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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일]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 부문장(부사장)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파이프라인 

노유선 기자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 부문장은 2013년부터 일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을 소셜미디어에 꾸준히 연재해왔다. 300개가 넘는 게시 글에는 ‘좋아요’가 1000여 개씩 달린다. 그는 “일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해주는 훌륭한 수단이자 풍요로운 인생을 구성하는 파이프라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 부문장(부사장·58)이 소셜미디어에 처음 글을 남긴 건 2010년 무렵이었다. 당시 SK그룹 보안업체 SK인포섹(현 SK쉴더스) 대표였던 그는 ‘IT업체 CEO가 소셜미디어를 모르면 어떡하냐’는 주변의 질타에 일과 직장 생활, 리더십 등에 대한 기록을 트위터에 남기기 시작했다. 2013년 6월부터는 페이스북을 메모장 삼아 평일 퇴근 이후나 주말에 여러 경험담과 독후감을 적었다.

2019년까지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하 코로나) 즈음 그의 통찰을 공유하는 팔로워가 점차 늘어나자 신 부문장은 그동안 누적된 글을 모아 『일의 격』과 『거인의 리더십』등을 출간했다. 그는 이를 “축적과 발산”이라고 말했다.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평균 1000여 개의 ‘좋아요’가 따른다. 지난해 11월에 올린 [홀로서기 역량에 관하여]라는 게시물은 ‘좋아요’ 3200여 개를 받았고, 550개가 넘는 공유로 이어졌다.

신 부문장의 글에 대한 많은 관심은 그만큼 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그는 “최근 3년간 한국은 그 어느 때도 겪어본 적 없는 급격한 변화에 직면했다”며 “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혼재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단순명료하다. 혼란의 시기에도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지난 6월 9일 서울 KT송파타워에서 만난 신부문장에게 소셜미디어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물었다.

worker가 아니라 player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크게 세 가지 흐름이 겹쳐버렸다. 첫째, 주 52시간 근무제나 김영란법 도입 등으로 근무 환경과 조건이 달라졌다. 둘째,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근무 필요성이 커지면서 디지털전환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10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셋째, 기존세대와 구분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MZ세대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갑작스런 가치의 뒤섞임으로 일터가 복잡해지면서 기업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일에 대한 관점과 직장이라는 개념이 변곡점에 놓여 있다.

일에 대한 관점과 직장 개념의 변화가 가시화됐다고 보는가.

원격근무 덕분에 기업과 구성원의 시야가 넓어졌다. 기업 간 경쟁 구도는 글로벌화됐고 직원 충성도보다 이동성이 더 각광받고 있다. 조직 형태는 프로축구팀처럼 유연해졌다. 과거 대부분의 전통적인 제조업체는 도제식 교육에 익숙한 탓에 경력자와 신입사원의 수직 관계가 선명했다. 군대와 가정 문화가 섞인 직장 분위기 속에서 직급과 나이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디지털전환 시대에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직장을 옮길 수 있다. 일에 대한 관점이 워커(worker)보다 플레이어(player)에 가까워졌다.

신 부문장에게 일은 무엇인가.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가 제시한 인간의 동기욕구 5단계에 답이 있다. 일이란 5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풀 세트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어 생리적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 더불어 변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성과를 인정받기도 한다. 최종적으로는 성취감을 느끼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중국 신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인간과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무리 일하는 동기가 천차만별이어도 피라미드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자칫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일하는 동기는 인간의 욕구에 있지만 일의 목적과 본질은 더 고차원적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미션이 있을 것이다. 일은 이러한 가치에 도달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다. 일터는 가치를 현실화할 수 있는 총체적인 장이다. 그렇다고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일에 매진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과 일의 관계를 숙고하지 않은 채 일 자체만 단편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무지갯빛처럼 다채로운 인생

워라밸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터 밖에서도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워라밸 문화를 적극 권장한다. 또 다른 종류의 성취감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인생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최상단에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일이나 취미 등 다양한 활동이 각각 파이프라인이 되어 삶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터 밖에서 소셜미디어 활동뿐 아니라 춤 연습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한다. 무지갯빛처럼 다양한 색깔을 누려보는 인생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신 부문장이 추구하는 최우선 가치는 무엇인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고 하면 이타적으로 보일 수 있어 조심스럽다(.웃음) 소셜미디어에 일 관련 게시물을 올린 건 기록의 의미도 있지만 타인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타성은 매슬로가 말한 인정의 욕구와도 연결된다. 게시물에 대한 팔로워의 긍정적인 반응은 내게 또 다른 행복감을 선사한다.

기업시민론과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기업의 초점이 이윤추구, 주주의 이익 극대화에서 구성원의 행복, 사회적 책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기업은 정부와 사회 인프라의 도움을 받는 만큼 사회적 공헌에도 앞장서야 한다. 앞서 이타성이 인간의 욕구와 연결된다고 말했듯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기업 이미지를 개선해 구성원의 소속감을 높이고 인정·존중의 욕구를 충족해준다. 이미 많은 글로벌기업이 ‘기업시민론’에 부응하고 있다. 한국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놓쳤다.

다양한 가치 앞에서 리더의 역할은.

여러 가치가 공존한다고 해도 회사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곳이며, 리더십의 목적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 있다. 리더는 각각의 구성원에게 어떤 역할을 분담해 조직 전체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구성원을 인간으로 존중하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구성원의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조직의 목적이 변질되기 쉽다. 조직은 성과를 창출할 때 지속 가능하다. 물론 여러 세대와 가치가 공존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혼란은 반드시 평형점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긍정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307호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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