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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오바마 미 대통령의 대(對)테러 전쟁 손익계산서 

끝나지 않는 ‘중동전’ 재주는 미국이 부리고 잇속은 러시아가 챙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임기 1년 남기고 이라크·아프간·시리아 등 3개의 전선에서 사실상 패배… 시리아 내전은 유럽의 대량 난민사태 촉발, 중동에선 러시아·이란 발언권 키워

▎2014년 1월 시리아 야르무크 난민촌에서 식량배급을 기다리고 있는 난민들.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1천만 명이 넘는 주민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 사진·중앙포토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의 북부도시 쿤두즈. 수도 카불에서 250㎞ 떨어진 이 도시는 인구 30만 명이 거주하는 아프간의 전략 요충지들 중 하나다. 쿤두즈는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접한 쿤두즈주(洲)의 주도로 중앙아시아로 연결되는 주요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길목에 있다. 9월 28일 새벽 탈레반 대원 수백 명이 쿤두즈를 기습 공격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군과 12시간 전투를 벌인 끝에 이 도시를 완전 장악했다. 탈레반은 시내 광장에 자신들의 깃발을 내걸었고, 정부 건물과 병원 등을 약탈하는가 하면, 경찰서와 교도소에 있던 수감자 600여 명을 석방했다. 탈레반은 “쿤두즈 시민은 생명과 재산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새 최고지도자인 물라 아크타르 만수르의 성명서를 도시 곳곳에 붙이고 쿤두즈 함락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도시 전체를 장악한 것은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정권을 뺏긴 지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탈레반의 쿤두즈 점령은 아프간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탈레반을 소탕하고 쿤두즈를 탈환하겠다면서 무려 1만7천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의 공중지원까지 받으며 대대적인 작전을 펼쳤지만 보름이 지난 10월 13일에야 겨우 탈환에 성공했다. 탈레반은 쿤두즈에서 물러났지만 대원 2천여 명을 동원해 남동부 거점도시인 가즈니를 공격했다. 또 아프간 동부 타카르주의 이쉬카미쉬와 양기칼라를 점령하기도 했다. 탈레반의 대도시들에 대한 공세에 아프간 정부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미국 정부에 지원을 긴급 요청했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존 캠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캠벨 사령관은 불안한 아프간 상황을 고려할 때 안정화 지원군 명목으로 잔류하는 9800명 규모의 미군의 철군 계획을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캠벨 사령관을 비롯해 아프간 주둔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특수부대 등 소수 병력을 제외하곤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인 아프간 정부군이 게릴라전에 익숙한 탈레반에 비해 전투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완전 철군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실제로 탈레반은 지난 7월 최고지도자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의 사망이 확인된 이후에도 아프간 곳곳에서 과거보다 더욱 강력한 공세를 펴왔다. 오마르는 2013년 4월 파키스탄 남부 도시 카라치의 한 병원에서 숨진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특히 탈레반의 새 최고지도자 만수르는 외국 군대의 철수 없이는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은 없다면서 강경 입장을 보여왔다. 만수르는 AP통신과의 전화 통화에서 “쿤두즈 점령은 탈레반의 힘을 보여준 상징적 승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탈레반 최고지도자가 서방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만수르는 지난 2년간 오마르의 실질적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 40대 후반으로 알려진 만수르는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출생으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할 당시에는 항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의 절반 정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프간의 376개 행정구역(district) 가운데 186개가 탈레반의 영향권에 있으며, 주를 중심으로 보면 전체 34개 주 가운데 27개가 탈레반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은 이들 지역에 직원들의 방문이나 통과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특히 무정부상태이거나, 아프간 정부의 행정력이 거점도시 정도로 국한돼 있는 곳들도 34개 주 가운데 14개나 된다. 명목상 아프간 정부가 통제한 지역에서도 실제로는 정부군이 탈레반에 포위당한 채 중심가 정부건물 안에서 갇히다시피 있는 경우가 많다.

3대(代)에 걸친 미국의 대(對) 아프간전쟁


▎미군의 폭격을 받아 파괴된 쿤두즈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내부 모습 / 사진·중앙포토
아프간의 주요 도시들을 잇는 제1 고속도로의 경우, 남부 지역에서 탈레반의 매복이나 도로통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움츠러들었던 탈레반 세력은 현재 가장 넓게 확장됐다. 그 때문에 탈레반의 쿤두즈 함락을 결코 우연히 발생한 전투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특히 탈레반은 만수르 체제 출범 이후 농촌지역을 거점으로 자살폭탄 테러를 가하는 소규모 작전에서 주요 도시를 직접 압박하는 적극적 공세로 전략을 바꿨다. 더구나 지난해 말 미군 등 나토군이 아프간 치안유지 책임을 아프간 군·경에 넘기고 지원임무만 맡음으로써 정부군의 세는 약해진 반면, 탈레반은 파키스탄 등 외국에서 유입된 대원이 늘어나면서 대규모 전투도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군이 쿤두즈를 탈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당혹스러운 입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니컬러스 번스 전 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쿤두즈 함락은 쇼크였다”면서 “이곳은 아프간에서 전통적으로 탈레반이 강하지 않았던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 공군기가 쿤두즈에서 활동해온 국제 민간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SF)의 병원을 오폭해 의사와 환자 등 민간인 22명이 사망하자 사과까지 해야 했다.

35만여 명 아프간 군·경, 탈레반 공세에 속수무책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폭격과 관련해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존 캠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가운데). / 사진·중앙포토
아프간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아프간의 미군 완전철군 연기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아프간이 미국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군이 전쟁의 화마에 휩싸인 아프간에 몇 년 더 남아있음으로써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임기 내에 아프간에 주둔한 모든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겠다던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내년까지 현행 9800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2017년에는 5500명으로 줄인 뒤 이후 아프간의 치안 상황을 봐가며 감축 규모를 결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전쟁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거쳐 차기 대통령으로까지 넘어가게 됐다. 잔류 미군은 앞으로 바그람, 잘랄라바드, 칸다하르 기지에 머물면서 아프간 정부군 훈련과 자문 등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아프간을 침공해 13년 만인 지난해 종전을 선언한 뒤 아프간 안정화 지원군 명목으로 9800명을 잔류시켜왔다. 아프간전은 올해까지 14년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최장기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쟁(1964∼1975년)의 기록을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미국이 그동안 아프간에 쏟아부은 돈은 전쟁비용과 복구비용 등을 합쳐 모두 8172억 달러(922조6천억원)로 추산된다. 목숨을 잃은 미군 수도 2356명으로 파악된다. 사망자들 중 39%인 917명이 급조폭탄(IED)에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투입한 자금 중 650억 달러(76조원)는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의 재건을 위해 사용됐지만, 이들의 전력은 탈레반을 소탕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35만 명 규모인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탈레반의 공세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분쟁지역에 미군을 파병하지 않고 현지 병력을 훈련시켜 관리한다는 전략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 완전 철군 백지화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쿤두즈 점령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아프간에서 미군을 완전 철수할 경우 제2의 이라크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왔다. 실제로 미국이 2011년 이라크에서 군 병력을 완전 철수시킨 이후 종파분쟁으로 정치적 혼란과 치안 부재사태가 벌어졌고, 이 틈을 이용해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하는 빌미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아프간 완전 철군 백지화 배경에는 ‘이라크의 교훈(lessons of Iraq)’이 있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비슷한 일을 반복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이후 9년간 1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라크에 주둔시켜왔다.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이라크 정치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말까지 모든 미군 전투 병력을 철수 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 캠페인 과정에서 이라크 철군을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했다. 하지만 미군이 철수하자 시아파 출신인 누리 알 말리키 당시 이라크 총리는 이란과 손잡고 수니파를 억압했다. 그러자 수니파에 대한 탄압이 IS의 세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미국은 훈련과 작전 지원 등의 명목으로 3천여 명의 미군 병력을 다시 이라크에 보내야만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라크전도 사실상 미국의 실패로 끝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브라운대 부설 왓슨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8년간 이라크에 병력 17만 명을 주둔시켰지만 이라크의 평화와 안정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이 오히려 중동 지역에서 반미주의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는 바람에 미국의 국력도 함께 쇠퇴했다.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국의 자금은 직접 비용 1조7천억 달러와 참전군인 보상 등에 4900억 달러 등 2조1900억 달러(2476조원)로 추산됐다.

이라크에선 평화와 안정은 아직도 먼 미래의 얘기나 다름없다. 지난해 여름 이후 IS가 이라크 서부와 북부 지역을 파죽지세로 석권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라크 정부군은 고질적인 지휘력 부재와 미숙한 작전 역량 등으로 IS를 효과적으로 소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은 지상 전투를 벌이지는 않고 있다. 대신 공습 같은 항공지원과 정부군과 친정부 무장세력 등에 대한 군사 훈련 등을 담당한다.

시리아 내전은 유럽 난민사태의 진원지


▎2012년 당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사들이 쿠나르주 조이스 기지에서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 미군 완전 철수계획은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론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스티브 워런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라크는 당연히 전투 지역이며, 전쟁이 진행 중”이라면서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이 위험수당을 받고 총을 소지하고, 전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런 대변인 발언은 미국이 또다시 이라크에서 전투 임무를 벌이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이미 미군 병사가 전사하기도 했다. 미군이 지난 10월 22일 IS에 억류된 인질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특수부대 소속 조슈아 휠러 상사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휠러 상사는 2011년 미군을 철수시킨 이후 이라크에서 전투 중 사망한 첫 미군이다.

미국으로선 IS소탕을 위해 이라크에서 할 수 없이 지상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아파치 헬리콥터 비행대를 배치하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8대의 아파치 헬기와 지원 병력을 이라크에 추가로 배치하는 방안을 백악관에 건의했는데, 아파치 헬기 배치가 이뤄질 경우 미군 수백여 명을 이라크에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 아파치 헬기는 저공으로 비행하며 정밀 타격력이 뛰어나 지상 요원들과 공동작전을 통해 IS에 대한 공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방부의 이런 제안을 수용할 경우 미군의 이라크 추가 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분쟁 지역에서 군사적 역할을 점차 줄여나가겠다는 방침과 배치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군은 지난해 IS와 싸우는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하려고 이라크 서부 팔루자 인근 지역에서 처음으로 아파치 헬기를 투입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사태에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시리아 내전은 지난 2011년 3월부터 시작됐다. 현재 시리아 정부군과 온건 반군, IS 등 극단주의 세력이 뒤얽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4년 8개월간 사망자는 25만여 명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민간인으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현재 아무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지옥으로 전락했다. 특히 IS가 시리아 동부와 북부를 장악하고참수 등의 잔인한 방식으로 민간인들을 처형하는 등 공포를 더욱 가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시리아 주민 1160만여 명이 국내외로 피난에 나서면서 난민 신세가 됐다. 시리아 난민은 전체 인구 2300만 명의 절반을 넘고 있다. 난민들 중 760만 명은 시리아 국내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떠돌고 있다. 또 400만여 명은 국경을 넘어 터키와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 이웃나라로 피신했다.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외국으로 떠난 난민들 중 190만 명이 터키에 머물고 레바논에 120만 명, 요르단 65만 명, 이라크 25만 명, 이집트 13만 명이 각각 체류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럽에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럽의 대규모 난민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이 됐다.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뿌리 깊은 종파 분쟁 때문이다. 1971년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부터 아들인 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까지 40년 넘게 집권한 시리아의 현 지배층은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다. 알라위파는 시리아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한 소수 종파이고, 인구의 73%는 수니파다. 수니파는 대부분 반군을 지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알 아사드 대통령은 자신의 종파와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등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게다가 반군 세력이 두 편으로 갈라진 것도 내전을 더 복잡한 양상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혁명전선, 자유시리아군 등 온건한 세속주의 반군세력과 IS와 알 카에다의 시리아 지부격인 알누스라 전선 등 극단주의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의 또 다른 양상은 지역 차원의 종파 전쟁으로 비화됐다는 것이다.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터키, 요르단 등이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시아파를 이끄는 이란과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는 정부군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이란은 내전 초기부터 시리아 정부에 수십억 달러 상당의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왔으며, 헤즈볼라와 함께 최대 5만 명 규모의 민병대를 만들어 훈련시키고 있다. 특히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인 알 쿠드스 부대 일부가 직접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리아 반군도 두 패로 갈린 혼돈의 극치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세를 확장하며 공포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미국은 그동안 시리아 내전사태를 끝내고 IS를 소탕하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추진해왔다. 사우디 등 아랍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연합전선을 구축해 IS를 공습하는 것과 온건 반군들을 훈련시켜 이들로 하여금 지상전을 벌이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들은 현 상황에서 볼 때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30억 달러(3조5550억원)를 들여 3천 회 넘게 IS 거점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지만 IS는 여전히 건재하다. 또 5억 달러를 쏟아부은 반군 교육훈련도 지리멸렬한 상태다. 특히 온건 반군을 지상전에 투입한다는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은 올해부터 매년 5천 명씩 3년간 1만 5천 명의 온건 반군을 훈련·무장시킨다는 방침이었으나, 지난 7월 당시까지 고작 60명을 훈련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미국은 지난 10월 온건 반군 훈련계획을 중단해야만 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온건 반군 훈련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실패를 자인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사태에 무력 개입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 9월 30일부터 IS를 격퇴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공습작전에 나섰다. 국제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된 IS를 소탕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걸었지만, 러시아의 군사개입 속셈은 정권붕괴 위기에 빠진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구하려는 것이다. 알 아사드 정권은 시리아 전체 영토 중 20%밖에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내전 발발 이전에 30만 명 수준이던 정부군 병력은 탈영과 전사 등으로 8만 명으로 줄었다. 러시아군은 현재 시리아 서부 항구도시 라카티아 인근에 공군기지를 구축하고 Su-25 전투기, Su-24 전폭기, Su-34 폭격기, Mi-24 헬기, 탱크, SA-22 지대공 미사일, 대공포, 레이더 등을 배치했다. 흑해 함대 소속의 해병대 등 지상 병력 2천 명도 포진시켰다. 러시아 공군기들은 드론과 정찰위성의 지원을 받으며 연일 공습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의 공습이 IS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건 반군까지 공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아사드 정권에 반대해온 모든 세력이 대상이다. 때문에 미국은 러시아의 온건 반군 공격에 분노하고 있다.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개입에는 이란의 충동질도 한몫했다. 이란은 지난 7월 혁명수비대 산하 정예인 알 쿠드스 부대의 카셈 술라이마니 사령관을 모스크바에 특사로 보내 “러시아가 무력 개입하지 않으면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면서 러시아를 설득했다.

러시아의 군사개입은 중동 각국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란의 숙적이자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은 좌불안석이다. 러시아가 알 아사드 정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경우 중동 정세가 크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IS에 영토 일부를 빼앗긴 이라크는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라크는 수도 바그다드에 러시아, 시리아, 이란 등과 함께 IS 격퇴를 위한 정보센터까지 설립했다. 아랍연맹을 주도하고 있는 수니파의 맏형 이집트도 러시아의 군사개입에 호의적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집트 군부는 그동안 미국과는 소원한 관계를 보여왔으며, 대신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왔다.

러시아 군사개입으로 중동 질서 재편 조짐까지


▎지난 9월 유엔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손을 내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소극적으로 악수에 응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러시아의 군사개입으로 시리아 내전사태는 미국과 시리아 온건 반군 및 수니파 걸프국가연합 대(對) 러시아와 알 아사드 정권 및 이란 등 시아파 연합간의 대립구도로 바뀌었다. 특히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사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위해 알 아사드 대통령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였다. 알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 10월 20일 러시아를 전격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내전이 발발한 이후 알 아사드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정상은 시리아 내전 상황과 미래의 계획 등에 대해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알 아사드 대통령에게 시리아 내전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러시아의 구상을 제시해 동의를 얻어냈다. 러시아의 구상은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조기 총선과 대선을 치르되 알 아사드 대통령의 거취는 직접 선거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알 아사드 대통령에게 과도정부에 모든 정치세력과 민족, 종파가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알 아사드 대통령도 조기에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치를 용의가 있다면서 국민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출마할 준비가 돼 있다고 호응했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의 정치적 해법을 어느 정도 지지하면서 알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가 시리아 내전사태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알 아사드 대통령을 반드시 축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의 강력한 이니셔티브로 10월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선 17개국 외무장관과 고위 외교관들 및 유엔과 유럽연합(EU) 대표들이 사상 처음으로 다자회의를 열고 시리아 내전 사태 해결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선 시리아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유엔의 감시 아래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로 하는 등 정치적 해결방안을 도출했다.

이번 다자회의에서 주목할 점은 이란의 참석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이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란의 참가는 러시아의 요청에 미국이 동의해서 성사됐다. 이란 국가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는 “시리아 내전사태의 유일한 해결 방법은 선거(총선·대선)”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사태가 종식되려면 앞으로 상당히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지만 일단 주도권이 미국에서 러시아로 넘어간 듯 보인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상군 파병을 거부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50명 이내의 소규모 특수부대를 시리아에 파병하는 방안에 공식 서명했다. 미국이 특수부대를 시리아에 투입하는 것은 처음으로, 그만큼 IS 격퇴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을 방증하는 동시에 앞으로 미군의 지상작전 개입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 의원은 “마지못해 조금씩 개입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전략은 미국이 직면한 도전의 심각성과 비교하면 통탄할 정도로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3개의 전쟁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매케인 의원의 지적대로 소수의 지상 병력만 생색내기 식으로 투입하는 전략적 실수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3개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언제 철군을 할지 모두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칫하면 외교·안보적으로 ‘최악의 유산’을 후임 대통령에게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유럽의 대규모 난민사태는 바로 세 개의 전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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