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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낭만적 음식기행 | 미식가와 애주가의 입맛 돋우는 별난 안주 

샥스핀처럼 쫀득한 별미 오징어 귀무침, 푸아그라보다 맛난 삶은 문어 간… 중국·한국 등 보신 차원의 엽기 안주도 있어 

박찬일 이태원 ‘인스턴트 펑크’의 주방장


애주가의 입맛을 돋우는 술안주는 나라별로 특성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감베로 로쏘, 참치, 쿨라텔로는 꼭 먹어봐야 할 안주로 유명하다. 돼지의 종아리근육으로 만든 쿨라텔로 (왼쪽)를 웨이터가 썰고 있다.
새로 출간된 소설가 한창훈의 에세이 <내 술상위의 자산어보>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쇄빙선인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으로 이동하는데, 선상에서 유빙을 건져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다. 그 맛이, 유빙은 빙하와 달리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것이어서 약간 짜다고 한다. 이 책을 구입하면, 희한하게도 북극에서 퍼왔다는 물을 소량 사은품으로 주고 있다. 이런 식의 마케팅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에 마셔봤다. 뭐, 그냥 미지근한 물이다. 유빙 얘기를 읽으면서, 작고한 심연섭 선생의 글이 생각난다. 그의 책 <건배>에서 알래스카 미 공군 장교클럽의 처마에 생긴 고드름 칵테일을 소개하고 있다. 어려서 고드름 한 줄 안 먹어본 중년이 없을 텐데, 필자 기억으로는 뭐랄까 누이의 나일론 스웨터 털 같은 맛이 났다. 그냥 얼음 맛이 아니라 ‘쎄한’ 금속성 맛이 기억세포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요즘은 온통 산성비에다 설악산 정상의 눈 녹은 물을 봐도 새카만 입자가 가라앉아 있을 지경이니 고드름 칵테일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최근 경북 포항시 구룡포에 취재를 다녀왔다. 오랫동안 고기 잡은 어민이 인생 최고의 안주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오징어를 말했다. 갓 잡은 싱싱한 오징어 두 마리를 준비한다. 다리를 뽑아내고 조심스럽게 내장을 꺼낸다. 그것을 한 마리의 오징어에 쟁여넣는다. 그 다음 급속 냉동고에 넣어 재빨리 얼린다.

단단하게 얼면 꺼내서 살짝 녹여가면서 날카로운 칼로 재빨리 썬다. 고추냉이(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는다. 언제부터 먹었던 요리냐고 물어보니, 오래됐다고 만 한다. 필자는 이걸 속초에서 먹은 적이 있다. 스무해가 넘은 일인데, 그때만 해도 대포항이며 외옹치항 같은 항구가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 때였다.

당시 이런 항구에는 어김없이 포장마차가 있었다.

요즘 속초항 앞에 구색처럼 포장을 친 집이 몇몇 남아 겨울철에 몇 가지 횟감과 생선을 굽는데, 당시엔 어항이면 다 좌판이 있었다. 좌판에 부탁하면 트라이포드를 바람막이 삼아 숯을 피워주었다. 거기에다 투박한 석쇠를 얹어놓고 생선을 구웠다. 청어도 좋았고, 양미리와 도루묵도 구웠다. 소주를 플라스틱 잔에 따라 마시고, 한 점씩 고기를 뒤집어가며 먹는 재미가 참 대단했다. 그때 말만 잘하면 늘어선 횟집에서 특별안주를 얻을 수도 있었는데, 그게 바로 냉동오징어 회다. 산 오징어가 요새는 귀하디 귀해서 달랑한 마리를 잘라주고 돈을 받는데, 당시엔 배가 새벽에 들어오면 리어카로 실어 날랐다. 몇 마리쯤 떨어져도 줍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 리어카가 지나가면 나같은 관광객들이 서너 마리 정도 주워가도 뭐라 하지 않았다. 돈 만원에 아이스 박스 가득 30∼40마리쯤 받아서 서울까지 싣고 올 수도 있었다.


오징어는 안줏감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그중 오징어 간은 소주 안주로 기막히다
가을에는 연어를 살 수도 있었는데, 알을 배서 아직 상륙하지 않은 녀석들이 그물에 걸린 건 팔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상륙하지 않은 상태여야 아직 기운이 있어 연어가 맛이 있다. 알배기 연어를 사면 즉석에서 알을 꺼내고 몸통에 소금을 술술 뿌려서 스티로폼에 담아 팔았다. 당시 5천 원이나 했던 것같다. 놀라운 건 팔뚝만한 붉은 알집을 그대로 줬다는 사실이다. 1㎏쯤 나가는 그 알집 가격은 요즘 도매 시세로도 수십만 원 한다. 그것도 냉동수입이 아니라 연근해 자연산이라면 가격은 말도 못한다. 그런걸 그냥 연어에 끼워서(?) 주었다. 참 순진하던 시절이다. 그 연어알을 갖고 콘도로 가서 따뜻한 소금물에 슬슬 풀어서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었다. 그 귀한 연어알을 그 따위로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비릿한 철분 맛에 고소한 향 머금은 오징어 ‘간’

참,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냉동 오징어회는 아마도 간 때문에 먹는 것 같다. 그 흔한 오징어를 일부러 얼릴 필요도 없었으니 내장의 맛이 주당들을 은밀하게 유혹했으리라. 초장이나 고추냉이장에 푹 찍어 먹는데, 오래전에 맛본 것인데도 마치 막 입에 넣은 것처럼 생생하다. 오징어 내장은 거의가 간이다. 아리고 진한 맛이다. 그것이 얼려 있으니 처음에는 무슨 맛인지 모른다. 살점을 꾹꾹 씹다 보면 내장이 먼저 혀에서 녹는다. 비릿한 철분 맛과 함께 고소한 간 특유의 향이 가득 퍼진다. 비린 느낌은 전혀 없다. 그 안주를 먹고 소주를 마시다 보면 어쩌다가 내장이 소주잔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러면 술잔이 고동색으로 바뀐다. 내장 때문이다. 꼭 산 오징어만 회로 먹으란 법이 없다. 필자는 냉동 오징어를 사서 회로 곧잘 먹는다. 배에서 얼린 이른바 ‘선동 오징어’인데, 배에서 잡자마자 초저온 냉동한 것이어서 대개 선도가 좋다. 이것을 내장 빼고 껍질 벗긴 후 투박하게 썰어서 겨울 무와 고춧가루, 식초를 술술 뿌려서 버무려 놓으면 소주 안주로 기막히다.

필자가 자주 가던 산 오징어집은 한때 기막힌 안주를 팔았다. 직원들끼리 은밀하게 먹는 안주가 있었다. 바로 오징어 귀무침이다. 귀라는 건, 삼각형의 지느러미를 말한다. 그것을 대가리로 생각하면 귀에 해당해서 그렇게 이름 붙었다. 손님에게 나가는 오징어회에서 슬쩍슬쩍 지느러미를 뺀다. 오래전 오징어가 흔할 때의 일이니까 만 원에 일고여덟 마리의 산 오징어가 채반에 담겨 나갔다. 그러니 지느러미 좀 빼돌려도 아무도 몰랐고, 무엇보다 이 부위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 몸통을 좋아하지 미끈거리는 지느러미는 인기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아주 별미라는 걸 선수들은 안다. 샥스핀이 왜 샥스핀인가. 그 특유의 오돌오돌한 질감 때문이다. 샥스핀이나 오징어 귀나 모두 지느러미 특유의 조직감이 있다. 요걸 초장에 버무리면 기막힌 맛인 것이다. 가오리무침을 먹을 때 일부러 날개만 공략하는 사람이 있는데, 진짜 미식가다. 젤라틴이 많고 쫀득해서 아주 맛있기 때문이다.


최고급 안주 중 하나인 캐비어는 아페리티프 (식전주)와 함께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오징어 사촌인 문어요리도 인기가 있지만 워낙 비싸서 먹기 힘들다. 문어는 먹성이 아주 좋은 놈이다. 게와 조개, 새우를 마구 잡아먹는다. 그래서 맛이 좋다. 먹는 대로 맛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마구 먹은 영양이 어디로 가나. 바로 간이다. 문어를 잡으면 내장의 팔 할이 간이다. 간에 먹물주머니가 딱 붙어 있다. 보통 문어 다리를 좋아하지만, 선수는 간을 노린다. 살아 있을 때 통째로 들어낸 간을 면보에 받쳐 부드럽게 찐다. 대개는 터져서 먹물과 간이 흐르는데 개의할 필요 없다. 그렇게 찐 간에 레몬즙을 쳐서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푸아그라가 따로 없다.

앞서 연어알 얘기를 했는데, 오래전의 일이니까 이제 털어놓아도 될 사건(?)이 하나 있다. 밀수품 캐비아 사건이다. 러시아 캐비아가 요즘도 국제적으로 자연산은 유통이 금지돼 있는 것으로 안다. 멸종에 이른 러시아 흑해의 캐비아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과거에 몇몇 조종사가 캐비아를 통째로 들고 한국에 들어왔다. 승무원들에 대한 휴대품 검색이 여유로운 틈을 노린 것일 듯싶다. 당시에 들은 바로는 조종사 식사용이라고 우기면 통과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캐비아 없으면 밥 못 먹는다, 뭐 이런 논리를 폈다는데, 설마 고추장도 아니고 가능했을까. 그렇게 밀수한 캐비아가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먹다먹다 지쳐 “야, 요리사 하는 찬일이 주자”고 아는 형님들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 형님 말로는 처음 받을때 찬합만한 그릇에 캐비아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내게는 250g짜리 한 통이 왔다. 친구를 불러 싸구려 스파클링 와인을 따고 그대로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엄청 짜서 밤새 물을 마셨다. 다음날 얼굴은 퉁퉁 부어서 가관이었다. 숟가락으로 먹은 것은 그야말로 술꾼들의 로망이었던 까닭이다. 간혹 양식당에서 나오는 손톱보다 적은 양의 캐비아를 보면서 아, 언제 한번 캐비아를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으면 좋겠다, 뭐 이런 헛소리를 했었는데 공짜 캐비아가 당도하자 실천해본 것이었다. 그 형님에게 ‘찬합 캐비아’를 어떻게 먹었는지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응, 먹다 먹다 지쳐서 파스타 해먹었어.” 그 좋은 캐비아를 익혀 먹었다는 말이다. 뭐든 귀할 때 좋은줄 알지 흔하면 대우를 못 받는 법이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것이 자연산이 아니라는 말도 있었다. 양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값이 쌌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프랑스·한국 등과 함께 캐비아를 양식하는 나라다.


이탈리아에서 꼭 맛봐야 할 안주 중 하나로 꼽히는 ‘감베로 로쏘’(오른쪽)는 40~50도의 독한 술 그라파와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에서 꼭 맛봐야 할 안주 3선(選)

생선 하면 지중해를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에 간다면, 우선 초장 한 병을 챙겨가는 게 좋다. 자, 먼저 어시장에 간다. 어지간한 해안도시에는 새벽부터 어시장이 열린다. 오전에만 장이 열리기 때문에 반드시 일찍 서둘러야 한다. 어시장은 이탈리아어로 ‘페스케리아(pescheria)’라고 부른다. 포를 떠야 하는 번거로운 생선은 빼고 딱 두 가지만 공략한다. 하나는 새우다. 싱싱하게 펄떡펄떡 뛰는 산 새우가 있다. 특히 빨간색의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는 아주 달고 진하다. 게를 농축한 맛이다. 대가리를 따서 살점을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시칠리아나 남부 해안에서는 생선을 날로 먹는 습관이 있어서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팔린다.

그 다음은 참치다. 뱃살도 좋고, 등살(일본어로 보통 ‘아카미’라고 부른다)을 골라도 좋다. 냉동이 아니어서 입에 넣으면 그냥 녹는다. 이들은 뱃살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진가를 잘 모른다. 그래서 조금 웃돈을 주면 마구 잘라준다. 1㎏쯤 사도 우리 돈으로 10만 원을 넘지 않는다. 보통 등살은 ㎏당 50유로 안팎이다. 생참치를 푸짐하게 먹는 비결인데, 물론 물이 좋은지 잘 확인해야 한다. 소주를 가져갔다면 아주 잘 어울리고, 현지에서 그라파를 사서 물에 타 마시는 것도 좋다. 그런데 술을 파는 바에서 그라파를 달라고 하면 대뜸 잔에 따라 내민다. “병으로 주시오”라고 하면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그라파란 와인을 담그고 난 포도 찌꺼기와 줄기에서 발효, 증류하는 술로 보통 40~50도 정도로 출시되는 강한 술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식후에 한두 잔 마신다. 그리스의 우조나 프랑스의 마르와 유사하다. 소주처럼 맑은 술이어서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가 사망(?)한 한국인을 여럿 보았다. 필자가 다니던 요리학교 앞의 카페 주인은 한국인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국 학생들이 그라파를 병째 비우는 것을 본 후의 일이다. 십 몇 년이 흘러 다시 방문했는데, 주인이 나를 보자 반가워하면서 대뜸 병나발 부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그라파!”하고 외쳤다.

이탈리아에서는 꼭 먹어봐야 할 안주가 하나 더 있다. 보통 우리가 하몽이니 프로슈토니 하는 돼지 뒷다리 생 햄을 거론한다. 하몽 중에서 스페인의 흑돼지 하몽은 다리 한 짝에 중고 자동차 한 대 값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이탈리아 프로슈토는 그 정도는 아니다. 비싼 것도 보통 다리 하나에 50만 원이면 산다. 그런데 아는 사람만 아는 명품이 있다. 바로 ‘쿨라텔로(culatello)’라고 부르는 놈이다. 이 녀석은 프로슈토와 흡사한데, 아주 단단한 종아리근육으로만 만든다. 그러니까 ‘쿨라텔로>프로슈토’로 생각하면 된다. 이 녀석을 만드는 곳은 파르마의 지벨로라는 마을이다. 파르마는 알다시피 파마산 치즈를 생산하는 곳인데, 포(Po)라는 강이 흐른다. 강이 있으니 습하고 겨울에 안개가 낀다. 이 특유의 조건이 기막힌 생 햄을 만드는 환경이 된다. 돼지를 잡아 종아리근육을 소금에 문질러 절여 돼지오줌통에 넣고 숙성시킨다. 1년 이상 된 것이 시중에 나오는데, 얇게 잘라서 입에 넣으면 아주 기막힌 맛을 낸다. 살짝 노린내가 나는데, 거북한 냄새가 아니라 아주 색정적인 섹시한 냄새다. 쿨라텔로는 섹시한 여자의 엉덩이라는 은어로도 쓰일 정도다. 이걸 미친 듯이 먹었더니 소금 간 때문에 혓바닥이 다 갈라질 정도였다.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한다면 쿨라텔로를 잊지 마시라. 물론 축산품은 한국 반입 금지품. 배에 넣고 오실 것.

영국에서 ‘바’ 문화는 좀 특이한 데가 있다. 바는 계급을 나누는 핵심 문화다. 남자들의 ‘서식지’이며 배타성을 드러낸다. 도심의 오피스 타운에서는 일과가 끝난 시간이면 새카맣게 ‘양복쟁이’들이 몰려 있다. 굳이 실내에 들어가지도 않고 바 앞에 있는 거리에서 선 채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술을 마신다기보다 일종의 사교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런던의 거리 곳곳은 이런 풍경으로 저녁 그림을 만들어낸다.

종종 분위기 파악 못한 여행자들이 바에 들어가 술한 잔을 청할 때가 있는데, 여지없이 배타적인 분위기에 압도된다. 필자가 딱 그런 경우였는데, 술을 살수 있는 카운터의 직원이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고개를 슬슬 흔들었다. 이 정도면 물러나야 하는데, 고집 센 내가 ‘술이 안 되면 밥이라도’라고 했더니 아예이 시간에는 음식을 팔지 않는다고 대꾸한다. 그렇다. 바 안팎으로 진을 친 손님들이 영국식 영어 특유의 억양으로 떠들면서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있었지만 누구도 안주 따위는 먹고 있지 않았다. 맥주는 식간에도 마시지만, 일종의 아페리티프 즉 식전주다. 식전주에는 원래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는다. 안주를 꼭 같이 먹는 한국인들은 종종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쓴 술로 입맛을 돋우고 그 다음에 밥을 먹는것이 유럽과 영국식 음주문화다.

영국의 식전주와 돼지껍데기 튀김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집에서 아버지(가장)가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식탁에 앉아 석간신문을 보다가 ‘밥을 달라’고 청하는 장면이 곧잘 나온다. 일본은 자동차 운행 방향뿐 아니라 영국식의 여러 문화를 받아들였는데–일본 근대화의 주역이자 식민통치의 원흉 중 한 명인 이토 히로부미는 영국 유학생 출신이다–바로 맥주로 아페리티프를 하는 것도 그 영향이다. 영국의 유명한 피시 앤 칩스는 막상 먹게 되면 그 시큼한 식초를 뿌려먹는 방법에 이미 반쯤 실망하게 마련인데, 그래도 마음에 드는 안주가 있다. 바로 돼지껍데기 튀김이다. 알려진 대로 유럽은 가축을 알뜰하게 먹는다. 돼지껍데기도 물론 먹는다. 푹 삶은 후 기름에 튀기면 바삭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안주가 된다. 한국에서 이 안주를 파는 곳을 본적은 없다.


일부 국가에서는 가축의 성기가 정력에 좋다는 원시적 상상력이 발휘돼 인기를 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 고환과 성기 요리가 인기를 끌었다. 우시장으로 유명했던 옛 마장동 시장.
흔히 중국요리는 네 발 달린 것 중에 책상, 하늘을 나는 것 중에는 비행기만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본디 광둥요리를 일컫는 은유다. 그만큼 광둥요리가 다채롭고 재료를 풍부하게 쓴다고 알려져 있다. 혐오요리의 제일 꼭대기에 있었던 원숭이골 요리(별도의 탁자에서 머리를 드러낸 원숭이 골을 가격한 후 수프처럼 떠먹는 극상의 엽기 요리)도 이곳의 요리이고, 제비집 수프도 광둥의 별미다. 그런데 홍콩 외곽의 타이요라는 작은 마을에서 먹은 민어부레와 말린 오리알 요리를 잊을 수 없다. 민어부레는 흔히 한국에서 회로 먹거나 데쳐서 안주로 내는데, 이곳은 말려서 튀긴다. 바삭한 겉이 치아에 부서지면, 이내 고소한 뒤끝이 남는다. 남쪽의 발효주인 황주에 곁들이면 아주 좋다. 황주는 보통 배갈이라고 부르는 백주와 달리 곡물을 발효시켜 숙성하는 술이다. 추운 북쪽 지방에서는 화주가 어울리지만,남쪽은 덥고 습해서 술을 많이 마시지 않기 때문에 발효주가 발달했다고 한다.

황주와 어울리는 민어부레, 말린 오리알 요리

중국 남부에서는 황주에 소동파의 요리라고 알려진 동파육(둥퍼러)나 마오쩌둥이 사랑했던 홍소육(훙샤오러)를 곁들여 먹는 게 흔하다. 그런데 같은 남중국 이라고 하더라도 홍콩의 상당수 얌차(딤섬) 식당에서는 아예 술을 안 파는 경우도 많다. 아니, 이 산해진미를 놓고 술이 없다니! 영국의 영향을 받아 와인을 갖춰놓은 경우는 있는데 맥주나 배갈, 황주조차 없는 곳도 많다. 그래도 대중식당에서는 황주를 마실수 있는 곳이 있다. 한약재를 넣기도 해서 갈색을 띠는 황주는 10년 이상 숙성시켜 진득한 질감을 내는것도 있다. 향기로운 황주 한 잔에 민어부레나 말린 오리알 노른자를 안주로 하면, 남방의 풍미가 저절로 가득 찬다. 음식을 약이 되는 식보(食補) 차원에서 다루는 건 한국보다 중국이 더 심한 것 같다. 홍콩의 식재료상은 한약방인지 재료상인지 구별이 안 된다.

음식을 약리적 차원에서 다루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종종 원시적 상상력이 발휘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축의 성기가 정력에 좋다는 발상이 그것이다. 필자는 이탈리아에서 소 고환과 성기를 넣은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다. 튀기거나 쪄서 식초를 쳐서 먹는다. 그들도 희한하게 비슷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한국에서 소 ‘거시기’ 요리는 옛날 마장동에서 인기가 있었다. 고환은 회로 먹기도 했지만, 대개는 삶아서 팔았다. 지금도 마장동에 가면 고환과 성기를 세트로 파는 정육점이 있다. 해남에 가면 ‘미자탕’이라고 하여 성기를 푹 삶아서 탕을 내어 주는 집이 있다. 그것이 정력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을 빼면, 술안주로 그다지 권할 만한 뛰어난 맛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남자들끼리 킬킬거리면서 은밀한 악취미를 같이 공유한다는 개구쟁이 의식 정도랄까, 딱 그정도의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다. 희한한 안주라면 제주도의 애저탕이 제일 꼭대기에 있다. 동문시장에 아직도 다루는 집이 하나 있다. 요새는 돼지 사양 관리가 잘되어 난산이나 사산하는 경우도 드물어서 재료가 되는 태중의 새끼돼지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원하면 예약을 해야 맛볼 수 있다. 애저탕은 끓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회다. 새끼돼지를 통째로 갈아서 양념을 친 요리다. 그래서 분홍색을 띠는, 엽기적 모양이다. 맛을 보니, 뭐랄까 희미한 맛의 생고기를 그냥 갈아낸 느낌이다. 온갖 양념으로 맛을 돋우고 빼고 했는데, 딱히 이걸 굳이 먹어야 할까 싶은 정도의 맛이었다. 어쩌면, 이것도 남자들만의 은밀한 용감함과 정력 숭상 의식이 만들어낸 ‘미식’이 아닐까싶다. 이 안주는 필자의 경우 술이 잘 들어갔다. 왜냐하면, 입에 남아 있는 애저의 맛을 지우기 위해 연신 막걸리든 소주든 들이켜야 했기 때문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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