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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미국 권력층 해부에 일생을 바치다 

1980년대 한국 캠퍼스 풍미한 밀스의 학문 궤적… 냉전시대를 고민했던 ‘모순된 인간’의 생애 복원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지난 8월 28일은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1916~1962)가 텍사스 주 와코에서 태어난 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마침 그때 뇌리에 사라졌던 이 전설적인 사회학자의 평전이 나왔다. 1980년대 학번의 사람들에게 밀스는 가장 익숙한 사회학자 중 하나다. 그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강의실과 거리를 오고 갔던 학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밀스는 1962년 마흔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죽은 지 20년이 지난 뒤부터 그의 저작은 한국 대학가에서 폭발적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현재 활동하는 사회학자 중 20년 후에도 읽힐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빛의 속도로 만물이 변화하는 지금, 1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사회 이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밀스의 사회학 저서에는 여전히 고전적 파워가 느껴진다. <화이트 칼라>의 한 대목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공감을 부른다.

“백화점 판매원이 스스로를 부자 고객과 동일시하거나 회사원이 자기가 다니는 유명한 회사 이름에 자기 정체성을 결합시키면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사람들한테서 위신을 빌려온다.”(본문 221쪽)

<화이트칼라> <파워 엘리트> <사회학적 상상력> 같은 책은 전공을 불문하고 당시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또 <들어라 양키들아> <신좌파에게 보내는 편지>는 제3세계 혁명운동, 서구 신좌파 이론가와 활동가들에게 지침서 역할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 운동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1966년 <창작과 비평> 창간호는 장 폴 사르트르의 글과 나란히 밀스의 글을 실었다. ‘문화와 정치’는 1959년 런던정경대학에서 강의하고 BBC라디오로 방송되어 영국 좌파들의 열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글이다. 편집인 백낙청(당시 28세)이 직접 번역했기 때문에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의 오리지널 필자가 백낙청인 줄 알고 있다. 1978년 처음 출간된 <사회학적 상상력>은 당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피신 중이던 청년 이해찬(현 국회의원·당시 26세)이 번역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원로 사학자 이만열은 대학 시절(당시 24세) 읽은 <들어라 양키들아>를 ‘내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이 평전은 밀스의 학문과 사상의 궤적에 비중을 둔 당대의 지성사 연구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미국 사회과학과 지식인 사회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밀스가 미국의 주류 학문 전통 속에서 공부한 전도유망한 사회학도였다는 사실은 한국 독자에게 생소하다. 정치적 좌파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까지 밀스는 막스 베버와 존 듀이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러나 밀스의 행동반경은 기본적으로 대중과 노동계급 안에서 형성됐다. 나아가 미국의 권력 중심부도 그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파워 엘리트>는 기업과 군대, 정치 지도자가 ‘그들만의 이사회’를 어떻게 운영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하드라마다.

지은이 대니얼 기어리는 아내와 사랑에 빠진 대학 시절 밀스의 사상을 만났다. 옆구리에 <파워 엘리트>를 끼고 있었던 시절이다. 밀스를 ‘우상’으로 그리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고민하는 ‘모순된 인간’ 밀스의 모습을 포착했다. 덕분에 밀스의 사상은 더욱 풍요로운 모습이 됐다. 밀스의 유효기간을 오래 연장한 역작이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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