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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 ‘흑백 세상’ 향한 외침 “ 회색이 아름답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돌아온 정관용 

글·한경심 월간중앙 객원기자 사진·전민규 기자
JTBC 시사 뉴스쇼 <정관용 라이브>, MBC <100분 토론> 진행…진영논리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쿨’한 중도의 철학 제시

▎9월 16일 첫선을 보인 JTBC의 일일 시사뉴스쇼 <정관용 라이브>의 진행을 맡은 정관용 씨. ‘생(live)방송’의 박진감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관용(鄭寬容·50)은 스스로를 ‘회색인’이라 부른다. 그것도 당당하게. 어쩌면 그의 표현대로 ‘목적의식적’으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흑과 백으로 갈라져 싸우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잿빛 화두처럼. “저는 평소 회색인임을 당당히 주장합니다. ‘회색분자’니 ‘기회주의자’니 하는 회색에 얽힌 부정적인 시각은 다 지난 역사의 아픈 기억에서 나온 것이죠. 이념으로 싸우던 해방정국과 동란 때, 중간지대에 선 사람은 비겁자로 지탄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데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습

니까?”

그의 ‘회색’은 중도(中道)의 색깔이다. 그런데 중도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부처가 성도(成道)한 후 첫 일성(一聲)이 중도였고, 공자는 가장 옳은 자리(正)가 바로 가운뎃자리(中)라 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가장 찾기 어려운 자리기도 하다. 그러나 정관용의 중도는 간단명료하다. 양 극단을 ‘무시’하는 것이다.

“보수를 가장 많이 소개하는 것이 진보고, 진보를 가장 많이 선전하는 것이 보수예요. 서로 욕하며 공격하니까 결국 서로 먹여 살리는 셈이지요. ‘적대적 공존관계’라고 할까요? 언론은 그런 극단적인 목소리는 사실 무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극단적일수록 더 선정적으로 보도하곤 하죠. 한마디로 ‘극단과잉표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정적인 보도는 대중을 극단적인 감정으로 치닫게 한다. 언론이 그런 걸로 먹고 살면 사회는 더욱 갈등하고 신음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 언론은 그런 혐의를 완전히 벗기 힘들다. 특히나 몇몇 방송은 그것으로 시청률을 올리는 ‘재미’를 봤다는 비판도 받는다. 정당도, 언론도 그런 진영논리에 젖어있는 풍토에서 그는 지금 회색빛 중도의 길을 말하고 있다.

그 길을 가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이니, 그는 외롭지 않을까. “실제로 보통사람은 극단의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넓은 회색지대, 중립지역에 있어요. 그런데 양극단의 목소리가 크게 보도되니 중간지대 사람은 침묵하고 없는 듯 보이는 거지요. 저는 그런 대다수 일반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은 겁니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과 ‘의기투합’

과연 그 길은 그 혼자만 걷는 외로운 길은 아닌 듯하다. JTBC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이 그에게 먼저 손짓한 것을 보면. “손 사장은 2009년에 나온 제 책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에 추천사를 써준 인연이 있는데, JTBC 사장으로 오면서 그 책을 다시 읽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그 책에 쓴대로 한번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볼테르의 명언 “나는 당신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를 떠올리게하는 이 책에서 그가 표명한 것은 다름 아닌 중도다. 손석희 사장이 JTBC로 올 때 애초 표방한 네 가지 원칙이 ‘사실·공정·균형·품위’였으니 손 사장이 정관용을 부른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JTBC가 ‘종편’의 일반적인 인식을 깨고 중도를 내세워온 손석희와 정관용이라는 ‘균형추’를 전격적으로 수혈한 데 있다. 그것은 진영논리 편싸움으로 재미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공중파에서도 보기 어려운 품격 있는 방송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선언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정관용은 JTBC라는 새로운 마당에서 마음껏 그의 중도철학을 펼칠 수 있을까?

“백 퍼센트! 제작진과 의논하여 만들지만 제 의도를 백 퍼센트 살리고 있습니다. 우선 <정관용 라이브>에는 소위 정치 평론가가 안 나옵니다. 논란의 당사자나 현장의 인물을 직접 초대해서 인터뷰합니다. 이럴 땐 공세적인 직격 인터뷰가 될 수 있지요.

또 사회·문화계의 화제인물과 사람 냄새 나는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코너)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현장에서 보고하는 뉴스와 국회 소식 등도 고정적으로 들어갑니다. 형식은 대충 그렇지만 정해진 틀대로 진행하기보다 유연성을 가지고 그때그때 달리 구성해나갈 겁니다.”

그는 이미 CBS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MBC <100분 토론>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지만 새로 꾸민 이 프로그램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백 퍼센트!’를 외치는 그의 얼굴에서 득의(得意)한 사람의 만족감이 엿보인다.

9월 16일 첫 방송을 탄 <정관용 라이브>의 첫 주 출연자 면면을 보면, 새누리당의 이혜훈 최고위원, 민주당의 이용섭 의원 등 여야 중진과 홍준표 경남지사,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으로 독자에게 사랑 받는 유홍준 교수 등이다. 정관용은 이 자리에서 세수(稅收)와 복지정책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짚는 예리한 질문을 던져 시청자에게 문제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는 한편, 유홍준 교수와는 한일 고대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동아시아 전체로 넓혀가야 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공동체의 미래를 바라봐야 해법 보인다”

한마디로 뉴스와 토크를 아우른 형식이다. 형식으로 보면 기존 시사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정치평론가의 양비론(兩非論)적인 따분한 해설이나 어느 일방의 주장을 담는 대신 정책 당사자에게 직접 묻고 때로 공격적 질문도 마다하지 않아 역시 ‘생(live)방송’의 박진감을 잘 살리고 있다.

그는 때로 공격적인 질문을 하지만, 공격을 위한 공격도 아니고 상대의 주장을 꺾기 위한 공격도 아니다. 오히려 정파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국민을 위해 양보할 것은 없는지 한번 돌이켜보라는 뜻에서 공격적인 질문을 자극제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질문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냉정한 물음이지, 화끈한 공격이 아니다.

“우리 언론은 작가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사실(fact)보다 신념에 치우친 ‘신념과잉’에 휩싸여 있습니다. 중도는 사실에 입각하여 시시비비를 가릴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중도는 중간적인 입장이라는 뜻도 있지만 ‘딱 맞다’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사안에 따라 가장 알맞은 가운뎃자리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저울대가 평형을 이루려면 추를 때로는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렇게 중도는 고정돼 있지 않기에 지키는 것보다 자리를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그는 중도를 찾기 위해 사실부터 따지자고 한다. 아주 ‘쿨’한 태도다. 사실을 최우선으로 치는 점에서 그는 스스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실용주의자요,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중도에는 이상론이나 관념론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역시 또 ‘쿨’하다.

그런데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옳은 것’이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 “제가 원칙으로 삼고 있는 가치기준은 ‘공동체의 미래’입니다. 당연히 공동체는 한쪽 진영, 어느 한 정파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말하지요.”

역시 단순 명쾌하다. 평범한 듯해도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왜 ‘미래’인가? “대개 싸울 때 하는 이야기는 다 과거 얘기뿐이니까요. 비난은 모두 과거에 대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해법은 미래에 있는 것이죠.” 그는 자신의 책에서 때로 토론현장이 비합리적인 비난과 대립, 불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토론을 진행하면서 느낀 건데, 진보든 보수든 서로 대립하는 시기가 아닐 때는 그런 대로 양보하고 절충도 해나가는 편입니다. 특히 단순한 정책문제에서는 비교적 쉽게 타협이 이루어집니다. 그들도 무엇이 합리적인지 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당론이 걸려 있거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으면 합리성을 잃고 맙니다.”

양 진영이 어느 정도 합리성을 잃는지, 그는 실례를 들어주었다. KBS에서 <심야토론>을 진행하던 시절 북핵문제로 토론하던 중 보수진영에서 “전쟁을 불사하고 강력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하자 진보 쪽에서 당장 ‘전쟁광 집단’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또 진보 쪽에서 “북핵은 미국에 대한 북한의 협상카드일 뿐”이라고 하자 이번에는 보수 쪽에서 ‘조선노동당 2중대’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금강산 관광은 계속 유지했습니다. 실제로는 남북대화를 시도하고 협상하면서 국민 앞에서는 서로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는 거지요. 언론은 이를 또 과장해서 보도하고요.”

그는 이런 ‘거품’이 매우 못마땅한 눈치다. 북한문제나 부동산 등 양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계층 간 이해문제가 걸려있는 큰 사안에서 보여주는 대립과 불합리성, 불통에 어지간히 데인 모양이다. 그는 부동산과 북핵문제로 얼마나 토론을 많이 진행했는지, 한때 ‘ㅂ’자만 봐도 어지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대립과 불통으로 서로 으르렁댈 때면 그는 늘 자신의 저울추인 ‘ 1 2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상기시키곤 한다. ‘공동체’의 ‘미래’에 바람직한 지점, 거기가 바로 저울대의 균형을 이루는 추가 놓이는 ‘가운뎃자리’고, 그 자리에서 양쪽은 비로소 소통하고 타협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방송에 몸담은 지 15년째다. 지금 ‘정관용’이라는 이름 석 자는 대중에게 ‘토론의 좌장’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지만 방송에 나타나기 전 그의 인생은 81학번 세대 특유의 굴곡 많은 역정을 거쳐 왔다. 본래는 시를 읽는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대 사회변혁의 물결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으니,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하면서 사회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졸업 후 들어간 현대사회연구소에서는 노조위원장으로 노동쟁의도 겪었다.

“현대사회연구소는 모교 한상진 교수의 제안으로 가게 됐는데, 노동조합을 만드니 전원 해고되었지요. 소장실을 점거하고 철야농성도 해보았습니다. 덕택에 복직이 됐는데, 허화평 씨가 소장으로 오면서 분쟁이 났고, 다시 해고됐지요.” 이후 재야학술단체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나라정책연구원에 몸담았고 김영삼 정부 때는 김정남 수석을 따라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으로 청와대에서 2년간 일하기도 했다.

“김정남 수석이 나오면서 저도 함께 청와대를 나왔고, 그 뒤 여의도연구소에 이영희 교수가 소장으로 영입되면서 여의도연구소에도 기획위원으로 1년간 있었어요. 이영희 교수와 나라정책연구원에서 함께 일한 인연으로 갔었는데 이 교수가 그만둘 때도 저도 나왔습니다.”

김정남 수석과 이영희 교수와 함께 한 3년은 김영삼 정부 초기 개혁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행보였다. 김수석과 이 교수 모두 보수파에 밀려났고, 그도 그 물결에서 부침을 함께 했다. 이때까지 그의 경력을 보면 사회개혁에 관심 많은 연구자와 실천가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공장 같은 노동현장에서 뛰면서 투옥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혹시 노동투쟁과 투옥 등을 겪는 동시대 인물과 비교하여 부채의식은 없는지 물었더니 “그런 건 없다”고 한다. 확실히 그는 중도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중도는 노조위원장과 해고, 청와대 행정관까지 꽤나 폭이 넓다.

청와대에 가기 전 이미 CBS 해설위원으로 방송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면서 서서히 방송과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1998년 SBS <뉴스대행진> 사회를 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방송 인생은 어느덧 그의 본업이 됐다. 물론 그는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미국법학과 교수로 있지만, 프리랜서로 일해온 방송 경력이 훨씬 화려하다.


▎토론 진행자로 유명한 정관용 씨가 평소 견지하는 가치 기준은 ‘공동체의 미래’에 부합하느냐 여부다. 그는 그 공동체를 어느 한쪽 진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규정한다.



토론 진행 2000번 경력의 매력적인 ‘주재자’

그동안 그가 거친 토론 프로그램만 해도 KBS의 <심야토론>을 비롯해, 라디오 <열린토론>, 그리고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지금도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 CBS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최근 맡게 된 MBC <100분 토론>까지 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주요 토론 프로그램이나 뉴스 프로그램에서 가장 멋진 진행자로 이름나 있다.

방송 말고 일반 토론 자리에도 곧잘 진행자로 활약하는 그는 지금까지 토론 진행을 무려 2000번이나 했다고 하니 그의 말마따나 ‘기네스북’ 감이다. 어느 프로듀서는 “정관용은 모든 사안을 세 번 이상 다루어본다”고 말했다. 한 사안을 두고 여러 사람의 입장과 견해를 듣고 세 번씩이나 토론하다 보면, 자연히 현명해지고 답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일에도 그는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대충은… 윤곽이 잡히지요. 그러나 해답을 제시하는 게 제 일은 아니지요. 비록 정해진 해답이 없다 하더라도 토론은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나감으로써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해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지요.”

그런 만큼 그는 토론 형식에도 신경을 기울인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87년 토론 프로그램으로 <심야토론>이 처음 시작된 이래 토론 형식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쪽 입장을 듣고 방청객의 질문과 짧은 발언이 이어진다.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양쪽 입장도 동어반복인 데다 시민논객의 질문과 발언도 상투적이어서 답답했던 적이 많은데, 그게 다 미리 정해놓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청객의 극단적인 돌발 발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미리 정하고 하니까 상투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 그러면 방송사가 욕먹게 되니 어쩔 수 없이 그리한 거지요. 그래서 한달 전 시작한 <100분 토론>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새로운 시도란, 친 새누리당도 아니고 친 민주당도 아닌 중립적 입장을 당당히 표방한 시민논객 마흔 명에게 무려 30분을 할애하고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시민논객에게 이미 결정된 사항이나 토론 당사자의 입장을 반복하는 발언은 삼가도록 주의를 주고 “토론에서 나온 내용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데, 진짜 국민이 생각하는 문제와 의견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거나 창조적 대안을 제시해주고자 하는 사람만 발언해달라”고 요구했다. 귀담아들을 만한 발언이 나오면 그는 토론자를 향해 “국민의 시각이 이렇다”고 강조하는가하면, 비슷한 발언이 이어지면 중간에 자르기도 한다. 그 결과 <100분 토론>은 한결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변했다.

“중립적인 시민의 소리 키워나가겠다”

“신선하다는 평이 많지만 반응이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립적인 시민의 소리를 키워가는 것이 앞으로 토론 프로그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중도에 선 사람의 목소리를 키우는 게 애초에 그의 목적 아니었던가. 그가 2000번이나 진행한 토론 방송에 여전히 매력을 느끼는 것도 대중에게 중도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그 골치 아프고 긴장감 넘치는 토론을 즐기느냐는 질문에 그는 “토론을 2000번이나 진행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질문”이라 했지만 그는 토론을, 방송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중도를 지상과제로 표방하는 이 사람에게도 분명한 색깔을 갖는 사안이 한두 가지는 있지 않을까? 특히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마련인 남북문제나 미군 철수 같은 문제에 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남북문제? 미군 철수? 왜 그런 문제를 지금 제기하는 건가요? 어떤 사안이든 그 사안이 제기될 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 진정한 논의가 가능하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후 내놓은 통일방안은 훌륭했지만 그렇게 상세한 그림까지 그릴 필요는 없었어요. 지도자의 비전(vision)은 좀 크고 추상적이어도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어낸 남북대화의 성과는 대단했지만 퇴임 직전 이룬 성과는 사실상 효력을 갖지 못했지요. 이명박 대통령은 강경한 입장을 표방했지만 한편으로는 대화를 시도했잖습니까? 결국 상황 인식이나 전략에서 ‘미스’였다는 것이죠. 미군 철수만 해도 미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안입니다. 그런 배경을 다 무시하고 입장을 논한다는 것은 분란을 일으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의 대답 내용은 풍부하고 다 맞는 말이지만, 역시 그의 자리가 좌우 어디에 더 가까운지 알 수 없다. 마치 저울대가 이리저리 요동치듯 오른쪽 왼쪽을 오가는 것 같다. 어떤 질문을 던져봐도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게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그의 마음이라는 게 더욱 놀랍다. 그래, 회색은 본래 현묘(玄妙)한 색이다.

흰색과 검정색을 격렬히 섞어야 나오는 색이 회색이라고 그는 말했지만 회색은 흰색에 가까운 색부터 검정처럼 보이는 암회색까지 수묵화의 농담(濃淡)처럼 본디 스펙트럼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정관용도 그렇게 파악하기 힘든 사람이다. 아, 그가 인터뷰 중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실제로도 회색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럼요! 회색이 얼마나 아름다운 색인데요!” 그리고 이름처럼 과연 관용적인 사람인지? 이에 대한 대답도 분명하고 똑 부러졌다. “물론이죠!” 그는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저울대 위에서 끝없이 발을 움직이며 춤을 추는 사람이다. 그 춤이 아주 우아하다는 것만은 확실하지만.

201310호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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