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김진우 라이너 대표 - 생각의 바퀴를 더 멀리, 더 빠르게 

 

노유선 기자
AI 열풍에 휩쓸려 너도나도 AI 기업을 표방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다르다. 스타트업 라이너는 무조건적으로 AI를 도입하지 않았다. AI가 인류에 끼치는 영향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 결과 라이너의 AI 검색 서비스는 ‘믿을 수 있는 자료 조사 툴’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진우 라이너 대표는 “책과 사람으로부터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고 했다.
2015년 설립 이래 이 회사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한 적이 없었다. 오직 기술력으로 승부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하겠다는 포부였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현재 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전 세계 220여 개 국에 걸쳐 약 1000만 명에 이른다.

인공지능(AI)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라이너(liner)는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포브스는 지난해 12월 ‘2025년 주목해야 할 AI 창업자 33인(Top AI Founders To Watch in 2025)’에 김진우(34) 라이너 대표를 선정했다. 33인 중 한국인은 단 세 명이었다. 포브스는 “빠르게 변화하는 AI 환경에서 경쟁력 있으며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이른바 ‘알잘딱깔센(알아서 잘하고 딱 깔끔하고 센스 있다)’ AI를 표방하는 라이너는 이용자의 검색 편의성을 높일 뿐 아니라 환각(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현상을 최소화한다는 평이다. 라이너 AI는 답변(검색 결과)과 인용 문서(출처)를 함께 안내한다. 이를 토대로 이용자는 답변의 타당성과 적절성을 직접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라이너는 이용자가 출처 링크를 따라가지 않아도 문서를 미리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가령 ‘임진왜란의 발생 원인’을 검색하면 라이너 AI는 임진왜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발생 배경, 전개 과정, 전쟁 결과, 관련 이미지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내용별 출처를 꼼꼼하게 안내한다. 또 이용자가 놓칠 뻔한 질문도 알아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중 조선의 군사전략과 전쟁이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 전쟁 후 일본과 조선의 외교관계 변화, 임진왜란의 교훈 등도 알려주는 친절한 AI다.

라이너는 국내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다. AI 검색 기능을 기획할 때부터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를 첫 번째 타깃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라이너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체 이용자 중 90%가 해외발(發)이다. 지난 1월 8일 서울 마포구 라이너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라이너는 글로벌 AI 검색 시장에서 국위선양에 앞장서는 스타트업”이라며 사내 시스템에 기록된 ‘최근 30분간 라이너 이용자 국가 분포도’를 보여줬다. 그는 “당초 타깃으로 삼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라이너를 이용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별 이용자 비중은 미국이 가장 크고 한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이 뒤를 잇는다. 최근 들어 일본과 인도, 필리핀에서도 이용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김 대표는 “서비스 이용자 대부분은 대학생과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 연구원, 전문직 종사자, 컨설턴트, 마케터, 언론인 등”이라며 “특히 과제나 논문 작업이 빈번한 대학·대학원생이 주로 라이너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AI는 생각의 바퀴


▎라이너 로고는 바퀴가 지나간 흔적을 상징한다. AI라는 생각의 바퀴다.
라이너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본사 사진을 볼 수 있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 본사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 담겨 있다. 오늘날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도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진에서 김 대표의 포부와 열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 중 ‘믿을 수 있는(reliable)’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더 빠르게 똑똑해지도록 돕는 것(Help People Get Smart Faster) 이 회사의 미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에게 사업 아이템을 착안한 배경과 피버팅 과정, 앞으로의 성장전략 등을 물었다.

라이너가 창업 초반부터 AI 검색 서비스를 내놓은 건 아니었다. 2015년 선보인 ‘하이라이팅 베타 서비스’가 라이너의 첫 작품이었다. 이용자는 인터넷상에서 중요한 문장을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듯이 강조 표시(하이라이트)를 하면 자신만의 아카이브가 형성된다. PDF 파일이나 유튜브 동영상의 특정 부분을 표시해 나중에 볼 수도 있다. 양질의 읽을거리를 제안하는 ‘콘텐트 추천 서비스’도 마련했다. 라이너는 2021년 정식 모바일앱을 출시한 데 이어, 2022년 이미지 콘텐트 하이라이팅 기능을 선보였다.

형광펜 기능이 메인 서비스였던 라이너가 AI 검색 서비스를 기획·개발한 건 2022년 무렵이었다. 오픈AI의 챗GPT를 계기로 전 세계에 AI 열풍이 한창일 때, 라이너도 AI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여러 구성원과 ‘도대체 AI란 무엇인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며 “그러던 중 한 직원이 ‘AI는 마치 바퀴와 같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바퀴의 탄생 덕분에 인류가 더 멀리 이동하게 되었듯이 AI 덕분에 인간의 사고가 더 멀리 나아가게 됐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적이 흘렀죠. 너무나도 적확한 표현이었습니다. AI는 인간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비로소 라이너가 AI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AI 검색 서비스 론칭 시점은 2023년 2월. 기술 개발에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파인 튜닝(Fine-tuning) 프로세스 덕분에 기술개발을 빠르게 마쳤다. 파인 튜닝은 기존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특정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추가 학습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은 속도전이기 때문에 한번 경쟁에서 밀리면 영원히 도태되기 쉽다”며 “생명을 갈아 넣는다는 심정으로 AI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고 강조했다.

하이라이팅 서비스를 이용해 수집한 이용자 데이터는 라이너에 ‘보배’와도 같았다. 이 데이터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날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중요한 내용을 선별한, 다소 정제된 데이터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고품질 데이터와 이용자 피드백 등을 융합해 파인 튜닝 재료로 삼았다”며 “그 결과 시의성 있고 깊이 있는 정보를 라이너 검색 결과에 담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라이너는 이용자의 검색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는 기능을 추가해 서비스를 최적화했다.

이후 2023년 8월 라이너는 마침내 ‘AI 검색 서비스’ 기업으로 피버팅(pivoting·사업방향 전환)에 성공했다. 피버팅을 결정하기까지 김 대표의 고심은 깊었다. 그는 “과연 AI 검색 서비스가 수익성으로 연결될지 의구심이 들었다”며 “6개월 동안 서비스 이용자 추이를 살펴보며 어떤 사업 모델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탐구했다”고 고백했다. 돌다리를 수차례 두드렸어도 피버팅이 성공하리란 확신은 없었다.

“스타트업은 앞날이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뛰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앞에 어떤 길이 있는지 보이지 않더라도, 그 길이 아무리 어두컴컴하더라도 혁신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뎌야 해요. 물론 길을 가다 보면 더는 길이 없거나 장애물에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야 해요.”

‘양치기 소년’과의 비교를 거부한다

아무리 서비스 개발 속도가 빨랐다 해도 AI 검색 기술은 결코 간단치 않다. 김 대표는 “이용자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출처를 세세하게 제공하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AI 모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는 ▷질문 파악하기 ▷세세하게 질문 쪼개기 ▷각 질문에 적합한 문서 찾기 ▷문서에서 필요한 부분을 추출(인용)하기 ▷답변 작성하기 등 일련의 작업을 수초 만에 처리한다.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 치열하게 발놀림하는 것과 비슷하다.

“챗GPT가 AI 기술을 ‘양치기 소년’처럼 만들어놨어요. 어떻게 하면 라이너가 높은 신뢰도를 구축할 수 있을지 몇 날 며칠 고민했죠. 인생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기간일 겁니다. 제 결론은 AI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믿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사람이 타인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어떤 사람이 옳은 말, 맞는 말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 사람을 신뢰하진 않잖아요. 우선 그 사람이 믿음직스러워야 하고 옳은 말이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합리적인 수치적 근거와 권위성을 수반한다면 그의 말에 더욱 신뢰가 갈 거예요.”

김 대표는 주로 독서와 대화에서 경영 힌트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스스로 질문을 자주 하는 편”이라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책이나 사람에게서 귀한 메시지를 받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막막할 때면 귀인이 찾아왔어요. 창업 초반에는 기술개발에만 치중했지 고객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회사 발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중 미국에서 우연히 만난 한 경영인이 라이너의 고객은 누구인지 물었어요. 제겐 도끼와도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고객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니즈를 서비스에 반영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김 대표에게 경영상 가장 큰 영감을 준 책은 <원칙>이라고 한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불리는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를 설립한 레이 달리오의 저서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운영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며 “팀빌딩과 조직문화 구축에 원칙이 없으면 구성원 간 불협화음이 나기 마련”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2023년 구성원들과 머리를 맞대 ‘라이너다움’이란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라이너다움’을 묻는 질문에 그는 “Focus on impact(임팩트에 집중하자)”라고 답했다.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라이너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해결사가 아닙니다. 선택과 집중, 다시 말해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자는 것이 라이너의 제1원칙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AI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그런 임팩트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또 마케팅이 늘 후순위였던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라이너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빨리 똑똑해지도록 돕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기술개발과 서비스 최적화가 마케팅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비스가 안정 궤도에 오른 올해부터는 영어권 국가 위주로 마케팅 저변을 넓힐 계획이다. 그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라이너 서비스를 제공하되 유료 이용자(구독자)에게 어떤 특별한 혜택과 가치를 전할 수 있을지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라이너가 맹추격하는 대상은 구글이다. 김 대표는 “구글보다 더 나은 검색 서비스로 인정받고 싶다”며 “매우 어렵고 복잡한 질문에도 항상 양질의 답변을 내놓는 AI 검색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진화를 거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복잡다단한 질문을 세밀하게 쪼개서 파악하는 기술을 고도화하는 일이 라이너에 주어진 평생 과제”라며 “현재 수많은 사람이 자료조사를 위해 구글을 즐겨 찾지만, 10년 뒤에는 이들이 라이너 이용자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검색 서비스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는 구글을 제치겠다는 야심 찬 포부다.

라이너의 최종 지향점은 구글 저 너머에 있다. 김 대표는 “오늘날 AI를 거론하면 오픈AI의 챗GPT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처럼 라이너가 ‘믿을 수 있는 AI 검색 서비스’의 대명사가 되길 희망한다”며 열의를 드러냈다. 이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또 라이너가 당당하게 ‘성공’이란 단어를 언급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502호 (2025.0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