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부품이라고 다 같지 않다. ‘우주급’ 부품과 이보다 부족한 ‘우주용’ 부품 등 다양한 부품이 우주산업에 쓰인다. 하지만 이 업체의 신뢰성·적합성 시험을 거치면 우주급 부품으로 인정받는다. 8년 차 우주 스타트업 ‘엠아이디’를 이끄는 정성근 대표를 만났다.
▎연구원 출신인 정성근 엠아이디 대표는 사업 다각화의 귀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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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없는 기계는 없다. 수많은 작은 부품이 모여 기계 한 대를 만든다. 기계의 완성도는 부품의 품질에 달려 있는 셈이다. 부품을 상용화하기에 앞서 거듭된 신뢰성·적합성·안전성 시험을 거치는 이유다. 우주로 향하는 발사체와 위성체의 부품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주로 쏘아 올린 위성체는 부품 A/S가 불가능하기에 더 높은 신뢰성이 요구된다. 아무리 거대한 위성체가 눈길을 끌어도 이면에는 완벽한 부품을 위한 누군가의 노력이 스며 있다. 그 누군가를 만나고자 대전으로 향했다.2018년 12월 출발한 우주 스타트업 엠아이디(MID)는 위성체를 비롯한 우주 제품에 들어가는 소자·부품을 개발·제조한다. 설립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우주 소자·부품에 대한 관심도는 낮은 편이었다. 정성근(54) 엠아이디 대표는 “우주산업이 인공위성 개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부품을 다뤄보겠다고 나서는 업체는 거의 없었다”며 “하지만 국산 부품이 신뢰성만 확보한다면 외산과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소 연구원과 위성 제조기업 쎄트렉아이 수석연구원 등을 역임한 정 대표가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유다.하지만 국내 우주산업의 움직임은 더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국산 소자(독립된 고유 기능을 가진 부품)·부품 우주검증지원사업’에 착수한 건 지난 2024년 3월.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서야 우주항공청과 산업통상자원부, 방위사업청은 민군 공통 우주산업 소자·부품 국산화와 국내 부품기업 육성, 부품 수출 지원 등을 위해 뭉쳤다. 유관 정부 기관은 우선 우주산업 표준·인증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정부 시선에서 우주 부품산업은 여전히 미개척 분야와 다름없다.엠아이디는 국내에서 우주 부품 분야 뉴스페이스 시대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정 대표는 우주산업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아 엠아이디를 7년 가까이 이끌었다. 2023년 기록한 연 매출은 약 51억2000만원. 연구원 출신인 그는 기업가적 기질도 갖췄다. 그는 “창업 초반 사업다각화 전략을 구상한 덕분에 영업이익도 흑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우주기업 ‘옥석 가리기’에 들어가면 엠아이디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024년 12월 10일 대전에 자리한 엠아이디 본사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그는 우주 스타트업의 성장 비결과 사업다각화 전략, 궁극적인 비전, 창업 준비생을 위한 조언 등을 유감없이 털어놨다.
우주 헤리티지 축적해 수출 판로 개척
▎정성근 엠아이디 대표는 우주 메모리 반도체 강자가 되길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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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아이디의 사업 분야는 크게 부품 R&D 부문과 부품 서비스(솔루션) 부문으로 나뉜다. 서비스 부문으로 수익성을 잡고 여기에서 발생한 이익을 부품 R&D에 투자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다. 서비스 부문은 ‘우주급 부품 중개·조달 사업(CPPA·Coordinated Parts Procurement Agent)’과 ‘우주제품 보증 컨설팅 사업’으로 구성된다. 정 대표는 “주된 캐시카우는 CPPA 사업”이라며 “그동안 해외에 의존하던 CPPA 영역을 엠아이디가 과감하게 시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CPPA 사업과 컨설팅 사업이 상호 연계되고 그 과정에서 엠아이디 자체 개발 부품도 소개할 수 있어 사업 간 시너지가 톡톡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현재 주력 사업인 CPPA와 관련해 정 대표는 “엠아이디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난도 CPPA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단순히 부품 중개·조달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엠아이디는 업스크리닝(Up-screening) 시험 기술로 동종 업계에서 차별성을 확보했다. 업스크리닝은 부품이 우주의 방사선 환경에서 내구성을 가지는 ‘우주급 부품’인지 판별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을 통과해야 우주 환경에 적합한 부품으로 인정받는다. 이 외에도 엠아이디는 진동과 충격, 급격한 온도 변화 등에 적합한 부품을 판별하는 여러 신뢰성 시험을 수행한다.정 대표는 “우주 부품은 크게 우주급 EEE(전자기계·Electrical, Electronic, and Electromechanical) 부품과 우주용 부품, 커머셜 부품(일반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휴대폰에 쓰이는 부품) 등으로 구분된다”며 “표준규격을 모두 만족하는 우주급 부품이 인공위성에 탑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공위성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부품의 규격과 품질, 단가, 생산 기간도 달라진다”며 “개별 상황에 부합하는 최적의 부품을 컨설팅하는 것도 엠아이디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CPPA 수요는 급증하는 추세다. 2023년 엠아이디는 전년(약 22억3000만원)과 비교해 두 배 넘는 매출액을 달성했다. 2024년에는 매출액 70여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정 대표는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우주급 부품은 부족한 편”이라며 “엔드 유저가 요구하는 부품 단가와 납기일을 맞추기는 다소 어렵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때 업스크리닝을 거쳐 우주용 또는 커머셜 부품이 우주급으로 인정받으면 신뢰성을 갖춘 저가 부품을 다량 확보할 수 있다. 업스크리닝 시험 기술을 갖춘 엠아이디가 순항하는 이유다.엠아이디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고객사도 여럿 확보했다. 국내 고객사로는 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기업 계열사 등이 있으며 싱가포르의 국가연구기관 DSO와 최대 방산기업 ST Engineering 등도 엠아이디의 주요 고객사다. 정 대표는 “기술 측면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글로벌 우주업계는 부품 품질과 성능을 쉽게 믿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한다”며 “부품이 실사용된 이력이 많을수록, 이른바 ‘우주 헤리티지(Space Heritage)’가 쌓일수록 신뢰도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국인 한국에서 만든 부품은 고품질을 자랑한다”며 “국산 부품의 해외 수출 물꼬를 트려면 국내에서 국산 부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우주 헤리티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우주제품 보증 컨설팅 사업’은 한 대기업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당시 제품보증 엔지니어는 상당히 귀했다.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린 대기업으로선 각 업체를 컨설팅할 여력이 없었다. 정 대표는 “여러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일괄적인 컨설팅을 하게 되면 개별 업체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할 수가 없다”며 “한 대기업이 자사 협력업체에 맞춤형 컨설팅 서비스와 제품보증 가이드라인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사업이 본격화됐다”고 회고했다. 이후 엠아이디는 대기업 협력업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중소기업·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우주제품·위성제품 보증 자문에 응하고 있다.
한국의 독보적인 강점 살려야정 대표는 국내 우주산업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국내 우주산업의 대다수 플레이어가 인공위성을 비롯한 시스템 개발에 전념하고 있어요. 덕분에 인공위성 개발에 대한 기술적 성숙도는 상당히 높아졌죠. 그런데 여전히 위성에만 집중하는 기업이 많아요. 이제는 한국의 독보적인 강점을 살려 차별성을 키워나가야 할 때입니다. 한국은 IT(정보기술) 강국이자 반도체 강국이에요. 우주산업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 인프라를 상당 부분 갖췄습니다. 여기에 우주기술을 접목하면 국내 우주산업은 큰 폭으로 발전할 겁니다.”이러한 이유로 엠아이디는 창업 초반부터 위성에 탑재될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힘쓰고 있다. 엠아이디가 개발 중인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두 가지다. 우주급 세라믹 밀폐형 패키지 메모리(SRAM)와 우주용 대용량 메모리 모듈(NAND) 등이다. SRAM은 진동과 충격, 열, 방사선에 높은 내구성을 갖췄다는 평이다. 정 대표는 “2025년 상반기 SRAM 개발이 완료되면 2026년쯤 항우연의 우주 소자·부품 검증 위성에 탑재될 예정”이라며 “이렇게 헤리티지가 쌓이면 본격적으로 SRAM을 수출할 계획”이라고 했다.정 대표가 구상한 미래 성장 전략과 청사진은 명확했다. 엠아이디의 효자인 CPPA 사업을 강화해 국내에서 선도적인 우주 소자·부품 토털 솔루션 제공업체로 성장한 다음, 우주급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로 우뚝 선다. 이후에는 부품 솔루션 기술을 시스템화해 최종적으로 우주 부품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사명 엠아이디(MID)는 ‘미들, 허브, 중심’이라는 뜻”이라며 “고객사가 손쉽게 가장 적합한 부품을 찾아 구입할 수 있는 플랫폼을 꿈꾼다”고 포부를 밝혔다.“개별 부품의 단가와 생산량, 납기일, 신뢰성·적합성시험 여부 등 부품과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DB화할 계획입니다. CPPA 사업과 제품보증 컨설팅 사업 등으로 부품 데이터는 더욱더 늘어날 겁니다. 엠아이디가 이를 정제해 플랫폼화한다면 고객 접근성과 구매 편의성이 높아지겠죠. 이같이 안정적인 부품 공급망이 구축되면 부품의 가격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기술 트렌드에 따라 많은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우주산업에 진입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창업 8년 차인 엠아이디는 성장 궤도에 안착한 국내 우주 스타트업 중 하나다. 정 대표는 우주산업 진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창업 경험에서 우러나온 당부를 남겼다. 그는 “창업에 앞서 우주 특화 지식과 기술을 배우려면 우선 우주 전문업체에서 직접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우주 특화 기술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야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기업에서 학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를 짚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끈기’입니다. 어떤 분야든 기본적으로 끈기가 중요하겠지만 우주산업의 경우 특히 중도 포기가 빈번합니다. 아무리 우주에 관심이 있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엔지니어도 개발만 하진 않습니다. 로그도 남겨야 하고 데이터분석도 해야 하고 일목요연하게 문서도 작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련의 작업을 못 견뎌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죠. 단 하나의 성과를 거두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견디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래야 하고요.”- 대전=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