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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고개 숙인 청와대 비서실 - 힘 빠지고, 피곤하다 ‘이제는 떠나고 싶어’ 

파워는 예전만 못하고 일에서도 소외돼 회의감 번져… 총선 앞두고 일부 캠프 출신들은 ‘여의도행’ 저울질 

월간중앙 특별취재팀
2월 25일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는다. 국정지지율로 본 박 대통령의 지난 2년의 성적표는 기대 이하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청와대 참모들도 맥이 풀린다는 반응이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청와대 직원들의 지난 2년을 복기했다.

▎광화문광장 앞 도로에 켜진 신호등 노란불 너머로 청와대가 보인다. 청와대 근무자들의 열정과 만족도가 역대 정부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이 연일 구설에 올랐다. 2월 10일 만취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 행정관이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가 하면, 파출소에서도 소란을 피웠다가 결국 면직됐다. 직전인 2월 6일에도 민정수석실의 또 다른 행정관이 방위산업체 간부에게서 골프접대를 받은 사실이 내부 감찰에서 드러나 사직한 일이 있었다. 지난 1월 김영한 전 민정수석 항명 파동에 이어 청와대 직원들의 일탈 행위가 벌어져 여론의 빈축을 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공직기강 확립을 누차 강조했다. 마침 설 연휴를 앞두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보안·복무 점검을 벌이는 와중에 잇따라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시기와 맞물려 있는 터라 내부 기강이 헐거워져 우왕좌왕한다는 인상을 준다.

대한민국 권력의 심장부라 할 청와대는 공직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일해보고 싶어 하는 선망의 일터로 꼽힌다. 특히나 공무원들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엘리트 코스로 불린다. 보직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청와대 근무 자체가 가문의 영광이었고, 주변의 기대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 보니 청와대 비서실의 ‘끗발’을 악용하는 사건도 빈번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한 대기업이 청와대 비서관의 이름을 사칭한 사기 전과자를 별다른 신분 확인 절차도 없이 부장급으로 채용해 한동안 6천만원의 연봉을 지급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수사 결과 그는 자신이 사칭한 청와대 비서관과는 일면식도 없는 인물임이 밝혀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름과 신분이 도용된 사람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이었다.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청와대 측근 ‘3인방’으로 불리는 한 사람이다. 청와대 실세의 아우라(Aura)는 대기업 관계자들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그렇듯 세인들의 이목을 끄는 청와대에 언제부터인가 심상찮은 기류가 감지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지금의 청와대는 역대 정부 청와대 중에서 가장 매력 없는 직장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고 했다. 딱히 물의를 빚어 손가락질을 받거나 비리 온상이라는 오명이 억울해서가 아니다. 앞서 청와대 공무원들의 비위 행위는 역대 정권의 청와대 권력형 비리에 비하면 규모 면에서 애교에 가까울 정도라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지난해에 휴가라고는 여름에 이틀 쓴 게 전부다. 월차·연차는 꿈도 못 꾼다. 매일 아침 6시 전에 출근해 회의 자료를 대령하고, 현안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면 어느새 야근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반복이다. 야근이 길어져 사무실 모퉁이에서 겨우 눈만 붙이는 날에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바로 일과에 돌입하기가 일쑤다.” 청와대 직원 A씨는 자신의 고단한 일과를 이렇게 돌이켰다. 그는 “개인의 삶은 거의 없고 일에 파묻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수석실에 따라 차이는 나겠지만 청와대의 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격무다. 매 순간 터져 나오는 사건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자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는 것이다.

업무 강도가 세다 보니 육체적 피로도 증가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직원이 출근은 오전 8시 전에 완료하는데 부서에 따라서는 오전 6시에 출근하는 직원도 있다. 그렇다고 정부부처 공무원처럼 오후 6시 퇴근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일부 고위공무원은 청와대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제공받기도 하지만 비서실 직원 대부분은 녹초가 된 몸을 대중교통에 싣고 집으로 향한다.

“죽도록 일하는데 피드백 없고, 실망만 쌓여”


▎올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업무보고’ 행사에 배석한 청와대 직원들.
청와대는 대통령 비서실과 대통령 경호실, 국가안보실로 나뉜다. 경호업무를 전담하는 경호실과 국가안보 분야의 중장기 정책과 전략을 짜는 안보실은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 영역이어서 일반적으로 청와대 직원이라 하면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지난 1월 청와대 업무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대통령 비서실에는 420명가량의 직원이 일한다. 장·차관급인 정무직(수석비서관)이 10명 안팎, 고위공무원(1~2급 비서관)이 60여 명, 행정관(3~5급)이 180여 명에 달하고 행정요원과 기능직(6~9급) 150여 명이 실무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이 가운데 수석과 비서관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비서실 행정관은 원칙적으로 해당 수석이나 비서관이 선발하지만 인사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행정관은 중앙 정부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과 정치권 또는 각계 전문가 그룹에서 영입된 별정직 공무원으로 나뉜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몸담은 곳에서 베스트를 달리던 인재들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들을 일명 ‘늘공’(늘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부르곤 한다. ‘늘공’과 ‘어공’이 어우러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곳이 청와대다. 청와대 근무는 공직자들에게는 경력관리에 안성맞춤의 보직으로 불린다. 이명박 정부만 해도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원대 복귀를 하게 되면 곧바로 승진을 하거나 승진 우선 대상자로 관리해줬다. 말하자면 금의환향에 가까웠다. 하지만 요즘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고 당사자들은 입을 모았다. “예전 같으면 BH(Blue House, 청와대)에 들어왔다 나갈 때 거의 승진해서 나갔다. 이명박 정부 때는 어떻게든 급수를 올려줘 승진도 많이 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기회가 오히려 줄었다. 그래서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서 ‘신명이 안 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청와대 관계자 B씨는 심지어 “정부의 정책 기조가 달라진 것 같다”면서 “예전만큼의 보상도 뒤따르지 않는 상황이라 회의감·실망감이 들 때가 있다”고 원대 복귀를 앞둔 심경을 토로했다.

부처에 협조 요청할 때도 조심스러워


▎대통령 비서실은 위민관에 자리하고 있다. ‘국민에 봉사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사회·문화 관련 부처에서 청와대에 파견된 공무원 C씨는 심지어 소속 부처와의 업무 협조마저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정권 초기 박 대통령의 인기가 좋을 때는 부처 업무 협조도 편안하게 잘되고 반응도 즉각적이었다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요즘은 나부터가 조심스럽다. 혹시라도 중앙부처가 떨떠름하게 반응하거나 엉뚱한 말이 나오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 청와대 주도의 ‘관피아’ 척결이라든가, 연말 공무원연금 개혁 방안 추진 과정에서 쌓인 공직사회와 청와대 간의 앙금이 원활한 업무 협조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이와 관련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금 청와대와 관료사회 관계를 찰떡궁합이라고 말하긴 어렵다”면서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착수하면서 관료 시스템이 사보타주(태업)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어공’의 미래는 한층 더 불투명하다는 설명이다. ‘늘공’은 돌아갈 곳이라도 있지만 ‘어공’은 자칫 공중에 뜨는 경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청와대에서 2년 정도 근무하고 물러나면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으로 말을 갈아타는 코스가 일반적이었다. 급수에 따라 경영진이나 임원, 중간간부급으로 모셔갔다. 2~3년에 달하는 임원 재직 기간은 청와대 근무에 따르는 보상과 같은 성격으로 여겨졌다. 요즘은 그런 보상은 별로 기대할 게 못 된다는 인식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박 대통령부터가 평소 청와대 근무를 권력을 누리거나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 걸 극도로 경계해왔다. 국가를 위한 복무에 보상을 기대하는 건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의 청와대 또한 이런 분위기를 타지 않을 수 없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 B씨는 “정치권에서 온 공무원들은 이제 자기네 식구도 안 챙기는 것 같다”면서 “여러 가지로 부담이 돼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청와대 내부 풍경을 전했다.

‘어공’들은 청와대 안에서도 갈수록 소수파로 밀려나는 추세라는 게 청와대 민정라인에 근무하는 D씨의 진단이다. 대략 250여 명 선에 달하는 5급 이상 직원의 3분의 2 정도가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이뤄져 있을 것으로 청와대 관계자들은 추정한다.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국회, 정당, 대선캠프, 외부 전문가 그룹에서 온 ‘어공’들로 구성됐다고 볼 때 이들의 파워가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친박계 인사들도 수긍하는 바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으로까지 굳이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역대 정부의 청와대는 정권 창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정치권 인사들이 요직을 확고히 틀어쥐고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게 관례였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박영준 전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2008년 2~6월) 등 선거 캠프 인사들이 청와대의 중추신경계를 거머쥐었다. 정권교체에 따른 청와대 물갈이 작업과 맞물리긴 했지만 정치권 출신은 적은 인원으로도 다수파의 입지를 구축했다는 게 이명박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캠프 출신 인사들의 기세가 정부 파견 공무원들을 압도했던 시절”이라고 돌이켰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충성심 강한 캠프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에 포진함으로써 국정과제의 일사불란한 추진이 가능했다.”

오갈 데 없는 ‘어공들’, “아 옛날이여”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박 대통령을 환영하는 청와대 직원과 군장병들.
반대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정부 부처 파견 공무원이 대세다. 박 대통령부터가 검증된 고시 출신 인사들을 신뢰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청와대 공무원 D씨의 진단에 따르면 청와대 4급 이상 공무원 중 박 대통령과 고락을 같이한 선대위 출신은 20명 남짓이다. 역대 정권과 비교해볼 때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다. 그나마 이들이 정치업무와 유관한 정무수석실이나 홍보수석실에 주로 배치되다 보니 나머지 수석실에 돌아가는 인원은 각각 한두 명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의 정치노선을 정책에 투영해야 할 캠프 인사들이 각 수석실에 포진한 중앙부처 파견 공무원들에게 간단히 에워싸이는 형국이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책에 반영하기는커녕 부처 파견 공무원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여건이 조성될 수도 있다.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친박계 핵심 인사로 청와대에 입성했던 모 행정관(국정기획수석실)이 사표를 낸 것도 그 연장선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국회 보좌관 출신(4급)이 청와대 4급 행정관으로 수평 이동할 경우 연봉에서도 상당한 손해를 본다고 한다. 급여는 깎이고 일은 고되니 청와대로 오려고 하는 이가 줄었다. 과거의 영화(?)를 잃어가는 청와대의 풍경이다.

정치권 인사들로 붐비던 시절의 청와대는 융통성이라도 발휘했다. 요즘은 관료가 대세를 이루다 보니 규정을 따지고, 전례를 찾다 보면 시간이 다 흘러간다. 과거 ‘끗발’이 있던 시절 청와대에 근무하는 인사들에겐 온갖 민원이 빗발쳤다. 요즘은 민원인이 국회와 정당으로 직행하거나 정부부처로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청와대 주변을 서성이던 기업인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market)으로 넘어갔다”고 한 2000년대 이후 청와대의 권능은 현저하게 약화되는 데 반해 대기업 등 경제계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커졌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 동료애로 감싸주던 훈훈함은 온데간데없고,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조짐도 감지된다고 한다. 청와대 공무원 E씨는 “과거에는 수석비서관이나 선임자들이 부하들의 잘못을 떠안고 고통을 분담하는 게 전통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이마저도 옛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예컨대 행정관이나 하급 직원이 작성한 문서나 보고서에 오류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오롯이 작성자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과거엔 수석들이 아랫사람의 허물도 다 끌어안아주는 경향을 보였지만 지금은 실무자에게까지 책임이 내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노력에 보상이 따르지 않는 청와대는 ‘늘공’에게도, ‘어공’에게도 매력이 반감하게 마련이다. 일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버틴다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청와대 생활이 주는 보람만큼이나 회의감도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심지어 청와대 행정관 중에는 “지인이 청와대 입성을 타진해와도 적극적으로 권하진 않는다”는 이도 있다고 친박계의 한 소식통이 전했다.

사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려는 이들일수록 현실에 대한 좌절이 큰 법이다. 지난해 말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당시 청와대 일각에서는 대통령 측근 3인방 중 한 명은 바꿔야 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바꿈’이란 청와대 울타리 밖으로의 전출이다. 그래야만 격앙된 민심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서 큰 맘 먹고 직언을 한 셈이다. 그런데 감감무소식이다. 앞서의 소식통은 “반응이 없다는 건 만들어지는 보고서가 족족 휴지통으로 들어간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외쳐도 메아리가 없는 환경에서는 의욕이 고취되지 않는 법”라며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청와대에서 근무 중인 중앙부처 출신 행정관 F씨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축 쳐져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언론에서 연일 청와대를 두드리는 통에 흡사 ‘동네북’으로 전락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는 것이다.

공직기강 파트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고 한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주역으로 등장한 문건 파동은 민정수석실 내 힘의 균형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원래 2급 이상 고위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등에 대한 인사검증과 감찰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지난해 하반기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하던 검증 업무의 상당부분이 민정비서관실로 이관됐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오면서 힘을 받기 시작한 민정비서관실이 우병우 민정수석 체제에서는 날개를 달 게 자명하다. 상대적으로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위축된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이 검찰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배경과도 맞물린다. 채동욱 전 총장 사퇴 이후 검찰 내부는 잡음 하나 일지 않았고, 수사를 맡기면 일사천리도 진행된다는 뜻에서다.

별도로 검찰의 달라진 조직 체계가 청와대 하명에 더 순응하도록 만든 측면도 없지 않다고 여권 내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가 분석했다. 지난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폐지되면서 정권 실세와 권력형 비리 수사기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이관됐다.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검 중수부 폐지를 전제로 ‘특별감찰관제와 연계한 상설특검제도’를 공약했다. 정권 실세에 대한 사정기능을 일부 나눠가지는 특별감찰관은 2월 현재 공석이다. 중수부도 특별감찰관도 없다 보니 모든 기능이 중앙지검으로 쏠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수부 역할까지 떠안은 중앙지검장은 검찰 권력의 중핵이자 강력한 검찰총장 후보감으로 간주된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는 검찰 내 파워가 대금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원화됐다면 중수부 폐지 이후에는 서울중앙지검장에게로 무게중심이 기우는 모양새”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서울중앙지검장은 청와대의 하중을 예전보다 더 강하게 받는다는 말도 된다. 연장선에서 검찰 조직을 관장하는 민정수석실의 역할과 권능이 여타 수석실보다 돋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같은 수석실이라도 뜨는 조직과 지는 조직의 명암이 크게 엇갈린다.

대통령의 생각 감으로 때려잡을 수도 없고…


▎대통령 비서실이 자리한 위민관 현관문에 비친 청와대 직원들. 대통령 비서실에는 420여 명이 근무한다.
청와대 상층부도 고민을 안고 있다. 수석비서관은 수석비서관대로 역할에 따른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체험하면서 무력감에 젖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에 임명되는 이들은 초기에는 대통령 가까이서 호흡하며 국정을 보좌하겠다는 부푼 꿈에 가슴이 설렌다. 청와대 고위직을 맡게 되면 대통령이 불러서 상의도 하고, 허심탄회한 의견도 교환하리라 생각하게 마련이다.

오래 못 가 그런 환상은 깨져나간다. 박 대통령에게 가까이 갈 기회가 흔치 않다. 대통령의 주요 메시지도 비서실장이나 부속실을 통해 전달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과 따로 만나 흉중을 터놓는 건 고사하고 대면보고 기회조차 제때 갖지 못하는 수석이 나온다. 대통령과의 접촉면이 없는 수석은 대통령의 의중은커녕 안색도 모른 채 서류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권위가 서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수첩에 올라 발탁된 수석 중에는 정치력보다는 정책 제안을 통해 대통령의 눈에 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친박계 활동을 해온 것도 아니어서 대통령의 생각을 감으로 때려 잡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는 비서관 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청와대 모 비서관은 사석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뭘 알아야지 사업 계획을 세우는 데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는 취지의 하소연을 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나 자신은 모르는데 일은 항상 벌어진다”고 말했다. 행정관들도 자신이 올린 보고서 내용은 오간 데 없고 난데없는 지침이나 과제가 내려오면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일에 대한 반향이 없고, 정보에서도 소외되면 눈치만 는다. 엘리트라 자부해온 자존심에 금이 가고, 자신에게 환멸을 느낄 수도 있는 환경이 바로 청와대다. 예컨대 청와대는 이런 표현에 거부감을 갖지만 ‘3인방’이니 ‘십상시’(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아 조정을 주물렀던 환관 10명. 대선 캠프 출신으로 청와대 핵심 보좌진들을 이르는 말로 쓰였다)로 불리는 몇몇 청와대 참모는 대하기가 괜스레 거북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직원들도 있다.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부속비서관실의 행정관의 권능이 웬만한 수석과 비서관의 그것을 능가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고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이 전한다.

3인방으로 분류되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국회 운영위 고정 출석 멤버다. 그는 이런 류의 지적이 제기될 때마다 본분을 벗어난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결백을 호소했다. 1월 9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자 그는 “내가 맡은 직분에서 조금도 권력남용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힘 있는 비서관은 앞서 봤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기극이나 신분 사칭의 지렛대로 동원된다. 역대 정부의 권력 창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학계 인사는 “측근 비서관들은 권력을 왜곡할 의향이 없을지라도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자체가 권력을 행사하는 게 된다”고 말한다. 이른바 3인방의 말이라면 그게 대통령의 뜻인지 아닌지 의구심을 품어도 확인해볼 길이 없다. 권력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정권의 핵심에서 몸담은 이들이 증언한다.

이명박 정부의 막후 실세로 거론된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그들도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국정에 임한다. 실제로 3인방은 밤낮없이 죽으라고 일에 매달릴 것이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권력인데 본인들은 그걸 권력으로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한다고 말하면 ‘내게 무슨 힘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니 대화가 겉돌 수밖에 없다.”

여의도 권력에 줄 서려는 움직임도


▎박근혜 대통령이 2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증세 문제 등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근무에 정을 못 붙인 이들 중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차원에서 여의도 권력에 줄을 서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한다. 1년 전에도 이미 그런 기류가 감지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보다 구체화한다는 것이다. 친박계 소식통은 “새누리당을 포함한 여권 전반에 뚜렷한 차기 주자가 부상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제, “그럼에도 일단 청와대를 떠나야 차기의 주류 그룹에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언제 그만 둘 것인지 타이밍을 살피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적당한 때를 봐서 차기 정권 창출에 참여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조바심에 시기를 저울질하는 이들을 말한다.

정권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아 레임덕에 가까운 상황에 놓이다 보니 청와대 직원 중에는 이렇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경우도 있다. 최근 빈발하는 청와대 직원들의 일탈 행위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새로 올 대통령비서실장이 축 늘어진 청와대 분위기를 확 바꿔줄 지도력을 겸비했느냐가 관전포인트로 주목받는 이유다.

- 월간중앙 특별취재팀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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