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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갑 GDIN 대표 

GDIN이 개척하는 글로벌 디지털 로드 

노유선 기자
설립 11년 차에 접어든 벤처·스타트업 지원센터 ‘본투글로벌’이 정부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들어갔다. 사명도 재단법인 ‘GDIN’으로 바꿨다. 김종갑 대표는 “민간 주도형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의 참여가 점차 페이드아웃돼야 할 시점”이라며 “GDIN이 글로벌 디지털 로드를 개척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한 GDIN의 수장, 김종갑 대표는 “벤처·스타트업의 글로벌 디지털 로드를 개척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른 체구와 달리 힘 있게 반짝이는 눈빛. 김종갑(57) GDIN(글로벌디지털혁신네트워크·Global Digital Innovation Network) 대표의 첫인상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정보통신진흥협회 산하 공공기관인 본투글로벌센터는 지난해 9월 재단법인 GDIN으로 새출발했다. 2015년부터 센터장을 맡았던 그의 직함도 대표이사로 바뀌었다.

김 대표 만남에 앞서, GDIN의 독립은 과연 그에게 호재일지 의문이 들었고 본투글로벌이란 사명을 굳이 바꾼 이유도 궁금했다. 지난해 12월 1일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경기도 판교에 있는 GDIN 본사를 찾았다. 평소에도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는 김 대표에게서 강한 열정과 활기를 느꼈다. 그의 눈빛은 GDIN의 홀로서기가 분명한 호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어깨가 무겁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엉뚱하게도 “미안하다”고 답했다.

“저는 일 앞에서 신이 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답해서 미안해요.(웃음) 어깨가 무겁다기보다 정말 신나요. GDIN이 재단법인으로 바뀌었으니 일이 더욱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공공기관이란 허들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러 프로젝트를 강하게 밀어붙일 계획입니다.”

2013년 설립된 GDIN은 ICT(정보통신기술) 벤처·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지원 방식은 다양하다. 새로운 투자 유치를 돕거나 해외시장 조사에 기반한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글로벌 펀드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디지털 프로젝트 조달에도 힘쓴다. 지난해 11월 기준 누적 지원 기업은 3112곳에 달하며 회원사 중 B2B(기업 간 거래) 커뮤니케이션 솔루션 기업 센드버드와 에듀테크 기업 뤼이드는 글로벌 유니콘으로 등극했다.

인터뷰 내내 김 대표는 창업부터 성장, 투자 회수에 이르는 전 과정을 족집게 강의를 하듯 짚어줬다. 서너 번 창업한 경험이 있는 그가 GDIN 대표직을 오래도록 수성한 비결은 ‘공감력’에 있었다. 김 대표는 해외에 진출한 국내 벤처·스타트업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을지 등을 낱낱이 꿰고 있었다. 앞서 과기부 산하 아이파크 실리콘밸리 이사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주기술확산센터장 등을 역임한 그에게 GDIN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정부가 쏘아 올린 공, 민간이 이어받아야


▎김종갑 GDIN 대표는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해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밝혔다.
GDIN이 설립 11주년을 맞았다. 자랑스러운 성과를 꼽는다면.

GDIN 도움으로 투자 유치에 성공한 벤처·스타트업이 많다. 누적 투자액은 35억8600만 달러에 달한다. 또 전 세계에 조인트벤처(합작법인) 26곳을 설립했으며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해외 파트너십은 60건이 넘는다. 하지만 이런 수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GDIN만의 독창적인 기획력이다. GDIN은 매년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진화해왔다. 프로그램 내용이나 기업 선정 방식을 반복하지 않고 피드백에 따라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다. 연말이면 한 해 동안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리뷰하고 개선 사항을 파악한다. GDIN 구성원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혁신에 힘쓰면서 자체 펀더멘털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축했다. 덕분에 GDIN은 조직의 발전과 구성원의 성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내실 있게 성장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이 아닌 재단법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됐나.

이전보다 더 미래지향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GDIN은 과기부 산하 센터였기 때문에 정부 주도 사업만 진행했다. 정부 주도형 프로젝트는 산업의 기틀을 만들고 기초를 세우는 데 유용했지만 센터의 확장성을 다소 제약한 면도 있었다. 예산이 세수에 연동되다 보니 가용자금의 변동폭이 컸다. 이제는 정부 사업과 민간 사업의 비중을 7대3 또는 6대4로 가져갈 방침이다. 유럽의 경우 민관 합작 프로젝트가 많은 반면에 한국은 이런 경우가 드문 편이다. GDIN은 다양한 합작 프로젝트 기획에 창의력을 힘껏 발휘할 계획이다.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 민간 참여를 늘려, 선배 기업이 후배 기업을 양성하면서 신규 산업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자 한다.

정부가 쏘아 올린 공을 민간이 이어받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

현재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벤처·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벤처 불모지였던 한국이 단기간 내 성장한 것은 이러한 정부 지원 덕분이다. 100년 걸릴 일을 20년 만에 해낸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 지원 의존도를 낮출 때가 됐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는 없다. 정부가 시작한 정책일지라도 종착지는 민간 생태계여야 한다. 정부의 참여가 점차 페이드아웃해야 하는데, 문제는 시점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지금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구조를 민간 주도로 전환하지 않으면 한국은 몇십 년 퇴보할 수 있다.

수출이 아닌 진출이다


정부 주도형 지원 사업의 한계는 뭐라고 보는가.

벤치마킹에 익숙한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 해봤던 정책은 무조건 믿고 실행에 옮기는 문화가 여전하다. 1970~80년대에는 모든 산업에서 한국이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추격형 경제성장 정책이 주효했다. 그 시절 관행은 완벽주의와 결합해 실수나 실패에 민감한 정책을 양산했다. 다른 국가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어야만 한국도 유사한 정책을 시도해보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교육·경제 수준은 한층 높아졌다. 우수한 인재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내부 검토를 거쳐 좋은 아이디어를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본투글로벌도 좋았는데 사명을 왜 바꿨나.

창업 초반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벤처·스타트업을 키워주겠다는 의미인 본투글로벌(Born to GLOBAL)은 브랜드·서비스명으로 계속 사용할 방침이다. 사명을 바꾼 이유는 디지털 기술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디지털 로드’를 구축해 전 세계 곳곳에서 잠재적 디지털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국내 벤처·스타트업과 매칭할 계획이다. 전 세계에는 급속한 디지털전환을 지향하는 국가가 상당히 많다. 그들에겐 디지털 선진국인 한국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차근차근 디지털화를 추진해온 한국에서 디지털전환 노하우를 배워 중간 단계를 뛰어넘겠다는 발상이다. GDIN의 I는 혁신(Innovation)의 약자다. 도처에 디지털 기술이 널려 있는 상황에서 혁신적인 제품·서비스로 경쟁력을 갖겠다는 의미다.

GDIN이 그리는 디지털 로드는 어디인가.

튀르키예와 필리핀, 브라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나라들은 디지털전환에 관심이 많아, 스마트파밍이나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라이징을 지향한다. 국내 다수 대기업이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내세워 자사 기술에 고객사가 따라오길 강제하는 것과 달리, 벤처·스타트업은 고객사 니즈에 맞춰 소규모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한다. 또 단순한 디지털라이징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객사가 디지털 기술 자체 운영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할 수 있다.

네트워크가 함축하는 바는.

해외 진출에 공격적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취지다. 디지털 시대에 다른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이윤을 취하겠다는 자세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경우 잠재고객이 이를 직접 써보고 자사 생산성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잠재고객이 한두 달 경험해본 뒤 장기 고객으로 자리 잡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선 국내 기업의 잠재고객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네트워킹과 로컬 어댑테이션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해외 현지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지 파트너를 빠르게 찾아 로컬라이징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GDIN은 지난해 3월 아랍에미리트(UAE)로 건너가 알 구레아(Al Ghurair) 그룹과 엠투엔, 국내 투자사 등이 공동으로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한-UAE 합작법인 설립과 투자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MOU를 체결한 바 있다. 글로벌 CRM 솔루션 기업 세일즈포스의 자회사 세일즈포스 벤처스와도 긴밀하게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국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특히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GDIN의 ‘글로벌 테크 스튜디오’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

디지털 시대인 만큼 수출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오늘날 모든 제품·서비스가 항공기나 선박을 이용해 해외에 판매되는 건 아니다. 어느 국가에서든 인터넷에 접속한 뒤 클릭해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을 수 있다. 이것도 수출의 일종이다. 국가 수출 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이다. 이제는 수출이 아닌 진출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다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해외 전시회나 박람회 참여에 전념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제품·서비스를 전시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효율적인 방식으로 마케팅할 수 있다. 바로 글로벌 테크 스튜디오를 통해서다.

현재까지 전 세계 10여 개국에 기업, 공기업, 투자사 등 현지 파트너와 글로벌 테크 스튜디오 설립·운영을 위한 협약을 추진해왔다. 글로벌 테크 스튜디오는 해외에 진출한 국내 벤처·스타트업에 현지 사무 공간과 행정 지원뿐 아니라 제품·서비스 로컬라이징 컨설팅과 파트너 매칭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지난해 9월 튀르키예 투자청과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향후 5년 내 50개 이상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다. 이로써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벤처·스타트업 에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국내 벤처·스타트업에 조언을 남긴다면.

유니콘기업 개수는 이제 의미가 없다. 유니콘은 기업 성장의 과정일 뿐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인수합병이든 코스닥 상장이든 투자 회수 이후에도 기업이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또 더는 코스닥시장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본다. 미국 나스닥시장도 있고 유럽, 홍콩, 인도 등 다양한 상장 시장이 있다. 가령 벨기에 시장에 상장한 뒤 나스닥시장을 2차 상장으로 노릴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상장 비용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내 기업도 상장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_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401호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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