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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트렌드] 여심 휘어잡는 스포르노섹슈얼 시대의 남성미 

‘맙소사! 말이 필요없다’(Omg, I have nothing ot say) 

이은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erin823@naver.com
송중기, 진구, 박보검 등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갖춘 ‘베이글남’이 대세… 겉은 부드럽고 속은 강인한 외유내강형 남성에 대한 판타지의 발현

▎가상의 국가 우르크를 배경으로 한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근육질의 장병으로 나오는 출연진들. / 사진·중앙포토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는 가상의 국가 우르크에 파견된 송혜교(강모연 역)가 상의를 탈의한 채 아침 구보 중인 알파팀 군인들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극중 모연은 “일상의 상징이 알통 구보라니 참 좋다. 우르크 비둘기들 같으니…”라면서 근육질의 남성들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는 회의에 늦었다는 주변의 채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르크 비둘기들’의 행렬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아마 대본을 쓴 김은숙 작가를 포함해 TV를 보는 여성 시청자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외적인 이미지를 중시하고 중성적인 이미지의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시대에서 섹시하고 완벽한 몸매를 강조한 스포르노섹슈얼(spornosexual)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대가 원하는 남성상이 변하고 있다.

외모와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쓴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스포르노섹슈얼은 메트로섹슈얼보다 남성미와 카리스마가 강조됐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영국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인 마크 심슨은 “이제 메트로섹슈얼의 시대가 더 적극적이고 강력한 스포르노섹슈얼의 시대로 대체됐다”면서 “스포르노섹슈얼은 헬스클럽에서 수많은 시간을 들여 완벽하게 다듬은 몸에 포르노그라피와 스포츠를 합쳐서 녹여 넣은 듯한 남성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TV 드라마와 영화, CF 등에서 한동안 초식남, 밀크남 등 부드러운 꽃미남 배우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상남자’로서 남성미를 더한 배우들이 뜨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각광을 받는 스타일이 얼굴은 미소년이지만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갖춘 ‘베이글남’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연예계에서는 앳된 외모에 건강하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갖춘 일명 ‘베이글녀’가 새로운 미인의 기준으로 떠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통신사 광고에서 섹시한 뒤태를 강조한 입간판 포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걸그룹 AOA의 설현, 얼굴은 베이비 페이스에 섹시한 몸매로 가요계의 대표적인 ‘베이글녀’로 유명한 전효성이 대표적이다. ‘베이글남’은 이와는 반대로 동안 외모에 남성적이고 섹시한 매력을 갖춘 남성을 말한다.

누나 팬들을 ‘심쿵’하게 만든 사랑 고백


▎<태양의 후예>는 차분하고 뛰어난 군인 유시진(송중기·가운데)과 똑똑하고 뜨거운 의사 강모연(송혜교)이 주인공이다.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한국은 물론 중국 여성팬까지 접수한 송중기는 대표적인 ‘베이글남’이다. 군 입대 전 그는 전형적인 ‘꽃미남’ 스타였다. 지난 2010년 방송된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요염하기까지 한 ‘꽃선비’ 구용하로, 2012년 개봉한 영화 <늑대소년>에서는 순이(박보영)가 ‘기다려!’ 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야생적인 늑대에서 순한 양으로 변하는 여린 소년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에서 그는 여기에 거친 ‘상남자’의 매력을 더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내뿜는 ‘베이글남’의 이미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다나까’ 등 일명 딱딱한 군인 말투를 쓰지만 때론 어린 소년 같은 부드러운 미소는 한·일 양국의 여심을 동시에 저격했다. 드라마 초반 그가 헬스장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복근을 드러내는 장면에는 한국팬은 물론 ‘맙소사! 말이 필요없다’(Omg, I have nothing to say), ‘훌륭한 몸매’(身材一級棒)라며 중국과 아시아 팬들까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 전까지 드라마 속 군인의 이미지는 마초적이고 딱딱한 이미지가 강했지만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라며 앞뒤 재지 않고 저돌적이고 로맨틱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유시진의 남자다운 모습에 아시아 여성들의 여심이 흔들린 것이다. 초·중·고 시절 쇼트트랙 선수로 전국체전까지 출전했으나 부상으로 운동선수의 꿈을 접은 경력이 있는 송중기는 이번 역할을 통해 건강한 남성미로 이미지 변신을 하는 데 성공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요즘 유약한 ‘초식남’이나 계산적인 남자들이 많은데 극중 유시진은 말투와 제복, 외모에서 풍기는 투철한 책임감과 강인한 매력에 여성팬들이 매료된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의 후예>에서 서대영 상사 역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진구는 3월 기자와 만나 “그리스 로케이션 촬영 때 쉬는 날이면 송중기를 포함한 알파팀 멤버 다섯 명이 함께 몸을 만들었다”면서 “산책을 가도 서로 웃통을 벗는 등 신경전이 상당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몸 만들기에 스트레스 호소하는 남자 배우들


▎배우 김수현은 곱상한 외모와 함께 명품 근육을 가진 몸매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 사진·중앙포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대세남 반열에 오른 박보검도 마냥 순수할 것 같은 소년 같은 매력 뒤에 근육질 몸매를 숨기고 있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수영선수 출신인 그는 푸켓 포상 휴가 때 공개된 사진과 최근 tvN <꽃보다 남자-아프리카> 편에 등장한 영상에서 드라마에서 보여진 앳된 이미지와 달리 넓은 어깨와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다리 근육으로 또 한 번 여심을 사로잡았다. 이와 함께 4년 전 출연한 영화 <차형사>에서 뽐낸 초콜릿 복근 스틸 사진까지 뒤늦게 화제를 모으며 누나 팬들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미소년 콘셉트를 내세운 남성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도 단연 ‘베이글남’이 화두다. 걸그룹이 청순에서 섹시한 여성미로 성숙함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그룹의 경우도 소년에서 남성으로 변신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남성적인 몸매다.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시우민은 3월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엑소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투어에서 시스루 의상을 입고 복근을 깜짝 노출하는 등 전에 없던 남성미를 강조해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무림학교>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보이그룹 빅스의 최홍빈도 샤워신에서 상반신의 탄탄한 근육이 자주 카메라에 등장했다. 빅스의 소속사인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잡지 화보,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노출의 기회가 점점 많아지면서 남성 아이돌 그룹 가수들에게 탄탄한 몸매는 필수”라고 말했다.

대중문화의 주된 소비층이 여성들로 자리 잡으면서 작정하고 베이글남이나 스포르노섹슈얼의 이미지를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톱스타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심을 잡기 위해 남성 배우들의 복근 노출이나 샤워 장면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1월 종영한 KBS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에서 소지섭은 세계적인 헬스트레이너 존킴 역할을 맡아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당시 소지섭은 잔 근육이 세세하게 살아있는 몸을 보여주고자 쌀과 고구마를 제외한 탄수화물도 끊고 염분 0%의 식단에 채소와 단백질만을 섭취했고, 하루 3~4시간씩 근육 운동을 한 결과 두 달에 걸쳐 7kg을 감량했다. 그 결과 날렵한 근육질의 몸매를 선보일 수 있었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극중 꽃미남 스파이 역을 맡은 김수현이 상의를 탈의한 채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는 장면은 극장에서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명장면으로 꼽힌다. 김수현은 이 장면을 위해 한 달 반 동안 채소와 단백질만 섭취하며 윗몸일으키기와 평행봉 운동을 한 결과 명품 잔 근육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꽃미남 배우에서 남자로 거듭난 그의 변신에 695만 명의 관객이 호응하며 효과를 톡톡히 봤다.

때문에 남자 배우들이 드라마 준비를 앞두고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바로 ‘몸 만들기’이고 이에 대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남성 배우들도 적지 않다. 아이돌이 콘서트에서 상의를 찢거나 섹시함을 강조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은 공연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팬 서비스다.

물론 이런 베이글남의 등장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반달 웃음이 트레이크 마크일 정도로 귀여운 외모지만 180㎝가 넘는 큰 키에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가수 겸 배우 비, 부드러운 얼굴 선과는 달리 각종 영화에서 탄탄하고 섹시한 몸매를 드러낸 권상우, 곱상한 외모와 달리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god의 손호영 등은 반전 매력으로 인기 스타 반열에 오른 원조 ‘베이글남’들이다.

남성적 섹시미에 대한 숨겨진 욕망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웃통을 벗고 ‘초콜릿 복근’을 뽐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스페인 레알마드리드). / 사진·중앙포토
전문가들은 ‘꽃미남’과 ‘상남자’의 중간 지점에 있는 베이글남이 뜨는 이유로 권위적이지는 않되 자기 관리가 잘된 남성상에 대한 소구가 발현된 결과로 보고 있다.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을 메트로섹슈얼의 대표적인 예로 지목했던 영국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 마크 심슨은 레알마드리드의 스타 플레이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스포르노섹슈얼의 아이콘으로 내세운다. 그는 최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스포르노섹슈얼은 몸매를 중시하고 섹시한 측면을 강조하는 메트로섹슈얼의 노골적인 형태”라면서 “이들은 멋진 옷차림과 깨끗한 피부, 말끔하게 다듬은 턱수염 뿐만 아니라 피나는 노력으로 만든 자신의 몸이 주목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 보이는 것이 중시되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서는 남자도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버리기 때문에, 외모에 관한 남성들의 관련 제품 소비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짚었다.

대부분 꾸준한 운동을 통해 다져진 몸매를 자랑하는 스포르노섹슈얼은 자기 관리가 잘된 남성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여성들에게 호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주 3회 크로스핏 학원에 다니면서 체력과 몸매 단련을 하고 있는 회사원 강경민(32·여)씨는 “저 역시 운동을 하면서 배가 나온 남성보다는 탄탄한 몸매의 남성을 선호하게 되었다”면서 “운동을 하는 남성은 동년배보다 젊어 보이는 덕에 건전한 삶을 영위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남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들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여성들이 남성적인 섹시미에 대해서도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면서 베이글남, 스포르노섹슈얼은 더욱 각광받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던 섹시미라는 기준이 남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이 같은 현상이 유교적인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강한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야성적인 ‘짐승돌’의 이미지로 스타덤에 오른 남성 아이돌 그룹 2PM은 현재 일본에서 동방신기, 빅뱅에 이어 한국 인기 아이돌 그룹 톱3에 꾸준하게 들 정도로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다른 그룹과의 차별점은 이들이 일본 아이돌의 무대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의상을 찢거나 섹시함을 강조한 퍼포먼스로 현지 팬들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이다. 일본 아이돌 가수들보다 체격이 월등하고 남성미를 강조한 2PM의 공연장에는 20~30대 여성은 물론 중장년층의 여성팬들이 꾸준히 몰리고 있다.

여성의 욕망과 자신을 가꿀 줄 아는 남성의 결합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의 김형우 홍보팀장은 “일본에서 아이돌 가수는 실력이나 이미지보다 어릴 적부터 함께 키운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섹시한 콘셉트의 가수들은 거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 아이돌 가수들보다 체격 조건도 좋고 근육질의 한국 남성 아이돌 가수들이 섹시하고 파워풀한 군무를 펼치는 등 색다른 매력에 매료된 일본팬들이 많아 현지에서 벌어들이는 공연 수입이 상당한 편이다.” 특히 일본 팬들은 워낙 충성도가 높아 이들의 롱런은 어느 정도 보장된 셈이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욘사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배용준도 과거 화보에서 혹독한 운동으로 마치 조각해 놓은 듯 선명한 복근을 드러내며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다른 ‘상남자’의 포스로 매력을 선사했다. 일본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방신기의 최강창민도 상의를 탈의한 채 선명한 초콜릿 복근을 뽐내는 사진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중화권 스타 유역비와 열애 중으로 아시아권에서 인지도가 높은 송승헌도 18년간 한결같은 초콜릿 복근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숙명>에서 권상우와 어깨 동무를 하고 식스팩 대결을 펼친 사진은 영화의 대표적인 홍보 사진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여성 시청자들의 리모컨에 대한 권한이 커지면서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예능프로그램에도 남성 출연자들이 주를 이루게 되면서 이들의 몸매 노출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글의 법칙’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자연스럽게 상의를 탈의하고 복근을 드러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공희정 씨는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올라고 남녀 성평등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성들도 가부장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나 겉은 부드럽고 속은 강인한 외유내강형 남성에 대한 판타지를 추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꽃미남, 나쁜 남자 열풍을 넘어서 베이글남이나 스포르노 섹슈얼이 인기를 끄는 것은 관리가 잘된 남성들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솔직한 욕망과 자신을 가꿀 줄 아는 남성들이 증가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 이은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erin823@naver.com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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