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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일] 김일겸 무늬랩스 대표 

‘선(先)취업- 후(後) 의미부여’ 시대의 종언 

노유선 기자
경영 컨설팅업체 무늬랩스의 김일겸 대표는 디지털 기술과 인간 중심 조직문화의 결합을 추구한다. 김 대표는 “최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구성원의 경험을 케어하고 휴먼 터치를 강화하는 기업이 늘었다”며 “일에 대한 관점이 다양화되면서 구성원 개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영방식을 선호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령화 시대에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시각보다 일과 삶을 통합하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 일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에요. 물론 일이 삶의 전부를 차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적정 수준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일이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경영전략 컨설팅업체 무늬랩스의 김일겸 대표(50)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추구하는 문화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워라밸 문화는 일과 삶을 대립 구도로 보는데 이는 적절치 않다”며 “일과 삶을 상생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두 가지가 같은 방향을 향해가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에서 산업공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김 대표는 커니코리아, Booz & Company, IBM코리아 등에서 활약한 베테랑 컨설턴트다. 2019년 ‘디지털 기술에 휴머니즘을 불어넣겠다’는 사명하에 무늬랩스를 설립해 국내 유수 기업들이 디지털전환 시대에 걸맞은, 인간 중심의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김 대표에게 일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업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구성원의 경험을 케어하는 조직

일과 삶의 방향이 같을 수 있는가.

인간은 일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달성해낸다. 이것이 바로 일의 본질적 측면이다. 다만, 일과 삶의 방향이 같으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터나 일상에서 모든 경험이 가치관에 걸맞게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다. 게다가 MZ세대의 등장으로 가치의 스펙트럼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개인적인 만족, 공동체의 조화, 환경의 지속가능성 등 가치의 우선순위는 천차만별이다.

컨설턴트로서 일에 대한 관점 변화를 실감하는가.

그렇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동안 일의 목적이 경제적인 욕구나 심리적인 이득에 맹목적으로 치우쳐 있었다면,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일을 하면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끼친다거나 스스로를 즐겁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한 만큼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다.

수많은 사람이 상호작용을 하는 일터에서 다양성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소위 ‘꼰대’에게는 공감과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인식이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기업 내에 구성원과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체계적으로 구축돼 있어야 한다. 형식적인 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구성원들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세션을 갖는 등 기업 내 사람 중심의 접근이 강조되는 추세다. ‘인사 관리’나 ‘휴먼 리소스 최적화’라는 용어보다 ‘휴먼 터치’, ‘경험 케어’라는 말이 선호되고 있다.

‘구성원의 경험 케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기업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한 후 고객 피드백을 예의 주시하듯이, 구성원의 내면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기업에는 구성원도 고객이나 다름없다. 구성원에 대해 단편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직접 경청하고 페인포인트(pain point·고충)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최근 경영컨설팅을 하면서 많은 기업이 ‘구성원 경험’을 가장 큰 화두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입사부터 교육, 승진, 퇴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구성원 경험 여정’으로 규정하는 기업이 늘었다.

억지스러운 의미 부여는 끝났다

하이브리드 워크 추세에서 휴먼 터치가 가능할까.

휴먼 터치와 경험 케어에서 핵심은 진정성 있는 소통이다. 구성원이 일터에서 행복하려면 리더와 구성원 간의 소통과 구성원 간의 소통 모두가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관계의 비대면화가 강화하면서 대면 소통의 빈도는 낮아졌다. 기술 변화에 적응하면서 소통의 퀄리티도 놓치지 않으려면 디지털 협업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협업과 소통의 비효율성을 낮추고 업무 환경을 개선한다면 구성원의 삶의 질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MZ세대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MZ세대 관련 서베이를 보면 이들은 일을 하면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며,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찾는 데 몰입한다. 돈을 벌면서 즐거움도 느끼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단 취업부터 하고 일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이제는 먼저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노력한다. 또 조직생활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중심이 돼서 원하는 방식대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이제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업무 방식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MZ세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한국 사회가 효율성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AI 기술의 등장으로 인간의 빠른 업무 처리가 각광받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AI는 급속도로 업무 현장에 녹아들고 있다. 기초적인 자료 조사와 리포트 생성, 초안 작업 등은 AI의 몫이다. AI를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업무 환경에서 인간의 역할은 문제해결 능력에 달려 있다. 인간은 당면한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AI 아웃풋의 적정성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역량 강화 교육이 기업 내에서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 사회의 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필수적인 리더의 역할은.

리더는 기업·조직의 목표와 구성원이 수행 중인 업무의 목표 간 연관성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조직의 목표와 업무 간 연관관계를 찾지 못한 구성원은 일하는 의미를 잃은 채 좌절하기 쉽다. 그러려면 단순한 업무 지시를 지양하고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일의 맥락을 구성원과 함께 상의해야 한다. 소통은 공유로 이어진다. 조직의 목적과 비전을 공유할 때 구성원은 자신이 ‘이용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또 리더는 구성원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구성원마다 동기부여 요인이 다르지 않나. 자율성을 원하는지, 일의 숙련도를 높이고자 하는지, 구성원 간의 관계성을 중요시하는지 등 각 구성원의 동기부여 요인을 파악해야 한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307호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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