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미국 현대음악의 뿌리, 찰스 아이브스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1874~1954)는 대표적인 미국 현대음악가다. 그의 삶과 작품 속에 녹아든 미국적 가치를 확인해보자.

▎1947년경 73살의 찰스 아이브스.
찰스 아이브스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예일대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코네티컷은 매사추세츠 등 다섯 개 주와 함께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뉴잉글랜드 지역을 구성한다. 보스턴, 뉴헤이븐 등 미국에서 역사 깊은 도시들과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인구 1500만 명이 사는 이 작은 지역에 있다. 뉴잉글랜드 서쪽에는 GDP가 미국 내에서 3위인 뉴욕주가 있다.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주에서 태어났는데, 뉴욕주는 트럼프를 포함해 미국 대통령을 8명이나 배출한 지역이다. 버지니아주에서도 8명, 오하이오주는 6명, 매사추세츠주에서는 4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다(List of US Presidents by Home State 2024, World Population Review). 매사추세츠주는 상기한 뉴잉글랜드 지역의 주이고 버지니아주와 오하이오주도 미국 동북부에 있다. GDP가 미국 내에서 1위인 서부의 캘리포니아주 출신 대통령이 3명인 것을 고려하면, 미국 동북부는 정치 명문 지역일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잉글랜드에서 온 초기 정착민들의 문화적·종교적·정치적 유산이 이 지역에 잘 전해졌다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뉴잉글랜드 지역은 특히 교육과 정치의 영역에서 미국의 메카인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미국의 주류 지역 중 하나인 것도 같다.

예일대를 졸업한 아이브스는 20대 중반인 1898년에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여러 보험상품을 팔았던 그가 1906년에는 줄리안 미릭(Julian Myrick, 1880~1969)과 함께 ‘Ives & Myrick’이라는 보험회사를 창업했다. 미릭은 훗날 미국 생명보험업계의 거인으로 평가받게 되는 인물이다. 1960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사무실을 둔 80세 노장은 여전히 일선에서 보험상품을 사람들에게 팔았다. 미릭은 생명보험 설계사를 위한 학위 수여 기관인 미국 생명보험 설계사 대학 설립에 이바지했고, 말년의 20년간 이 대학의 이사장을 맡았다(Insurance: The Million-Dollar Oldster, Time, 1960.03.14).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건강과 경제적 성공, 명성을 다 얻었다.

미릭처럼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한 인물이 아이브스다. 미릭과 달리 그는 1930년에 보험업계에서 은퇴했는데, 은퇴하기 전까지 일과 병행했던 그만의 삶의 영역이 있었다. 작곡이었다. 아이브스는 저녁에 퇴근해 작곡했고, 주말에도 책상에 앉아 창작 활동을 했다. 그는 검소하며 근면한 청교도적인 삶을 살았고,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은둔했다.

작곡 활동에 매진했지만, 아이브스는 자기 작품이 연주되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작곡했는데, 그런 심리 상태에서 탈고된 그의 작품은 동시대 유럽의 최고 혁신가 아널드 쇤베르크의 혁신성을 능가했다. 아이브스의 예술적 혁신은 사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원천으로 삼지 않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보수적이었고, 유럽적 전통을 열심히 공부할 것을 제자에게 요구했지만, 제자는 스승에게 배웠던 전통적 교회 찬송가를 기막히게도 군가 같은 것에 결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퍼트넘 캠프(Putnam’s Camp)’는 인상적이다. 이 곡에서 그는 현재의 코네티컷주 주가인 - 미국 내전 당시에는 북군의 노래로, 그 이전의 영국군에 대항해 싸웠던 독립전쟁 시기에는 식민지군의 군가로도 쓰였던 - ‘양키 두들(Yankee Doodle)’ 등을 여러 다른 민요 선율들, 미국 국가 등과 산만하게 병렬했다. ‘퍼트넘 캠프’는 ‘뉴잉글랜드의 세 곳(Three Places in New England)’ 중 두 번째 곡인데, 아이브스는 이 작품에서 서로 다른 조의 서로 다른 선율을 아무렇게나 병렬했다. 화성법이나 대위법 같은, 서로 다른 음들을 잘 조화하는 전통적 유럽 음악의 방법들을 모르지 않았던 그였다.

다 알면서도, 이질적 요소들을 연결하고 조화하기보다는, 그대로 놔둔 그의 시도는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역사에서 처음 제시됐다. ‘뉴잉글랜드의 세 곳’의 이러한 혁신적 착상은 아이브스의 일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어려서부터 서로 다른 밴드들이 서로 다른 조로곡을 연주하면서 하나의 공간, 이를테면 음악회장이 아닌 공원 같은 곳에서 행진하는 것을 자주 봐왔다. ‘뉴잉글랜드의 세 곳’은 그런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복원한 시도였다.

그것은 주관적이며 표현주의적인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객관적이며 묘사적인 음악적/음향적 보고(reportage)였다. 이런 점에서 ‘뉴잉글랜드의 세 곳’은 음악의 영역을 넘어선 오늘날의 융합적 예술 장르이자 ‘사운드 아트’ 개념을 구현한 최초의 창작물일 수 있다(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에 있는 사운드 아트 개념에 관해서는 필자의 ‘사운드아트와 결합한 자동차’, 포브스 2024년 4월호 참조).


▎미국 지도 속 뉴잉글랜드(오른쪽 위의 오렌지색 부분). / 사진:위키피디아
‘뉴잉글랜드의 세 곳’에 쓰인 선율들은 아이브스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다. 남의 것을 그가 사용했다. 특별한 효과를 주기 위해 타인의 곡 일부 혹은 전체를 자신의 곡에 쓰는 것을 인용(quotation)이라고 한다. 표절과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인용은 사용된 타인의 선율이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라는 인식을 감상자가 가질 수 있을 때 잘 성립한다. ‘뉴잉글랜드의 세 곳’에 쓰인 선율들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유명하다. 인용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

글쓰기에서 타인의 문장은 저자의 문장과 논리적으로 조화되며 인용될 수 있고 저자가 특별히 반박하기 위해 인용할 때도 있다. 음악에서의 인용도 작곡가의 곡에 녹아들 수 있고, 작곡가의 곡에 어울리지 않게 처리될 수도 있다. 이 후자의 사례들에서 감상자는 병렬의 느낌, 의도적 부조화의 느낌,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들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 등의 일부를 찢어내어 붙여서 만들어낸 미술작품으로서의 콜라주 개념이 이렇게 음악적으로 수용된다(음악적 콜라주에 관해서는 필자의 ‘셧다운과 샘플링의 역사성’, 포브스 2023년 6월호 참조).

이 작품에서 아이브스는 미국인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친숙한 찬송가 선율들, 행진곡 음악들, 민속적 선율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며 감상자들에게 미국 뉴잉글랜드의 세 곳에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세 곳의 이름에 해당하는 세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20세기 초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 그 이상, 애국심 등을 표현한다. 그 애국심은 과도하게 애국주의적(chauvinistic)이기보다 소박하고 건강해 보인다. 이 곡이 작곡된 1911년에서 1914년 사이에 미국은 고립주의적이었다.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천명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그 무렵(1813년)에 당선됐다.

‘대답 없는 질문(The Unanswered Question, 1908)’은 아이브스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현악기들과 관악기들로 구성된 소규모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된다. 이 곡에서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음향은 조화롭고 불변하는 자연을, 목관악기와 트럼펫이 연주하는 음향은 자연에 대비되는 인간 문명을 표현한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자연에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트럼펫의 악구로 표현된다. 이 악구는 약간 퉁명스럽고, 부조화를 낳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인간의 질문에 대해 자연은 대답이 없다. 즉, 현악기 연주자들은 트럼펫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연주를 진행한다. 이런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작품 제목은 ‘대답 없는 질문’이 된다.

‘대답 없는 질문’에서 자연은 처음 제시되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부드럽고 조화로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자연을 표현하는 음악은 조성 음악이다. 인간의 질문은 대조적으로 무조 음악으로 표현된다. 즉, 조가 없는 음악이다. 인간의 질문에 대해 또 다른 인간들이 종종 빠르게, 수다스러운 느낌을 주는 불협화 악구를 통해 응대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현악기가 연주하는 자연은 정확히는 자연을 숭배하는 영국 켈트족의 고대 종교인 드루이드교 사제를 상징한다고 한다 (드루이드교 사제로 유명한 이는 아서왕 전설 속 마법사 멀린이다. 사실 마법사라는 호칭은 부적절할 수 있다).

조성적 음악과 무조적 음악을 이렇게 병치하는 것도 그 이전의 어떤 유럽 작곡가들이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이다. ‘뉴잉글랜드의 세 곳’에서처럼 이질적 두 요소 간 상호작용은 없으며 그로 인한 수렴적 과정도 없다. 두 요소는 조화되지 않고 단순히 병렬되는데, 이런 특성의 음악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포스트모던 음악의 원형으로 평가받아왔다.

차이가 있는 서로 다른 것들을 과거 서유럽 작곡가들은 조화시켜왔다. 아이브스는 존재하는 서로 다른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이비리그 일원인 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 졸업한 트럼프 대통령이 세상 여러 나라의 차이를 해소하려는, 그리하여 미국적 이념을 다른 나라가 따르게 하는 정책을 다른 나라에 강압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래전 또 다른 아이비리그 일원인 예일대 출신 아이브스의 파격적 생각이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함의하는 바를 검토해주길 기원한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502호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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