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PJ살롱 박병진의 위스키 기행(12) 

코모로 위스키 이야기 

3년 후에나 마시게 될 새로운 생명의 물을 기대하며 떠난 열두 번째 위스키 여행.

▎아름다운 풍광이 돋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숙성 창고.
문명 세계의 바깥, 뉴칼레도니아와 코모로

태평양에는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쿡이 발견한 섬이 많다. 특히 그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지명을 딴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가 유명한데, 지금은 프랑스령이 되어 누벨칼레도니(Noubelle Caledoini)로 불린다. 이는 과거 로마제국 시절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영국을 정복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잉글랜드의 북쪽 경계에 장성(Hadrian’s wall)을 세우고 장벽 너머의 스코틀랜드를 문명 세계의 바깥이란 의미의 ‘칼레도니아’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최근에는 이름처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허니문족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인도양에도 이런 곳이 있는데,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작은 코모로 제도가 있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물고기 실러캔스가 서식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섬은 그 기구한 역사가 이어져 현재도 독립국인 코모로 연방과 프랑스령 코모로로 나뉘어져 있다. 기구한 역사와 달리 다양한 생태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하여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바로 이 코모로섬의 빛나는 산호초와 같은 느낌의 푸른 위스키가 일본 코모로에서 새롭게 시작된다는 소식에 가루이자와의 폐허 다음의 내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이곳 코모로가 되었다.

우연히 알게 된 코모로 증류소는 최근 완공되어 이제 뉴스피릿의 생산을 시작했기에, 숙성을 마친 위스키가 아직 출하도 되지 않은 신생 증류소이다. 하지만 이곳은 자신들의 위스키가 나오기 전부터 그 특별한 제조와 숙성 방식으로 세계의 관심을 받아 2024년 2월에는 세계 위스키 포럼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내가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 모 신문사의 위스키 최고위과정에서도 졸업 여행 때 이곳을 방문하기로 이미 작년에 증류소의 허락을 구해두었다. 지금부터 내가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이 증류소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와 그곳 사람들, 증류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인터넷으로 어렵사리 마지막 시간의 증류소 투어를 예약했다. 투어와 동시에 이곳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강좌도 하나 선택할 수 있어 ‘Art of Maturation’이라는 과목을 선택했다. 위스키 업계의 슈퍼스타인 마스터 디스틸러 이안 창의 숙성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모든 투어 과정과 강좌는 일본어로 진행될 것이라 안내되었고, 나도 그동안 다른 일본 증류소 투어를 경험한 터라 익히 알고 있었다. 위스키 제조 과정이야 충분히 잘 알고 있어 강좌를 듣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요청 사항에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코모로역에서의 픽업과 증류소 투어가 영어로도 진행되면 좋겠다고 썼다. 늦은 오후 투어 시간에 맞추어 코모로역에 도착하니 누군가가 피켓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시간과 장소에서 당연히 손님은 나뿐이었고, 픽업 나온 증류소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일본어도 제대로 못 하는 한국인이 이 나가노의 시골에, 아직 제품도 생산하지 않는 신생 위스키 증류소를 찾아온 것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았다. 전날 새벽부터 한국에서 날아와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폐허를 둘러보고, 이제는 가루이자와 위스키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코모로에서 그 미래를 보려고 왔다고 했더니 진심으로 좋아하며 이곳까지 찾아온 나의 열정을 응원해주었다.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며 구릿빛 포사이스 증류기 한 쌍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한 증류소 로비의 바.
이곳은 신생 증류소인지라 직원도 많지 않은데, 이렇게 한 명 한 명이 모두 오너십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참 기분이 좋았다. 증류소에 도착하니 관리자처럼 보이는 기품 있는 여성이 마중 나와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이 회사의 CFO였다.

위스키 증류소치고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수천만 달러가 투자된 증류소의 CFO가 현장에서 고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니 이 회사의 미래도 밝아 보였다. 하여튼 제조 공정은 잠시 후에 보기로 하고 다른 일본인 투어 팀들과 함께 우선 유명한 위스키 숙성 창고에 들렀다. 이제 막 생산을 시작하여 두 번째 숙성 창고를 채우고 있는 중이어서 많은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사마산의 싱그러운 가을 공기 덕분에 이 위스키의 미래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인절스 셰어(Angle’s Share, 위스키가 숙성하는 동안 증발하는 현상)의 비밀을 잘 활용하는 증류소답게 숙성 창고의 천장 조명을 동그란 에인절스 링으로 포인트를 준 유머까지 볼 수 있었다.

새로운 가루이자와의 시작


▎가나자와로 향하는 야간열차.
일본인들에게 코모로는 인근 아사마 산장의 인질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1972년 일본 적군파 학생운동의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실패로 끝난 이후 과격한 일본 학생운동은 쇠퇴했다. 실제로 매우 과격했던 일본의 학생운동은 1960년대 일본 동경대 강당 점거 사건, 대한항공기 납북 사건 등으로 유명했으나, 1970년대 이후 쇠락의 계기를 이 사건에서 맞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영화로도 나왔는데, 그와는 별도로 아사마산의 맑은 물 또한 유명하여, 가루이자와 위스키의 토대가 되었다. 그래서 코모로 증류소도 아사마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을 모토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창업자인 코지 상과 대만 위스키의 전설인 카발란의 창업자 이안 창, 이 두 사람의 협업 스토리가 유명하다. 아직 위스키가 출하되지 않아 쉽게 그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위스키 제조에 관한 꿈과 비전을 공유한 두 사람의 멋진 스토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코모로 증류소의 창업자인 시마오카 코지 상은 원래 시티은행 투자 전문가로 20여 년을 근무했다. 가루이자와에 20여 년을 거주하면서 이 지역의 한 낡은 여관을 인수하여 새롭게 부흥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장과 고객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적시에 제공해 이곳은 일본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가루이자와의 명소가 되었다. 이후 평소에 좋아하던 가루이자와 위스키의 부흥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역시 금융계에 있던 부인과 함께 새로운 증류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부창부수랄까? 부인도 M&A 전문가로서 흔쾌히 남편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초기 펀딩과 운영을 맡았다. 그녀가 바로 내가 코모로 증류소에서 처음 만난 그 CFO이다. 하지만 가루이자와 위스키의 명성을 계승할 증류소의 최고 제조 책임자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 위스키만큼이나 화제성이 있고 훌륭한 품질을 자랑하는 Non-Scotch 위스키 중에는 대만의 카발란 위스키가 있다. 바로 그 카발란 위스키의 유명한 마스터 디스틸러인 이안 창이 카발란을 떠나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다국적 거대 주류 기업인 페르노리카는 중국에 거대한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고자 했고, 그 적임자로 이안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스카우트를 제의했지만, 이안은 지금 여기에 와 있다. 왜 이안은 거대 기업의 제의를 물리치고 성공조차도 불확실한 일본의 작은 증류소에 오게 되었을까? 무엇보다도 카발란의 상징이자 아이콘인 이안 창이었기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카발란을 떠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스코트랜드 제작 업체 ‘포사이스’에서 구리로 만든 물방울 모양의 증류기 한 쌍.
내가 코모로에 간 그날, 티셔츠 차림으로 헐레벌떡 증류기 옆으로 들어오는 그를 처음 만났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위스키계의 거장임에도 생각보다 무척 젊은 모습에 놀랐고, 무엇보다 그동안 이룬 많은 것을 과감히 버리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도전하는 모습에서 역시 거장답다고 느꼈다. 만약 내가 그처럼 성공을 거두었고 또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런 새로운 시도를 했을까? 쉽게 답을 내긴 어려웠고 그 또한 이런 고민 끝에 현재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한 번 만나고 팬이 된 나로서는 거장의 그 결정을 존중하며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코지와 이안, 두 사람만의 비밀이겠지만, 위스키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이 서로를 설득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비록 스마트한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증류소 건설 과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전 세계를 휩쓴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안의 일본 입국마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긴밀한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으로 우여곡절 끝에 증류소를 완공하고 생산 과정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제 날개를 단 이안 창이 다음 행보로 무엇을 보여줄지 무척 기대된다.

그림 같은 풍광과 현대식 설비가 어우러진 증류소


▎코모로역에 도착해 꽃으로 둘러싸인 표지판 앞에서 증류소 직원을 기다렸다.
증류소 자체는 ‘이런 시골에 이런 시설이?’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놀라웠다. 아름다운 아사마산 기슭의 풍광도 인상적이었지만 정말 깊은 숲속에서 피톤치드가 뿜어나오는 모습과 현대식 설비가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첫인상은 마치 숲속 깊은 증류소로 유명한 하쿠슈와 같은 느낌이었다. 해발 910m 고산에 자리해 숙성 환경도 훌륭했지만, 아름다운 풍광으로 이어진 언덕을 따라 숙성 창고로 올라가는 길은 발걸음조차 마치 산책하듯 가벼웠다. 숙성 창고를 소개할 때 감사하게도 증류소에서 영어 통역을 붙여주었다. 이곳에서 에인절스 셰어 이야기가 나오자, 이에 대해 통역해준 젊은 여직원에게 증류소 직원들이 몰래 조금씩 빼돌리는 데빌스 셰어 이야기를 해주니 깜짝 놀라며 방긋 웃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증류소 본관으로 이동하여 위스키 아카데미 과목 중에서 내가 선택한 ‘Art of maturation’을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좀 더 심도 깊은 내용이라, 영어 통역이 고참 직원으로 바뀌어서 내가 일본에서 증류소 투어를 다닌 이래 가장 호사를 누린 시간이 되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이들의 철저한 사업가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증류소 견학과 투어를 염두에 두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최첨단 시설을 갖춘 증류소를 건설한 것이다. 연간 방문객이 1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처음부터 관련된 시설 투자를 병행하고, 콘텐트까지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증류소 투어로 되돌아가 보면, 로비에서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한 쌍의 구리 증류기를 중심으로 하는 모든 생산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생산 효율을 위해 1차 증류기는 크게 하여 대량의 로 스피릿을 뽑아내고, 2차 증류기는 이를 더욱 진하게 하여 하이 스피릿을 뽑아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상식을 깨고 비록 비용이 더 들더라도 1차 증류기를 2차 증류기보다 작은 용량으로 하여, 증류 사이클을 짧고 연속적으로 가져가 혁신적으로 품질을 개선했다. 이와 더불어 이안의 강점인 다양한 캐스크를 활용해 힘을 더했다. 그리고 고온 다습한 대만과 완전히 다른 기후 환경에서 시도한 새로운 도전은 이들의 혁신이 과거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증류소 투어를 마치고 가나자와로 가는 신칸센 사쿠다이라역.
생산 과정을 모두 둘러본 후, 증류소 로비로 돌아오니 가운데에 U자형으로 만들어진 멋진 바가 반겨주었다. 오센틱한 느낌의 바텐더가 만들어준 시트러스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면서 구릿빛 포사이스 증류기 한 쌍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반대편 통유리 너머로는 가루이자와의 푸른 숲들이 끝없이 이어져, 싱그러운 공기가 증류소 곳곳에 입혀진 듯 마냥 맑은 느낌이었다. 증류소 자체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스키의 이론적인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방문자들을 위해서 위스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심도 있는 강좌를 여러 개 마련하여 지적인 갈증까지 해소하게 해준 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서 가루이자와 위스키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사마산의 맑은 물, 스코틀랜드와 유사한 그들만의 테루아르를 잘 활용하여 단순한 복제가 아닌, 과거를 넘어서는 새로운 위스키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기를 그들의 팬으로서 진심으로 응원한다. 3년 후에나 마시게 될 새로운 생명의 물을 기대하며 호쿠리쿠 신칸센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사쿠다이라역으로 향했다. 사쿠다이라역까지 라이드를 해준 카토 상과는 이동하는 30분 동안 위스키에 관한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고, 2월의 졸업 여행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오늘 내리는 비는 내일의 위스키’라는 스코틀랜드의 속담처럼, 이들의 모든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박병진 - 30여 년간 IBM, SAP, SK 등 국내 및 외국계 기업,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망라하여 임원 및 CEO로서 대한민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왔다. 최근에는 포브스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는 위스키 칼럼니스트이자 동아일보사의 최고위과정인 ‘광화문살롱’의 주임 교수로서 위스키를 주제로 MZ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더불어, 요리서적 전문 출판사인 ‘북스 레브쿠헨’의 대표로서 이 시대의 대표적인 N잡러이다.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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