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우주산업 매출액은 줄곧 2조원대에 머물렀다. 그만큼 산업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업계에서는 탄탄한 산업 생태계 부재에서 원인을 찾는다. 위성·발사체 외 다양한 분야의 플레이어를 포괄하지 못하는 생태계는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뉴스페이스 시대 진입을 앞두고 한국의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 사진:EPA-YONH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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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발사되자 전 국민이 환호했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 G7에 들어갔음을 선언하는 쾌거”라며 “자체 제작한 위성을 자체 제작한 발사체에 탑재해 우주 궤도에 올린 국가는 미국과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뿐”이라고 자평했다. 이번 발사체 운영에는 민간기업도 참여했다. 한국이 뉴스페이스 시대(민간이 우주산업을 이끄는 시대)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호평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 경남 사천에 우주항공청이 개청됐다.반면 국내 우주산업에 대한 냉철한 진단도 잇달았다. 지난 2024년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원장은 “우리나라 (우주산업) 계획의 특징은 선언적이라는 점인데 선언을 한 뒤 챙기질 않는다”며 “2017년부터 아르테미스(미국의 달 탐사 계획) 참여에 대한 얘기가 나왔지만 아직 실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해 2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도 <우주항공 중소기업 전략기술 로드맵> 보고서에서 ‘국내 우주산업 생태계 기반은 미흡하며, 우주산업 선진국을 중심으로 핵심소재부품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핵심소재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비판의 홍수 속에서 한국이 ‘세계 우주 7대 강국’이라는 주장에 의구심이 나오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우주항공산업 총수출액은 약 2973억 달러(약 430조3000억원)로 집계됐다. 국가별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이 41.9%로 가장 컸고 프랑스(12.8%), 독일(11.5%), 영국(5%), 캐나다(4%) 순이었다. 한국은 0.8%를 차지하며 세계 14위에 그쳤다. 미국과의 격차는 50배에 달한다.한국 우주산업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2020년 2조원대로 내려앉은 우주산업 매출액은 3조원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대희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대전혁신센터) 센터장은 포브스코리아 인터뷰에서 “매출액이 2조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매출 바운더리’가 고정돼 있다는 뜻”이라며 “정부의 관심이 위성·발사체 개발에 쏠리다 보니 푸드·바이오·소프트웨어·무인시스템·수질 등 다양한 분야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 생태계 밸류 체인이 구축되지 못하면 산업 전체 파이가 커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익명을 요구한 한 위성 시스템 스타트업 대표도 산업 생태계 형성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우주산업은 미래 전략 분야로 꼽히지만 생태계 발전은 더딘 상황”이라며 “정부와 거대 기업 위주로 가다 보니 하위 생태계가 형성되기 힘들다”고 직언했다. 그러면서 “국내 우주 스타트업은 (시장에) 나설 기회도 없고 업체 간 토론의 장도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정부는 우주산업 생태계 구축과 함께 참여 기업·기관의 원활한 교류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우주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면 결국 답은 ‘생태계’에 있다. 생태계의 선순환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 생태계의 부재는 아이러니한 산업구조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산업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는 늘었는데 오히려 전체 매출액은 감소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 우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주산업 참여자는 2017년 4517명에서 2022년에는 5808명으로 늘었다. 마찬가지로 동 기간 참여 기관(기업·기관, 대학 포함) 수도 404곳에서 528곳으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우주산업 총매출액은 3조3931억원에서 2조9519억원으로 줄었다. 이것이 한국 우주산업의 현주소다.
스페이스 헤리티지 확보가 급선무한국 우주산업은 대전과 경남 사천, 전남 고흥을 중심으로 삼각 편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 대전광역시는 정부와 산학연의 손발이 잘 맞는다는 평이다. 2024년 12월 11일 대전시 산하 공공기관인 대전테크노파크와 대전혁신센터는 산업계 종사자 간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기술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스페이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를 발족했다. 이날 스페이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첫 모임을 갖고 생태계의 건강한 선순환과 밸류 체인 구축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행사에 참석한 장호종 대전 경제과학부시장은 아이러니한 우주산업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스페이스 헤리티지(Space Heritage·우주 환경 검증 이력)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공과대학 융복합연구센터 교수 출신인 장 부시장은 “최근 우주 스타트업이 늘고 있지만 스페이스 헤리티지가 부족해 아이디어와 기술을 본격적인 매출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기업 일부가 실력이 검증된 경력직만 채용하고 인턴이나 신입사원은 뽑지 않는 행태와 비슷한 맥락이다. 장 부시장은 “우주 스타트업이 헤리티지를 쌓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이날 만난 박 센터장도 국내 우주산업을 우려했다. 그는 “스타트업들은 위성체와 발사체에 집중하는 국내 상황에 의존하지 말고 글로벌 파트너십 결성에 나서야 한다”며 “전체 산업 매출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대기업은 기존 관행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시장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또 박 센터장은 융복합 기술이 요구되는 우주산업에서 다양한 분야의 협업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는 “협업 파트너를 국내에서만 찾지 말고 해외로 시각을 넓혀 스페이스 헤리티지를 쌓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