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유배지 초라한 띠집은 그나마 위리안치된 상태였다. 위리안치, 사방 10리 안에는 사람들이 근접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라고는 심부름하는 계집종 하나뿐이었다. 제주도, 섬 속의 섬에서 유배생활 마지막 5년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광해군은 재위 기간에도 섬 속에 갇혀 있었다. 과격 대북파라는 섬, 그리고 자신의 세력만을 키우려는 이이첨 같은 권간(權奸)으로 인해 신료라는 바다에 둘러쌓인 섬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런 섬 안의 고독과 불안 속에서 광해군은 대북정책을 밀고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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