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여행(51) 과(過)를 줄이는 삶의 지혜 

 

뭐든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과식, 과속, 과음, 과욕, 과격 같은 말들이 하나같이 부정적 인상을 풍기는 이유다. 올해부터 ‘과(過)’를 줄이는 지혜를 되새겨보면 어떨까.

▎샌타모니카 해변 상징물인 ‘샌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가 태평양의 석양과 어우러진 광경.
20대 후반부터 수출 세일즈를 위해 미국·유럽·중동·동남아 등 전 세계로 샘플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중 미국에서는 한국인 교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LA)를 종종 찾곤 했다.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에 끼어 밤을 지새우며 10시간 넘게 비행한 끝에 LA 공항에 내리면, 16~17시간의 시차(time difference)와 더불어 긴 여행에 녹초가 되곤 했다.

미국 서부 지역인 LA는 방대한 면적임에도 기차·전철·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불편해 꼭 운전을 하고 다녀야만 했다. 낯선 공항에 내리면 누구 하나 안내하는 사람도 픽업해줄 사람도 없었다. 장기 출장을 위해서 커다란 옷 가방과 샘플 가방, 서류 가방(briefcase)을 낑낑거리면서 챙겼다. 공항을 빙빙 도는 렌터카 회사의 셔틀버스를 타고 차량을 대여하러 갔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도 렌터카가 익숙하고, 외국 공항에서도 인터넷으로 간단히 차량 대여 예약을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셔틀버스에 짐을 싣고 드넓게 펼쳐진 렌터카 회사 주차장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 긴 줄을 기다려서 수속해야만 했다. 더욱이 GPS도 없던 시절이었다. 잘 인쇄된 교통지도를 한참이나 연구한 후에야 직접 운전해 호텔을 찾아갈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암달러 시장이 있을 정도로 달러가 귀했다. 나 역시 비용을 아끼려고 주로 공항 근처 호텔에서 숙박했다. 시내 호텔보다 숙박비가 저렴한 반면 시설은 좋고 편했다. 운전할 때도 주차장이 넓어서 편했고, 단순히 통과하는(transit) 여행을 할 때는 공항과 연결해주는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센추리시티의 고층 건물 전경.
젊은 시절이었으니 힘든 줄도 모르고 광대한 캘리포니아 지역을 운전하고 다니면서 샘플을 펼쳐놓고 세일즈했다. 그때 고생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 경험한 것이 30년 이상 최고경영자(CEO)로 일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즐거웠던 것은 계속 새로운 지역을 방문해 생경한 문물을 수없이 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평소 궁금해했던 호기심이 충족될 때마다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미국 부촌의 상징, 베벌리힐스


▎‘life is beautiful’ 조각상이 아름답게 서 있는 로데오 드라이브의 보행자 거리.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는 젊은이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큰 부자들이 많이 사는 베벌리힐스(Beverly Hills)를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며 돌아보곤 했다.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팜트리 가로수 옆으로 거대한 저택들이 자리한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저리도 큰 부자가 돼 잘살고 있고, 왜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가?’ 운전하는 내내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베벌리힐스를 처음 찾은 때는 20대였다. 이후에도 여러 번 LA를 방문했는데, 종종 그곳에 가보곤 했다. 젊은 시절에는 출장 경비를 아끼려고 주로 공항 근처에서 숙박했지만, 세월이 많이 지나서 이제는 베벌리힐스 입구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여유롭게 마을을 돌아본다. 베벌리힐스는 캘리포니아주 남서부 LA시에 둘러싸여 있으나, 시와는 완전히 별개의 행정구역이다. 독자 경찰을 운영할 정도로 재정이 풍부해 높은 수준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고급 부티크 쇼핑으로 관광 명소가 된 로데오 드라이브가 있고, 영화산업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와도 인접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로 유명한 로데오 드라이브를 이제는 자동차가 아닌 도보로 이동하며 여유롭게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윈도에 전시된 제품을 보면서 산책했다.

마을 여기저기에 있는 예쁜 식당과 바에서 식사도 하면서 돌아보던 중 재미있는 조각을 발견했다. 로데오 드라이브의 보행자 거리에 빨간색 필기체로 ‘life is beautiful’이라고 써 있는 글씨 조각이다. 그 옆에는 ‘사람이 사진 찍는 모습의 조각’이 함께 설치돼 있었다. 그래! 삶은 아름답다. ‘life is beautiful’에 공감하며 ‘젊어서 고생한 후, 나이 들어가면서 여유롭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아름답다’고 혼잣말을 해보았다.


▎베벌리힐스의 고급 호텔 중 하나인 포시즌스 호텔 로비.
식당으로 향하던 다른 쪽 길에서 또 다른 글씨 조각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핑크색 필기체로 ‘Beverly Hills beautiful’이라고 써놓았다. 사진 찍는 사람 조각은 없고 글씨 조각만 서 있다. 한 블록 너머에는 관청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는데, 아마도 베벌리힐스 주민센터(?)라도 되는지, 마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자랑하려 조각을 세워 놓은 모양이다. 이번에도 ‘그래, 베벌리힐스는 아름다워’라는 공감의 독백으로 조각을 감상하며 지나쳤다. 동시에 ‘Seoul is Beautiful’ 또 ‘Life is Beautiful’이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미국을 처음 찾은 건 지난 1978년이다. 당시 첫 방문지가 LA였다. 낯선 곳을 처음 찾은 젊은이의 호기심은 자동차를 LA 서쪽 끝에 자리한 태평양으로 이끌었다. 거대한 태평양을 보기 위해서 샌타모니카 블로버드(Santa Monica Boulevard)로 드라이브하면서 바닷가로 향했다. 서쪽 태평양 연안의 저녁노을이 아름답다고 들었던 터였다. 한창 차를 몰던 중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면서 샌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Beach)가 나타났다.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너무 아름다운 풍광이다. 멀리 한국에서 출장 와 드라이브를 하며 바쁘고 고달픈 일정을 치르면서도 이 아름다운 해변을 보는 순간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멋진 야자수가 늘어서 있고 끝없이 펼쳐진 모래 해변 뒤로 거대한 태평양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샌타모니카 비치에 대한 이미지는 처음 방문했을 때나 이후 셀 수 없이 찾았을 때나 똑같은 감상이다. 매번 설레는 마음으로 해변을 찾곤 한다. 어떤 때는 일행과 같이 샌타모니카 해변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잠시 후 여러분은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할 것”이라고 예언하듯 말했다. 잠시 후 드넓은 해변과 태평양이 나타나는 순간 모든 일행이 어김없이 “와!” 하는 함성과 소리를 질렀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특히 태평양의 수평선을 넘어가는 저녁노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바다에 비친 긴 황금빛 저녁노을은 참으로 장관이다. 승리, 즉 빅토리를 상징하는 ‘V’자를 만든 손가락 사이에 해를 놓으면, 떨어지는 석양을 아쉽게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수평선 위로 넘어가는 보름달처럼 둥근 황금빛 석양을 보며 아름다운 해변을 걷고 또 걸었다.

과(過)를 줄이는 청룡의 해


▎베벌리힐스 입구 언덕에 자리한 예쁜 식당.
‘과하다’의 어근인 ‘과(過)’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뜻이다. 평생 살아오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후회가 밀려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과(過) 자(字)가 사전에 기록돼 있는지 궁금했다. 종종 사전을 찾아 그 뜻을 음미해보고 싶던 차에, 국어사전을 들춰 과(過) 자와 함께하는 단어를 거의 모두 찾아 그 의미와 일상생활을 연결해봤다.

평소에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이 먹는 ‘과식(過食)’이다. 오래전에 지인들과 임진강에서 나는 뱀장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친구도 만날 겸 임진강 근처 유명한 장어집을 찾았다. 반주도 함께 기울이며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코스를 칼국수로 마감했다. 몸에 좋다고 장어를 과식한 데다가 칼국수까지 곁들인 것이 문제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배 속에서 칼국수가 서서히 불어올라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평생 기억에 남는 과식이다. 그 이후로는 지나친 과식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또 주변에서 흔히 목격되는 것이 운전할 때 너무 빨리 달리는 ‘과속(過速)’이다.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과속에서 비롯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과속만 하지 않으면 웬만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에 스키장을 자주 찾는데, 과속으로 질주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자동차나 스키를 타다가 과속해 사고를 내면 자기는 물론이고 애꿎은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하는 불행을 초래한다. 과속을 막으려면 기초질서에 대한 반복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동차든 스키든 마구 과속하는 사람은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일류 시민 자격이 부족한 이들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은 물론 주변의 안전까지도 배려하는 시민 정신이 절실하다.


▎샌타모니카 해변에서 바라본 태평양의 석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욕심이 지나친 ‘과욕(過慾)’은 아마도 과(過) 자가 주는 교훈 중 가장 큰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력과 능력이 부족한데도 당장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과욕을 부리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젊은 시절, 후배들 중 능력이 안 되는데 마음만 앞서 ‘빨리 돈 벌겠다’며 길을 떠난 이들을 보곤 했다. 20년 정도 후에 관찰해보니 안타깝게도 오히려 남보다 뒤떨어진 삶을 사는 이가 많았다. 과욕해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것도 성공 확률을 가져올 가능성이 결코 높지 않다. 사치가 낭비를 늘려 결국은 어려운 삶의 길을 가는 주변 사람을 목격하곤 한다.

뉴스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람이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는 소식을 보면 돈이나 권력에 대한 과욕 때문인 경우가 많다. 권력과 돈, 명예에 관한 과욕이 탐욕이 되어 실패하는 길을 걷는 사람들의 후회담을 듣곤 한다. 욕심을 잘 관리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이야기하면 꼰대의 잔소리로 들릴까?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과음(過飮)’은 건강을 넘어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주변에서 유난히 술을 좋아하는 선배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의기가 장해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고 대단히 호방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과음의 결과로 건강이 상해 결국은 훌륭한 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크게 펼치지 못하고 아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적당한 음주는 건강과 사교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과음은 결국 건강상 문제를 야기한다. 건강 없는 인생이 행복할 리 있겠는가.

정도가 지나치게 격렬해서 ‘과격(過激)’해지면 상황이 불안정해진다. 개인이나 집단이 과격한 행동을 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공동의 행복이 깨진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원할 뿐이다. 해외 뉴스를 보다가 과격한 집단행동으로 나라가 피폐해지고 세계평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목격한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과격 행동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뜨거워지는 ‘과열(過熱)’도 있다. 부엌에서 요리하려 올려놓은 냄비가 한눈 파는 사이에 과열되면 화재가 나기 쉽다. 올해 4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진영 싸움이 과열되면 국가나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으로 지속 발전하기 위한 길목에서 과(過)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지나치게 믿는 과신(過信), 몸이 고달플 정도로 지나치게 일하는 과로(過勞), 감각이나 감정이 지나치게 예민한 과민(過敏), 한곳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과밀(過密), 부모가 어린아이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과보호(過保護), 과오(過誤), 과잉(過剩), 과적(過積), 과찬(過讚), 과중(過重), 과전압(過電壓), 과체중(過體重) 등 여러 가지 교훈적인 가치들이 쏟아진다. 과(過) 자에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 있어 평생 긍정을 추구해온 사람에게는 부담감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밝고 긍정적인 멋진 삶과 사회 분위기를 위해 상대적인 개념을 검토해본 것도 나름 의미가 있으리라.

올해 청룡의 해부터 과(過)를 줄여보자.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미래를 개척해나가자!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403호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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