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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많은’우리 國史교과서부터 바로잡자 

월간중앙의 문제제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또한 풍납토성 안쪽에 대규모 건물터가 밀집했었음이 밝혀졌는데 이들 건물터는 대체로 기와와 전돌·초석을 사용한 대규모 건물터였고, 기원 전후부터 서기 300년 즈음의 백제토기를 비롯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는 바로 풍납토성이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백제 시조 온조왕이 지은 하남위례성임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이자 백제가 개국 초부터 한강 유역 일대를 아우르는 강력한 고대국가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근초고왕때(4세기) 비로소 고대국가가 되었다는 쯔다나 이마니시의 견해가 얼마나 우리 고대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하려는 데서 나온 것인지, 그리고 고이왕때(3세기) 고대국가가 되었다는 이병도의 견해가 얼마나 식민사학에 물든 주장인지를 풍납토성은 말없이 웅변하는 것이다.



일인 학자들이 그나마 고구려는 서기 1세기 무렵인 태조왕 때부터 인정해 준 이유는 고구려에 관한 기사는 중국 기록인 “후한서”(後漢書)나 “삼국지”에 독립된 항목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후한서”는 서기 25년부터 219년 사이의 후한 14세(世)에 관한 기록이고 “삼국지”는 220년부터 265년 사이의 유명한 삼국시대에 관한 기록인데 1세기 때의 기록인 “후한서”에 나오는 고구려는 1세기때 존재해야 그들의 전가의 보도인 실증주의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태조왕 때부터 인정해 준 것이었다. 반면 백제와 신라는 3세기때의 기록인 “삼국지”에도 나오지 않고, “일본서기”에도 나오지 않으니 3세기 이후에야 존재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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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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