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기가 맘에 드는구나/ 삶의 오물통과 마주하기 좋은 곳이야금지된 열매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구나죽어가는 존재들도/ 여기서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지건기에 물이 다 말라도/ 잠베지 강의 폐어가 폐로 숨을 쉬며/ 몇 달을 진흙 속에서 살듯이네 생각보다 남은 숨이 길다는 걸 명심해라/ 어찌되었든 숨을 쉰다는 게 중요해불을 지펴볼까/ 불쏘시개가 될 만한 낙엽들을 가져오렴/ 마른 싸릿가지나 덤불도 좋다난 여기가 마음에 드는구나/ 삶의 누더기를 말리기 좋은 곳이야남아 있는 것들로 차린 음식과/ 마른 우물에서 퍼온 물로/ 아직 몇 끼니는 견딜 수 있을 것 같구나죽어가는 존재들도/ 여기서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지불씨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사진 주기중
나희덕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등이, 산문집으로 <반 통의 물>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