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계 7대 우주 강국’이란 포장지를 뜯어낼 때다. 곽신웅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사는 국내 우주산업의 실상을 날카롭게 직시했다. 국민대 기계공학부 교수이자 국방우주학회장인 곽 이사는 국내 대표적 우주 전문가로 꼽힌다. 그의 진단과 지적에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다.
▎곽신웅 항우연 이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기업은 망한다”고 당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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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내놓은 <2023 우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우주산업 참여 기업 중 종사자 100인 미만 기업이 전체의 79%가량을 차지한다. 세부적으로 10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 비중은 38%, 10인 미만 기업 비중은 26.2%다. 중소기업·스타트업이 대부분이란 뜻이다. 문제는 종사자 100인 미만 기업의 총매출액이 산업 전체에서 27.7%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통계의 원인과 배경을 묻고자, 2024년 12월 9일 국민대에서 곽신웅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이사를 만났다.“연구만을 위한 연구는 한국에 사치입니다.” 그는 한국 우주산업에 이같이 일갈했다. 그는 “우주 연구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기업 중 연구개발(R&D)결과를 사업화하지 못하는 곳이 상당하다”며 “이른바 ‘우주경제(Space Economy)’라는 개념보다 ‘탐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주산업 성장세에 편승하고자 기술이 미비해도 일단 진입하는 기업도 있다”며 “이런 경우 자생력 없이 정부 사업 수주로 연명한다”고 비판했다. 곽 이사는 우주산업 생태계 부재로 전체 파이가 작은 것도 문제로 꼽았다. 한국 우주산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곽 이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실 직시가 필요한 한국 우주산업한국은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 불린다. 그런데 통계는 정반대다.지난 2023년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 누리호가 3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세계 7대 우주 강국 반열에 올랐다고들 말한다. 자국 순수 기술로 발사체를 개발한 순서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러시아, 미국, EU, 중국, 인도, 일본, 한국 순이지만 유럽연합을 개별국가로 분리하면 한국은 10위 정도다. 또 국가 간 기술 격차도 상당하다. 한국은 우주산업 파이가 작을 수밖에 없다. 뉴스페이스 시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 우주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한국은 기술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잡지 못하고 속도전에서 뒤처졌다. 그동안 글로벌 시장에 대응할 만한 자체 기술을 충분히 발굴·개발하지도 못했다. 다시 말해 자생력이 부족하다. 둘째, 다수 기업이 글로벌 수요와 국내 수요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여러 기업이 내수 기반이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거나 독자적인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등 사업 방향을 명확하게 세우지 못한 채 방황한다. 넷째, 국산화된 기술이 산업 전반에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다수 기업에 과감하게 기술을 이전해 전체 파이를 키워야 한다. 마지막은 한정된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산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책 연구소는 이것저것 일을 벌이지 말고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
우주항공청은 글로벌 트렌드에 재빨리 따라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트렌드에 치우치면 소외되는 분야가 생기지 않을까.물론 혁신과 창의라는 본질이 트렌드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글로벌 트렌드라도 잘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우주기술 선진국과 한국의 격차는 상당하다. 전 세계 우주산업에서 후발 주자인 한국은 ‘창조적 모방’으로 트렌드를 캐치업(catch-up)해야 한다. 어떻게든 속도감 있게 성장해야 한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비롯한 뿌리기술 분야가 소외될까 우려할 수도 있는데, 과기부는 이를 별도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인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사업’은 우주 핵심 부품 개발에 초점을 둔다.
어떤 트렌드가 한국에 유리한 편인가.발사체와 위성 분야다. 한국은 발사체·위성 제작과 지상장비 개발 능력이 우수하다. 발사체 재사용 기술을 확보하면 발사 단가를 낮춰 우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더 나아가 발사체 대형화 기술까지 확보하면 우주정거장 구축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우주 관광 사업으로 이어진다. 위성 분야에선 기술 고도화로 위성 제작비용을 낮추면 위성 수출 사업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특히 저궤도 위성에서 강점을 보이는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정지궤도 환경·해양 관측위성을 개발했다. 통신위성과 SAR(영상레이더) 위성 제작에서도 한국이 기술 우위를 확보했다.
트렌드와 국내 수요 간 교집합이 있다면.위성 제작 기술을 고도화하고 다양한 위성 관련 기술에 나서는 것이다. 전 세계는 위성 고도를 더욱 낮춰 통신 지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러한 기술은 국내 수요도 높다. 저궤도 관측위성(정찰위성) 분야와 저궤도 위성통신 분야는 국방 우주와 우주 안보에 필수적이다. 저궤도 위성 제작을 비롯해 위성통신과 위성방송, 위성항법, 위성수신 안테나 분야를 교집합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끝으로 국내 우주 기업에 조언한다면.연구개발 결과를 사업화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특히 중소기업·스타트업은 우주 아이디어에 산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투 트랙 전략을 제안한다. 정부 사업(국책과제)에 참여해 수익을 창출하되, 혁신적 아이디어 개발도 꾸준히 이어가는 전략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사업화를 추진하길 바란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