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재계이슈] 쪼개고 합치고… 기업 M&A 흥망사 

기업에는 모험이자 기회… 2008 금융위기 이후 우수수 ‘도산’ 지나친 낙관보다 철저한 시나리오 대비해야 

이규창 포커스뉴스 경제부장대우

▎기업 또는 자산을 사고 팔고 합치고 떼어놓는 M&A는 기업으로서 큰 폭의 성장이나 위기를 넘기는 수단이 된다. 기업 오너나 CEO에게는 짜릿한 경험 또는 큰 모험이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 / 사진·중앙포토
1990년에 개봉된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의 주인공 리차드 기어는 기업 사냥꾼이다.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자산을 조각 내서 팔고 이득을 남긴다. 과거 기업의 영광이나 현재 임직원의 삶, 미래 가치 따위는 관심 밖이다.(영화는 또 다른 주인공인 줄리아 로버츠를 만나 개과천선한다는 ‘동화’로 끝난다.)

그로부터 7년 후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돈을 꾼 우리로서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내몰렸고 외국계 사모투자펀드(PEF)가 손쉽게 기업들을 주워 담았다. 몇 년 후 외국계 PEF는 ‘먹튀’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을 되팔고 나갔다. 손에 큰돈을 쥔 채로 말이다.

벤처 붐이 일던 1990년대 후반에는 돈 한푼 없이 기업을 인수해 몇 가지를 손질한 다음 차익을 남기고 팔아 치우는 전문 ‘꾼’들이 횡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M&A로 몸집을 불린 대기업들이 무기력하게 나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M&A 사례는 일반 국민의 머릿속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M&A 이미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다면 부정적인 대답이 더 많지 않을까. 그럼에도 기업 또는 자산을 사고 팔고 합치고 떼어놓는 일은 지금도 반복된다. M&A는 국가로서는 중복 또는 한계 산업의 구조조정이, 기업으로서는 큰 폭의 성장 또는 위기를 넘기는 수단이, CEO에게는 짜릿한 경험 또는 큰 모험이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기업이 ‘오래전부터’ M&A로 성장하고 위기를 돌파해왔다. 한편에서는 M&A가 독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M&A로 일가를 이루다


▎SK그룹은 2011년 수차례 매각에 실패한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어 승자가 됐다. SK하이닉스 경영지원부문장인 김준호 사장(왼쪽부터)과 SK그룹 최태원 회장, SK 하이닉스 박성욱 대표이사가 지난해 8월 19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공장에서 준공을 앞둔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제공·SK그룹
- SK -

자산기준 재계 3위인 SK그룹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 빨간색 주유소 간판과 이동통신 광고가 아닐까. 현재 SK그룹을 이끄는 에너지와 통신은 둘 다 M&A로 시작됐다.

선경직물로 출범한 SK그룹은 섬유업계의 수직계열화가 한창 진행되던 1980년 대한석유공사 주식 50%를 671억 7800만원에 인수했다. 대한석유공사는 1982년 유공으로 이름을 바꾼 후 오늘날 SK에너지로 이어진다. SK그룹은 수많은 인수와 합병, 분할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을 사업 지주회사로 삼아 원유 정제업은 물론 각종 석유화학업도 수행하고 있다.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할 당시 사업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워커힐여행사, 선경식품을 매각하고 이듬해에는 선경반도체 해산, 선경유화와 워커힐교통을 내다팔았다. 그룹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또, 1990년대 중반까지 소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키우고 해운업에도 진출했으나 주력사업은 석유화학과 에너지였다. SK그룹이 또 한 번 도약한 계기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다. 당시에는 엄청난 고가인 4271억원을 들였다.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자마자 정치적 특혜 시비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한 아쉬움을 떨쳐내는 순간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이 현재 SK텔레콤이다. 에너지와 통신 부문 1위를 구가하던 SK그룹이 2011년에 다시 한 번 모험을 시도한다. 수차례 매각에 실패한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어 결국 승자가 된 것이다. SK텔레콤을 인수 주체로 앞세워 약 3조4천억 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당시 하이닉스 인수는 오히려 우려가 많았다. 대한석유공사와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이끈 오너는 고(故) 최종현 회장이었고 하이닉스는 아들인 최태원 회장의 몫이었다. 더군다나 하이닉스는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에 한참 뒤진 D램 분야의 2위 사업자다. 대한석유공사나 한국이동통신이 국내 1위 사업자였던 점을 고려하면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더군다나 D램 가격의 하락으로 하이닉스는 대규모 적자를 보였다.

하지만 하이닉스 인수를 완료하는 시점에 D램 업계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세계 3위인 일본 엘피다가 파산을 신청하고 다른 업체들도 감산에 들어가면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입지가 공고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D램 가격이 반등하며 SK하이닉스로 재탄생한 후 이듬해(2013년)에는 인수가격에 육박하는 금액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를 두고 운이냐, 실력이냐는 설왕설래가 뒤따랐을 정도였다. 반도체는 에너지, 통신과 함께 명실공히 SK그룹을 이끄는 삼두마차가 됐다. 최근에는 CJ헬로비전과 OCI 머티리얼즈를 인수해 유료방송과 반도체 소재 사업 강화에도 나섰다.

M&A의 본능은 한화에서 배워라


▎혹자는 국내 대기업의 M&A 역사가 한화그룹에 아로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태양광을 포함한 에너지와 석유화학, 금융, 유통레저 등 그룹의 주력사업이 대부분 M&A를 통해 만들어졌다. 사진은 여의도 한화63빌딩. / 사진·중앙포토
- 한화 -

2014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한화그룹은 삼성그룹과 놀라운 거래를 발표했다.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등 삼성그룹 계열 4개사를 한화그룹이 인수키로 한 것이다. 방위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을 동시에 강화하는 거래다.

사실 한화는 곧 M&A 기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국내 대기업의 M&A 역사가 한화그룹에 새겨져 있다고 평가한다. 그룹의 주력인 한화케미칼은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에서 비롯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정아그룹, 한화갤러리아는 한양유통, 한화생명은 대한생명, 한화에너지는 여수열병합발전, 한화솔라원은 중국의 솔라원파워홀딩스, 한화큐셀은 독일의 큐셀 등의 인수에서 시작됐다.

태양광을 포함한 에너지와 석유화학, 금융, 유통·레저 등 그룹의 주력이 거의 모두 M&A를 통해 형성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수완도 좋다.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의 경우 2002년 M&A 당시 누적 손실(2조3천억원)을 2008년에 모두 털어냈다. 최근에는 다시 삼성 계열사까지 사들일 정도로 여전히 M&A 본능을 번뜩이고 있다.

- 두산 -

최근 신입사원 구조조정으로 비난을 받은 두산 그룹도 M&A로 체질을 바꾼 대표적인 대기업집단이다. 1896년 ‘박승직 상점’에서 출발한 두산그룹은 2000년 한국중공업을, 2005년에는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했다. 현재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다. M&A를 통해 그룹의 주력을 소비재에서 중후장대사업으로 바꿨다.

체질 변화는 1990년대부터 모색됐다. OB맥주 매각으로 신호탄을 쐈다. 자의 반 타의 반 뼈아픈 구조조정을 하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M&A 시장에서 두산의 저력은 사업 재편기술에서 빛났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사의 소형건설장비부문인 ‘밥캣(현 DII)’을 인수하면서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다. 이러자 포장재 사업 계열인 테크팩의 지분을 MBK 파트너스에 매각했고,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소주사업을 롯데에 넘겨 총 9천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특히 테크팩 매각 과정에서 MBK가 인수자금의 절반을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두산이 테크팩 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하면서 부채로 떠넘긴 것을 인수키로 했다. 국내에서는 새로운 기법이었다. 2009년에는 사모투자펀드(PEF)와 손잡고 설립한 두 개의 특수 목적회사(SPC)에 한국항공우주(KAI) 지분을 비롯해 두산 DST, SRS코리아, 삼화왕관을 매각했다. 매각 규모만 7800억원에 달했다. 두산그룹은 2800억원을 출자해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다. 2012에는 자본이냐, 부채냐 논란이 됐던 영구채 발행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시작됐다.

성공에 중독 돼 빚 무서운지 모르다


▎두산 그룹도 M&A로 체질을 바꾼 기업 중 하나다. 두산그룹은 2000년 한국중공업을, 2005년엔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했다.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이다. / 사진·중앙포토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재무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해외 원천기술 보유업체를 인수하는가 하면 이탈리아 방산업체인 핀메카니카의 에너지·발전사업 자회사인 안살도에네르기아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이 비록 최근 건설경기 부진과 중국 중장비 사업의 고전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으나 어떤 돌파구를 선보일지 주목받는다.

M&A의 성공은 달콤하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는 기술 수준과 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도 있다. 이때 기업 오너나 CEO가 느끼는 기분은 은행 대출로 집을 사고 밤잠 못 자고 뿌듯해하는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빚이 남는다.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판단할 때는 보유 자금보다 많은 부분을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으로 조달하는 경향이 있다. 인수 성과는 미진하고 빚 독촉이 시작된다. 업황까지 악화되면 문제가 커진다. 핵심 계열사 또는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 많은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야 한다. 때로는 짭짤한 성장 자산을 매각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국, 인수한 기업을 다시 토해내거나 심하게는 꼬리를 문 지급보증이 도화선처럼 타들어가 그룹을 해체시킨다. 빌린 돈으로 인수한 기업은 아직 오너나 CEO 소유가 아니다. 그러나 M&A 열매에 중독되면 이를 간과하기 쉽다.

- 금호아시아나 -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승자의 저주’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경우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2년 사이에 잇따라 인수하면서 배탈이 나고 말았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금호아시아나 본사. / 사진·뉴시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그룹의 모 회사 격인 금호산업을 되찾았다. 그룹 재건에 가장 중요한 단추를 채웠다. 박 회장이 과거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는 앞으로 재건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승자의 저주’라는 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저돌적이라는 표현마저도 부족하다는 박 회장은 2002년에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우여곡절 끝에 2006년에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대한통운까지 계열로 편입했다.

대우건설을 금호건설과 연결해 건설업체 1위로 올리고, 대한통운을 아시아나항공과 연계해 육해상 수송로를 장악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하나도 소화하기 힘든 기업을 2년 사이에 둘을 먹었으니 배탈이 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당시 대우건설 인수자금은 무려 6조4천억원. 이 가운데 절반을 18개 금융기관에서 빌렸다. 금호그룹의 현금창출력을 고려했을 때 채권단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 금호그룹은 담보로 대우건설 주식에 풋백옵션(매도 선택권)을 제시했다.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2천원에 미치지 못하면 주가 차액만큼 금호그룹이 보상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대우건설 주가는 한때 6천원대로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건설 경기부터 때렸다. 결국 금호아시아나는 2009년 대우건설을 다시 내놓기로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4조1천억원을 들여 대한통운을 인수했으니 위기는 그룹 전반으로 퍼졌다.

- STX -


▎한때 M&A를 통해 기업들을 인수하며 승승장구하던 STX그룹은 중국 조선공업단지 투자와 함께 차입금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금융위기로 조선과 해운에서 구멍이 났다. / 사진·중앙포토
STX그룹이 2011년 하이닉스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에 참여할 때 시장은 물론 언론도 앞다퉈 말렸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건설은 물론 조선과 해운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그룹이 수조원의 빅딜에 다시 참여한다니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STX그룹은 현금성 보유 자산이 3조원대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STX그룹은 본 입찰에 불참한 후 2012년 말부터 계열사들을 매각, 채권단 자율협약, 법정관리로 차례차례 밀어 넣었다.

쌍용중공업의 임원이었던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한누리컨소시엄을 구성해 2000년 쌍용중공업(STX엔진)의 지분 34.5%를 163억원에 인수하며 STX를 일으켰다. 2001년 대동조선(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도 차례로 인수했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2007년 세계 2위의 크루즈선 건조업체인 노르웨이의 아커야즈(STX유럽)를 전격 인수했을 때다. 당시 유럽은 이름도 모르는 한국의 한 기업이 아커야즈를 인수하자 충격에 빠졌을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 조선공업단지 투자와 함께 STX그룹의 차입금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금융위기로 조선과 해운에서 구멍이 났다.

- 웅진, C&, 대한전선 -

학습지와 정수기로 ‘영업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M&A에 손댔다. 그리고 제대로 소화도 시키기 전에 건설경기와 섬유시황 부진, 태양광 침체라는 고난을 겪으면서 결국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법정 관리 행을 막지 못했다. 특히 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인 웅진코웨이까지 내놓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그 밖에 조선과 해운 시장의 활황에 자신감이 붙은 C&그룹도 차입을 통한 M&A로 성장하다가 해체된 대표적인 사례다. 전선업의 낮은 영업이익률의 돌파구를 M&A에서 찾은 대한전선그룹도 마찬가지다.

M&A 늦둥이들


▎삼성은 M&A계에서 ‘늦둥이’에 속한다. 과거 M&A로 재미를 보지 못한 삼성그룹도 2010년 말 미래전략실을 설치한 후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대형 딜보다 주로 중소기술 업체로 치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 사진제공·삼성SDS
- 삼성, LG, 롯데 -

2011년 6월 삼성그룹의 물류를 담당하는 삼성SDS가 대한통운 인수전 참여를 선언했다. 유력 인수후보였던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꾸렸다. 대한통운에 군침을 삼키던 롯데그룹도 놀랐지만 옛 식구인 CJ그룹은 충격을 받았다. 더군다나 CJ그룹 인수 자문사였던 삼성증권이 자문계약을 철회하면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자극했다. 작은 아버지(이건희 회장)에게 허를 찔린 이재현 회장은 오기의 금액을 써내며 삼성SDS-포스코 연합군을 물리쳤다. 이후에도 CJ대한통운이 중국 물류회사 로킨 로지스틱스&서플라이 체인을 인수하는 등 계열사별로 M&A 시장에서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CJ그룹은 영화관 사업 비롯해 물류, 유통, 방송, 식품 등에서 크로스보더(cross-border, 국경간 거래)에서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과거 M&A로 재미를 보지 못한 삼성그룹도 2010년 말 미래전략실을 설치한 후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대형 딜보다 주로 중소기술 업체로 치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또,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이 독일의 노바엘이디를 인수한 것처럼 해외 기업 인수에 역점을 두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그룹 내 사업 구조조정이 주춤하지만, 자문업계에 따르면 꾸준히 매물 검토 작업은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보다 M&A에 더욱 보수적인 LG그룹도 달라졌다. LG생활건강이 두각을 나타내는 가운데 그룹의 핵심인 LG화학과 LG전자도 부쩍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도 LG화학은 동부팜한농을 5125억원에 인수하며 2016년을 열었다. 2014년에는 미국 수처리 역삼투 분리막(멤브레인) 제조사인 NanoH2O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등 서서히 존재감을 알렸다. 해외 자원개발에 집중하던 LG상사는 방계회사이던 범한판토스를 인수해 그룹 물류를 강화했다. 다만, 하이엔텍과 웹OS 등을 인수한 LG전자가 업황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로 다소 주춤한 상태다.

롯데그룹도 신세계 등 다른 유통업체들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신동빈 체제가 갖춰진 이후 황각규 사장(운영실장) 등 탁월한 참모진은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M&A 실적을 올리고 있다. 롯데쇼핑은 중국과 동남아에서 유통업체나 복합쇼핑몰 등을 사들이고 롯데칠성, 롯데제과 등도 동남아는 물론 유럽의 유명 업체들을 인수했다. M&A 규모와 빈도수 면에서 다른 대기업들을 압도한다. 다만 중국 등에서의 손실로 일부 사업을 철수하는 등 완벽한 성공이라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경쟁자가 많은 대형 M&A 입찰에서 오너십은 중요한 요소다. 월급쟁이 CEO는 모험을 꺼리기 때문이다. CJ그룹이 이재현 회장의 부재로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투자활성화가 필요한 시기에 선처를 호소하는 측면도 있으나 아주 엄살이라고 볼 수 없다.

‘M&A 달인’과 ‘승자의 저주’는 결과론일 뿐

실제로 모 그룹의 실무진이 본 입찰 서류에 최종가격란을 연필로 적어놓고 회장에게 넘겼다. 정밀한 분석 끝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적었다고 한다. 회장은 만년필로 가격란을 채워 실무진에게 넘겼다.

자금 조달 등을 책임져야 하는 실무진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동봉된 서류를 봤다. 실무진은 비명을 질렀다.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경쟁자를 따돌리는데 성공했고 자금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결국 성공적인 M&A 작업을 수행했다. 이처럼 오너의 감각과 결단력에서 실무진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김승연 회장, 박용만 회장 등을 꼽는다. 비록 실패의 길을 걸었으나 강덕수 회장도 목표 매물을 찾고 자금조달 방법을 제시하는 데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최태원 회장과 구본무 회장, 신동빈 회장 등은 실무진의 의견에 상당히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든 ‘M&A의 달인’과 ‘승자의 저주’라는 평가는 결과론일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강덕수 회장, 윤석금 회장 등도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영업부진으로 차입금 부담을 안게 된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이나 많은 돈을 쏟아부은 태양광이 언제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평가도 유보해야 한다. M&A로 일가를 이루고 천운을 타고났다는 SK그룹도 해외에만 가면 고개를 숙인다. 미국과 중국 등에서 이동통신이나 에너지 업체 지분을 인수했으나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최태원 회장의 운도 국내에서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물론 오너든, 기업이든 거시 경제나 해당 업계 리스크 등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M&A 달인은 진정 없는 걸까. 오너는 아니지만 전문 경영인으로 탁월한 M&A 수완을 발휘한 CEO가 있다. 바로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한국P&G 사장 출신인 차 부회장은 2005년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끌었다. 코카콜라음료부터 시작해 다이아몬드샘물, 더페이스샵, 한국 음료, 해태음료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보수적인 LG그룹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단시간 내 적자 회사를 흑자로 전환하는가 하면 인수자금 유출로 악화된 재무구조도 곧바로 복구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M&A 시장은 물론 재계에서 주목을 끈 이후에도 보브의 화장품 사업부, 긴자 스테파니, 퓨처, 에버라이프 등 어마어마한 식욕을 과시했다. LG생활건강은 식음료는 물론 화장품에서도 확고한 시장 지위를 차지했고 해외 사업도 날로 번창하고 있다.

물론 인수대상이 모험이라고 부를 만큼 큰 규모가 아니라는 점과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곳만 인수했기 때문이라는 시기 섞인 비판도 있다. 그러나 오너가 아닌 CEO로 일군 탁월한 실적임은 분명하다. 그런 차 부회장은 M&A에 보수적인 LG그룹의 기업문화까지 바꿔놓았다.

차 부회장은 ‘M&A 달인’을 위한 몇 가지 요건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흙 속의 진주 발견 능력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대규모 차입 지양 ▷덩치에 맞는 M&A ▷구체적인 재무개선 방안 ▷인수대상의 구체적인 수익 확보방안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오너가 차 부회장처럼 하면 그릇이 작아 보일까?

- 이규창 포커스뉴스 경제부장대우

201602호 (2016.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