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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멕시코에서 억울한 옥살이 양현정 씨 연내 석방될까 

“12월 중 석방 위해 멕시코 정부에 외교부장관 친서 전달”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10월 중 석방 기대했지만 검찰 항고로 무산… 외교부, 부적절 처신한 경찰영사 직무정지, 감사원은 멕시코 공관 직무감찰 중

디자이너 양현정 씨가 멕시코 감옥에 갇힌 지 벌써 11개월째. 양씨는 멕시코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현지 우리 공관의 잘못된 초동대처로 수감생활이 장기화됐다. 이런 가운데 멕시코 검찰 수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허위 내용을 사실인양 확인해 서명까지 한 우리 측 경찰영사 진술서가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게다가 영사 측근과 멕시코 검찰과의 뒷돈 거래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산타마르타 아카티틀라 교도소. 양현정 씨를 포함해 1600여 명의 미결수와 장기복역수가 수감돼 있다.
멕시코 산타마르타 교도소에서 ‘한인 마피아’로 몰려 11개월째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디자이너 양현정(38) 씨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명 ‘멕시코판 집으로 가는 길’로 <월간중앙> 10월호가 추적 보도한 이 사건은, 애초 10월 말까지 양씨가 혐의를 벗고 풀려날 것으로 전망됐다. 멕시코 연방법원이 10월 4일 양씨 측의 이의제기(암파로: 구속기소 등 법적 절차가 적법했는지를 다투는 일종의 헌법소원)를 받아들여 검찰 측의 구속기소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양씨를 포함해 사건의 무대가 된 W노래주점의 여종업원들에 대한 조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를 포함해 검찰 측이 제시한 각종 증거가 근거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양씨가 종업원들을 인신매매했다거나 이들에게 강제로 매춘행위를 시킨 뒤 임금을 갈취하는 등 불법 행위를 했다는 멕시코 검찰의 수사 내용이 허위나 다름없는 것으로 판명 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이런 판단에도 지난 10월 중순 예상치 않게 멕시코 검찰 측이 항고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양씨는 또다시 지루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과 달리 멕시코 사법 절차 진행이 느린데다 12월 중순이 지나면 내년 초까지 멕시코 법원은 긴 휴무 기간에 들어간다. 이런 현지 사정 때문에 자칫 올해를 넘겨 내년 봄이 돼야 양씨의 석방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지 교민 사회에서도 “양씨의 억울한 옥살이가 1년을 넘길 수도 있어 큰 걱정”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월간중앙>은 멕시코 법원의 암파로 후 현재까지 두 달여 동안의 사건 전개 과정을 정밀하게 후속 취재했다. 취재결과 멕시코 검찰의 항고 이유와 속사정에는 우리 공관 관계자의 잘못된 대처가 큰 이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초동대처 과정에서 공관 관계자의 측근인사가 멕시코 검찰과 부적절한 뒷돈 거래를 한 의혹이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우선 멕시코 검찰이 왜 무리하게 항고를 했느냐가 가장 큰 의문이다. 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입증자료가 증거가 없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월간중앙>은 양씨 변호인 측과 교민 등의 도움으로 멕시코 검찰의 항고이유서를 입수했다. 항고이유서에는 뜻밖의 사실이 제시돼 있었다. 암파로가 양현정 씨 측의 주장을 수용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멕시코 검찰의 반인권적 불법 수사 때문이었다. 피해자로 분류된 W노래주점의 여종업원 5명은 검찰청으로 연행된 직후부터 협박과 강압 속에 진술을 강요받았다. 또 성추행, 잠 안재우기 등의 인권 유린에도 시달려야 했다. 특히 제대로 된 통역과 영사조력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양씨의 범죄행위를 인정하는 허위진술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이런 상황은 이미 멕시코 법원도 사실로 인정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멕시코 검찰은 그동안 꺼내놓지 않았던 일명 ‘영사 진술서’라는 것을 항고의 주요 근거로 법원에 제시한 것이다. 이 문서를 토대로 멕시코 검찰은 피해자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에서 영사와 통역사의 충분한 조력을 받으며 진술서 작성과 서명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경찰영사, 외교부에 보고 누락


▎애견옷 디자이너로서 국내에서 온라인숍을 운영하던 양현정(38) 씨는 지난해 11월 멕시코로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체포돼 11개월째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
멕시코 검찰이 ‘비밀병기’로 내세운 이 ‘영사진술서’는 종업원들의 1차 진술서(양씨 구속의 결정적 증거물이 된 진술서)가 전혀 문제가 없고 합법적으로 작성됐다는 것을 한국 경찰 영사가 인정하고 확인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멕시코 검찰이 공개한 ‘영사진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번 심문조사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있는 한인 여성 5명과 면담을 했음을 확인합니다. 이들은 영사관의 관여를 요청했고, 이들에게 영사관이 조력할 수 있는 부분을 알렸으며(중략) 검찰 심문을 통해 작성된 진술서에 서명하기 전에 최OO이 나와 피해여성들 앞에서 한국어로 읽어주었습니다. 한인여성 5명은 자신들의 진술 내용을 추가하고 수정한 후 서명했음을 확인합니다.”

진술서에 언급된 ‘최OO’은 사건 직후 이임걸 경찰영사가 멕시코 검찰청을 방문할 때 함께 데려온 통역사다. 멕시코 검찰은 당시 통역을 담당한 최씨에게서도 이 영사와 거의 동일한 내용의 진술서를 받아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최씨 진술서 역시 이번 검찰의 항고 근거로 활용됐다. 최씨 진술서 내용이다.

“서명이 이루어 지기 전, 진술 내용을 동의한 상태에서, 사전에 이미 각자가 작성한 진술서를 여성들 입회 하에 그들이 완벽히 이해하도록 한국어로 낭독했음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본인(통역 최씨) 면전에서 여성들이 서명했으며 그러한 서명 행위가 이루어졌을 때 이임걸 영사도 입회해 있었음을 확인합니다.”

그동안 언론보도와 국정감사 등을 통해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이 양씨 사건을 초동부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이 사안을 직접 담당한 이임걸 경찰 영사는 양씨를 보호하기는커녕 중범죄인 취급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과 입장 바꾸기를 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이 영사는 멕시코 공관 현지 국감 때 출석해 공개사과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영사와 그의 측근 통역사 최씨의 검찰 진술서가 양씨 항고이유의 주요 근거자료로 활용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멕시코 검찰의 항고이유를 외교부 본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누락시켰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재외동포국 관계자는 “경찰영사가 멕시코 검찰의 항고 이유를 누락하고 보고하지 않아 처음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영사는 외교부에 중요한 내용을 누락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사실이 드러나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이 멕시코 현지 공관에 대한 직무감찰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 결과는 12월 초쯤 나올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에 따라 경찰영사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관련자에 대한 징계 등이 뒤따를 예정이다.

검찰에 뒷돈 10만 페소 전달 의혹


양씨와 종업원들이 검찰청에 연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 초기, 멕시코 검찰 측에 거액의 뒷돈이 전달됐다는 사실도 새로 제기됐다. 사건 직후 이임걸 경찰영사는 통역 역할을 하는 교민 최모 씨를 데리고 검찰청에 들어갔다. 당시 양 씨와 종업원들은 변호사 조력도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공포에 떨며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청에 들어온 이임걸 영사와 통역사 최모 씨는 양씨와 종업원들에게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멕시코 검찰과 접촉한 최씨는 “멕시코 검찰 측과 은밀하게 협상을 했다”며 “일정금액을 내면 사건이 빨리 해결될 수 있다”는 취지로 양씨 등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던 한인 이모(W노래주점 업주의 가족) 씨에게 얘기했다. 당시 상황을 이씨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검찰 조서를 유리하게 꾸며 최대한 빨리 풀려나게 하기위해서 50만 페소(한화 2800여 만원)를 멕시코 검찰이 제시했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검찰청과 유일하게 접촉 가능한 이가 경찰영사 그리고 그와 함께 들어간 통역사 최씨밖에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착수금 조로 최씨에게 10만 페소(570여 만원)를 현금으로 건넸습니다. 억울하게 잡혀간 양씨 등을 빨리 빼내기 위해서는 통역사 최씨의 말대로 멕시코 검찰에 뒷돈이라도 건네는 수밖에 없는 급한 상황이었습니다.”(업주 가족 이씨 증언)

이 사안은 멕시코 현지 국정감사가 있기 전 열린 교민신문 토론회에서도 공개돼 논란거리가 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통역사 최씨는 “멕시코 검찰에 10만 페소를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교민사회에서는 “실제로 10만 페소가 검찰에 전달됐다면 왜 양씨가 풀려나지 못하고 구속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배달사고가 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또 하나 제기되는 의문은 멕시코 검찰에 실제로 10만 페소가 건네졌다면 최씨와 내내 함께 있었던 이임걸 경찰영사가 이런 불법적인 거래 상황을 모르고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 양씨 석방운동을 하고 있는 교민 사업가 홍금표(팬 트랜스 대표) 씨는 “배달사고가 아니고 실제로 전달됐다면 검찰청 누구에게 전달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며 “아울러 외교관이 불법적 뒷돈거래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와 어디까지 관여돼 있는지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돈을 마련한 이 씨 역시 “10만 페소가 검찰청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정확히 얘기를 해야 돈을 돌려받든지 아니면 고발조치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10만 페소의 행방과 관련해 외교 당국과 감사원 등이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양씨가 언제 석방될 수 있느냐다. 멕시코에는 동계·하계 휴가, 성탄절, 신년, 부활절 등 휴가가 유난히 많다. 이 기간 동안 법원 등 대부분의 관공서는 휴무다. 이에 따라 이 기간 동안 행정업무는 거의 마비된다. 법원의 재판절차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지 사정 때문에 양씨 석방이 2~3개월 늦춰질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의 항고로 연내 석방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외교부의 적절한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다. 외교부는 지난 9월 말 양씨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고위급 인사인 한동만 영사대사를 멕시코 현지에 파견한 바 있다. 당시 국내 언론의 문제제기와 함께 한 대사의 현지 외교 활동의 영향으로 암파로가 한 달 이상 앞당겨질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변호인 조력도 중요하지만 멕시코 정부와 사법당국을 상대로 한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외교부는 11월6일 재외동포국 한동만 영사대사를 멕시코로 파견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 대사는 3일 일정으로 멕시코를 방문해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친서를 멕시코 외교부 고위급 인사에게 전달하고 9일 귀국했다. 한 대사는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이번 멕시코 방문에서 외교부 정무차관을 만나 긴밀히 상의했다”며 “전통 우방인 한-멕시코의 오랜 관계와 향후 외교·경제 등의 상호 발전을 위해 멕시코 정부가 양 씨 석방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대사는 “방문기간 중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의 법원장과 판사 그리고 검찰 측 인사도 두루 만났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 대사는 사법부 관계자들에게 암파로 때 제기된 검찰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를 재차 상기시키는 한편 조속한 재판 진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멕시코 사법 당국 관계자는 “가급적 연내에 최종판결을 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뒤늦게 영사대사·장관도 나서


▎멕시코 검찰은 지난 10월 중순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결론 난 연방법원 암파로 판결에 불복해 항고했다. 항고이유서에 포함된 한국 공관 경찰영사와 통역사의 진술서. 두 사람의 자필 서명이 포함된 이 진술서에는 한국인 여종업원들이 정상적으로 통역의 도움과 영사 조력을 받으며 사건진술서를 작성하고 서명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 대사는 방문 마지막 날인 11월 9일 교민신문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가급적 12월 15일 전에 양씨가 석방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도 전달했다. 멕시코 법원은 통상 12월 15일부터 1월 8일까지 멕시코 법원이 성탄 및 신년 휴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양씨 수감 생활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아울러 한 대사는 멕시코시티 산타마르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씨를 1시간30분 정도 면회했다. 이 자리에서 한 대사는 “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석방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위로의 뜻을 전했다. 또 교도소장에게도 한씨 처우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는 입장도 전달했다. 외교부는 11월25일 호주에서 열리는 믹타회의(MIKTA: 중견국협의체로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 5개국 참여)에서 윤병세 장관이 멕시코 외교부 장관과 양씨 석방문제를 재협의할 예정이다. 교민사회와 외교부의 다각적인 노력으로 빠르면 11월 말, 늦어도 12월 15일 전까지는 양씨 사건이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지 분위기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 제도를 정비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설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으로 다른 공관에서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취약한 재외국민보호시스템 개선을 위해 ‘재외국민보호법안’의 국회 통과가 최대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10월 24일 설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 중이다.

외교부는 우리 공관의 영사조력 시스템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에서 사건 사고에 휘말릴 경우 영사가 적절한 대응과 발 빠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당국 파견 전에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영사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특히 통역 문제를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이를 보완할 예정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사건이 발발했을 때 해당국가의 사법당국이 통역을 구하도록 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원이 어려운 사례가 많다”며 “단순 통역이 아닌 사건 관련 전문 통역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지원할 지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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