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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한화생명 COE 부문장 

디지털로 옮겨 간 ‘뉴 보험’ 

신윤애 기자
한화생명은 업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기민하게 디지털전환에 나선 보험사로 꼽힌다. ‘모바일 퍼스트’ 전략으로 성공적인 디지털전환을 이뤄내고 있는 한화생명의 이창희 COE(Center of Excellence) 부문장과 그 혁신의 여정을 따라가봤다.

▎2020년부터 한화생명의 DT를 리드하고 있는 이창희 부문장. 온라인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한화생명의 다이렉트 채널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AI OCR, 클라우드 네이티브, 디지털 리스크 보험 등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속적으로 발굴하고 빌드업하고 있다. / 사진:한화생명
역사 깊은 한국의 보험산업도 이제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T)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빅테크 기업의 완벽하고(?) 친절한 디지털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보험업에서도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된 것만큼 바꾸기 어려운 것도 없다. 제조업, 금융업 등 역사가 긴 산업에서 유독 디지털‘전환’에 고전하는 이유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화생명은 발 빠르게 디지털전환을 시작한 업계의 ‘퍼스트 무버’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7년부터 조직을 점진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한화생명은 2019년 공식적인 디지털 조직을 꾸렸고, 202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변화의 닻을 올렸다. 업계 최초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퍼블릭 클라우드와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혼합한 컴퓨팅 환경) 플랫폼을 도입하는가 하면, 상품을 만드는 한화생명과 판매를 담당하는 한화생명금융 서비스를 분리하는 ‘제판분리’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는 “한 손에는 상품, 다른 한 손에는 시스템”이라는 표현으로 임직원들에게 디지털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큰 보폭으로 디지털 세상으로 터를 옮기고 있는 한화생명. 그 주축엔 이창희 COE 부문장이 있다. KAIST 학사와 고려대 컴퓨터공학 석사를 졸업하고 네이버에서 지도서비스 총괄책임리더를 역임한 그는 2020년 1월 한화생명에 기술전략실장으로 합류했다. 한화생명에서는 디지털 조직과 문화를 구축하고 전략 수립, 신사업 인큐베이팅 임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COE 부문장으로서 한화생명 다이렉트 채널과 LIFEPLUS 마케팅, 디지털전환과 디지털 신사업 등 네 가지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모바일 퍼스트입니다.” 한화생명의 디지털전환 전략은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고 이 부문장이 설명했다. 그는 “보험업계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PC, 태블릿, 모바일 시스템이 순차적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통합돼 있지 않고 모든 게 제각각”이라면서 “모바일기기만 있으면 은행ㆍ증권 계좌를 비대면으로 개설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으니 모든 시스템을 모바일에 최적화하고 나머지 기기에는 반응형으로 제공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하면 사용자에게는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고, 회사는 개발 리소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일거양득 효과가 난다. 그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화생명의 디지털전환은 어디까지 이뤄졌나.

기업의 디지털전환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핵심 업무를 내재화하는 것이다. 기술과 시장이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핵심 업무와 관련된 기술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DT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사업을 지원하는 조직이 아니라 사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개선하는 조직이라고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로, DT 조직은 ‘Business Enabler’가 돼야 한다. ChatGPT를 시작으로 AI가 많은 업무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특정 기술을 확보했는지 여부가 어떤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다. DT 조직이 한 발 앞서 기술을 확보하고 업에 맞는 방식으로 활용해야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화생명은 현재 두 번째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다이렉트 채널이다. 플랫폼 기업에서 보험회사로 옮긴 초창기에는 인터넷에서 보험을 판매하는 일이 이커머스 서비스와 같은 이치일 거라 생각했다. 경험해보니 상당 부분 달랐다. 인터넷에서 보험을 판매하는 건 자동차 판매만큼이나 어렵다고 느껴졌다. 자동차는 가격대가 높은 데다 기본에서 풀 옵션까지 여러 레벨과 옵션이 있어 구매자가 쉽게 구입을 결정하지 않는 품목이다. 그런데 자동차를 100%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테슬라다. 테슬라가 온라인에서만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제품을 표준화하고 옵션은 구매 후 온 디맨드(On-Demand)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도 큰 역할을 한다. 비슷한 사례로 자동차보험의 다이렉트 채널이 있는데, 최근 판매 비중이 대면 채널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공부하며 보험 또한 선택 옵션을 단순하게 설계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면 온라인판매가 수월하겠다는 가능성을 봤다. 특히 생명보험 상품에 비슷한 방식을 적용하면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한화생명 다이렉트 채널을 고객이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e상품, 검색엔진 마케팅을 상품에 맞게 최적화했고 고객 친화적인 UX를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2021년 이후 다이렉트 채널에서 판매 성과가 오르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전년 동기 대비 ‘보장월초’가 2.5배가량 늘었다.

이 외 다른 프로젝트도 소개해달라.

최근 AI OCR 사업을 새롭게 추진했다. OCR은 Optical Character Recognition의 약자로, 이미지 속 텍스트를 추출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기존에도 면허증 등 서류를 인식하는 과정에 OCR 기술을 활용해왔지만 보험 청구 서류는 양식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이미지 품질이 좋지 못해 실질적인 활용이 어려웠다. 최근 특정 좌표의 글자를 인식하는 템플릿 기반의 솔루션에서 이미지 품질이 떨어지거나 포맷이 다르더라도 패턴을 학습시켜 원하는 글자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딥러닝 기반의 AI OCR 솔루션으로 기술이 진화했다. 그 결과 진료비 영수증, 세부 내역서, 처방전 등 보험 청구 서류의 이미지 파일을 평균 94% 이상의 정확도로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연말까지 이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안정화하고 실시간 보험금 접수·심사 업무 프로세스를 지원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OCR을 통해 얻은 각종 데이터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맞춤형 신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과다 청구 및 유의 병원을 발굴해 사차익을 확대해볼 생각이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클라우드 네이티브를 이루는 것이다. 한화생명은 제판분리를 통해 사업구조를 혁신했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해외 사업 확장에도 공격적이다. 혁신과 확장에 성공하려면 유연하고 표준화된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보험이라는 본연의 업무 처리 시스템부터 온라인 기반의 다이렉트 채널까지 클라우드 기반으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과정은 AWS와 함께한다.

AWS와는 어떤 협업을 하나.


▎ 사진:한화생명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플랫폼을 AWS와 함께 구축했다. 한화생명 앱, 보이는 GA월드, Dreamplus, 투자관리시스템 등 다양한 사업에서 AWS와 구축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클라우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AWS의 서비스 안정성, 적극적인 교육, MBR(월간 비즈니스 리뷰)을 통한 조언이 큰 힘이 됐다. 최근에도 AWS와 난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스케일 아웃(서버를 추가해서 확장하는 방식) 과정에서 기술적인 이유로 고객이 체감하는 성능이 저하될 것이 우려되었는데, AWS에 해결 방안을 문의했더니 곧바로 해결책을 내주었다. ALB 프리워밍(pre-warming)이라는 기능으로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지난달 론칭한 e시그니처암보험의 온라인 광고 일정에 이 기술을 적용했고, 문제 없이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디지털전환 과정에서 보험사가 겪는 가장 큰 난제는.

금융업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하다. 일하는 방식과 제도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어 이를 내부 인력만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많은 기업이 외부 인력을 영입해 디지털 조직을 구성하는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디지털전환이 어려운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조직원은 업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나 애자일한 방식에 익숙하지 않고, 새로운 조직원은 애자일한 방식과 현대화된 기술에는 익숙하나 업의 전문성과 컴플라이언스 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두 집단이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화생명에서는 사용자 경험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판단할 수 있는 측정치를 기준으로 두 조직의 목표를 잡는다. 사용자 경험이 좋아지려면 앱과 웹 등 사용자 접점도 좋아져야 하지만 레거시 시스템 또한 개선돼야 한다. 결국 기존 조직과 새로운 조직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3년째 지속하고 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다.

관심 있는 신기술이 있다면.

사이버보안 분야다. 한 미래 보험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보험회사들이 가장 많이 기술 투자를 늘릴 분야로 사이버보안, 클라우드컴퓨팅, 데이터 프라이버시 등 세 분야를 꼽았다. 향후 해당 분야에서 보험업계의 기술 투자가 각각 18%, 17%, 12%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도 디지털 리스크 평가와 관리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사고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인 ‘디지털 리스크 보험’을 검토하고 있다. 사후보상이라는 기존 개념을 혁신하고, 디지털 사고를 예방하는 데 집중하는 인슈어 테크 기술을 개발하여 보험사는 손해율을 낮추어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고객은 개인정보 유출 같은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현재는 보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디지털전환의 핵심인 클라우드에 대한 정보보호 관리체계 수립과 운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을 위한 CSP(Cloud Service Provider) 안정성 평가, 클라우드 이용 신고, 보안성 검토ㆍ심의 등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부터 자체적인 보안 인력을 투입해 오픈소스 관리, 클라우드 보안정책관리(CSPM) 등 클라우드 보안 솔루션을 구축하고 프로그램에 보안 설계를 지원하여 DecSecOps(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의 모든 단계에서 보안 테스트를 통합하는 관행) 체계를 마련해 운영한다. 이 외에도 소프트웨어 공급망 관리, Open API 취약점 진단, 다크웹 모니터링 시스템 등 최신 공격 동향을 분석하여 선제적으로 사이버 위협에 대응한다. 개인정보 유출사고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내부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임직원의 개인정보 조회 행위를 분석하여 유출 징후를 사전에 탐지하는 등 이상 행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 보호 관리체계 인증(ISMS-P)을 취득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진행 중인데, 현장 심사까지 완료한 상태다.

디지털 역량을 활용한 사업 확장 계획이 있다면.

최근 인도네시아의 리포손해보험을 인수하는 등 한화생명은 글로벌 진출에 적극적이다.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매출이 강력한 보험설계사 조직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글로벌은 이런 조직을 갖추기가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그간 축적한 디지털 경쟁력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확장 중이다.

2020년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보험사가 공공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와 관련한 새로운 계획이 있나.

공공의료 데이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 상태의 변화, 질병 이력에 관한 정보 등을 포함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상품개발 및 헬스케어 관련 신사업을 진행하기에 매우 유용한 데이터다. 다만 공공의료 데이터 확보에 대한 법적 근거와 별개로 민간 보험사가 실제 공공의료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화생명은 가장 먼저, 가장 꾸준히 건강보험공단에 데이터 제공을 요청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2년이 넘었지만 아직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일종의 대안으로 금융위원회에서 추진하는 금융 AI데이터 라이브러리에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다양한 산업 간의 가명 데이터를 결합함으로써 고객의 건강이나 재무상태, 금융상품의 선택 등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를 확인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예정이다.

데이터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많다.

한화생명은 2014년부터 내부에 데이터 조직을 운영하면서 보험업의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데이터로 고객을 이해해보고자 고민해왔다. 현재는 마케팅 활동부터 신계약, 고객관리, 보험금 지급 등 보험업 전반에 걸쳐 고객 행동을 예측하는 머신러닝 기반의 모델을 활용하고 있으며, 고객의 속성을 추정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을 구축했다. 더불어 고객의 전반적인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이종 업계와의 가명 데이터 결합도 활발하게 추진한다. 통신사, 카드사와 데이터 결합을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해보기도 하고 은행, 손해보험사와 결합해 생명보험 고객의 전반적인 금융 행동을 추정해보기도 한다. 디지털 채널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로그 데이터는 별도의 내부 수집 절차 없이 구글에서 서비스하는 BI솔루션(GA4)을 사용해왔다. 이제는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 레이크’를 구축할 생각이다. 보험사에서 가장 활용 가치가 높은 데이터는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확인되는 건강, 질병 등에 관한 데이터일 것이다. 가입기간이 워낙 장기간이다 보니 고객의 건강상태 변화나 질병발생 추이, 치료방식, 의료 비용 등 한 사람이 수십 년간 겪는 다양한 의료 경험이 데이터로 쌓인다. 이를 활용해 고객별 사고 위험 예측모델을 개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건강한 고객을 대상으로 가입 한도를 확대해주거나 언더라이팅 기준을 완화하는 정책 등을 적용하고 있다.

한화생명 디지털 조직만의 특별한 문화가 있나.

금융, 이커머스,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드, 모빌리티, 푸드, IT, 스포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디지털플랫폼을 만든다. 이들이 보유한 서로 다른 경험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한다. 한화생명의 디지털 조직은 기획자가 기술 이슈에 대한 조언을 하고, 사업 담당자가 서비스 운영 정책을 고민하고, 개발자가 마케팅 효율성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어색하지 않고 매우 자연스럽다. 조직 간 이기심, 직군별 편의성보다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작게는 개인과 애자일 문화를 지닌 디지털 조직, 크게는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이 문화로 하나가 되고 함께 발전하길 기대한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202309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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