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우리를 구성하고 만드는 이물질들 

2024년, 우리는 지금도 계속 구성되고 변한다. 우리는 우리 밖에서 들어온 것들로 구성된다.

▎쇼스타코비치. / 사진:위키피디아
중국의 신경외과의사 다쥬에 왕(Dajue Wang, 1934~) 박사는 1950년대에 소련을 방문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레닌그라드 포위 전투 중에 독일의 포탄 파편에 맞은 환자들을 치료하려는 목적이었다. 왕 박사는 어떤 소련 외과의사와 함께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상담했다. 그는 전쟁 기간 거주지 근처에서 폭발한 포탄에 맞아 머리를 다쳤고, 그 파편이 그의 머리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왕 박사는 소련 의사가 찍은 쇼스타코비치의 머리 엑스레이에서 이물질을 발견했고, 형광조영술 이미지에서도 작곡가의 왼쪽 측뇌의 측두 뿔에서 요동하는 외래 물질을 목격했다. 1983년, 왕은 유명한 영국 음악 저널 ‘더 뮤지컬 타임스’에 게재된 기사에서 이 이야기를 보고했다. 미국 음악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도널 헤나헌(Donal Henahan)은 왕 박사의 이 이야기를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에서 소개했다.

왕 박사와 헤나헌의 기사들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 독일군이 쏜 포탄의 파편에 맞았고, 몇 년 뒤에 찍은 엑스레이 검사는 그의 뇌 속 청각 담당 부위-왼쪽 뇌실 관자엽 부분-에 박혀 있는 금속 조각을 확인해주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금속 파편의 제거를 원치 않았다. 이 작곡가는 머리를 한쪽으로 특정 각도만큼 돌릴 때마다 음악이 들렸다. 고개를 똑바로 돌리면 음악은 금방 멈췄다. 머릿속은 선율들로 넘쳐났고 그는 작곡할 때 이를 이용했다. 작곡가로서 제거할 이유가 없었다.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권위 있는 저널리스트였던 헤나헌과 중국인 왕 박사의 쇼스타코비치 기사는 이후 제대로 된 후속 연구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단 쇼스타코비치가 이런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 기간과 그 이후에 독일군에 맞서 싸웠던 영웅으로 주목받았는데, 그가 포탄의 파편에 맞았다는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개한다면 그의 영웅 이미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러니 그가 파편을 맞았다면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소련 당국 역시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줄 의료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독일군의 대부대는 1941년 9월에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불리는 레닌그라드를 포위했고, 포탄을 퍼부었다. 이 도시에서 살고 있던 쇼스타코비치는 늦은 나이에 입대하려 했지만,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소련 당국에 의해 거부되었고, 대신 의용소방대원으로 활약했다. 독일군 대부대가 약 3년간 포위한 이 도시에서 400만 명이 사망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당국의 배려 덕택에 1941년 10월, 이 끔찍한 지옥에서 탈출했다. 독일군은 7월부터 이 도시를 공격했고 쇼스타코비치는 10월 말에 그 도시를 떠났으니, 그의 머리에 파편이 박힐 기회(!)가 없진 않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역사상 가장 끔찍했다는 이 전쟁 기간에 유명한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작곡했고, 전쟁 전에는 [교향곡 5번] 등으로 작곡가로서 이미 성공했다. 생전에 교향곡을 15곡이나 썼고, 왈츠 2번 등은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이 곡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와 [안나카레리나] 등에서 사용되었다. [레닌그라드 교향곡]과 함께 이 작곡가는 국제적으로 반나치 전선에서 투쟁하는 인물로 평가되었고, 이 교향곡은 반나치 전선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음악으로 여겨졌다.


▎드라마 [경성 크리처]. / 사진:경성 크리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쇼스타코비치가 파편을 맞았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파편을 위 이야기 속 쇼스타코비치처럼 맞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쇼스타코비치의 경우가 뇌실 주변에 박힌 외부 물체를 보고한 첫 번째 사례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 이전에 보고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이 사례들 속 환자들은 다양한 증상을 보였는데, 주로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국소성 신경 결핍, 인지장애, 정신장애 등이었고 대사 변화를 보인 사례도 있었다.

콜롬비아 로사리오 대학의 게르만 호세 메디나 린콘 등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한 논문(Dmitri Shostakovich: a work of virtuosityor a profitable misfortune? Arquivos de Neuro-psiquiatria, 79/10, 2021)에서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위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역설적 기능 촉진’(PFF: Paradoxical functional facilitation) 개념이다. 이것은 신경계 손상 이후에 뇌가 보이는 놀라운 상태 혹은 능력을 가리킨다. 뇌 속 어떤 영역이 손상된 어떤 환자의 그 영역의 기능이 PFF를 통해 정상적 수준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의 기저에는 뇌가 가지는 놀라운 가소성(plasticity/flexibility)이 있을 것이다. 그 이름답게, 이 역설적 상황에서 손상된 신경 회로가 특정 작업에서 건강한 이의 신경 회로와 비교해 오히려 우수한 성과를 보일 수 있다. 이런 성과는 언어 기능, 주의(attention)와 관련된 작업, 기억 과정, 감각·지각 기능에서 주로 나타난다.

호세 메디나 린콘 등은 뇌 손상 이후에 손상되지 않은 부분에서 새로운 연결이 나타나 손상된 부분이 이전에 수행했던 기능을 맡을 수 있다고도 가정했다. 이 적응적인 응답의 내용은 손상 지점으로부터 가까운 영역에서 신경 회로가 재배열되고 재조직되는 현상이다.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등을 사용한 원숭이의 뇌 연구에서 유롱 소피(YouRong Sophie) 같은 미국 연구자들은 손상된 피질 영역, 특히 체성감각·운동 영역에서 기능 회복, 심지어 역설적 기능 촉진을 포함하는 신경 가소성 과정을 확인했다(Neuroplasticity after traumatic brain injury, Translational Research in Traumatic Brain Injury, Taylor and Francis Group, 2016).

쇼스타코비치가 왼쪽 측뇌 가까운 곳에 파편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영역의 손상은 근처에 있는 주요 청각 피질에 신경 가소성 메커니즘을 초래해 전에 없던 새로운 뇌 연결을 개발하고 피질 재조직을 겪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호세 메디나 린콘 등은 추측했다. 쇼스타코비치가 정말로 뇌에 파편을 가지고 있고 선율의 자동생성 증상을 보였다면, 이러한 가설이 높은 설명력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환자들은 왜 쇼스타코비치와 달리 부정적 증상들을 더 많이 보였을까. 쇼스타코비치는 뇌 손상 이전에 이미 최고 수준의 작곡가였고, 다른 이들은 음악 분야는 물론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었기에 차이가 발생한 것 아닐까. 뇌 손상은 가소성이라는 기적을 보이는데, 이것은 원래 없던 전문성과 능력을 발생시키기보다 원래 있던 전문성과 능력을 회복하거나 더 강화하는 양상인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의 사례가 비극속 축복이라면, 이류 작곡가들은 자신들의 뇌 안에 뭐라도 박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혹시라도 있을 뇌 손상이라는 재앙에서 축복을 받기 위해 어떤 분야에서나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41년 레닌그라드 근처에서 모든 건물을 불태우고 있는 독일군들. / 사진:위키피디아
인간의 뇌에 원래 없던 것들이 들어가서 어떤 증상을 낳게 한다는 생각은 최근의 과학에서 계속 확인하고 있고,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콘텐트에서는 매력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베르의 『개미』에 소개됐던 창형흡충의 알은 양의 간에서 번식하고, 양의 변을 섭취한 달팽이에게 들어간다. 달팽이의 몸 안에서 부화한 유충은 달팽이의 점액을 먹은 개미에게 침투한다. 개미 속 유충 100여 마리 중 한 마리는 개미의 신경계통에 침투해 그 행동을 조종한다. 이 개미 한 마리가 무리에서 벗어나 풀잎 끝으로 올라가 아침까지 매달려 있는다. 풀을 뜯는 양에게 먹히기를 기다리는 행위이다.

숙주를 자살하게 만드는 기생충의 이야기 중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쥐를 만드는 기생충 톡소포자충이 유명하다. 고양이의 내장 속에서 번식하는 이 기생충에 감염된 수컷 들쥐의 뇌는 고양이의 소변 냄새를 맡으면 발정 난 암컷 쥐의 냄새를 맡은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톡소포자충은 그것에 감염된 늑대를 용감하게 만들어 늑대 무리에서 리더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톡소포자충 인간 감염자들은 일반인보다 교통사고를 2.6배나 더 일으킨다. 이 기생충은 자살이나 조현병과 같은 정신병리적 현상과도 높은 연관성이 있다(최성우, 기생충이 인간 뇌를 조종할 수 있을까? 사이언스타임즈, 2019).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제임스 딘은 고양이를 키웠다고 하는데, 그의 고양이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2년 개봉한 재난 영화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 기생하는 연가시가 인간의 뇌를 조종해 집단 자살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최근 개봉한 드라마 [경성 크리처]는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모종의 생체 실험 끝에 만들어냈다는 가상의 괴물을 소재로 삼았다. 드라마 속 일본군 장교는 투명한 몸체에 작은 지렁이의 형상을 한 미지의 생명체 ‘나진’을 인간에게 투입, 괴물을 만들어낸다. 나진에 의해 뇌를 잠식당한 상태의 인간은 힘이 세지고 총에 맞아도 버티는 등 신체 능력이 매우 강화되며, 나진에 더해 특별한 뭔가를 더 주입받은 인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괴수가 된다. 이 괴수가 ‘경성 크리처’라는 설정이다.

톡소포자충이나 쇼스타코비치 뇌 속 이물질과 같은 이야기들은 미국 철학자 샘 해리스가 자신의 저서(『자유의지는 없다』, 시공사, 2013)에서 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인체에는 인간의 세포보다 박테리아가 더 많다. 인체 세포의 90%가 대장균 같은 세균이다. 인체에서 기능이 알려진 유전자 중 99%가 대장균에 속한다. 이런 유기체 중 많은 것이 필수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광의적으로 볼 때 이것들 역시 ‘당신’인 것이다. 당신은 이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가?”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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