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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체코/프라하 & 리토미슐(PRAHA & LITOMYŠL)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과 체코 음악의 해 2024 

주옥같은 도시 프라하는 수준 높은 음악적 분위기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일 년 내내 여러 가지 고품격 음악회가 체코 전역에서 풍성하게 열리는데, 올해는 다름 아닌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이자 10년마다 찾아오는 ‘체코 음악의 해(Year of Czech Music)’이다.

▎블타바강이 흐르는 프라하. 오른쪽 강변 건물 스메타나 박물관 앞에 스메타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 사진: 정태남
체코항공 편 비행기가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착륙하자 기내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이 마음을 휘어잡는다. 다름 아닌 스메타나의 연작교향시 [나의 조국](Má Vlast) 중 두 번째 곡인 ‘블타바강(Vltava)’이다. 이 곡만큼 프라하에 와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 또 있을까? 블타바강은 프라하 시가지를 관통하면서 독일의 엘베강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독일식 이름 몰다우(Moldau)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수준 높은 음악의 도시


스메타나의 조국 체코는 슬라브 민족 국가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독일,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따라서 독일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동유럽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체코는 약 1000년 전에 블타바강변의 언덕 위에 세워진 프라하를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16세기에 유럽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 후에는 약 300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서 독일권에 완전히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야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명으로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고, 그 후 나치 독일의 점령, 공산주의,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혁명 등을 거친 다음에는 1993년에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조용히 갈라지는 등 수차례의 격동기를 거쳤다. 이러한 격동기 속에서도 수도 프라하는 다행히도 파괴되지 않고 아름다운 옛 시가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주옥같은 도시 프라하는 수준 높은 음악적 분위기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사실 프라하는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보다 더 사랑했을 정도로 수준 높은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일 년 내내 여러 가지 고품격 음악회가 루돌피눔, 시민회관의 스메타나홀, 프라하 국립오페라극장, 국립극장 등 프라하의 주요 공연장을 중심으로 체코 전역에서 풍성하게 열릴 예정이다. 2024년은 다름 아닌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 탄생 200주년이자 10년마다 찾아오는 ‘체코 음악의 해(Year of Czech Music)’이기 때문이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


▎체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체코 최고의 음악 전당 루돌피눔의 드보르자크 홀. / 사진: 정태남
‘체코 음악의 아버지’는 단연 스메타나이다. 그의 고향은 수도 프라하에서 약 160㎞ 동쪽에 위치한 리토미슐(Litomyšl)로, 인구가 1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고 아담한 도시이다. 한때 교역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의 아름다운 옛 시가지 모습은 오늘날에도 잘 보존되어 있는데, 중심 광장은 리토미슐이 낳은 가장 위대한 아들에게 바쳐져 ‘스메타나 광장’이라고 불린다. 이 광장에서 약 500m 동쪽에 있는 언덕 위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리토미슐 성이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재는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극장인데, 관객석은 150석 정도로 아담한 크기이다.

이 극장에서 1830년 10월, 6살짜리 꼬마가 피아노 연주회를 열어 초대된 귀빈들을 놀라게 했다. 이 신동이 바로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였다. 그의 아버지 프란티셰크 스메타나는 리토미슐 성에 딸린 맥주 양조장 관리인이었다. 그는 리토미슐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도시 흐랄레쯔 크랄로베(Hradec Králové) 출신으로 일찌감치 맥주 사업에 손을 댔다가 1823년에 이 양조장으로 오게 되었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양조장 건물과 붙어 있는 집에서 1824년 3월 2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현악4중주 연주도 했기 때문에 어린 스메타나는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하에서 체코의 공용어는 독일어였기 때문에 스메타나의 아버지는 체코어를 말하긴 했지만 영업할 때나 사람들과 어울릴 때만 썼다.

스메타나는 15세 때인 1839년에 학교를 프라하로 옮김으로써 더 넓은 세상과 접하게 되었고, 프라하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음악의 길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 후 1848년에 프라하에서는 민족주의에 심취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오스트리아 정부군과 맞서 항전을 벌였는데 이 봉기에 24세 스메타나도 참가했다. 하지만 그는 오스트리아의 무자비한 탄압만 몸소 겪었을 뿐이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체코 사람임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는 음악에 체코 민족의 혼을 불어넣으면서 체코 음악을 좀 더 근대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던 체코인이었기 때문에 30세가 넘어서야 체코어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으니 그의 체코어 이해력이나 구사력은 한계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중부 유럽 음악의 주류에 뿌리를 두고 체코의 역사, 영웅담, 전설, 민속 등과 같은 요소를 첨가하거나 체코의 풍경을 표제로 하는 등 체코 음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동상. / 사진: 정태남
그의 대표작은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오페라 [팔려간 신부], 현악4중주 [나의 삶으로부터] 등이다. 그의 음악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체코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으며 그들 마음속에 체코 민족주의 운동의 불길이 타오르게 했다. 즉, 그는 체코 국민주의 음악의 선구자였다. 당시 유럽 음악계의 황제 리스트는 그의 음악적 능력을 인정하고는 정신적·물질적으로 적극 후원했으며 그를 ‘순수한 체코의 정신을 타고난 작곡가이며 신의 은총을 받은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또 하나의 기둥, 드보르자크


▎스메타나의 고향 리토미슐의 성. / 사진: 정태남
체코 음악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 1841~1904)이다. 스메타나보다 17세 적은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가 다져놓은 토양 위에 체코 음악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발전시킨 주역이다. 사실 드보르자크처럼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곡들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명작인 [신세계 교향곡], 오페라 [루살카], [첼로협주곡], [슬라브 춤곡], [유모레스크], [어머니가 가르치신 노래] 등 대곡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깊게 스며들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독일 지휘자 한스 뷜로는 드보르자크를 브람스에 버금가는 신이 내린 작곡가라고 칭송했다.

공교롭게도 이 두 거장이 태어난 해나 서거한 해는 4로 끝나는 해이다. 그러니까 올해는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이자 서거 140주년이며, 드보르자크 서거 120주년인 것이다. 또 이 두 사람의 명성을 잇는 체코 음악가 레오시 야나체크(Leos Janacek, 1854~1928)의 탄생 170주년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체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이 명칭으로 대중 앞에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1894년이니까 이 오케스트라도 올해 130주년을 맞았다. 체코는 스메타나 탄생 100주년이 되던 1924년부터 10년마다 4로 끝나는 해를 ‘체코 음악의 해’로 지정하여 대대적인 음악의 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드보르자크의 묘소. 올해는 그의 서거 120주년이다. / 사진: 정태남
모차르트가 사랑한 프라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특히 2024년에 프라하를 방문하는 것은 다른 해보다 훨씬 더 의미가 깊지 않을까? 한편 프라하뿐 아니라 스메타나의 고향 리토미슐에서도 그의 탄생 200주년과 서거 14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음악제가 대대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 정태남 -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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