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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기획] ‘민간외교관’으로 활약하는 청년 유튜버들 

“재미삼아 찍은 영상이 국가 알리는 콘텐트 됐죠” 

김준석 인턴기자 rejune1112@naver.com
온라인 공간에서 한국 홍보, 한류 스타 못지않은 인기 끌어… 지나치게 엄격한 음원 사용제한 등 제도 개혁은 ‘남은 숙제’

▎요즘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크리에이터들의 파급력은 웬만한 연예계 스타들을 능가한다. 크리에이터들의 방송들을 한데 모아 영상 제작을 지원하고 광고 유치를 도와주는 MCN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올랐다. / 사진제공·공성재
미국의 연예전문잡지 <버라이어티>는 미국 10대 청소년 1500명을 대상으로 ‘인기 인물’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동영상 유튜브의 크리에이터(콘텐트를 직접 만들어 온라인에 올리는 사람)들이 1~5위를 줄줄이 차지했다. 10위 안에 든 인물 중 할리우드 스타는 팝가수 브루노 마스와 테일러 스위프트 단 두 명뿐이었다.

세계적으로 유튜브는 전통적 영역의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뛰어넘는 새로운 장으로 주목받는다. 할리우드의 거대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 스타들과 협업에 나섰다. 이런 인기와 영향력에 힘입어 ‘할리튜브(할리우드와 유튜브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크리에이터들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웬만한 연예인을 능가한다. 최근 크리에이터들의 방송을 한데 모아 영상 제작과 광고 유치 등을 도와주는 MCN(Multi Channel Network)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국내 MCN 업계의 선두주자인 CJ E&M 소속 DIA TV는 현재 활동하는 1000팀의 크리에이터와 제휴했다. 이들 크리에이터의 채널 합산 유튜브 구독자는 6000만 명에 이르며, 월간 총 조회수는 12억 회를 돌파했다.


▎크리에이터팀 ‘오빠까올리’는 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과 태국의 문화 차이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콘텐트들을 선보인다. 이들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26만 명을 넘었다. / 사진제공·홍진기
현지화 전략과 쌍방향 소통 지향


▎‘Korean Billy’라는 이름의 유튜브를 운영하는 공성재 씨. 공씨가 올린 리버풀 사투리 영상은 페이스북에서만 110만 회 재생되는 등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공씨는 이 영상으로 BBC 등 해외 언론에 단골로 출연한다. / 사진제공·공성재
국방부는 2 016년 7월 8일 성주 롯데골프장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최종 부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사드 배치 논의단계부터 중국 정부는 불편함을 드러냈다. 중국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보복’을 부인했지만, 사드 배치 시기와 맞물려 한류 스타들이 중국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팬미팅과 홍보행사도 줄줄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류의 또 다른 축이었던 일본의 경우는 그 불씨조차 희미해졌다. 일본 내 한류는 K팝과 한국 드라마가 인기 절정이던 2011년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죄 요구발언이 일본 내 혐한세력을 자극했다. 도쿄의 대표적 한인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의 일일 방문객은 한류 붐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와 비교해보면 현재 반토막이 났다.

한류산업은 미래의 성장동력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두 축에 의존한 한류는 정치적 이슈와 해당 국가의 국민정서에 따라 부침을 겪기 십상이다. “지금처럼 몇몇 스타에 의존하는 한류는 위험하다. 앞으로는 더욱 다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튜브 플랫폼을 이용해 한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크리에이터들이 화제를 모은다. 이들은 현지화 전략과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콘텐트를 제작해 새로운 차원의 한류를 만들어나가면서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튜브에 접속해 ‘오빠까올리’ 채널의 영상을 켜자 두 청년이 “사와디캅”이라고 인사하며 합장한다. 이내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가 들려온다. 자막에는 한국어와 꼬불꼬불한 글자가 함께 올라온다. 태국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팀 ‘오빠까올리’다. ‘오빠까올리’는 ‘오빠’와 한국을 뜻하는 태국어 ‘까올리’의 합성어로, ‘한국오빠’라는 뜻이다. 이 팀은 홍진기(29)·김승범(25) 씨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과 태국의 문화 차이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콘텐트를 생산한다. 태국의 광고를 재치 있게 패러디하거나, 한국인들에게 태국맥주를 시음하게 하기도 한다. 현재 ‘오빠까올리’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6만 명을 넘었다.

홍씨는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태국에 관심을 뒀다. 교환학생과 인턴 생활을 거치며 태국에 매료된 나머지 태국에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홍씨는 ‘명함 대신 영상을 만들어 나를 알려보자’는 생각으로 영상 제작에 뛰어들었다. 태국 거주 경험이 있는 같은 동네의 김승범 씨와 의기투합하면서 팀을 꾸리게 됐다.

휴대전화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 영상들이 태국인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자 이들은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현재 이들은 태국의 유명 토크쇼와 오락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별도로 팬미팅을 하는 등 태국에서 ‘한국 알리미’로 맹활약한다.

‘오빠까올리’ 채널의 목표를 묻자 홍씨는 “태국의 시청자들에게는 한국사람들이 드라마처럼 환상 속의 사람들이 아닌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는 태국이 더 이상 유흥·여행의 대명사가 아닌 ‘한 번쯤 살아볼 만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며 “양국이 서로 이해를 넓혀가는 교류의 장(場)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답했다.

리버풀 사투리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SBS의 모바일 플랫폼인 모비딕의 간판 프로그램 ‘숏터뷰’는 단일 프로그램으로 조회수 1500만을 돌파하는 이변을 낳았다. / 사진·중앙포토
낯선 외국인 청년이 맛깔스러운 부산사투리로 찍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신기하면서도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질 것이다. 한국 청년이 영국식 영어, 심지어 리버풀 지역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면? 영국인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공성재(25) 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평범한 청년이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교시절부터 영국식 영어와의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 후에도 꾸준히 영국식 영어 학습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교환학생 자격으로 꿈에 그리던 영국으로 가게 됐다.

공씨는 나름 영국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가 교환학생으로 있던 학교는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 위치했다. 학생 대부분이 리버풀과 맨체스터 출신이었다. 이들이 쓰는 ‘영어 같지 않은 영어’의 정체는 바로 리버풀 사투리와 맨체스터 사투리였다. 공씨는 ‘표준어 강박증’에 사로잡힌 다른 유학생들과 달리 부지런히 현지학생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레 영국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친숙해졌다.


▎지난 8월에 개최된 MCN 업계 1위 DIA TV의 페스티벌. 1000명의 DIA TV 소속 크리에이터 중 180팀은 중국·일본·영국·러시아·뉴질랜드 등 23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파트너다. 이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유능한 창작자를 발굴·육성해 새로운 한류 콘텐트를 생산하고 있다.
공씨는 국내 대학 재학시절 교내 방송국에서 활동하며 방송기자를 꿈꿨다. 졸업 후 자신만의 시간이 생기자 방송과 영어를 접목해 혼자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코리안 빌리(Korean Billy)’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영국의 브렉시트,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시사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영국 발음과 미국 발음의 차이, 영국에서 자주 쓰이는 은어, 그리고 리버풀과 맨체스터 지역 사투리 등에 관한 영상을 올렸다. 초기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공씨는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리버풀 사투리 영상이 해외의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BBC의 인기 오락 프로그램인에서 공씨의 영상이 소개됐고, 이후 BBC와 리버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작은 방에서 혼자 재미로 영상을 만들어 올리던 그는 이제 웬만큼 영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유명인사가 됐다.

최근에는 별도로 영어교육 전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EBS의 영어 강사 오디션 프로그램인 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공씨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꾸준함’과 ‘개성’을 강조했다.

“대부분 몇 번 영상을 올렸는데 반응이 없으면 접고 말지요. 유명 유튜버들의 영상을 따라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영상을 제작하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글로벌 음악 채널인 MTV는 1980년 개국하면서 첫 노래로 버글스(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선택했다. 이는 라디오의 시대가 가고, 바야흐로 TV의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는 충격적 장면이었다.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 매체가 라디오에서 TV로 교체됐음을 보여준 것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의 등장으로 TV의 주도권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CJ E&M의 DIA TV, 1인 방송의 시초 격인 아프리카TV 등 온라인 콘텐트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KBS, MBC, SBS 등 전통 미디어들도 속속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6월 20일 첫선을 보인 SBS의 모바일 콘텐트 브랜드 ‘모비딕’은 콘텐트를 직접 제작하고, 유통한다. 모비딕은 유튜브뿐 아니라 페이스북·네이버·카카오 등 다양한 온라인과 모바일 플랫폼에 콘텐트를 유통하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SBS는 지난 10월 22일부터 4주 동안 온라인 콘텐트를 먼저 유튜브·페이스북 등에 내보낸 뒤, 이 가운데 반응이 좋은 콘텐트를 골라 공중파 채널로 방송하는 역(逆)편성을 시도했다. MCN 업계의 선두주자인 DIA TV는 온라인 공간을 넘어서 사업영역을 TV방송으로까지 확장해간다. 새해 1월 1일 아시아 최초로 1인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영상을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TV 채널 ‘DIA TV 채널’을 야심차게 선보일 예정이다. 온라인과 전통 미디어인 TV방송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아직 갈길 먼 한국 MCN 산업

TV와 온라인 플랫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MCN 산업의 성장세는 탄력을 받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MCN 업계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으로도 눈을 돌린다. DIA TV 소속 1000명의 크리에이터 중 180팀은 중국·일본·영국·러시아·뉴질랜드 등 23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파트너다. 이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유능한 창작자를 발굴·육성해 새로운 한류콘텐트를 생산해낸다. ‘오빠까올리’ 팀 역시 막 영상을 올리기 시작할 무렵 DIA TV가 먼저 연락해와 계약을 한 경우다.

오진세 DIA TV MCN사업팀장은 “해외 네티즌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트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한국인 혹은 외국인 크리에이터가 외국어로 한류를 소개하는 콘텐트다. 디지털 콘텐트가 한류를 접하는 주요 매체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MCN 산업이 한류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이유로 기존 미디어에 비해 글로벌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영상을 찍을 장비와 신선한 콘텐트 아이디어 만 있다면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 최근 MCN 산업의 부가가치로 인해, 이목을 끄는 아이디어를 가진 크리에이터들에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사업자가 많아졌다. 게다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은 국경이 없다. 서울의 작은 자취방에서 찍은 공성재 씨의 영상이 머나먼 영국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오빠까올리’ 채널과 ‘Korean Billy’ 채널 모두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장차 한류 콘텐트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MCN 업체의 투자를 받았다. DIA TV의 오 팀장은 또한 “MCN 자체가 글로벌 비즈니스 수단인 만큼 뷰티·게임·엔터테인먼트·키즈 등 다양한 산업군(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MCN 산업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뚜렷한 결과물 없이 문을 닫는 MCN 업체도 점차 늘어난다. MCN 업계 내 수익창출구조나 수익배분구조가 아직은 명확히 확립되지 않은 만큼 파생되는 문제가 적지 않다. MCN 업체들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한 이유다.

유진희 MCN협회 사무처장은 “MCN 산업은 아직 초창기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하지만 점차 다양한 수익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성공 사례도 늘고 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며 “1인 방송 제작과 관련한 인력 양성의 전문화와 지나치게 엄격한 음원 사용제한 등 저작권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오빠까올리’의 홍진기 씨는 MCN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크리에이터들의 파급력을 과소평가하는 국내 기업들의 선입견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삼는 크리에이터들은 한류 붐 조성과 함께 기업들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요소”라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 없이는 MCN 산업이 활짝 꽃피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김준석 인턴기자 rejune1112@naver.com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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