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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일] 야마구치 슈 라이프니츠 랩 대표 

일이란, 사회라는 작품을 창조하는 것 

노유선 기자
일본의 저명한 경영전략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 라이프니츠 랩 대표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사고방식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은 삶의 퀄리티를 크게 좌우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일하는 목적과 가치를 스스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라이프니츠 랩
“현대인은 일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20세기 이전만 해도 일의 목적은 안전하고 편안하며 편리한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의 목적은 이미 상당 부분 달성되었어요. 이제는 일의 목적과 목표를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일본의 저명한 경영전략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인 야마구치 슈(山口周·Shu Yamaguchi) 라이프니츠 랩(Leibnitz Lab) 대표의 말이다. 야마구치 대표는 “일의 존재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문명적 가치가 아닌 문화적 가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일의 사회적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철학 학사, 미술사 석사를 마친 그는 철학과 예술에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는 독특한 경영컨설턴트다. 일본 최대 광고기업 덴쓰(Dentsu)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보스턴컨설팅그룹, AT커니, 콘페리헤이그룹 등 유명 컨설팅 기업을 거쳤다. 현재는 컨설팅업체 라이프니츠 랩 대표이자 작가, 교수로 활동 중이다.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외에도 『일을 잘한다는 것』,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등에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일을 통찰했다.

최근 일본에 있는 야마구치 대표를 서면으로 만났다. 코로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불안정은 커지고 인공지능(AI)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일의 의미가 흔들리는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인은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야마구치 대표는 “코로나는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일, 에센셜 워크(essential work)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며 “불안한 경제 상황은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명암을 모두 보여준다”고 말했다.

100년 후 이상적인 사회와 현재의 격차

일에 대한 관점이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변화는 단순하지 않다. 심리학자 윌리엄 브리지스(William Bridges)가 말했듯이, 이행 또는 전환에는 옛것의 종언과 혼란이 수반된다. 현대인은 이 단계의 중간에 놓여 있다. 앞서 20세기에 형성된 일하는 방식과 경영 이론이 순간 덜컹거리며 무너질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사람은 안전과 안락, 편리와 같은 문명적 가치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는 더 이상 일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일의 의미는 진일보해야 한다.

하지만 ‘워라밸 문화’는 여전히 힘이 있다.

직업 여정과 인생을 구분 짓는 사고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은 삶의 퀄리티를 크게 좌우하는 요인 중 하나다. 자신이 소속된 회사와 일상생활을 분리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회사는 인생의 한 시기에 참여하는 단체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과 생활을 트레이드오프(trade-off·상충) 관계로 보는 시각은 곤란하다.

인식의 전환은 말처럼 쉽지 않다.

‘100년 후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수반돼야 한다. 이상적인 사회와 오늘날 사회 모습을 비교한 뒤 차이점을 해소해나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기쁘게 종사하고 있다. 우리의 일은 모두 퍼블릭 서비스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된다면 워라밸(work-life balance) 프레임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개념에 공감대가 형성될까.

사리 추구(self-interest)를 억제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환경에 대한 기여, 배려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환경을 고려하는 소비자의 행동 양식이 눈에 띄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철학자 케이트 소퍼(Kate Soper)는 “사회와 환경에 대한 배려(consideration)가 자신의 이익으로 내재화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도 동의한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리버럴 아트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으리란 우려가 크다.

인간의 일이 미래에도 변함없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대사회에 ‘진정으로 인간에게 속하는 일’과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인간의 역할 변화는 필연적이다. 이는 일의 본질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일을 work(일), labor(노동), action(활동)로 세분화한다면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work와 labor보다 action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활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철학자 해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삶을 일, 노동, 활동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봤다. △세상을 안전하고 안락한 곳으로 바꾸는 일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비활동과 관련이 깊은 노동 △인간의 존엄성을 충족하는 사회를 위한 정치 참여 활동 등으로 구분된다. 난 해나 아렌트의 통찰을 유연하게 해석해 사회와 환경을 위한 활동을 강조하고 싶다. 예를 들어, 미국의 테슬라(Tesla)는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명의 방식을 바꾸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네덜란드의 스마트폰 스타트업 페어폰(Fairphone)은 잦은 스마트폰 교체로 환경과 자원에 미치는 부담이 크다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의 의미가 달라지면 자본주의도 흔들릴까.

현재 여러 기업에서 자본주의의 폭주가 가져올 폐해를 억제하기 위해 리버럴 아트(liberal arts·고대 그리스의 교양 과목)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미국 애스펀연구소(Aspen Institute)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대학에서 리버럴 아트를 가르쳐왔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은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는 과정에서 리버럴 아트 교육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 경영 일선 종사자들은 기업시민론과 유럽의 행복경영론을 토대로 리버럴 아트 소양을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일하는 모든 이에게 조언을 남긴다면.

일에 대한 관점이 전환되는 혼란기다. 외부의 각종 이론에 기대지 말고 우선 스스로를 살펴보기를 권한다. ‘진정으로 옳은 것’과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에 대해 자문하고 숙고하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과 조직의 생산성, 사회의 발전이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202307호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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