한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303호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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