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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 - “아베 총리, 일본 내 혐한 움직임에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할 것”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콘도 다이스케 日<週刊現代> 총괄 부편집장
한일관계 정상화 특사 파견돼 박근혜 대통령 면담한 아베 총리의 복심(腹心) “관계 개선 원하는 양국 정상의 마음 읽었다”

7월 23일 서울을 방문한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는 청와대로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해 양국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일본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7월 2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메시지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66) 도쿄도지사. 그의 이번 방한(訪韓)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초청으로 이뤄졌지만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방한 이후 한동안 박 대통령과의 면담 스케줄이 잡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국내에서 일본 정치인을 만난 건 1년5개월 만으로, 청와대는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 등에서 태도를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접견이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의 변화로 비칠 가능성을 경계했다는 후문이다. 마스조에 지사는 귀국 직후 아베 총리를 만나 박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보고하는 등 ‘특사’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했다.

마스조에 지사는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北九州市)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전형적인 엘리트다. 관료·학자의 DNA를 동시에 갖춘 데다 대중과의 접촉에도 능해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파리대학 현대국제관계사연구소 객원연구원, 제네바 고등국제정치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거쳐 1979년부터 도쿄대 교양학부 조교수, 국제정치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 주로 국제관계론을 연구했는데, 특히 프랑스의 정치·외교 문제에 관심이 많고 해박하다.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러시아어 등 6개국어를 구사하는 언어의 천재이기도 하다.

1980년대부터는 TV토론 방송에 자주 출연해, 독특한 토론 스타일로 일본 시청자의 호응과 지지를 얻었다. 그는 1989년 “도쿄대학은 썩었다”는 명언을 남기고 도쿄대학 부교수 직을 사임했다. 그런 점에서 ‘도쿄대의 몰락’을 정밀하게 취재해 분석했던 일본의 ‘석학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를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이후 프리랜서로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며 국제정세, 문화, 사회문제 등에 걸쳐 활동의 폭을 넓혔다.

1998년 도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것이 첫 번째 선출직 도전이다. 이 선거에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에게 차점으로 낙선하자 그는 도쿄도의 우경화를 심각하게 우려하기도 했다. 2001년 비례대표구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1위로 당선된 데 이어, 2007년에는 다시 참의원 비례대표구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해 8월 아베 신조 내각의 후생노동성 대신으로 임명돼, 연금문제를 비롯한 많은 사회문제를 다루고 해결했다.

아베 총리와 언제라도 휴대폰 통화 가능


지난 2월 26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도쿄올림픽에서의 협력을 확인하는 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아베 총리(오른쪽)와 마스조에 도쿄도지사.
이후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내각에서도 연임했다. 2009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제2당으로 전락한 것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소 내각은 총사퇴했고, 마스조에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2010년 4월 마스조에는 급기야 자민당을 탈당하고 야노 데쓰로(矢野哲朗) 전 참의원국회대책위원장, 고이케 마사카스(小池正勝) 참의원 등 5명의 의원과 함께 ‘신당개혁’을 창당하고 대표로 취임했다. 자민당 측은 의원직을 사직하고 의석을 반납해야 옳다며 마스조에를 제명했지만 그는 올 2월 도쿄도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 주가가 오히려 급등했다. 아베 총리와는 언제라도 휴대폰 통화가 가능한 ‘복심’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의 출신지는 야마구치현(山口県) 나가토시(長門市)로 마스조에 도지사의 출신지인 후쿠오카현(福岡県) 키타큐슈시(北九州市)와 서로 이웃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스가요시히데(菅義偉) 현 관방장관을 정계에서 가장 신뢰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가 관방장관은 마스조에 도지사가 당선된 올 2월 9일(일요일) 심야 11시에 일부러 신주쿠에 있는 마스조에 선거사무실을 찾아 축하 인사를 건넸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2001년 여름 마스조에가 고이즈미(小泉) 당시 총리의 부름으로 참의원에 출마, 최고 득표수인 158만 표를 얻어 참의원에 당선됐을 때 아베는 고이즈미 정권의 관방부장관이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교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2005년 자민당이 제1차 신헌법안을 마련했을 때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마스조에이며, 2012년에 마련한 제2차 신헌법안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아베였다.

마스조에 지사는 20세 연하의 마사미(雅美)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의 자녀를 뒀다. 중국역사에 조예가 깊어, 도지사의 집무실에는 손문(孫文)과 리커창(李鴻章) 중국 총리의 친필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월간중앙>은 마스조에 지사의 방한 전부터 그의 인터뷰를 타진해 서울 체류 기간 중에 인터뷰가 예정됐지만 박 대통령과의 면담 스케줄이 헝클어지는 바람에 약속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귀국한 후 <월간중앙>은 마스조에 지사와 그의 도쿄대 법학부 후배이자 제자였던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기자에게 질문지를 전달해 결국 인터뷰가 성사됐다. 인터뷰는 8월 8일 오전 마스조에 지사의 도쿄 자택에서 이뤄졌다. 콘도 기자는 일본 기자의 관점을 배제하고 <월간중앙>이 제공한 질문만으로 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평생 정치 경력에서 지난 2월 도쿄 도지사에 당선된 것에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

“‘도쿄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효 투표자의 43.4%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 도쿄를 세계의 모델이 되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 꿈을 도쿄 도민과 함께 실현해나갈 것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아베 내각, 후쿠다 내각, 아소 내각의 3대 내각에 걸쳐 후생노동상을 역임했다. 그때 연금이나 복지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에 걸쳐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써왔다.

도쿄도지사로 일하면서 후생노동상 당시의 경험을 살리려 하고 있다. 실제로 8672명이나 되는 대기 아동(보육원에 갈 수 없는 아동)을 제로(0)로 만드는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도쿄 도지사로서의 첫 업무로 보고 있다. 후생노동상 시절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을 도모했지만, 당시에는 부처 간 예산 쟁탈 등의 문제로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를 접견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선수 최우선(Athlete First)’ 경기장 건설 검토

2010 년에 자민당을 탈당해 ‘신당개혁’을 시작한 이유와 배경은?

“자민당 안에서 외교방위위원장·정책심의회장을 지냈고, 3대 내각에 걸쳐 후생노동상을 역임했다. 그러나 2010년 당시 자민당은 야당으로서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의 정치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신당개혁’을 창당했다. 당시의 자민당은 유권자에게 위탁받은 각종 개혁의제의 추진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혁을 실천하는 새로운 정당’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신당개혁’이라고 당명을 정했다. 비록 작은 정당이었지만 3년에 걸쳐 당대표를 역임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을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준비 책임자로서 어깨가 무겁다. 1964년 개최에 이어 두 번째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어떻게 기억하나?

“2020년 도쿄올림픽을 역사에 남을 감동적인 이벤트로 만들고 싶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나는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기타큐슈시도 성화봉송 코스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성화봉송팀이 횃불을 들고 지나가던 모습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하치만(八幡) 고등학교 육상부 소속 단거리 주자였기 때문에 중장거리 선수가 주축이 된 성화팀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동료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도쿄올림픽을 통해서 세계 최고의 스포츠 선수들의 멋진 활약상을 보면서 연습에 힘쓴 결과, 나는 이듬해 전국 고등학교 종합체육대회에 400m 릴레이 멤버로 참여할 수 있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의 진정한 의미는 ‘전후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이 세계를 향해 도약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꿈의 초특급’ 열차인 신칸센(新幹線)이 전국을 달리고, 고개를 들어 보면 수도권의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도쿄에는 아오야마 거리(青山通り)와 같은 광대한 도로가 출현했다. 일본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고도 경제성장을 실현시켜 일류 국가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게 됐다. 일본의 전후 번영의 시작이 됐던 모멘텀이 1964년 도쿄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시켰을 때의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개최지의 수장으로서 올림픽 개최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또 지금까지 2020년 대회의 준비는 순조로운지 궁금하다.

“56년 만에 도쿄에서 다시 한번 올림픽이 개최된다. 2020년엔 도쿄가 21세기의 새로운 도시로 완전히 변모하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이 재생의 길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무엇보다 최고의 평가를 받는 올림픽을 일본 전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성공시키고 싶다. 모든 일본인에게 가슴 벅찬 도전이 될 것이다. 국가의 대사인 만큼 당연히 세세한 곳에서 상충과 논란이 있으나, 준비는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당초의 경기장 건설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이 우선 주목할 만한 측면이다. 도쿄도민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선수최우선(Athlete First)’의 경기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도쿄의 새로운 도시계획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6월에 도라노몬 힐즈(虎ノ門ヒルズ)가 문을 열었고, 신바시(新橋)-도라노몬(虎ノ門) 사이에 ‘올림픽 로드’가 완성됐다. 이를 ‘도쿄 샨제리아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그 밖에도 하네다(羽田) 공항까지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편을 정비하고, 시나가와(品川) 역에 자기부상열차(linear motor car)역을 신설하며, 마루노우치(丸の内)-오테마치(大手町)-유라쿠쵸(有楽町)-니혼바시(日本橋)-시부야(渋谷) 일대를 재정비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런던의 시티 금융지구와 같은 ‘도쿄 국제금융센터’의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도쿄를 위기에 강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쿄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충분한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경제(economy)·에너지(energy)·환경(environment)이라고 하는 ‘3E’를 진화, 발전시켜 도쿄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

지자체 외교, 풀뿌리 교류도 중요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아직도 한일 양국의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유례가 없는 양국의 외교적 경색, 교착상태를 어떻게 타개해가는 것이 좋다고 보는가?

“이번 서울방문이 무려 18년 만의 도쿄 도지사 방한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실은 올해 4월에 역시 자매도시인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에도 베이징 시장이 농담으로 ‘도쿄도지사에 18년 전 초대장을 보냈는데 이제야 겨우 방문해주셨다’고 말했다. 바로 이웃나라 자매 도시 수장끼리의 교류가 18년간이나 끊겼던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4월 베이징시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중 양국에서 각각 350개나 되는 자매도시 간의 교류가 재개됐다. 또한 베이징을 괴롭히고 있는 초미세먼지와 교통 체증 문제도 도쿄도가 도와줄 수 있는 대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 서울 방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할 수 있었고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지자체 수장과의 교류가 실현됐다. 도시 외교를 통해 양국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시민이 안고 있는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풀어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베 총리가 준 메시지를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박 대통령의 전언을 받아 8월 7일 외국 순방길에서 돌아온 아베 총리에게 전달했다.

‘한국 측도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더니 아베 총리도 ‘나 역시 동감한다’고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아베 총리는 한일관계를 전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베 총리의 마음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외교와 국방은 정부의 전권사항이지만, 도시외교를 통해 양국이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많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인상,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그의 의지를 어떻게 평가하게 되었나?

“7월 25일 오전 11시부터 청와대에서 약 40분 동안 박 대통령과 면담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도쿄도지사의 서울방문을 크게 반겼다. ‘지자체 외교, 풀뿌리(민간) 교류의 추진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교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역사 문제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종군 위안부 문제도 언급했다. 그러나 그 지론을 견지하면서도, 양국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회담 분위기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이번 방한이 양국관계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베 총리와의 개인적, 정치적 관계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이번 방한에 앞서 아베 총리로부터 박 대통령에 대한 메시지 전달을 직접 위탁받았고, 귀국 후에도 아베 총리에게 방한 결과를 보고하면서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했다. 그 정도로 아베 총리와의 관계는 돈독한 편이다. 도쿄올림픽이 국가와 도시가 일체가 되어 성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도쿄도와 아베 총리의 목표는 일치하고 있다.

도쿄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게 되고, 또한 아베노믹스의 성공으로 인해 도쿄가 윤택해질 것으로 본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시외교가 국가외교를 이끌고 도울 수도 있다. 모든 분야에서 정부와 도쿄도가 일체가 되어 일본과 도쿄를 잘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고노 담화 검증, 헌법 개정과 재해석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면?

“위안부 문제와 고노 담화의 검증 문제는 모두 양국 정부 간의 역사 문제이며, 외교는 정부의 전권 사항이다. 도쿄 도지사가 지금 깊게 언급할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던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시 출신으로 한국인들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헌법 개정에 관해서 말하자면 자민당 내에서 신헌법 기초위원회 사무국 차장으로 첫 번째 신헌법 방안 수립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올 2월에도 <헌법 개정의 겉과 속>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현재의 헌법은 바뀌어야 하지만, (평화를 지향하는) 지금의 헌법 정신은 그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7월 23일 서울시청에서 마스조에 요이치 일본 도쿄도지사(오른쪽)와 만나 도시안전·문화·관광분야 등에서 양국 수도의 교류방안을 논의했다.


“한국인의 감정 잘 이해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정 중 인상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

“박원순 시장은 처음 만났고, 게다가 몇 시간을 함께 했을 뿐으로 박 시장의 서울시정에 대한 평가는 할 자격도 없고 또 그럴 입장도 아니다. 다만 이번 회담에 대해 국한해 그 느낌을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박 시장은 서울에 도착한 당일인 7월 23일에 만났다. 우선 시청 앞의 합동분향소에 가서 세월호 침몰 피해자에 대해 도쿄 도민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명하며 분향하고 헌화했다.

그 후 시청에서 박 시장과 회담했다. 집무실에는 자연과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시장답게 식물의 모종 같은 것이 있었고 수많은 서류가 복잡하게 널려 있어 마치 식물학자의 실험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 시장과는 도쿄도와 서울시가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나가기로 의견을 같이했고 ‘도쿄도와 서울특별시의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구체적으로는 ▷도시의 안전·안심 대책 ▷환경 대책 ▷복지 보건 대책 ▷올림픽 장애인 올림픽·스포츠 교류 ▷산업·관광 교류 ▷문화 교류 등 6개 항목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상호 방문·협의 및 직원의 상호 교류를 실시하기로 했다. 18 년간 두 자매도시의 교류가 없었던 이상한 관계가 청산되고 두 수도 사이에 새로운 교류의 첫 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내년에는 꼭 서울시장의 도쿄 방문을 실현시키고 싶다.”

서울 방문을 통해 느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그리고 서울의 이미지는?

“7월 24일 아침 서울 시내를 시찰했을 때 ‘움직이는 관광 안내소’를 만났다. 빨간 유니폼과 빨간 모자를 쓴 두 사람이 짝을 지어서 걸어 다니며 외국인 관광객에게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으로 관광안내 서비스를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어려움을 겪는 관광객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주고, 친절하게 가이드해주는 것이다. 참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대회까지는 도쿄에서도 이와 같은 관광서비스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또한 서울 시내 곳곳에 디지털 간판이 있고, 와이파이도 무료로 연결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참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간판에 대해서는 귀국 후, 우선 도청 건물에 도입할 것을 이미 지시해놓았다. 7월 25일 아침 숙소 호텔에서 산책을 겸해 청계천을 보러 갔다. 서울 시민에게 무척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보고 싶었다. 도쿄에서도 현재 재개발 건설 중인 시부야(渋谷)에서 시부야강(渋谷川)을 재생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큰 성공 사례가 청계천이라고 생각했다. 이 청계천처럼 도쿄 도내를 흐르는 중소 하천을 되살릴 수 없을까 하는 검토를 시작했다.”

“부친은 재일 한국인 인권 개선에 기여”

재일 한국인이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혐오발언) 등에 의해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이 심각하다. 어떤 차원의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앞서 말한 대로 8월7일 남미 순방길에서 귀국한 아베 총리를 면회하고, 이번 방한 성과에 대해 보고했다. 그때 2020년의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를 앞두고 인종 차별을 조장하는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대책을 국가차원에서 검토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단호히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면서 국가 차원의 대책마련을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아베 총리는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서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성실하게 다져온 일본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앞으로 국가와 보조를 맞춰 도쿄도 역시 지자체 차원에서의 대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1930년 5월 후쿠오카현 와카마스(若松)시의 시의회의원선거에 출마한 부친의 선거 공약이 당시의 재일 조선인들의 인권개선이었다고 들었다.

“당시 선거권이 있었던 한국과 북한 출신자 중에는 부친의 친구가 다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일본어를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부친은 자신의 선거 포스터에 한글표기를 덧붙였다(일본의 선거는 투표용지에 날인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써야 하기 때문에 이름을 쓰지 못하면 투표를 할 수 없다). 같은 지역구에 사는 주민으로서 한국과 북한 출신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것이 부친의 신념이었다. 그들 중 여러 가지 문제로 난처해하는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도와주곤 했다.

한국과 북한 출신자를 포함해서 모든 시민의 인권을 지키겠다는 것이 부친의 공약이었고, 이를 실천했다. 당시 우리 집 2층은 노동회관으로 사용되어, 곤궁한 재일 한국인이 도움을 받으려 항상 출입하곤 했다고 들었다. 젊은 재일한국인들이 부친을 위해 스스로 나서 선거유세를 도와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018년 도지사 임기가 만료된다. 차기 선거에도 출마해 올림픽을 직접 치르는 도지사가 될 생각인가?

“도쿄도민과 4년간의 약속으로 도지사에 취임했다. 따라서 그 후의 일은 아직 모른다. 지난 2월 도지사에 취임한 이후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어떻게 하면 도쿄 도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하루하루 성실히 일해나갈 뿐이다.”

도쿄 도지사로서 서울 시민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18년 만에 서울시를 방문하여 ‘교류·협력 합의서’에 박 시장과 함께 서명한 것을 계기로 도쿄와 서울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매도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꼭 자매도시 도쿄를 방문해주시실 부탁드린다. 도쿄의 공공 교통기관과 관광명소 등은 거의 모든 곳에 한국어 표기가 병기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빠진 곳이 있거나 개선해야 할 점이 있을 경우에는 기탄 없이 지적해주길 바란다. 물론 서울시민 외의 한국인들의 도쿄 방문도 대환영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공동개최했던 것처럼 한국인들과 하나가 되어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성공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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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호 (20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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